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신검합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진남은 여전히 그 고서적 속에 빠져 있었다.
세 시진이 지날 때쯤 하늘이 갑자기 변했다. 수많은 먹구름이 몰려와 천지가 어두컴컴해졌다. 공중에서 어렴풋이 천둥소리가 전해져 왔다.
곧이어 마치 수문이 열린 듯 수없이 많은 빗방울이 순식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무슨 날씨가 갑자기 징조도 없이 변하는 거지?"
철삼이 한숨을 쉬며 다급히 진남을 향해 소리쳤다.
"진남 소주……!"
이렇게 천둥 번개가 치는 날에는 벼락, 빗방울 등이 모두 수행을 방해할 수 있었다.
깨달음에 빠진 사람에게는 특히나 안 좋게 작용했다.
철삼은 진남을 부르며 진남을 바라보았다.
진남에게 시선을 돌린 철삼은 마치 벼락에 맞은 듯 머리에서 굉음이 울렸다.
하늘에서 세차게 쏟아지는 비와 번개를 까맣게 잊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큰비가 바닥에 떨어지며 후두둑 소리를 냈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진남은 고서적을 한 장 한 장 펼치고 있었다. 넋을 잃은 것처럼 주위의 모든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순간 진남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겨나더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진남의 머리 위 십촌 되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에 멈춰 서 있었다.
진남의 주위의 십촌 되는 곳은 물이 침범하지 못했다.
수십 년간 경뢰검법을 수련했던 철삼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무슨 보이지 않는 장벽이 아니라…… 이건 검의(檢義)였다!
철삼은 수십 년 동안 경뢰검법을 수련하여 신검합일의 경지에 도달했기에 검의를 잘 알고 있었다.
검의는 신검합일을 어느 정도까지 느끼고 대성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장악할 수 있었다.
진남은 이제 신검합일의 경지의 첫 관문에 들었지 않았는가?
그런데 수련 필기를 익힌 지 겨우 하루도 안 되는 사이에 이 정도까지 도달하다니?
진남이 터득하는 게 이토록 빠르단 말인가?
철삼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진남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는 더 이상 소리 내서 진남을 부르지 않았다.
검의가 보호하고 있어 빗물이 떨어져 들어갈 수 없었고, 주위의 천둥소리도 지금 현묘한 상태에 빠진 진남을 놀라게 할 수 없었다.
"만약 진남 소주의 무혼 등급이 조금 더 높다면 그의 성과가 얼마나 대단할까……?"
철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진남이 황급 일품의 무혼밖에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진남의 무예 천부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무혼 등급이 너무 낮으면 창람대륙에서 큰 성과를 이룰 수 없었다.
하늘의 큰비는 계속 잦아질 기색이 없었고, 천둥소리도 끊임없이 울렸다.
그러나 진남의 마당에는 빗물이 내리치는 소리, 우레가 우는 소리는 없고 대신 '웅웅웅' 하는 소리만 대신했다.
이 소리는 바로 진남의 체내의 검의가 내는 것이었다. 칼 한 자루가 상상할 수도 없는 속도로 진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남의 체내의 검의가 점점 더 짙어지고 강대해졌다.
일곱 시진이 지났다.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진남의 온몸을 덮고 있던 도의가 사방으로 흩어졌고 진남도 넋이 나간 상태에서 깨어났다.
"날이 밝아오네……."
진남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보았다. 하늘이 어렴풋이 밝아오는 걸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놀랐다.
그가 고서적에 빠져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진남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일곱 시진 동안 얻은 수확은 엄청났다.
"소주, 축하드립니다. 검의를 장악하여 신검합일을 이루셨군요. 불과 하루만에 대성의 경지에 도달하다니요. 참으로 놀랍습니다."
철삼이 방에서 걸어 나왔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이 모든 것이 삼숙의 경험이 적힌 수련 필기 덕분이에요."
진남이 서둘러 감사를 표했다. 만약 철삼의 수련 필기가 없었다면, 그는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까지 도달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철삼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겸손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주의 무예에 대한 천부적 재질이 뛰어나서 그렇습니다. 다른 이였다면 제 수련 필기만으론 대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진남은 말을 잇지 않고 오히려 이상하듯 물었다.
"참, 삼숙. 방금 삼숙이 말한 신검합일 대성 경지는 어떤 건가요?“
철삼이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공자, 이 문제를 대답하기 전에 제가 먼저 물어보지요. 혹시 지금 장악한 검법이 경뢰검법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힘을 완전히 초월했다는 느낌이 없습니까?"
진남은 어리둥절하더니 생각에 잠긴 듯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경뢰검법은 진씨 가문의 무예 중에서 겨우 중급 정도의 무예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진남이 만약 신검합일을 펼치고 검의를 내보내면 설령 상대가 고급무예를 펼친다 해도, 아니 심지어는 종급의 무예를 펼친다 해도 그를 이길 수 없을 것이었다.
철삼이 계속해서 말했다.
"다들 무예가 초급, 중급, 고급, 그리고 종급으로 나뉘고, 무예의 등급이 높을수록 발휘하는 힘도 더욱 크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무예만 놓고 말하면 확실히 등급이 높으면 힘도 더 큽니다. 그러나 무예가 다른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예를 들어 신검합일 같은 건 무예 등급으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건 일종의 경지이기 때문입니다."
"경지라고요?"
진남은 조금 알 것 같았다.
철삼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예를 들면 신검합일 같은 겁니다."
"신검합일 같은 것을 통틀어서 인기합일(人器合一)이라고 합니다. 인기합일은 초성, 대성, 원만 세 개의 급으로 나뉩니다. 인기합일 후에 또 더 높은 경지가 있는데 '입미지경'(入微之境)이라고 불립니다."
"심지어 입미지경 후엔 또 더욱 높은 무도 경지가 있는데, 저는 그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인기합일, 그 위에 또 입미지경이 있군요…… 그렇군요, 그런 거였어요……."
진남은 그제야 모든 걸 깨닫고 이해하였다.
즉, 무예는 단지 수단일 뿐이었다. 무예를 바탕으로 경지를 높여서 강대한 경지를 장악한다면 발휘하는 힘도 더 커지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진남이 지금 익힌 경뢰검법은 중급 무예로는 분류되지만, 실제론 신검합일 대성 경지를 장악한 것으로 봐야 했다.
"소주, 일단은 날이 밝았으니 지금 진씨 가문 사람들과 합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합류한 뒤 방씨 가문으로 가서 현령종 제자 모집 대전을 참가해야 하니까요."
철삼이 진남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을 보고 일깨워주듯이 말했다.
진남이 정신을 차렸다. 밖은 벌써 소란스러웠다.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철삼과 진남은 함께 진씨 가문의 도장으로 걸어갔다.
도장은 시끌벅적했다.
맨 앞에 있는 대장로 진철패는 얼굴 가득 춘광이 돌고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이 장로와 삼 장로 그리고 진씨 가문의 크고 작은 집사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진천이 있었다. 다만 진천의 뒤에는 아무도 없어서 진천 혼자서 고독하게 제 자리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아래에 있는 제자들은 진장공을 필두로 하고 있었다.
진장공은 지난날의 굴욕을 벗은 듯 기개를 회복한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오만이 가득했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쉬체 경지 삼 단계보다 더욱 횡포했다. 며칠 사이에 적지 않은 수행 자원을 복용한 것이 분명했다.
철삼과 진남이 도장으로 들어서자 본래 들끓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치 한 무더기의 불꽃에 차가운 물을 부은 것 같았다.
모든 눈길이 일제히 그 둘에게 향했다.
맨 먼저 그들을 바라본 사람은 진철패와 진장공 부자였다.
진남과 철삼을 바라보는 이들 부자의 눈길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진철패와 진장공은 이번 현령종 제자 모집 대전에서 복수하기로 마음을 먹은 게 분명했다.
다른 눈길은 진씨 가문의 크고 작은 장로, 집사들 것이었다.
얼마 전 의사대전에서 진남은 진장공을 격파한 후 장로들과 집사들을 훈계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이들은 그때 그 말을 새겨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장로들과 집사들은 진남에게 무시하는 눈빛을 보냈다.
'감히 후회하지 말라고 했겠지? 진짜 웃기는 소리구나. 진남, 너와 진천을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후회하는 길이다.'
나머지는 진씨 가문의 제자들이었다. 진씨 가문 제자들의 눈길은 그나마 부드러웠다.
이는 진남의 수행이 그들보다 훨씬 높아서 그들은 진남의 기력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자 중에도 언짢은 표정을 하고 낮은 소리로 비웃는 자들도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심한 사람은 진씨 가문의 황급 사품의 천재 제자인 진해였다.
진남은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았다.
방금 도장으로 들어올 때 그는 이미 전체적인 상황을 다 보았다.
비록 속으로는 사람들에게 실망했지만 전혀 티 내지 않았다. 그는 장로들과 집사, 제자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진남과 철삼이 진천의 뒤에 서자 쥐 죽은 듯 조용하던 도장이 그제야 조금씩 소곤대며 생기를 되찾았다.
이때 진천이 입을 열었다.
"좋다. 다들 규칙을 이해했겠지? 그럼 더 말하지 않겠다. 모두 모였으면 방씨 가문으로 출발하자."
말을 마친 진천은 손을 흔들더니, 진남과 철삼을 거느리고 앞장서 걸어갔다.
그 뒤로 진철패 등 사람들이 그제야 재빨리 뒤따라 진씨 가문의 방대한 부대를 거느리고 방씨 가문으로 향했다.
잠시 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굉장한 붉은 나무 대문이 진천을 따라오던 진남의 눈에 들어왔다. 대문의 위쪽에 금빛 현판이 걸려있었다.
현판에는 '방가'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글씨는 더할 나위 없이 힘차 보였다.
방씨 가문의 대문에 하인들이 다섯 줄을 이루며 서 있었다. 하인들은 붉은 두루마기를 입고 상기된 표정이었다.
진씨 가문의 사람들을 보자 하인 중에 쉬체 경지 삼 단계의 하인이 크게 소리쳤다.
"진씨 가문의 손님들이 왔어요."
소리가 끝나자 무서운 기세가 갑자기 방씨 집안에서 솟구쳐 나왔다. 백호 그림이 그려진 두루마기를 입은 거대한 사내가 큰 걸음으로 걸어왔다. 웃고는 있었지만 강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는 바로 방씨 가문의 가주 방려였다.
방려가 나타나자 진씨 가문의 집사들, 그리고 제자들은 모두 긴장했다.
"진씨 가문의 분들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진천 형, 이곳이 작아서 제대로 접대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라오."
방려가 웃는 얼굴로 환영했다. 그러나 진철패 등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진천만 바라보았다.
진철패 등 사람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비록 지금은 진천이 여전히 가주이지만 진씨 가문의 앞으로의 실권자는 진철패가 될 것이라는 소문은 이미 파다했다.
그런데 방려는 진철패를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방씨 가문의 구역이고, 더구나 현령종이 제자를 모집하는 대전이었다. 때문에 진철패는 아무리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방씨 가문은 이미 충분히 호화롭소. 방려 형, 우리 인사치레는 그만합시다. 두 분 장로들을 기다리게 하지 맙시다."
진천이 태연한 기색으로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방려도 길게 말하지 않고 사람들을 거느리고 방씨 가문으로 들어갔다.
다만 가는 길에 방려는 진천에게 말을 걸었고, 심지어 진남에 대해서도 물었다. 옆에 있는 진철패 등 사람들은 여전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방려가 진씨 가문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곧장 도장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