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107화 (102/122)

# 107

31. 두삼을 원하는(?) 사람들(2)

“…한의학을 우습게 알던 중국 고수는 자신이 치료하려던 사람을 한국 고수가 치료한 걸 알고 분노했어. 그래서 그에게 대결을 하자고 제안했지,”

“그래서요? 한국의 고수가 받아들였습니까?”

“아니. 한국 고수는 ‘내가 왜?’라고 말하면서 거부를 한 거야. 하지만 중국 고수는 억지로라도 하게 만들자고 다짐했지. 그리고 진검 승부의 서막이 열린 거지.”

“근데 한국 고수가 거부하는데 대결이 되나요?”

“다 방법이 있지. 들어봐.”

엘튼 리는 아직도 전설의 고수 타령을 하고 있었다. 다들 흥미로운지 세 인턴은 물론 간호사들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다.

“중국 고수는 멀쩡한 호텔 직원의 팔을 못 쓰게 만들어서 한국 고수의 방에 보낸 거야.”

“아! 기발한 방법이네요. 그래서요?”

사람들의 적당한 맞장구에 신이 났는지 엘튼 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속도를 조절한 후 말했다.

“환자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하는 한국 고수는 빤히 중국 고수의 수작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지. 그에 고쳐서 보냈지.”

“집요한 중국 고수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을 것 같은데요?”

인턴 최영환이 말했다. 그러자 엘튼 리는 그의 뒤로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가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는 걸 눈치챈 사람은 두삼밖에 없었다.

“맞아! 중국 고수는 이번에는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서 보냈어.”

“하지만 한국 고수는 다시 풀었겠죠?”

“역시 똑똑한 애들이라 바로 아는구나. 그랬어! 그렇게 대결이 시작된 거야. 한 사람은 아프게 하고 한 사람은 낫게 하고. 크으~ 어마어마한 사투였지.”

“어떤 방법이었습니까?”

두삼이 담당하게 된 인턴 양태일이 물었다.

한데 엘튼 리는 호불호가 어찌나 명확한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7일 낮, 7일 밤 동안 대결은 계속 됐어.”

무협지냐?

“마침내 한국 고수는 이래선 끝이 없겠구나 생각하게 된 거야. 그래서 마침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낫게 한 환자를 다시 아프게 만들어서 중국 고수의 방으로 보낸 거야.”

“중국 고수가 풀었나요?”

“중국 고수는 삼일 밤낮을 고민했어. 어찌나 고민을 심하게 했는지 머리카락까지 새하얗게 변해 버릴 정도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칠 수가 없었어.”

“패배군요!”

“그렇지. 그가 사흘 동안 풀지 못한 것을 한국 고수는 단숨에 풀며 백발이 된 중국 고수에게 말했어.”

“뭐라고요?”

다들 어떤 멋진 말을 했을까 기대하면서 엘튼 리의 입이 떨어지길 기대했다.

“까불지 말고 너희 나라로 꺼져!”

“에이~ 진짜 그렇게 말했으려고요?”

“맞아요. 뭔가 작위적인 냄새가…….”

“허어~ 고수의 깊은 뜻을 모르겠어? 마지막에 말로 다시 한번 밟은 거잖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지. 만일 내가 패배를 했을 때 저런 말을 들었다면 혈압에 쓰러졌을 거야.”

하여간 갖다 붙이는 건 잘한다.

두삼은 지나가다가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을 하며 양태일을 불렀다.

“양 선생, 일하러 가자.”

“예, 선생님.”

양태일을 데리고 간 곳은 안마실이었다.

“이곳은 진료실에서 보낸 환자들에게 그에 맞는 안마를 하는 곳이야. 현재 8명이 있는데 조만간 4명을 추가로 늘릴 계획이야. 혹시 안마과에 관심이 있으면 틈틈이 올라와 안마사들께 가르침을 청해봐.”

“안마사에게 배워요?”

“훗! 양 선생, 안마사들보다 안마 잘해?”

“아뇨.”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제 말뜻은 지시를 내려야 하는데 배우게 되면…….”

“부끄럽다? 체면을 중요시 하나? 재미있네. 모르면 초등학생에게라도 배워야지. 그리고 그 기술을 자신의 한의학적 지식에 녹여야 하는 거 아닐까. 싫으면 학원에 가서 배우든가.”

“…기분 상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전 그저 지시를 내리려면 더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니까. 괜찮아. 각자의 생각이라는 게 다른 거지. 수련의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같은 의사잖아. 난 양 선생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라고 권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하고 말고는 양 선생의 선택이야.”

그에 대한 평가 점수를 낮춘 것뿐이지 기분은 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인턴이란 존재가 전문의 과정을 무엇으로 할까 과를 살펴보는 과정이었다.

물론 나중에 과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을 때 받아들일지는 두삼의 선택이었다.

“자! 이번에 볼 환자에 대한 기록이야. 확인해 봐.”

“환자명 노형진. 나이…….”

“속으로. 읽어보라고 했지 보고하라는 게 아니잖아.”

“…예, 죄송합니다.”

두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졸업을 했을 때 저랬나 싶다.

사실 한의대 졸업생 중 많은 이들이 전문의 과정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굳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이후 본인의 가게를 차린다.

하지만 선배로서 충고하자면 최소한 1년쯤은 다른 병원, 혹은 한의원에서 일해보길 추천한다.

“확인했습니다.”

“이 환자에게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점이 뭐지?”

“살 처짐인 것 같습니다.”

어라? 진료 기록 파악 능력이 제법이다.

“왜 그렇게 생각해?”

“지난주부터 잘 빠지던 살이 갑자기 멈추고 안마의 양이 1.5배로 늘었습니다. 괄호 속에 anti-D가 처짐을 말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오! 백점! 그럼 실력을 보러 갈까.”

안마실로 들어가 인사를 하고 실제 안마가 이루어지고 있는 방 중 노형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유리창에 촬영팀이 있었기에 찾기 쉬웠다.

안마사 우진희가 땀을 흘리며 거대한 노형진의 뱃살 부분을 안마하고 있었다.

“희진 씨, 그만 쉬세요.”

“네, 선생님. 내일 봬요, 형진 씨.”

“네, 안마사님. 고생하셨습니다.”

노형진은 벌떡 일어나 우희진에게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농담을 했다.

“어째 나한테 하는 것보다 더 정중하게 인사를 하네요? 혹시 성별 때문에 그런 거면 남녀 차별인데.”

“그게 아니라… 저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셔서.”

“이거야, 원. 땀샘을 조절해서 땀을 뻘뻘 흘리든가 해야지.”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재미없는 농담은 여기까지 하죠. 여긴 오늘 새로 온 양태일 선생이에요. 자주 볼 테니 인사해요.”

인사를 시킨 후 노형진의 처진 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살짝 처진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준이다.

“검사 결과도 그렇고 근육은 어느 정도 붙었네요.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어요.”

“…이제 고기를 못 먹나요?”

“왜 더 먹고 싶으세요?”

“안 먹고 싶다면 거짓이겠죠.”

“그럼 이제부터 운동량을 두 배로 늘리세요. 특히 빠르게 걷는 걸 추천합니다. 허리와 배에 근육이 붙는 것과 동시에 피부를 탄력 있게 만들 겁니다.”

“…지금도 세 시간씩 하는데요?”

“1.5배로 늘리고 먹는 양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노형진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두 배로 늘이는 걸 선택했다.

“자, 그럼 이번 단계에 맞는 세팅을 하죠.”

두삼의 노형진의 몸을 주무르면서 이미 해둔 세팅에서 에너지 소모량이 많아지는 부분만 5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올렸다.

그리고 지방 아래 만들어진 근육을 풀었다.

이 상태에서 운동을 하면 더욱 탄력 있는 근육이 만들어진다.

“이제 침 솜씨 좀 볼까?”

양태일을 향해 말했다.

“이분께요?”

“응. 노형일 씨, 위 활동을 느리게 하는 침을 쓸 건데 양태일 선생이 해도 되죠?”

“…절 실험체로 쓰시는 거예요?”

“끝나고 이른 점심 쏠게요. 물론 푸드코트에서지만.”

“…마음껏 찌르세요.”

점심 한 끼에 테스트할 신체를 얻었으니 싼 편이다.

“위 활동을 느리게 하는 침에 대해선 제가 잘 모릅니다만.”

“불러줄게.”

“그럼 해보겠습니다.”

양태일은 오동통하고 귀여운 손에 장갑을 낀 후 드레싱카 위에 있는 침을 까서 들었다.

‘이 친구 마음에 드는데. 실력은 어떨지.’

아까 낮아졌던 점수는 금세 평균보다 높아졌다.

“임맥의 하완혈. 손가락 한 마디, 1.8센티. 족소양담경의 일월혈 수직으로 1센티.”

얼마나 혈에 대해 잘 아느냐에 대한 시험이다.

그래서 한 가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일단 찌르는 깊이에 대한 기준. 평범한 사람 기준으로 1.8㎝다.

하나 마른 사람과 뚱뚱한 사람은 달랐다.

특히 고도비만인 노형진에게 1.8㎝를 찔러봐야 지방층에 꽂는 것밖에 되지 않아 아무런 효과가 없다.

물론 그 정도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고한 기준이 없다면 제대로 찌르기 힘들다.

한데 양태일은 불러주자마자 척척 꽂았다.

그것도 제대로.

‘이래서 엘튼이 기인이사들이 많다고 한 건가. 보통 솜씨가 아니네. 어디 기운은 얼마나 실었는지 볼까.’

노형진에게 손을 올려 기운을 보내 양태일이 꽂은 혈 자리를 살폈다.

‘엥? 이건 또 뭐야?’

침 중에 기를 머금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즉, 그냥 침만 잘 꽂았다는 얘기다.

“됐다, 뽑아라. 넌 도대체 왜 한의사가 됐냐? 양의학을 배웠으면 굉장한 실력자가 됐을 텐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진 씨, 샤워하고 옷 입고 나와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카메라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기에 입구 앞으로 이동했다. 방금 전에 한 말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건지 그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왜 선생님은 제가 한의학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몰라서 묻는 거냐?”

“예, 모르겠습니다.”

“반응이 날카로운 거 보니 내가 보기엔 전에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

“…그것과는 상관없습니다만 선생님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상당히 반항적이다.

하지만 두삼이 보기엔 상처를 건드리자 예민해진 새끼 고양이처럼 보였다.

두삼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누가 그런 말을 했었는데?”

“한 선생님!”

“목소리 줄여라. 내 질문이 끝나면 대답해 줄 테니까. 그리고 나 옛날에 성격 더러웠다. 까불다가 맞으면 쪽팔려서 얼굴은 어떻게 볼래?”

“…아버지께요.”

“아버지께서 한의사신가 보네.”

“…네.”

“아버지께서 이유는 말 안 해주셨어?”

“…믿지 않는데 어떻게 제대로 침을 쓸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내 말도 바로 그거야. 양 선생, 기를 안 믿지 않아?”

“선생님은 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응! 당연히. 그러니까 한의사를 하고 있지.”

“그럼, 증명해 보십시오.”

“하하하! 양 선생, 참 재미있구나.”

“선생님의 반응도 똑같군요. 증명해 보라고 말하면 하나같이 믿으라는 말만 하죠. 어차피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 아닙니까.”

“그 때문에 웃은 게 아니라 어떻게 증명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증명하긴 귀찮다. 차라리 네가 증명해 보는 건 어때?”

“전 안 믿습니다!”

“알아. 그러니까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을 네가 증명해 보라는 거야.”

“……?”

“너, 아까 전설의 고수 얘기 들었을 때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결했는지 궁금해했었지? 우리도 대결 한번 해보자. 가운 벗어봐.”

그는 시키는 대로 했다.

“오른손잡이지? 그럼 왼손을 마비시킬게.”

두삼은 의아해하는 양태일의 왼팔에 침을 꽂았다.

“이제 움직여 봐.”

“도대체 무슨 도깨비놀음을… 어?!”

“안 움직이지? 이 시간부로 넌 본관으로 가. 거기서 어떤 진료를 받아도 좋고, 어떤 검사를 받아도 좋아. 그래서 네 팔이 왜 안 움직이는지 증명해 봐. 만일 네가 증명을 하거나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내가 지는 거야. 지게 되면 로비에서 벌거벗고 춤을 출게.”

“제가 지면요?”

“기가 존재하고 한의사의 한 동작, 한 동작에 기가 실림을 인정해.”

“기간은요?”

“네가 인정할 때까지. 다만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나에게 와. 잘못하면 진짜 불구가 되니까.”

“…알겠습니다.”

“밥은 안 먹고 가냐?”

밥을 먹을 생각이 없는지 양태일은 움직이는 오른팔로 가운을 챙겨 사라졌다.

왜 인턴이 기를 믿는지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결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알고 있었다.

“어? 새로 온 선생님은 어디 가셨어요?”

“알아볼 일이 있다고 갔어요. 모두 내려가죠. 참! 주목 받기 싫으니 카메라는 잠깐 꺼주시고요.”

촬영팀과 함께 푸드코트에 갔다.

원하는 음식을 고른 후 자리를 잡고 앉아 먹었다.

“조감독님, 기영이 형은 뭐 해요?”

“새로운 의사랑 환자 찾고 있지.”

“또요?”

“케이스마다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부족하지.”

“고생하네요. 근데 촬영 감독님, 어깨 치료 받으시라니까 왜 안 와요?”

“촬영해야지.”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시간 잠깐씩이라도 내요. 병원에 다닐 때 아님 또 언제 고쳐요.”

거의 매일 보다 보니 제법 친해졌다.

“알았다.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근데 형진 씨는 아무리 봐도 맛있게 먹지 않냐? 식욕이 늘어난다니까.”

“그래요?”

원래도 맛있게 먹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늘어난다니 신기한 마음에 두삼도 그를 봤다.

그는 삼겹살 정식 3인분과 촙 스테이크를 시켜서 먹고 있었는데 촬영감독의 말을 듣고 봐서일까 한 젓가락 먹을 때마다 영혼을 담아 무척 맛있게 먹고 있었다.

특히 살이 빠지면서 얼굴 표정이 잘 드러났는데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그의 음식을 뺏어먹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허~ 진짜네요.”

“장난 아니라니까. 난 계속 찍고 있잖아. 계속 보고 있음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된다니까. 그리고 위가 자극되는지 속이 쓰릴 정도야.”

“보는 것만으로 식욕 촉진 호르몬이 분출이 되거든요. 그리고 그 호르몬이 뇌를 자극해 배가 고프다고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자연 과식하게 되는데… 아!”

문득 말하다 보니 고연아의 뇌에서 발생하는 ‘토해라’라는 무수한 신호를 없앨 방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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