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31. 두삼을 원하는(?) 사람들(3)
“이걸 뭐 하려고?”
박기영은 노형진의 밥 먹는 모습이 담긴 여러 개의 USB 저장 장치를 건네며 물었다.
두삼이 이틀 전에 부탁한 것이었다.
“환자 치료할 때 쓰려고요.”
“…헐, 이걸로? 네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았다만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편집해 준 직원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라더라.”
“정상적인 방법이 안 통하니 이러는 거예요. 그리고 치료가 될지 안 될지는 해봐야 해요.”
“난 모르겠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 부탁 한 가지 들어준다는 얘긴 잊지 마라.”
“물론이죠. 고마워요. 잘 쓸게요. 근데 출근을 일찍 하네요?”
“퇴근이다. 방송이 아직 한 달 넘게 남았는데 엄 PD 그 인간이 사람을 아주 들들 볶는다.”
“병원에 올 때 와요. 마사지 한번 시원하게 해드릴게요.”
“그걸로 부탁 땡 하려는?”
들켰다.
“…제가 그렇게 치사한 인간으로 보였어요?”
“하긴 그 정도로 치사하진 않지. 사양하지 않을게. 오늘은 이만 자러 간다.”
“들어가요.”
박기영이 가는 것을 보고 차에 올라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곧장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가지고 올라갔다.
아침을 먹이고 물리치료를 한 후 팔다리를 풀어줬다.
“확실히 많이 좋아졌어요. 근육도 어느 정도 생겼으니 이제 슬슬 몸매 만들기와 얼굴 만들기에 들어가도 되겠어요.”
“…고쳐봐야 뭐 해요. 타고난 게 좋지 못한데.”
“아름답지 못해도 호감이 가는 얼굴을 가질 수 있고 잘 빠지지 않아도 건강한 몸매를 가질 수 있어요. 다 가지면 인생 너무 재미없지 않아요?”
“몸매, 얼굴 다 가진 사람들 많아요.”
“그들 모두가 연아 씨처럼 재벌 3세는 아니죠. 진부한 말이지만 당신이 당신을 사랑해야 해요.”
“…진짜 진부하네요. 하고픈 말이 뭐예요.”
“당신을 낫게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테스트를 해봤으면 해요.”
“테스트?”
“네. 정신과 치료를 거부하니 다른 방법이라도 써봐야 하지 않겠어요. 여기에 든 건 누군가가 먹는 걸 찍는 영상이에요. 이걸 꾸준히 봐요.”
“남이 먹는 모습, 그러니까 나더러 먹방을 보라고요? 그리고 그게 치료가 된다고요?”
“될지 안 될지는 두고 보자고요.”
“싫어요!”
“싫으면 정신과 치료를 받든가요. 볼래요? 아님 치료를 받을래요? 다른 선택권은 없어요.”
“…협박이에요?”
“부탁이에요.”
고연아는 물끄러미 두삼을 보다가 이길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알았어요. 볼게요.”
“잘 생각했어요.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볼 테니 그동안은 노력해 줘요. 점심 때 봐요.”
두삼이 병실을 나가자 그녀는 그가 사라진 문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그녀의 엄마, 원 여사가 비서와 함께 들어왔다.
“딸~ 아침 먹고 치료 잘 받았어?”
“항상 그렇지, 뭐.”
“별소린 없고?”
“많이 좋아졌대. 그리고 앞으론 저기 USB에 담긴 영상 보래.”
“뭔데? 김 비서, 틀어봐.”
김 비서는 USB를 TV에 꽂고 영상을 틀었다.
“…저, 저게 뭐야!”
원 여사는 깜짝 놀라 외쳤다. 웬 뚱뚱한 남자가 음식을 먹는 모습이 나왔는데 원 여사가 보기엔 혐오 동영상인가 싶었다.
“먹방이야. 먹는 모습을 보면 식욕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아.”
“한 선생도 어떤 면에선 참 엉뚱해. 저런 걸 보고 식욕이 느껴지긴 하는 거니?”
“모르겠어. 하지만 나를 고치겠다고 애써 생각해 온 성의를 봐서라도 한 번은 봐야지.”
“네가 언제부터 남의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그러게. 근데 한 선생이 날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싫다고 할 수가 없어.”
“설마, 너…….’
원 여사는 고연아의 말투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좋아하느냐고? 엄만 내가 이런 꼴을 당해놓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사람 마음이란 모르는 거다, 너.”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오래된 친구 같아. 한 선생은 어떤지 모르지만. …쓸데없는 소리 하려면 이제 그만 가. 나 영상 볼 거야.”
“이제 큰소리도 치고 살 만한가 보네. 알았다, 얘. 조용히 하고 있을게.”
살짝 눈을 흘긴 후 영상에 집중하는 고연아와, 그녀를 보는 원 여사의 눈빛은 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했다.
‘한 선생에 대해 좀 더 알아보라고 해야겠어.’
가족 관계, 학력, 이력 등 기본적인 것은 이미 알아봤다. 하지만 좀 더 깊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근데 저런 걸 왜 보는 거야? …맛있게 먹긴 하네.’
할 일이 없어 TV를 보던 한 여사는 곧 TV에 집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 * *
“안녕하세요, 서 선생님.”
고연아를 진료한 후 바로 특실로 왔다. 걸크러시 하라의 컨디션이 회복되어 이제 고통스러운 부분에 대한 치료를 할 생각이었다.
“어서 와. 혹시 시간 돼? 부탁할게 있는데.”
“급한 거 아님 조금 이따가 하시고 저부터 좀 도와주세요.”
“뭔데?”
“오늘 하라 씨가 겪는 고통을 제거할까 해서요.”
“그래? 내가 어떤 걸 도와주면 되는데?”
“가슴 보형물이 어떻게 고정되어야 예쁘지 알려주셨으면 해요. 본래는 그냥 치료만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꼼꼼함을 겪어보니 그냥 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좋은 마음가짐이야. 흔히 가슴 보형물만 크게 넣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 흉부의 구조에 따라 어느 정도의 크기 적절한지, 어떤 모양이 좋은지 완전히 달라져. 남자들은 무조건 크면 좋아하겠지만.”
“크다고 좋아하는 건 오햅니다. 시각적으로……. 흠! 아무튼 이왕 치료하는데 치료 외적인 면에서도 환자가 만족했으면 좋겠어요.”
“기꺼이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선생님. 참! 부탁하실 건 뭐예요?”
“으응, 별거 아냐. 근데 본관에 갔다가 들은 건데 지난 토요일 날 응급실에서 엄청난 일을 저질렀던데?”
“일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도와준 것밖에 없습니다.”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겸손은. 사망 선고 하려던 사람도 살렸다며?”
“운이죠.”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지. 특히나 대중은 더욱더.”
“갑자기 대중이 왜 나와요?”
“몰랐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몰랐나 보네. 한 선생이 살린 환자 딸이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건지 119 구급대원과 우리 병원, 특히 한 선생에 대해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그게 화제가 됐어.”
“쿨럭!”
“그 덕에 현재 응급실이 죽을 맛인가 봐. 아니, 병원 전체적으로 환자가 몰려오고 있대. 뭐라고 썼는지 궁금하지 않아?”
“별로요. 들어가죠.”
사실 병원으로서는 이런 소문이 나는 게 좋을 것이다. 다만 두삼 개인적으로는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기대감을 가지고 오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돌아오는 역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방엔 강가영이 하라와 같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 이사님. 아무래도 치료 방법이 일반적이진 않아 지켜봐야 할 분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불렀습니다.”
“지난번과 비슷한 치료만 아니면 돼요.”
“…하하. 당연하죠. 하라 씨,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좋아요. 잘되겠죠?”
고통과 환각제에서 벗어난 그녀는 표정이나 말투가 한결 밝았다.
“잘될 거예요. 서 선생님 아시죠? 서 선생님이 위치를 잡는 데 도움을 주실 거예요.”
“자주 오셔서 얘기 많이 나눴어요. 서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호호! 걱정 말아요. 지금보다 더 예쁘게 자리 잡게 도울게요.”
두 사람의 얘기가 끝난 후 말을 이었다.
“치료를 할 때 잘래요? 아님 깨어 있을래요? 전 개인적으로 잤으면 좋겠어요.”
“혼자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잘래요.”
“잘 생각했어요.”
두삼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린 후 기운을 불어넣었다.
이 작업도 고연아 덕분에 엄청 실력이 좋아졌는데 몇 시간은 깨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쿨쿨 잠든 하라. 단추를 풀어 상의를 벗기고 브라도 풀었다. 뽀얀 가슴 밑에 전에 자해했던 자국이 보였다.
나름 어색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서문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 푸는 게 능숙한데?”
“장난치지 마세요.”
“풉! 뭐야? 설마 부끄러워하는 거야? 호호호! 이해해. 우리 과 레지던트들도 처음엔 다들 비슷하거든. 그럴 때 내가 우리 과 수련생들한테 뭐라고 하는지 알아?”
“빤하겠죠. 환자로 봐라, 아님 통나무라고 생각해라.”
“아니거든. 여자 친구, 혹은 와이프로 보라고 해.”
“……네?”
가슴을 잡고 엉겨 붙을 것을 뜯어내야 하는데 애인으로 생각하면 어쩌라는 건가.
“사적인 감정을 가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의사로서 당연한 거야. 다만 다룰 때 그만큼 조심해서 다루라는 거야. 하루에 수십 명의 가슴을 보게 되면 무감각해져. 게다가 수술을 많이 하면 사람처럼 안 느껴져. 기계처럼 보형물을 넣고 환자의 신체를 보며 농담을 하지. 그렇게 한 수술이 제대로 될까?”
“작은 혈관과 신경들이 많이 다치게 되겠죠.”
“맞아. 이상한 상상을 하고 그에 매몰되어 미친 짓을 하라는 얘기가 아냐. 수술을 할 때만큼은 소중하게 대하라는 거야. 이해하겠어?”
“대충은요.”
“참 뽀얗고 예쁜 가슴이지?”
아무리 조언을 들었다고 해도 대답은 못 하겠다.
“근데 아파해. 내가 볼 땐 모양도 별로고. 그러니 거울을 볼 때마다 자랑스러워하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가슴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자.”
“…예, 선생님.”
뭔가 찌릿한 느낌을 주는 말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두삼의 양손은 하얗게 빛났다. 그리고 그 손으로 하라의 가슴을 잡았다.
제법 큰 두삼의 손에 딱 잡히는 크기. 하라의 왜소한 체형에 비하면 살짝 큰 감은 있었다.
손가락들이 움직여서 보형물의 경계를 찾는 행위는 옆에서 보기엔 영락없이 여자의 가슴을 애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주무르고 있는 두삼은 내부를 보는 데 정신이 없었다.
원래는 그냥 신경과 작은 혈관이 눌러 붙어 있는 곳을 잡아 뜯은 후 상황을 봐서 조치를 취하려 했으나 하라가 하란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바뀌었다.
이름도 비슷하지 않은가.
‘조심조심! …오케이! 제대로 떨어졌어.’
살릴 수 있는 혈관과 신경들은 주무르는 힘과 기를 이용해 살려냈다.
꽤나 지루한 작업.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집중하게 된다.
‘더 이상 하려면 오늘 하루 다 날려도 안 되겠어. 이만하고 뜯어내자.’
손가락에 힘을 줬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보형물을 살짝 들어올렸다.
찌직! 찌지직!
제멋대로 엉겨 있던 작은 혈관들과 신경이 떨어지면서 마치 테이프가 박스에서 떨어질 때와 비슷한 느낌과 소리가 났다.
“후우~”
고통을 유발하는 부분을 뜯어낸 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보형물에서 떨어진 혈관과 신경들을 정리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내시경을 이용해 다 말끔하게 긁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막아야 했다.
일일이 막을 수 없으니 길쭉한 두 개의 기를 만들어 아래위로 집어버렸다. 며칠 이렇게 놔두면 제멋대로 생성된 신경과 혈관은 죽을 것이다.
고통에 대한 처치를 마치고 난 후에 가슴에서 손을 뗐다. 이제부터는 굳이 가슴에 올릴 필요는 없었다.
“이제부터 서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반듯이 눕혀볼래?”
눕히자 가슴이 살짝 봉긋해졌다.
“원형 보형물에 스무스 타입을 썼네. 피막이 형성되면서 살짝 구형으로 됐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해하자 서문희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공부 안 했어?”
“…그게, 아시다시피 제가 성형엔 관심이 없고, 시간도 없기도 했고… 저는 성형이 아니라 치료를 하는 거고… 그래서 선생님을 모시고 온 거고…….”
괜스레 눈을 날카롭게 만들어줬나 보다.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꽤 무섭다. 그래서인지 말을 하다가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미 외모를 고치는 성형수술 분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고 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아무리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해도, 관심이 없다고 해도 본인이 하는 치료에 대해 기본적인 일은 알아야 하지 않겠어?”
“…죄송합니다. 보형물에 대해선 따로 공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믿어볼게. 원형 보형물도 있고 물방울 형태의 보형물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별도로 제작하는 경우도 있어. 그리고 원형 보형물 중 피시술자의 움직임에 따라 내부의 물질이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종류가 있는데 그런 걸 스무스 타입이라고 해. 그런 스무스 타입의 경우 피막이 형성 전까지 가슴 마사지를 해주면 아주 예쁜 형태가 나오지.”
“그렇군요.”
“알았으면 얼른 마사지해. 오른쪽을 좀 더 많이 해야 할 거야.”
“…오일 가져오겠습니다.”
“자! 이거 써.”
예상이라도 했을까 서문희는 마시지용 오일을 가지고 왔다. 오일을 가슴에 뿌린 후 마사지를 시작했다.
“여자 친구 가슴을 마사지한다고 생각해.”
“…네네.”
기운을 다시 들여보내 위쪽 피막을 살폈다. 서문희가 본 대로 피막이 형성되면 살짝 운 곳이 있었기에 기를 이용해 떼어낸 후 다시 붙였다.
“좋아! 거기까지. 상체를 일으켜 볼래?”
자신은 내부를 보고 제대로 펴졌다는 걸 알았는데 그녀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확하게 알았다.
“왼쪽 가슴 보형물 아래쪽을 살짝 왼쪽으로 넓혔으면 하는데 가능해?”
“…그럼 뜯어야 할 것 같은데요.”
“할 수 있으면 해. 그게 예쁘니까.”
“……예.”
문득 하라의 사주라도 받은 거 아닌가 싶을 만큼 그녀의 요구는 꼼꼼했다. 그러나 원래 꼼꼼했던 그녀였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