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81화 (80/122)

# 81

24.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면 돌려주는 게 예의다(2)

“오늘은 저녁이 조금 늦었네요? 잘 먹을게요.”

한결 건강해진 윤혜원은 앉자마자 하얀 쌀밥을 한입 가득 넣었다.

“마지막 식사니 맛있게 드세요.”

“음… 퇴원하라고요?”

처음엔 촬영 때문에 치료도 못 받겠다고 하더니 이젠 나가기 싫은 표정이 역력하다.

“언제까지 있을 수 없잖습니까? 촬영도 하셔야 하고.”

“얼마만큼 차올랐어요?”

“뭐가요?”

“신체의… 그 퍼센튼지 뭔지 하는 거요.”

“70퍼센트요.”

“와아~ 몸이 날 것처럼 가벼운데 70퍼센트라는 건가요? 난 90퍼센트쯤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생활하는 데 익숙해져서 착각하는 거죠.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건강 잘 챙기세요.”

“이런 기분을 계속 느끼려면 그래야 할 것 같네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80퍼센트 정도는 될 때까지 머물고 싶은데…….”

“…더 머무는 건 혜원 씨 선택이지만 제 케어는 여기까지입니다.”

“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전 선생님께 계속 케어를 받고 싶은데요? 마사지도 받고 싶고요.”

“하하……. 제가 바빠서. 가끔 오세요. 그땐 제가 마사지해 드릴게요.”

“훗, 농담이에요. 모레부터 촬영이거든요. 대신 가끔 오면 직접 마사지해 준다는 말 잊지 마세요?”

“당연하죠.”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녀는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동안 그녀 때문에 기운이 텅 비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마음을 채웠다.

“네, 퇴원 잘 하세요.”

“제 드라마 꼭 보셔야 해요.”

“하하! 그럴게요. 그럼.”

작별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오는데 매니저가 따라 나왔다.

“한 선생, 이거 고마움의 선물. 혜원이가 주래요.”

“이런 건 안주셔도…….”

“받아요. 안 받으면 내가 혼나요.”

그는 선물을 강제로 안겼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를 꺼내 다시 안겼다.

“요건 내 거. 내 배우 잘 돌봐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주는 거예요.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아버려요. 술값 정도는 나올 겁니다.”

뜻밖에 받은 선물.

윤혜원이 준 건 상품권이었고 매니저가 준 건 그녀의 화보집들이었다.

“훗! 재미있는 선물이네. 사실 화보집 따윈 볼 필요도 없는데.”

윤혜원의 몸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얼마든지 그려볼 수… 큼! 고맙다고 준 선물이니 잘 쓰기로 했다.

겨울철 병원 퇴근 시간은 오토바이를 타기엔 좋지 않은 시간이다.

막 해가 떨어진 터라 완전히 어둠이 오지 않아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리는 차들도 제법 있었고, 가로등도 완전히 켜진 것이 아니라 조금 위험했다.

그래서 두삼은 괜스레 빨리 가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았다.

“해먹기 귀찮은데 뭐라도 사갈까?”

집으로 올라가는 삼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긴장을 풀고 저녁은 뭘 먹을지 고민했다.

사러 가는 것도 귀찮았다.

그냥 집에 가서 김치찌개나 끓여 먹자는 생각으로 좌회전을 했다.

골목길에선 사람이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되도록 속도를 줄인 상태에서 회전을 했는데 이 습관이 자신을 살리게 될 줄이야.

부우우우웅!

좌회전을 하는 순간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SUV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빨라! 지금 브레이크를 밟으면 사고는 나지 않……!’

“젠장!”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아 차에 타고 있는 두 명의 얼굴이 보였다.

놈들은 놀란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는 순간 그들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던지듯이 내팽개치고 우측 대각선으로 몸을 날렸다.

끼이이이익! 콰앙! 콰직!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인지, 자신들이 무사하기 위해서인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밀리는 차는 오토바이를 부수고 난 후 막 일어나는 두삼을 향해 돌진했다.

두삼은 뒤에서 다가오는 차를 느끼며 4미터는 넘어 보이는 벽을 두어 번 박차고 올라갔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는데 마치 영화처럼 벽을 밟고 올라가 벽의 끝부분을 잡을 수 있었다.

콰앙!

귀가 먹먹해질 만큼 큰 충돌 음과 함께 벽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일반 콘크리트 벽돌로 된 벽이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석을 콘크리트로 고정시켜 둔 벽이라 부서진 건 차의 앞면이었다.

겨우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자신을 차로 박으려 했던 놈들이 차의 시동을 걸려 하는 것이 보였다 시동이 걸리면 다시 박을 분위기다.

‘이 개새끼들……!’

분노와 함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당장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큰 소리가 나서인지 주변 집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또한 차에 있던 두 명도 차에서 내려 가증스러운 연기를 했다.

“괜찮습니까? 갑자기 튀어나와서 제 친구가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액셀을 밟았네요.”

“미, 미안합니다. 진구야, 경찰에 연락 좀 해줄래? 나 손발이 떨려서 도저히…….”

“그래.”

“…….”

자진해서 경찰에 연락을 하는 모습에 ‘고의가 아닌가? 착각인가?’라는 생각이 얼핏 들긴 했다.

그러나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걸 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너희들이 연기를 한다면 나도 연기를 해줄게.’

당장 멱살이라도 잡고 왜 이런 짓을 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봐야 얻을 게 없었다.

“위험하긴 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죠. 한데 그쪽 분, 손발이 가늘게 떨리는 게 벽에 부딪혔을 때 다친 것 같은데요?”

“놀랐을 뿐입니다.”

“제가 의사입니다. 잠깐 맥을 짚어볼게요.”

다가가자 그는 ‘무슨 짓을 하려고’라는 눈빛으로 피하려했다.

하지만 두삼이 그의 뒷덜미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기운이 빠져나가 그의 경동맥을 막았다.

“…괘, 괜찮다니까, 놔요! 놓으라고……!”

그는 말을 하다 말고 픽 하고 꼬꾸라졌다.

자신이 했다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어! 이봐요 친구분! 119에도 연락해요! 아무래도 이상이 있는 것 같아요. 이봐요! 정신 차려요!”

두삼은 진맥을 보는 척하면서 그의 경동맥을 풀어주고 대신 전신을 마비시켰다. 그다음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시력까지 잃게 만들었다.

현재의 마음 같아선 정말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일단 알아볼 것이 있어 막는 걸로 만족했다.

진구라는 놈도 어떤 핑계로 쓰러뜨릴까 고민하는데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하란이었다. 그녀는 얼른 달려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삼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응, 괜찮아. 어떻게 알고 나왔어?”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드론으로 봤어.”

“그렇구나. 근데 왜 이렇게 춥게 하고 나왔어?”

그녀는 집에서 입는 얇은 옷차림에 양말도 신지 않고 슬리퍼를 신은 채였다.

“그야, …걱정돼서.”

“걱정해 줘서 고맙다. 경찰 오면 진술도 해야 하고 저기 누워 있는 친구 병원 가는 것도 봐야 하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두삼은 입고 있던 오리털 패딩을 벗어 그녀를 덮어줬다.

“괜찮은데… 근데… 이번 사고…….”

하란도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다 뭘 생각했는지 그새 말을 바꿨다.

“아, 아니다. 먼저 가서 가게 사람들한테 조금 늦을 거라고 말해놓을게.”

“그래. 시끄러운 거 보니까 도착했나 보다.”

하란과 얘기를 끝내고 나자 경찰과 119가 동시에 도착했다.

일단 환자부터 구급차에 실었다.

“한강대학병원 의사인데 이 사람 그쪽으로 보내주세요. 제가 전화해 두겠습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갑자기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아 머리나 척수신경에 손상이 있지 않나 의심됩니다만 정확한 것은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구급차를 보내놓고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환자가 가고 있음을 알렸다.

전화를 끊고 나자 경찰이 다가왔다.

“가해 차량 동승자의 말에 의하면 갑작스럽게 나타난 오토바이를 보고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으면서 일어난 실수라고 하는데요. 뭔가 하실 말이라도?”

“그리 말했으니 맞겠죠. 없습니다.”

“다친 데는 없으세요? 병원엔 안 가도 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피해자인 두삼이 괜찮다는데 경찰이 뭐라 할까.

단순 교통사고로 보험 처리를 하는 선에서 끝났다.

사실 죽이려 했다고 말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변호사를 사서 몇 년간 싸운다고 해도 패소할 게 분명한 사안이다.

설령 행운이 따라 승소한다고 해도 얼마나 감옥에 가둬둘 수 있을까?

사람을 죽이고도 이런저런 감형을 받으면 2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범죄자가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는 세상이랄까.

“보험사에 연락했으니 연락 갈 거요. 앞으론 골목 다닐 때 항상 조심하쇼.”

비틀린 미소를 지은 채 떠나는 남자를 보며 두삼은 분노를 속으로 삭였다.

‘너희들이 폭력을 무기로 삼는다면 난 의술을 무기로 삼는 것뿐이야.’

* * *

“루시, 현재 두삼 오빠가 있는 곳의 화면 띄워줘.”

집으로 돌아온 하란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띄웠어요.

거실의 TV에 사고 현장을 비추는 4분할 화면이 보였다.

“저기 경찰과 얘기하고 있는 사람 있지? 놓치지 말고 계속 추적해. 그리고 오빠가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온 순간부터의 화면도 보여주고.”

-알았어요. 근데 하란 님, 심장박동과 표정을 보면 화가 난 상태네요.

“맞아.”

-목숨이 위험했던 건 두삼 님인데 왜 하란 님이 화를 내는 건가요?

“…….”

-두삼 님을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했을 텐데?”

-하란 님이 정해둔 쓸데없는 말의 기준에 포함이 되지 않습니다만.

“지금부터 기록해 둬.”

두삼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

심장이 없는 인공지능은 모르겠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그녀는 두삼을 좋아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악양에 머물 때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그를 바라보다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공부와 연구를 하느라 연애를 잘 모르는 그녀였지만 점점 커져가는 마음에 은근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었다.

한데 두삼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행동을 보면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했다. 다만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확신은 없었다.

그냥 고백을 해볼까 고민하던 차에 고장난 루시를 고치다가 최익현과 두삼이 대화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 영상을 통해 두삼 역시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기뻤던가.

다만 최익현에 대해선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최익현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가까이하기엔 부담스러웠다.

한국에 왔을 때 도움을 준 그에게 사장 자리를 맡기고 회사를 떠난 것엔 그러한 이유도 작용을 했었다.

인간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두삼에게 하는 행동을 보니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화가 나서 한 말이길 바라요, 최익현 씨.’

오늘 일이 왠지 최익현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잠깐 멈춰봐. 이 사람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지?”

두삼의 오토바이가 지나가자 전화기를 꺼내는 파란 점퍼차림의 사내를 보며 물었다.

-4시 30분부터 저 자리에서 서성이고 있어요.

“차는?”

-차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 남자가 전화하는 시간에 차 모습을 보여줘.”

-네.

분할된 TV 화면엔 파란 점퍼의 사내와 차 속의 사내가 통화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공교롭네요.

“…그러게. 파란 점퍼는 뭘 하고 있어?”

-골목에서 대기 중이에요. 하란 님이 마크하라는 인물이 움직이고 있어요.

“두 사람 다 동시에 띄워.”

사고 차량에 있던 사내가 골목길 따라 내려가더니 파란 점퍼의 사내와 만났다.

“소리 최대한 키워봐.”

-더 접근하지 않는 이상 주변이 시끄러워서 최대한 키워도 안 들릴 것 같은데요?

부웅~ 빠아아아앙! 휘이이잉~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와 바람 소리, 경적 소리만 들렸다.

“다른 소리를 제거하고 증폭하면?”

-해볼게요.

-…구급……

-…실패… 멍청한……

스마트폰을 이용한 마이크라 확실히 한계가 있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드론들도 업그레이드를 해야겠다.

-차로 이동할 모양이네요.

“나도 보고 있어. 따라붙어.”

-태양이 없어서 기동 시간은 30분에 불과해요.

“차 지붕에 붙으면 되잖아.”

-아! 그러네요.

“첩보 영화라도 보고 좀 배워.”

-당장 첩보 영화를 볼게요.

루시는 차가 움직이는 동안 첩보 영화를 봤는지 차가 웬 건물 앞에 서자 조용히 드론을 하늘로 날아 올렸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저들이 누구에게 명령을 받고 움직였는지 샅샅이 알아내.”

-해킹을 허락하시는 건가요?

“저들에 관련된 범위에서만.”

-그럼 와이파이부터 시작할게요.

루시는 두 사람이 들어가는 사무실의 와이파이부터 해킹을 시작했다.

24.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면 돌려주는 게 예의다(3)

두삼은 정의감 넘치는 형사나 검사가 나와서 사건을 해결하는 드라마, 혹은 영화를 싫어한다.

깡패들은 무기를 들고 설치는데 주인공은 주먹만을 사용하다가 쥐어 터지다가 겨우 살아남고, 16부작 드라마에서 15회까지 범죄자들은 온갖 불법적인 일을 하는데 형사와 검사는 법을 준수하면서 겨우겨우 헤쳐 나가는 꼴이란 정말 답답하다.

결정적으로 온갖 나쁜 짓을 하던 놈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다며 감옥으로 들어가는 게 드라마의 끝이라니, 드라마를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결국 당한 사람만 불쌍하다.

의료 드라마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철천지원수가 죽을병에 걸려 찾아왔는데 인권과 직업 윤리를 들먹이며 수술을 해준다.

웃기지 않은가?

온갖 나쁜 짓을 다해놓고 나중에 용서를 빌면 용서를 해야 하는 것인가?

능력이 없다면 모를까 있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1205호 환자 좀 보러 왔습니다.”

두삼은 외과 병실을 찾았다.

“…한방의학과 선생님이 왜?”

“아! 제가 어제 사고 현장에 있다가 우리 병원으로 보냈거든요. 혹시 괜찮아졌나 보려고요.”

“뭐가 잘못된 건지 온몸 마비에, 시력까지 잃었어요.”

“하아~ 그래요? 원인은 뭐래요?”

간호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네요. 잠깐 들어가 봐도 되죠?”

“네. 근데 조심하세요. 입이 아주 거칠어요. 그래서 1인실로 옮겨둔 거예요.”

“심하게 하면 그냥 나올게요. 참! 이거 저희 한방의학과에서 끓인 한약인데 피로 회복에 좋을 겁니다.”

“뭘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요. 괜한 진상을 보낸 건 아닌지 미안하네요.”

한약 상자를 건넨 후 전신 마비가 된 사내의 병실로 들어갔다.

“누구야! …혹시, 형님입니까?”

“의산데?”

“이런 돌팔이 새끼들! 얼른 날 원래대로 돌려놔! 사고가 났을 때 난 아무렇지도 않았어! 병원비 받아먹으려고 이러나 본데 나중에 나 깨어나면 다 죽었어!”

“음, 괜찮은 인간이면 고쳐주려고 했더니 그냥 그대로 둬야겠네. 근데 너무 시끄럽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주둥아리도 막아버려야겠어.”

“…다, 당신 누구… 야? 고칠 수 있다고?”

“당연히. 내가 그렇게 만들었거든.”

“…뭐라고? 당장 원래대로 돌려놔! 너 이 새끼! 절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쫘악!

입만 나불거리고 있는 사내의 이마를 내려쳤다.

“이, 이 개새끼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지? 너 입을 막아버리고 내가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

“전신 마비에 눈멀고 말도 못하는 채로 평생 살면 참 재미있긴 하겠다. 한 번만 더 욕하면 한 달 뒤에 찾아올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방금 한 말을 상상했는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나, 나에게 바라는 게 뭐야?”

“말이 짧다? 혀가 짧은 거냐? 진짜 짧게 만들어줘?”

“…아, 아닙니다! 제게 뭘… 뭘 바라십니까?”

표정은 두고 보자는 얼굴인데 말은 번듯하게 나왔다. 고쳐주면 당장 칼을 들고 달려들 것 같다.

“어제 날 죽이라고 지시한 놈이 누구야?”

“무슨 말을…….”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던 그는 곧 알겠다는 듯 외쳤다.

“아! 서, 설마 너… 아니, 당신이 한두삼?”

“내 이름도 알고 있었네. 역시 날 죽이려고 한 게 맞는 거지.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린 거야?”

“…당신, 의사가 사람한테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겁니까?”

짜악!

다시 그의 이마를 때리곤 말했다.

“이럴 때만 의사냐? 그럼 의사는 차로 박거나 칼로 찌르면 ‘아이쿠! 감사합니다’ 하고 찔려 죽어야 하냐? 그리고 이 방에 나 말고 사람이 어디 있어? 내 눈엔 넌 사람 아냐. 그냥 쓰레기지. 이제 묻는 말에 답하지?”

“…주, 죽이려던 게 아니라 그냥 한두 곳 병신으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진짭니다.”

“와~ 너 재주도 좋다. 차로 박아서 딱 한두 곳만 병신으로 만들 수 있는 거야? 얼마나 그런 짓을 자주 했으면 그럴 수 있는 거냐?”

“그야 몇 번…….”

“이야, 경력자였다는 거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네 말대로 딱 한두 곳만 다쳤어?”

“…….”

“생각대로 안 된 모양이네. 길게 얘기할 거 없고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린 거지?”

“…저희 형님이요.”

“조폭이었냐? 그럼 형님이라는 놈과 조직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해봐.”

“…말하면 절 고쳐주시는 겁니까?”

“한두 군데만 빼고. 남을 그렇게 만들려 했으면 당할 것도 생각했어야지.”

“…….”

“싫음 말아. 너 찾아오는 사람 중에 한 명 눕히고 물어보면 돼. 다만 입도 앞으로 못 쓸 거야. 아! 귀는 놔둘게. 사람들이 널 놀리는 소리는 들어야 할 거 아냐.”

“아, 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창신동 곰돌이파로 모두 열두 명입니다. 아지트는…….”

그는 아는 바를 한참 주절거렸다.

“진즉에 이럴 것이지. 됐다. 그 정도면 충분해.”

“들리지 않고 말을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움직이고 볼 수 있게만 해주세요, 선생님.”

“그래? 알았어.”

그의 손을 잡고 기운을 들여보냈다.

막아뒀던 척추신경 이외의 신경들도 여러 군데 막아버렸다. 그리고 시신경과 입도 역시 꼼꼼히 막았다.

운이 좋다면 막아둔 것들이 풀릴 수도 있겠지만, 글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라? 입을 막고 다른 걸 치료하려고 했는데 안 되네. 미안. 너처럼 차로 박아서 한두 군데 병신으로 만드는 재주가 나한텐 없네.”

“…….”

“이해한다고? 그럼 다행이고. 네가 망가뜨린 사람들에게 평생 속죄하면서 살아. 혹시 그러다 보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속죄하면서 사람들 치료하면서 살게.”

속죄는커녕 원망만 하고 살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임독양맥이 타동되면서 신체 능력이 발달되지 않았다면 누워 있는 건 자신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나머지 놈들은 어떻게 처리한다.’

고민을 하며 막 나가려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껄렁한 사내 몇 명과 들어왔다.

“선생님, 마한구 씨 지인들이 병문안 오셨네요.”

맨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방금 전 마한구에게서 들은 두목의 생김새와 유사했다.

‘눈썹 옆의 베인 자국. 이자가 두목이군.’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찾아와 주다니 고마웠다. 그러나 당장 뭔가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일단 나가서 어떻게 접근할지 고민해 봐야겠어.’

결정을 한 후 간호사에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환자는 자고 있나 봐요. 언제 깨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오든가 하죠.”

한데 어제 죽을 뻔한 후 운이 트인 모양이다.

막 나가려는데 자신을 담당의로 착각을 한 건지 두목이 불러 세우며 물었다.

“이보쇼, 의사 선생. 내 동생 왜 이러는 거요?”

잠깐 머뭇거리던 두삼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른 그의 앞으로 가 설명했다.

“어제 차가 벽을 들이박았을 때 충격이 척수신경을 손상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척추가 다쳤다는 말이구먼. 차가 부서지긴 했지만 타고 있었는데 그럴 수가 있는 거요?”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가끔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허리가 삐끗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여기 배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면서 척추를 순간으로 치는 것처럼 되는 겁니다.”

두삼은 설명을 하면서 남자의 배와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 모습이 뒤에 서 있는 이들에겐 거슬렸는지 한 발 나서며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허어~ 이 양반이 지금 누구한테 손을…….”

“됐다. 상세하게 설명하려다 보니까 그랬나 보지. 듣자 하니 못 움직일 수도 있다는데 사실이오?”

“네. 상황을 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무슨 말인 줄 알겠소. 한동안은 지켜보도록 하지. 근데 어차피 못 움직이는데 1인실이 필요 있나? 6인실로 바꿔주쇼.”

“…곧 조치될 겁니다.”

한동안 지켜본다는 말이 깨어날 가능성이 없으면 버리겠다, 라고 들렸다.

의리라곤 개뿔도 없는 놈들.

하긴 서로 돈 때문에 모인 조직일 터. 의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 전 이만.”

두삼은 밖으로 나왔다.

방금 전 설명을 하며 그의 몸에 손을 댔을 때 그의 심장으로 가는 혈관 중 하나를 3분의 2쯤 막아뒀다.

그에 심근경색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었다.

‘또다시 내 앞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하면 민규식 원장이 의심할 수도 있어.’

일단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5분 안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죽는다고 죄책감이 생기진 않을 것 같다.

그저 자신을 병신으로 만들라고 사주한 놈이 누군지 알아내야 했다.

사실 누군지 짐작은 된다.

자신을 미워하는 인간은 둘이다.

악양 혁한의원의 김장혁, 그리고 최근에 하란의 일 때문에 척을 지게 된 최익현.

이번 일은 최익현이 사주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까진 짐작일 뿐이고 확인되지 않는 짐작으로 누군가를 해할 정도로 미치광이는 아니다.

“음…….”

병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에 오른 두목이 가슴 부근을 툭툭 치면서 신음을 흘렸다.

옆에 있던 뚱뚱한 사내가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모르겠어. 갑자기 심장이 답답하네.”

“병원에 오신 김에 진찰 한번 받아보시죠. 심근경색일 수도 있습니다.”

“내 나이에 무슨…….”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식습관이 문제죠. 이런 말씀 드리기 그렇지만 저희 아버지도 지금의 형님처럼 그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새끼가… 내가 죽었으면 하지?”

“아, 아닙니다, 형님! 제가 왜 그런 생각을…….”

“쌍놈의 새끼. 그런다고 니가 올라설 것 같아?”

“아니라니까요, 형님! 진짜 아닙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어디 과로 가야 하는 거냐?”

“아마 흉부외과로 가시면 될 겁니다.”

“그럼 가자. 끄응 …아무래도 이상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흉부외과로 가던 두목은 흉부외과 앞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 * *

“대표님, 회삽니다.”

기사의 말에 최익현은 잠에서 깼다.

어젯밤 좋은 소식을 기대하고 있다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그 때문에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잤는데도 피곤했다.

“들어갔다가 일 하나만 보고 나올 테니 대기하고 있어요.”

처리할 일이 없었다면 집에서 쉬었을 것이다.

옷차림을 바로 한 후 회사로 들어갔다.

경비원이 조르르 문을 열어줬고 로비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인사를 했다.

‘이제야 조금 회사 같네.’

하란이 회사를 맡고 있는 동안에는 회의할 때를 제외하곤 너무 자유로웠다. 그에 대표직을 맡고 난 다음 조금씩 바꿔가고 있었다.

풀어주면 그게 권리인 줄 알고 한없이 풀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비서실로 들어서자 두 명의 직원이 후다닥 일어났다.

“시원한 커피 부탁해.”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대표님. 한데 안에 우하란 전 대표님께서 와 계십니다.”

“아무 연락도 없이… 언제 오셨나?”

“그게… 10시쯤에 오셨습니다.”

“…오전 10시? 근데 왜 연락 안 했어?”

“우 대표님이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하셔서… 죄송합니다.”

“이익! …나중에 보자.”

누가 현 대표인지 모르는 거냐고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일단은 들어가는 게 우선이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하란은 창을 보고 있었다.

“오셨으면 연락을 주시지… 타 투자사 사장과 만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늦을 수 있죠. 술을 했나 봐요?”

독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아직 술이 들 깬 모양이다.

“가볍게 한잔했습니다. 앉으시죠.”

“아뇨. 이대로가 편해요.”

‘무슨 일이지?’

목소리가 사무적이긴 했지만 쌀쌀맞지는 않았었다. 한데 오늘은 유독 목소리가 차갑게 느껴졌다.

“한데 무슨 일 때문에?”

“할 얘기 있어서 왔어요.”

하란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 몹시 화가 난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지만 뭣 때문에 그러는지 떠올리기 전에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최익현 씨, 참 무서운 사람이더군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두삼 씨 일 말이에요. 사소한 말다툼한 것 때문에 조직 폭력배인 사촌 형에게 청부 폭력을 한다는 게 평범한 건 아니잖아요?”

“……!”

어떻게 알았지? 아니, 어떻게 변명을 해야지?

짧은 순간 머리는 팽팽 돌아갔다. 하지만 변명보단 내부의 질투심이 먼저 폭발했다.

“대표님의 마음이 그놈에게 기울지만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한 게 내 탓이라고 말하는 건가요?”

“왜, 하필 한두삼 그놈입니까? 차라리 나보다 잘난 놈을 좋아했다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아… 정말 구제불능이군요. 아뇨! 내가 누구랑 사귀었던 간에 당신은 지금처럼 똑같이 했을 거예요. 두삼 씨에게 날 넘볼 자격이 없다고 했죠? 그건 분명 나의 재산 때문이었을 거고요. 그렇게 따지자면 당신은 자격이 있나요? 내가 볼 땐 두 사람은 다르지 않아요.”

“…….”

“당신이 날 좋아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티를 내는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근데 좋기보단 싫었어요.”

“…이유가 뭡니까?”

최익현은 이를 악물고 참으며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저 부담스럽더군요. 내 겉모습과 돈을 본 건 오히려 당신 아닌가요?”

“아닙니다!”

“당사자가 아니라는데 뭐라겠어요. 아무튼 더 이상 두삼 씨를 건들지 말아요. 또다시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내가 가진 증거를 경찰에게 보낼 거예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간부로 최익현 씨, 당신을 대표직에서 해임합니다.”

“꼭 이렇게까지…….”

“인사팀엔 아까 연락해 뒀어요. 퇴직금은 내일쯤 들어갈 거예요.”

인사팀에 말해뒀다는 건 어떻게 해도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얘기였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겠군요.”

더 이상 머물러 있다간 하란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화를 삭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다시 속을 헤집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두삼 씨에게 손 떼라는 말 허투루 듣지 마세요. 청부가 당신만의 능력은 아니잖아요?”

꽈악! 으스러져라 주먹을 쥐었다. 분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비서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바로 내려왔다.

직원들이 인사를 했는데 올라갈 때와 달리 마치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최익현이 나오는 것을 보더니 뒷문을 열었다.

“…얘기 못 들었습니까?”

“…방금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셔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훗! 생각해 줘서 눈물이 날 만큼 고맙네요. 됐습니다.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갈 테니 차는 내일 주차장에서 찾아가세요.”

“…알겠습니다.”

차에 오른 최익현이 거칠게 차를 몰아 도로로 나왔다.

“씨발! 이 연놈들이…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건들지 말라고? 반드시 내 앞에서 무릎 꿇게 만들어줄게! 으아! 씨발!”

그는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차의 핸들을 마구 치면서 운전을 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사촌 형에게 연락을 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는다.

“일을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사방팔방 소문이 나! 이 병신 같은 놈은 또 왜 안 받는 거야? 제발 좀 받아라, 이 새끼야!”

울리는 전화를 향해 소리치던 그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음을 잠깐 잊었는지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쳤다.

손에서 벗어난 스마트폰은 여기저기 부딪히다가 좌석 밑으로 떨어졌다.

“으아~ 씨발!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최익현은 전방에서 눈을 뗀 채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주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그의 운을 갈랐다.

빠아아아아앙!

귀를 울리는 경적 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땐 엄청난 덤프트럭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씨…….”

콰아앙! 욕을 다 뱉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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