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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17화 (17/1,498)

17화 길을 나서다

방씨 가문의 도장에는 고대(高臺)가 놓여있었다.

고대는 백옥으로 쌓은 것이었는데 무척 호화로웠다.

고대의 아래는 바로 둘레가 백 장은 훌쩍 넘어 보이는 연무대가 있었다. 연무대의 주위에 의자가 한 줄 한 줄 놓여있었다.

진남은 진천의 뒤를 따르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는 제일 먼저 방씨 가문 제자들이 있는 곳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길은 바로 한 청년의 몸에 멈췄다.

청년은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는데 몸집이 방려와 비슷하여 매우 거대했다. 다만 이 청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고작 쉬체 경지 삼 단계 정도였다.

진남이 이 청년을 주시하자 이 청년도 자연히 진씨 가문 사람들을 주시했다. 그 청년은 진씨 가문 사람들을 깔보는 듯했다.

'저게 방여룡인 것 같군. 방여룡은 황급 육 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댔는데 고작 쉬체 경지 삼 단계일 리가 없어. 수행을 감춘 게 분명하구나.'

진남이 눈길을 돌려 고대를 쳐다봤다.

진남은 현령종에서 온 인물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매우 궁금했다.

진남이 바라보는 순간 마침 고대에서도 어떤 시선이 날아왔다. 두 시선은 허공에서 마주쳤다.

진남의 기색이 크게 흔들렸다.

그 눈빛은 특별할 것 없이 평범했다. 어쩌면 상대방이 무의식적으로 한 번 쳐다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진남은 그 눈빛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느꼈다. 그 힘 앞에서 진남은 마치 개미처럼 언제든 짓눌릴 것 같았다.

"진짜 무서운 실력이군……."

진남은 혀를 깨물고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는 눈빛의 주인을 살펴봤다.

백옥으로 만든 고대 위에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여자는 얼굴이 하얗고 가느다란 눈썹은 달처럼 곱고 두 눈은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생기가 돌고 아름다웠다. 그뿐만 아니라 이 여자는 보라색 긴 치마로 몸을 꽁꽁 감싸고 있었다.

햇빛이 비치자 보라색 긴 치마에서 영광(靈光)이 일더니 이 여자의 하얀 피부와 어우러져 서로 돋보이게 했다.

진남은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 저도 몰래 멍해졌다.

"응?"

고대 위의 여자는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진남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진남은 바로 정신이 들었다. 여자의 눈빛이 예리한 검처럼 자신의 몸에 박혀 자신이 그 어떤 비밀도 감출 수 없게 하는 것 같았다.

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에 진남의 몸이 굳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를 그저 힐끔 살펴봤을 뿐이다.

진남은 답답했다는 듯이 가쁘게 숨을 내쉬고는 서둘러 눈길을 돌렸다. 그리곤 백옥 고대 위의 두 번째 사람을 바라봤다.

그 사람은 중년 사내였다. 중년 사내는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는데, 소매에는 금으로 된 장식을 하고 있었다. 가슴에 새겨진 세 마리의 금룡은 표정이 흉악하여 횡포한 느낌을 주었다.

중년 사내는 조금도 자신의 기운을 숨기지 않았다. 그 기세가 너무 사납고 드높아 자세히 쳐다볼 수 없었다.

"현령종(玄靈宗) 두 장로는 매우 강하구나. 적어도 선천 경지 정상급 이상이겠어. 심지어 그 여자는 선천경지를 초월했을 수도 있어……."

진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현령종에 대한 동경이 더욱 깊어졌다.

현령종에서 임의로 나온 두 사람마저 수행이 이 정도면 현령종은 얼마나 강대할까?

그러나 진남은 자신에게 생긴 이상한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쉬체 경지 오 단계일 뿐인데 두 현령종 장로의 경지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번 전신의 혼이 변화를 일으킨 후 그의 두 눈의 능력이 더욱 강해졌고 많이 오묘해졌다. 이건 진남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뒤이어 진씨 가문 사람들이 입장했다. 그들은 방씨 가문 사람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서로 대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진씨 가문, 방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적대시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대부분 눈길을 고대 위에 두고 있었다.

그들도 진남처럼 이번에 현령종에서 파견해 온 두 장로에게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때 방려가 연무대 위로 훌쩍 뛰어올라 장내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섰다. 그의 얼굴엔 붉은 기가 도는 것이, 약간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여러분, 정중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이 두 분이 바로 현령종에서 파견 오신 소경설(蕭輕雪) 장로와 백횡(白橫) 장로십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장내에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장내에 있는 모든 제자들의 얼굴에 흥분감이 드러났다. 백옥 고대 위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존경심과 열정이 가득했다.

소 장로는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반면 백횡 장로는 이런 분위기를 매우 즐기는 듯이 얼굴에 오만함이 가득했다. 백횡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이번에 현령종 제자 선발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이상이다. 방려, 어서 빨리 시작하거라."

짧디짧은 한 마디에는 임수성 사람들에 대한 무시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별다른 반응 없이 당연하다는 듯 여겼다.

오로지 진남만이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백횡이 명령하자 방려가 서둘러 말했다.

"좋다. 첫 번째 관문 무예 시합을 시작하겠다. 아마 다들 규칙은 잘 알겠지. 이제부터 한 명씩 올라와 제비뽑기할 거다. 대진하는 방식은 일 호와 육십 호, 이런 식으로 하여 승리하는 자를 뽑는 것이다."

장내에 있는 제자들은 바로 한 명씩 이 연무대 위로 올라가 제비를 뽑았다.

진남은 느긋하게 뒤에 서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아무거나 뽑았다. 열어보니 커다란 '일'자가 적혀있었다.

"몇 번이냐?"

진천과 철삼이 서둘러 다가와 물었다.

"일 번이요."

진남은 손을 흔들며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첫 번째인 것 같네요."

진천과 철삼은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진남은 표정이 아주 평온했다. 첫 번째로 출전하는 긴장감이 전혀 없이 성큼성큼 연무대 위로 올라갔다.

"진남……! 어떻게 너냐!"

갑자기 답답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고개를 돌려본 진남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뒤에 있는 사람은 진씨 가문 사람인 진해였다.

진남은 진해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진해가 자주 진씨 가문 내에서 그를 깎아내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에 제자 심사에 올 때도 진해는 그를 여러 번 비꼬았었다.

진남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운명인가?

진해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진장공과 진철패를 포함한 아래에 있는 진씨 가문의 사람들이 진해를 보는 눈길에 동정이 가득 찼다.

비록 진남이 황급 일품의 무혼이지만, 현재 진남은 수행이 쉬체 경지 사 단계라 진장공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진해는 황급 사품의 무혼에 쉬체 경지 이 단계인데 어찌 진남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진해는 진남을 여러 번 공격했었다. 진남의 성격에 절대 그를 봐줄 리 없었다.

이때 짜증이 난 듯한 백횡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꾸물대지 말고 빨리 시작하거라."

무예를 겨루는 것에 백횡은 사실 아무런 흥취가 없었다.

제자들이 무예를 겨루는 것은 무혼의 능력을 관찰하려는 것이지만, 제자를 모집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무혼의 등급이었다.

종문에 선발되기 위해선 결국 무혼의 등급이 높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 작은 임수성에 진씨 가문의 진장공, 방씨 가문의 방여룡 외에 다른 천재가 있을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백횡은 줄곧 그러했듯이 자신이 하찮게 여기는 것들에 어떠한 감흥도 없었다.

"진남, 너……"

백횡이 명령하자 진해는 가슴이 덜덜 떨렸다.

그는 또 섣불리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진남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황급 사품의 무혼인 천재라 현령종에 들어갈 기회가 보였는데, 만약 여기서 진남에게 진다면 현령종에 들어갈 기회는 없어질 것이었다.

진해는 너무나도 속상했다. 만약 이번에 현령종 제자가 되지 못하면 그는 이번 생엔 더 이상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비록 내가 경지는 저놈보다는 못 하지만 틀림없이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진해는 속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갑자기 그가 눈을 반짝 빛냈다. 절묘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다.

진해는 긴장을 풀고 안색도 평온을 되찾았다.

그는 손을 쓰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진남, 이번 대결에서 너 스스로 패배를 인정해라. 그렇다면 내가 현령종의 제자가 된 후에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 테니까."

말이 끝나자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진해가 대놓고 상대방에게 패배를 인정하라고 말하다니?

진남도 살짝 당황했다. 그는 진해가 이런 말을 할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진남은 아주 빨리 평정을 되찾았다.

진남이 아무런 태도를 보이지 않자 진해가 더욱 조급해져서 말했다.

"진남, 수행으로 따지면 나는 확실히 너의 상대가 아니야. 그러나 너는 겨우 황급 일품 무혼의 쓰레기잖아. 너는 평생 현령종에 들어갈 기회가 없어. 그러니 이 기회를 나에게 줘. 그러면 내가 꼭 백배로 갚아……"

"시끄럽다! 썩 물러가거라!"

진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둥 치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진남은 더없이 냉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진해가 자신에게 패배를 인정하라고 부탁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온몸에서 칼의 기운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진해를 내리눌렀다.

순간 진해는 돌연히 낯빛이 바뀌더니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진해는 주위가 갑자기 싸늘해지더니 무형의 살의가 기승을 부리는 걸 느꼈다.

마치 머리 위에 차가운 빛이 반짝이는 대도가 떠 있고 언제든 떨어져 내려와 그의 목숨을 뺏을 것 같았다.

"나, 나…… 나……"

진해는 입을 크게 벌리고 겁에 질린 얼굴로 '나'만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는 마치 넋이 나간 거 같았다. 죽는다는 두려움이 그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자라나고 커졌다.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몇 초 동안 침묵했다. 뒤이어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짙은 놀라움이 비꼈다.

어떻게 된 거지?

하늘을 찌르는 차가운 기운은 뭐지?

진남이 어떻게 이렇게 강대한 기운을 내뿜는 거지?

백옥 고대 위의 짜증 난 표정을 하고 있던 백횡 장로마저도 감출 수 없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쉬체 경지 오 단계? 신검합일 대성?"

백횡 장로 뒤에 있던 소 장로의 메마른 눈빛도 반짝거렸다.

이번의 제자 모집 대전은 좀 재미있구나!

백횡 장로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의 모든 제자들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더 짙어졌다.

그들은 진남이 쉬체 경지 오 단계의 수행을 이뤘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진남은 황급 일품의 폐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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