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103화 (98/122)

# 103

30. 길고 긴 밤(2)

의식하지 않아도 임독양맥을 돌던 기운이 거의 사라지자 허탈감이 더 크게 찾아왔다.

끝을 내고 뒤로 물러서는데 어지러워 비척거렸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두 명의 수련의 중 더 피곤해 보이는 이가 물었다. 뒤에 있는 기둥에 살짝 기댄 후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조금 무리했나 봅니다. 흉부외과 선생님은?”

“내려오신다고 했으니 곧 오실 겁니다. 아! 저기 오시는 분들인가 보네요.”

돌아보니 지강욱 과장이 여러 명의 수련의들과 함께 오고 있었다.

“이 환잔가? 검사 결과 줘봐.”

태블릿을 건네받아 검사 결과를 확인하던 그의 표정이 구겨졌다. 당연했다. 어디에도 심근경색이란 검사 결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큰소리가 날 것 같아 나서려 하는데 그가 예상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도 하지 않고 심근경색이라는 진단을 내린 사람은 누군가? 인턴 자넨가? 아님, 1년차 자넨가.”

인턴에게 말할 때와 1년차에게 말할 때와 말투가 사뭇 다른 건 착각인가?

“제가 진단했습니다, 선생님.”

“어? 자네는…….”

“시연회 때 뵀었죠. 현재 환자의 관상동맥이 심각하게 좁혀졌습니다. 위험 부위는 진행을 막아뒀는데 다른 부분도 꽤 위험합니다.”

“관상동맥이라고만 말하면 어떻게 하나?”

“아! 오른 관상동맥 밑 부분 중에 다섯 시 방향으로 내려가는 부분이 유독 심합니다.”

“예각가지를 말하나 보군. 심장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 하면서 조치를 취했다니 생각보다 재주가 여러 가지인 모양이야?”

“…….”

“믿어보지. 자네들은 보호자에게 동의서를 받아오고, 너희들은 바로 검사실로 가서 심장 혈관 CT 찍어.”

수련의들은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자리엔 둘만 남았다.

“꽤 피곤한 모습이군. 마취에 도움이 될까 해서 청하에게 부르라고 했는데 다른 일을 한 모양이군.”

자신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밀인가 보군?”

“…비밀은 아닙니다만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가급적 알려지지 않길 바랐습니다.”

“꽤 피곤하게 사는군.”

“그러게요. 오늘 같은 날은 무척 번거롭네요. 곧 다 밝혀지는 날이……!”

드르륵!

오늘 수없이 들었던 침상 끄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얼마인데 들릴까. 환청이겠지 싶으면서도 혹시 몰라 입구 쪽을 봤다.

드르르르르르륵!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 분명 환청은 아니었다. 얼른 뛰어가면서 몸속 기운을 살폈다.

‘빌어먹을! 아직 내부를 살펴볼 정도도 되지 않아.’

벌컥!

문이 열리고 침상이 들어왔다. 근데 자신이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까? 내부를 살펴볼 상황이 아니었다.

환자가 오길 대기하고 있던 레지던트가 침대 위에 올라선 상태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침대를 미는 구급대원이 외쳤다.

“헉헉! 오는 도중 택시 안에서 숨이 멈췄습니다. 시간은 3분 30초 지났습니다.”

응? 택시?

구급대원이랑 환자가 왜 택시를 타?

이상해서 쳐다보니 침대를 끄는 구급대원 두 명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한 명은 다리를 쩔뚝거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는 도중 교통사고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환자는 바로 침상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환자를 맡게 된 레지던트는 각종 장비를 달고 주사를 넣은 후 외쳤다.

“제세동기!”

두삼은 그들이 하는 양을 보고 두 손을 꼭 쥐었다. 혹시 몸 내부를 살펴보면 심장이 멈춘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물론 못 찾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직까지 심장이 멈춘 환자의 내부를 살펴본 적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패배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그래서 기운을 아껴 썼더라면 분명 이 환자를 돌볼 만큼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난 아직 부족해.’

불치에 가까운 병들을 고치며 승승장구하다 보니 솔직히 자만심도 없잖아 있었다.

‘빨리 복구돼! 복구하란 말이야!’

패배감이 짙어지자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내부를 향해 외쳤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또 외친다고 해서 기적처럼 기운이 복구되는 일은 없었다.

“아! …아, 아빠!”

“여보……!”

언제 왔을까 구급대원과 비슷하게 엉망이 된 모녀가 두삼의 옆에 와서 숨이 멈춘 환자를 보고 있었다.

모녀는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것인지 소리 죽여 울며 두 손을 꼭 잡고 아빠가, 남편이 살아나길 기도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제세동기가 실패하자 아트로핀을 0.5㎎을 더 투여하고 다시 심폐소생술을 했다.

“큭! …제발!”

심폐소생술을 하는 레지던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데 그 목소리엔 절망감이 가득했다.

다른 이들도 죽음을 직감했는지 하나둘씩 환자에게서 시선을 피하거나 고개를 숙였다.

‘빌어먹을! 힘내! 당신 부인과 자식을 위해서라도 힘내란 말이야!’

두삼은 무기력한 자신을 탓하며 환자를 향해 외쳤다.

‘안 돼! 포기하지 마! 좀 더 해봐.’

심폐소생술을 하는 레지던트의 손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잠시 후면 침대에서 내려와 죽음을 선고할 것이다.

“……!”

문득 드는 생각.

‘혹시 할아버지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대답은 즉각적으로 나왔다. 이미 경험이 있으니 가능할 것이라고.

얼마 전 할아버지의 의료 기록을 찾아봤다. 환자의 병명은 그저 급성 심장마비였다.

이상한 건 치료 방법이었는데 임맥의 구미혈, 족소음신경의 신봉혈, 족양명위경의 응창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 혈들을 자극하라는 건지 아님 이어서 찌르라는 건지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만일 이어서 찌르려 한다면 침을 수평으로 해서 피부를 꿰듯이 찔러야 했는데 말도 되지 않았다.

다 좋게 봐서 피부를 꿰듯이 찌른다고 하자. 하면 별표는 어떻게 할까. 어딘가에 위치하는 혈이라는 건 의료 기록을 읽다보니 알 수 있었지만 ‘어디인지’는 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모른다.

‘진즉에 밝히던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본들…….’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환자를 봤다.

‘…죄송합니다. 다음번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고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삼도 환자를 포기를 했는지 환자를 보는 눈이 촉촉해졌다.

그때였다.

숨을 멈춘 환자의 얼굴을 보고 있어서인지 연관된 기억 역시 불쑥 나타났다.

‘아! 그때 내가 할아버지의 치료 모습을 봤었구나!’

의사가 죽음을 선고하기 전까지 죽은 게 아니라고 말한 후 환자를 안에 들인 할아버지가 치료를 할 때 자신은 옆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억 속 할아버지는 긴 장침을 꺼내 환자의 심장을 향해 조심히 찔렀다. 그리고 몇 초 후 침을 뽑는 순간 죽었던 환자가 ‘흐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살아났다.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섭던지 바로 칸막이 뒤로 몸을 숨기는 장면으로 기억이 끝났다.

아마도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모습의 충격 때문인지 기억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의 공포심마저 떠올랐지만 지금의 두삼에겐 그 정도 감정은 아무 방해도 되지 못했다.

환자를 살리고 싶다.

두삼은 할아버지가 환자를 찌르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떠올렸다. 긴 장침이 어느 정도의 기울기로 환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는지, 들어가다가 어디에서 멈추는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인체의 경락도와 비교했다.

‘아! 알겠어!’

의료 기록에 적혀 있던 혈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됐다.

정면을 보자 레지던트는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침대에서 내려와 응급실에 걸린 시계를 흘낏 봤다.

사망 선고를 하려는 것이다.

“현재…….”

“잠깐만요! 제가 환자를 한번 봐도 될까요?”

“심폐소생술은 더 이상…….”

재빨리 다가가 말하자 레지던트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때 아직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은 지강욱이 다가와 말했다.

“해보게 하게. 어차피… 몇 분 늦게 선고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

“…그렇긴 하죠.”

레지던트는 물러섰다. 두삼은 얼른 자리를 잡고 심정지 상태인 환자 앞에 섰다.

제세동기를 사용해서 기계 모양대로 화상을 입은 환자의 가슴팍을 바라봤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스승님이 주신 침통을 꺼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긴 장침을 꺼냈다.

‘할아버지, 스승님 도와주세요!’

잠시 눈을 감고 두 분께 기도를 한 두삼은 눈을 떴다. 그리고 장침을 거침없이 비슷하게 꽂았다.

할아버지가 적어둔 혈 자리는 침을 꽂는 자리가 아니고 침이 지나가는 자리를 적어둔 것이다.

즉, 대각선으로 들어간 침이 그 혈 자리를 지나 심장에 위치한 별표(이름 없는 혈)까지 들어가면 된다.

멈칫!

절반쯤 찌르던 침을 멈췄다. 그리고 살짝 비틀어 방향을 달리했다. 침은 심장 주변에 위치한 장기들과 혈관, 신경을 피해 들어갔다.

‘다 왔어!’

현재 내부를 볼 수 없기에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 겉면에 혈 자리가 있다는 게 신기했지만 신체에 대해선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비교하기 힘들만큼 많았다.

‘뚫리면 안 돼! 누르듯이…….’

뾰족한 침의 앞면이 심장을 찌른다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금세라도 뚫릴 것 같은 느낌에 극도로 집중해 침을 서서히 찔러 넣었다.

마치 손끝으로 몸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위태위태했지만 뚫리지 않고 멈췄다. 마침내 혈의 중앙에 도착한 것이다.

성공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내부에 조금 남아 있던 기운이 손끝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침을 지나 환자의 심장 혈에 전해졌다.

‘헉! 내부를 보겠다고 기를 썼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르겠군.’

식은땀이 등을 타고 내려갔다.

이제 침을 빼야 할 때였다. 침을 당기자 눌려 있던 심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순간 심장이 움찔하는 느낌이 침을 통해 느껴졌다. 그리고 멈췄던 거대한 기계가 에너지를 받아 재작동하는 듯한 울림이 들렸다.

쿠쿵!

혹시 깨어나는 환자가 다칠 수 있었기에 서둘러 침을 뺐다.

참고 있던 숨을 뱉으려 할 때 자신의 숨소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숨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아하아아아아압!”

심장이 다시 뛰며 환자가 깨어난 것이다.

기관 삽관이 되어 있는 것이 불편한지 바동거렸지만 짧은 순간 의료진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죽음에서의 귀환이었다.

* * *

두삼은 식사가 담긴 카트를 끌고 고연아가 입원해 있는 병실 앞에 섰다.

30분이나 늦었으니 얼마나 화를 낼까 싶었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뭐.’

하지만 지금처럼 멍한 상태라면 욕을 한다고 해도 허허허 웃고 지나갈 것 같았기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연아는 침대에서 책을 보고 있다가 두삼이 들어가자 책을 덮고 입을 열었다.

“고생 많이 했나 봐요?”

“욕해도 들어줄게. 오늘 정말… 응?”

당연히 화를 낼 줄 알고 변명을 하는데 예상과는 다른 말이 들렸다.

“…여기서도 사이렌 소리 다 들려요. 설마 내가 일하느라 늦은 사람에게 욕할 거라 생각했어요?”

응! 넌 그런 캐릭터니까.

“아, 아닙니다. 늦어서 미안해서 그렇죠.”

“아닌 것 같은데……?”

“진짜예요! 하하. 배고프겠네요. 얼른 밥 먹어요.”

현재 고연아는 팔다리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식사를 할 때 다시 마취를 시켜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몸인지 식사 때 풀어두면 발작 비슷한 증상이 나면서 막아둔 마취가 풀리고 구토를 했다.

식사 후 물리치료를 마치고 난 후에 풀어주면 그땐 또 괜찮았다.

“…오늘은 말이 없네요?”

“아, 몸의 기운을 많이 소모해서 정신이 멍해서요. 응급실에서 있었던 얘기해 줄까요?”

“…됐어요.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얘기해 봐야 무슨 재미예요?”

“그동안 내가 했던 말 재미있었나 보네요?”

“…아, 아니거든요!”

“하하! 알았어요. 식사해요.”

씹기를 기다렸다가 목을 쓰다듬어 목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소화가 잘되게 오래 씹어야 해서 식사 시간은 30분 정도 걸렸다.

“이제 약 먹고 물리치료 하죠.”

“근데 물리치료 한 번 쉬면 문제 생겨요?”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에요. 팔다리를 쓰게 되고 내 말대로 운동을 잘해줘서 근육은 잘 붙고 있거든요. 지금은 소화를 잘 시키고 근육이 올바르게 붙도록 하기 위해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팔다리를 움직인다는 건 몸 전체를 움직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걸으면 허리 근육과 배 근육이 만들어지고 팔을 쓰면 가슴, 등 근육이 생긴다.

“그럼 오늘은 쉬어요.”

“무슨 일 있어요?”

“없어요. 그냥 쉬고 싶어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잠깐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음, 그래도 소화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팔다리는 풀어줘야 하니 여기 앉아서 얘기나 하죠.”

침대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얘기는 됐어요. 그냥 잠이나 잘래요.”

“…그래요, 그럼.”

멍하니 그녀가 자고 있는 걸 보려니 온몸이 나른해졌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자면 안 되는데…….’

어느새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두삼.

언제 눈을 떴는지 고연아는 그런 두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 선생님께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요. 잠깐이라도 쉬세요.”

그녀는 마치 소중한 것을 보듯이 두삼을 봤다.

두삼은 고연아가 따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지도 모른 채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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