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두 번째 프러포즈
2019.03.19.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 사람의 엔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은 결국, 수천 명에 육박하는 시청자 수를 찍고서야 막이 내렸다.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진 그 방송을 짧게 요약하자면…….
[민영이와 저는 어렸을 적에 헤어진 친남매 사이입니다. 아버지였던 현태균 씨가 혹시 모를 후환을 막기 위해 갓난아기였던 민영이를 입양시켰었고, 다 큰 저희는 서로의 존재를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보도된 사진들은 모두 저희가 뒤늦게 친해지겠답시고 만났던 과정에서 찍힌 사진들입니다.]
[고로 스캔들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첫 스캔들을 제 친오빠와 함께 장식했다는 점에서 저는 지금 자괴감이 들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여자 없습니다. 저에겐 오로지 홍예원 씨 하나뿐입니다.]
[낯부끄럽습니다. 두 분 다 그만하시길 바랍니다.]
……였다.
기사가 난 지 만 하루도 안 돼 나온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부인에 시청자들은 그제야 오해를 풀고 납득할 수 있었다.
물론, 반향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 방송은 고스란히 녹화된 채로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 게재되었고, 단 하루 만에 조회수 오백만을 기록했다.
웬만한 뮤직비디오 재생 수와 맞먹는 추이였다.
[뭐야. 이번에도 오해임? 현민혁 너무 잘나가서 누가 질투하나 봐. 안 그러고서야 한 해에만 이렇게 터질 리가 있나.]
[┖ 아마 현민혁 삼재인가 봄.]
[현태균 미친놈 아니냐? 지 살겠다고 멀쩡한 남매를 생이별을 시켜. 이런 놈은 영원히 매장되어야 한다!]
[솔직히 이번 거는 ㄹㅇ 현태균 쪽에서 터뜨린 것 같은데. 졸렬하다 졸렬해 ㅉㅉ]
[새 사람이 되기는 개뿔. 썩어빠진 정치인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세균 중의 세균, 현태균은 그냥 은퇴해라!]
[은퇴해라!]
연이은 뻥 스캔들 소식에 뿔이 난 네티즌들은 하나 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개 중 주류는 모든 일을 이렇게 만든 원흉인 태균을 질타하는 내용들이었다.
비록 네티즌들의 의견일 뿐이었지만, 그 반응이 어찌나 거센지 당사자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잘 들어가서 탈이었다.
“여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쟤, 정말로 걔 맞아요? 네?”
“…….”
세 사람의 방송을 실제로 확인한 태균과 라희는 그야말로 아연실색한 상태였다.
더욱이 태균은 차마 뭐라 입을 열지 못 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제 손으로 망쳐버린 장본인이었기에.
“하…… 하하…….”
나지막하게 헛웃음을 뱉었다.
정말이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 애 이름이 민영이었다는 것을.
비정한 아버지가 되어 남몰래 아이를 입양시키면서, 아이의 원래 이름을 알려주기로 한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였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이름은 죽은 아내가 손수 지은 이름이었으니까. 나름대로 민혁과의 돌림자까지 신경 써서.
그러고 그냥 잊어버린 채 살았다. 다 지웠다.
그냥 애초부터 없었던 아이인 것처럼.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인 것처럼.
혹자는 머리 하난 기막히게 잘 돌아가는 주제에 어째서 이런 걸 예상 못 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는 그리 세심한 사람이 아니었고 부성애가 있는 아버지도 아니었다.
때문에, 민혁이 그렇게 여동생을 애타게 찾았던 줄도 까맣게 몰랐었다.
알았다면 가만 놔두진 않았을 텐데. 싹을 잘라 놓는 선에서 뭐라도 조치를 취해놨을 터였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에게 잊혔던 딸을 찾았다는 기쁨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다는 절망감.
안 그래도 떨어졌던 평판이 저 지하 구석까지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재기도 불가능해졌다는 패배감과 무력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여보. 가만있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네? 여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여러 개로 구비해 놓았던 폰들이 하나같이 징징댄다.
그는 개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다른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발신자는, 한결같이 그의 뒤를 봐주곤 했던 선배 국회의원이었다.
“……제기랄……!”
그의 손에서 내동댕이쳐진 폰이 곧장 앞의 모니터를 강타했다.
휴대폰은 곧장 박살이 난 채 바닥으로 떨어졌고, 금세 먹통이 돼 까맣게 변한 모니터 화면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이 비쳤다.
지리멸렬한 싸움 끝에, 결국 끝장을 맞이하고 만 남자의 비참한 얼굴이었다.
* * *
“푸하하하! 이거 보세요, 완전 땡감 씹은 표정이야!”
“글쎄. 땡감보단 똥 씹은 표정 같은데?”
“아, 그런가?”
“야. 일은 안 하고 자꾸 노닥거릴래, 늬들?”
“왜요, 점장님도 이리 와서 보세요! 간만에 재밌는 구경거린데.”
“맞아요!”
한껏 신이 난 채린이 폰을 흔들어대자, 맞장구를 치던 하연도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지 않은 휴대폰 액정 안에서는 잠정적 정계 은퇴를 선언한 현태균의 모습이 그대로 중계되고 있었다.
“싫어. 이젠 그 얼굴 보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아. 하긴……. 점장님은 그러실 만도 하죠.”
“진짜, 천하의 현태균이 이렇게 인간 말종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게 바로 이미지메이킹의 무서움이란 거야. 늬들도 그냥 재미거리로 보지 말고 교훈으로 새겨. 알았어?”
“네에.”
하여튼 말들은 잘 들어가지고.
얌전하게 대답하는 둘이 우스워서 이번엔 예원도 그만 웃고 말았다.
“뭐가 그렇게들 재밌습니까?”
“어, 사장님!”
“카페엔 웬일이세요?”
그때, 갑작스레 제3자가 등장했다. 민혁이었다.
순간 반색하는 하연과 채린을 목격한 예원은 여유롭게 걸어오는 그를 향해 탐탁찮은 듯 팔짱을 꼈다.
이거 봐, 이거. 이게 사장한테 나올 반응이냐고.
그냥 연예인 본 반응이지.
“봐요. 사장이 매장에 얼마나 안 드나들면 반응들이 이래요? 단골손님보다 못한 사장도 아니고.”
“……아. 하하, 그러게. 미안합니다. 나름 자주 온다고 하는데도…….”
지레 뜨끔한 그가 부드럽게 사과했다.
하지만 예원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맞아요. 사장님은 얼굴만 들이미시면 다 용서돼요.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인간 자양강장제나 마찬가지죠! 인간 박카스, 인간 레드불!
갑작스런 그의 등장 때문일까.
원래도 주접 시스터즈인 채린과 하연은 평소보다 더한 주접들을 떨어댔다.
‘어우, 눈꼴 시려서 못 봐주겠네.’
말하는 것도 귀찮아서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때, 거기에 장단을 맞추듯 그래요? 하고 웃던 그가 넌지시 예원에게 물었다.
“점장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양강장제?”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놀부 심보라고 해도 할 말 없지만, 저렇게 물으면 왠지 곧이곧대로 대답해주기가 되게 싫단 말이지.
그녀의 대답이 어쨌거나,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은 그는 웬일인지 흠흠, 하더니 이내 뻔뻔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렇잖아도 오늘 점장님한테 자양강장제가 좀 필요해 보이는데. 혹시 조금만 일찍 퇴근시켜도 되겠습니까?”
“네? 아니 뭔…….”
“그럼요! 어차피 좀 있으면 퇴근이신데요.”
어차피 임신하신 분이 오래 일하시는 것도 무리고요. 얼른 데려가세요, 얼른!
“…….”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선 예원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또 뭔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를 일찍 보내면 그만큼 자기들이 더 일해야 하는 것이건만.
본인들이 외려 더 나서서 등 떠미는 통에, 예원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건 현민혁의 파워일까. 아니면 나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저것들의 작당일까.
이럴 때면 저만 빼고 어째 다 한통속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근데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역시 사람은 얼굴이 잘나고 봐야 하나, 생각하며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그는 옷을 갈아입은 그녀를 보자마자 대뜸 말했다.
“네? 뭘요. 평소랑 똑같은데요?”
“하긴, 뭐. 내 눈엔 늘 똑같이 예뻐서 의미가 없나.”
“……말은 진짜.”
꼭 저런 식으로 얘기해서 사람 할 말도 없게 만들지.
하지만 그의 달콤한 말이 싫지는 않아서, 예원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다행이네. 갑작스러운 자리라 좀 걱정됐는데.”
“뭐가요? 우리 지금 어디 가는데요?”
“중요한 사람 만나러 가지.”
“중요한 사람? 누구요?”
아니 그런 약속을 이렇게 급하게 잡았다고……?
도통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 그녀가 의아해하던 사이, 다행히 그가 먼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재하 만나러 가는 거야.”
“어? 그러고 보니까 재하 씨 안 본 지 꽤 됐네. 왜요, 재하 씨 뭐 한대요?”
이제 또 앨범 나올 타이밍인가. 아닌데?
예원의 물음에, 민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돌연 씨익 웃었다.
응. 뭘 하긴 하지. 하는데…….
“……결혼한대, 여자친구랑. 그래서 오늘 만나기로 했어.”
“……네?!”
* * *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도……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말로만 듣다 실제로 만나게 된 재하의 여자친구는 무척 앳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재하와는 나이차가 좀 나는 편이라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부럽다. 나한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난 벌써…….’
라고, 고작 스물여덟밖에 먹지 않은 홍예원이 속으로 푸념했다.
물론 어디 가서 한다면 돌이나 흠씬 맞을 소리였다.
“사귄 걸로 치면 우리가 선밴데, 결혼으로는 우리가 후배네.”
“그러게요.”
“아, 그냥 빨리 결혼할 걸. 뭐하러 지금까지 끌었지 우리?”
다 지난 마당에 새삼스럽게 뭐래.
스테이크를 썰던 민혁이 혀를 끌끌 찼다.
“그걸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뭐하냐. 그리고, 어차피 지금도 너 유부남인 줄 아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뭘.”
“……하긴 그래.”
누가 친구 아니랄까봐, 재하도 민혁에 못지않은 사랑꾼으로 유명했다.
아니, 사실 민혁보단 그가 원조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몇 년째 알콩달콩 이어온 사랑 덕분에, 나름 민혁에 한해 조언자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할 수 있었던 재하였다.
그 덕분에 일이 잘 풀린 적도 많았고.
“아무튼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두 분. 너무너무 기쁘네요.”
“그래, 축하한다. 우리처럼 싸우지 말고, 마냥 행복하게 잘 살아라. 제수씨도 축하해요.”
“참나. 고맙다.”
“감사해요.”
네 개의 와인잔─하나는 와인 대신 오렌지 주스가 담긴─이 기분 좋게 챙, 부딪쳤다.
그 뒤로도 쭉 화기애애했던 저녁식사는 성공리에 마무리 될 수 있었다.
.
.
.
“잘됐지?”
“그러게요, 너무 잘됐네요.”
재하 커플과의 식사 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에 탄 민혁과 예원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좀 갑작스럽긴 했는데, 뭐 저 두 사람이래서 아, 하고 이해했어요. 솔직히 진즉에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사람들이니까…….”
“응. 그건 그렇지.”
“……그러고 보면, 우리 결혼한다고 했을 때 다들 얼마나 놀랐을까요?”
감히 상상이 안 돼. 제3자 입장이 돼 보니까 이제야 알겠어요.
예원이 자조하듯 픽 웃었다.
그 사이, 듬직한 그녀의 남편이 운전하는 차는 어느새 집 앞에 다다른 채였다.
“난 우리가 결혼한 지 일 년이 다 돼 간다는 것도 아직 가끔 잘 안 믿겨요. 꼭 딴 사람 얘기 같고.”
“……나도 가끔은 그래.”
“엥, 정말요? 왜요?”
주차를 마치고 나와 대문을 통과하기 전, 그들이 잠시 그 앞에 멈추어 섰다.
“너 때문에 너무너무 행복해서. 어떻게 이게 내 삶인가 싶어. 진짜 딴 사람 얘기 같아.”
“……으유, 또 시작이다.”
“왜, 진짜야.”
“…….”
“나랑 결혼하기로 한 거, 혹시 후회한 적 있어?”
음. 눈을 굴리며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던 예원이 금방 답을 내놓았다.
“……네.”
“정말? 언제.”
“그때, 우리 처음으로 싸웠을 때요.”
“……처음으로 싸웠을 때?”
그녀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반면, 그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받아치는 목소리가 조금 의외라는 듯 붕 떠 있다.
“아, 왜 있잖아요. 난 수진 어머님 뵙는 줄 알고 갔는데, 알고 보니 평창동이었던 날. 민혁 씨가 왜 멋대로 단독 행동 하냐면서 엄청 화내고.”
“……아.”
‘단독 행동’이란 말에 그제야 기억이 났다.
민혁은 잔뜩 화가 나 먼저 자리를 뜨던 여자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진지하게 이 결혼 엎을까 했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겁도 없이 덥석 이딴 짓을 하기로 했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고.”
“……싸우긴 했어도, 그때 그렇게까지 생각했을 줄은 몰랐는데. 그게 그렇게 서운했어?”
“그럼요. 내 잘못도 아닌 걸 갖고 그렇게 화를 내는데 안 서운하고 배겨요? 내가 억울해서 진짜…….”
아무리 엄마 문제에 민감했기로서니 그렇지.
돌이켜보니 또 화가 나려고 했다.
“……참, 내가 잘못했네. 왜 그랬을까, 내가.”
그땐 내가 한참 뭘 몰랐었나 봐. 미안해, 여보. 응?
어린아이 어르듯 능글맞게 말하던 그가 예원을 제 품에 끌어당겨 안았다.
그 덕분에 또 화가 나려다가도 비싯 웃음이 흘렀다.
반 모태솔로에, 아무것도 몰라 사람을 짜증나게 하던 그는 이제 어느 정도 홍예원을 조련할 줄 아는 것이 분명했다.
은근슬쩍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 또 내가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
예원은 못 이긴 척 손을 뻗어 그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살짝 땀이 밴 그의 셔츠가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그럼, 그 뒤론 후회한 적 없어?”
“……네, 그런 것 같아요.”
“다행이네.”
“…….”
“생각해 보면 말이야. 난, 당신이랑 결혼한 걸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시작한 가짜 결혼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나한테는…… 무조건 진짜가 돼 있었거든.”
이 결혼도, 너를 향한 나의 마음도. 감히 내가 깨닫지도 못한 새에 말이야.
다시 한 번 프러포즈를 하듯, 그가 예원의 귓가에 나직하게 말했다.
“언제까지고, 이 마음 절대 변치 않을게. 평생 너만 사랑하고 평생 너만 아낄게.”
“……갑자기 뭐예요, 그런 말.”
“아직 모르겠어?”
“…….”
“나, 지금 진짜 프러포즈 하는 거잖아.”
인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는 프러포즈를, 그런 식으로 포장마차에서 마구잡이로 했던 게 두고두고 후회로 남더라고.
이대로 넘어가면 살면서 평생 동안 너한테 책잡히겠다 싶어서.
미소와 함께 말을 마친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살짝 작고 길쭉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예원은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오, 오빠…….”
“반지는 카페 일하다 보면 못 낄 때가 많잖아. 대신 이건 늘 하고 있어. 반지 대신이라 생각하고.”
그가 꺼낸 것은 케이스였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바로 목걸이였다.
디자인은 다소 심플하지만 충분히 영롱한, 보기만 해도 흐뭇한 은색 빛의 목걸이.
“……예쁘다. 잘 어울려.”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예원의 목에 걸어준 그가 다시금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그 따스한 눈빛에, 예원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왈칵 북받쳐 오르는 것 같았다.
아씨, 이런 식으로 감동 주기 있나.
“가, 갑자기 이런 걸…… 나는 하나도 준비 못 했는데…….”
“괜찮아. 나도 갑자기 생각나서 준비한 거야.”
“…….”
“말했잖아, 넌 이렇게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예원이 너 자체가 나한테는 보석인걸.
다른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저 으레 하는 달콤한 말이라 치부하고 넘겼겠지만, 그는 달랐다.
현민혁이 하는 말만큼은 전부 진심이라는 것이 뼈 저릴만큼 느껴져서, 예원은 절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급기야는 눈 꼬리 끝에 살짝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사랑해, 예원아. 사랑해.”
한때 ‘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던 남자.
그 모두가 터무니없는 제 오산이었음을 깨달은 건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들을 하나하나 거치고, 견고한 믿음을 쌓고, 모든 역경들을 차곡차곡 적립한 나머지 결국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거니까.
그들에겐 앞으로도 언제까지고 마음껏 사랑할 시간이 남아 있었고, 예원은 그 사실에 충분히 만족했다.
지난 일들이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거였다.
‘만약 이게 꿈이라고 해도, 난 그 꿈을 절대로 깨지 않을 테니까.’
언젠가 그의 앞에서 했던 생각.
하지만, 이 모든 건 더 이상 그녀에게 꿈이 아니었다.
“……나도, 사랑해요.”
그저, 현실이었다.
꿈보다도 더 꿈결 같기만 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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