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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98화 (98/102)

98. 오빠라고 불러 줘

2019.03.12.

“맞지. 방금 나한테 오빠라고 했잖아.”

“……내가 언제요?”

“방금. 아니야?”

“아, 아니, 그건…… 민영이한테 민혁 씨가 오빠니까…….”

“……아. 그런 거였어?”

남자의 단정한 얼굴에 금방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그 모습이 답지 않게 은근 귀여워서, 예원은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웃기네, 이 남자.

맥락도 제대로 못 읽고 오빠 소리부터 먼저 귀담아 듣다니.

혹시…….

“왜요, 나한테 오빠 소리 듣고 싶어요?”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와. 그렇게 안 봤는데. 민혁 씨도 다른 남자들처럼, 오빠 소리에 집착하는 뭐 그런 남자였던 거예요? 약간 실망이다.”

“……아냐,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면 뭔데요.”

간만에 건수를 잡아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난스럽게 얼굴을 들이밀며 네, 네? 거리고 있는데, 민혁은 그런 예원의 머리를 양손으로 쥐더니 쉼 없이 조잘대는 그 입술에 제 입술을 꾹 찍어 눌렀다.

갑작스런 뽀뽀에 그녀가 할 말을 잃은 틈을 타, 그가 얼른 말했다.

“……‘민혁 씨’라는 말보다, 좀 더 다정해 보이잖아. 오빠라고 부르면.”

“…….”

“뭐, 실제로 오빠가 맞기도 하고.”

그가 쑥스러운 듯 덧붙였다.

호칭 정리에 대해 한 번 언급했던 이후, 따로 말은 안 했지만 은근히 계속 서운해 했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동안은 계속 그만 일방적으로 여보니 자기니 했었으니까. 그가 이해가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그의 변을 듣고 난 예원은 왠지 모르게 미안해졌다.

난 그냥, 별 생각 없이 ‘민혁 씨’라는 호칭이 이미 입에 붙어 버려서 그런 거였는데.

그는 그게 그리도 아쉬웠던 걸까.

“그럼, 이제부터는 민혁 씨 대신 오빠라고 부를까요? 그게 낫나?”

“……아니, 불편하면 안 그래도 돼. 꼭 그러라는 건 아닌데, 그것도 썩 나쁘지 않다는…….”

“오빠.”

여느 때와 같이 부끄럽다고 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담해진 그녀의 발언에 도리어 그가 놀랐다.

“민혁 오빠.”

“…….”

“됐죠? 안 이상하죠?”

표정이 왜 이래. 별론가?

알쏭달쏭한 그의 표정에 의아해하고 있는데, 불현듯 입술을 베어물고 지나가는 축축한 느낌에 예원은 정신이 팍 들었다.

“아, 진짜! 자꾸 깜빡이도 안 켜고 훅훅 들어올래요?”

“……미안. 근데 좋아서.”

“…….”

“훨씬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서 좋아.”

나참. 이전에도 충분히 가까웠구만. 이 남잔 나랑 무슨 자웅동체라도 되고 싶은 건가.

우스운 생각이 든 그녀가 샐샐 웃었다.

어쩌다 이야기가 이리로 빠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가 좋다니까.

예원도 덩달아 좋았다. 행복했다.

“앞으로 잘하세요, 오빠. 나한테도, 민영이한테도.”

“알았어. 잘할게. 근데…….”

“……왜요, 또 무슨 고민 있어요?”

이 마당까지 와서 또 왜 이래?

예원이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냥, 좀 걱정돼서.”

“뭐가요?”

“여동생을 가져 본 기억이 너무 까마득해서, 그 애를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되도록 빨리 친해지고는 싶은데, 방법이 도저히 생각이 안 나. 같이 있으면 어색하기만 할 것 같고.”

“아…….”

“아까 보니까, 날 좀 확실히 어려워하는 것 같더라고.”

뭔가 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고민이었다.

예원은 덩달아 생각에 잠겼다.

“……음, 그런 거면 나한테 괜찮은 생각이 하나 있긴 한데.”

“괜찮은 생각? 뭔데?”

입술을 내민 채 그를 사랑스럽게 올려다본 예원이 후후,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 *

“……놀이공원이요?”

“그래. 너 놀이공원 많이 안 가봤지?”

지난 번, 그와 했던 놀이동산 데이트가 꽤나 즐거웠던 예원이었다.

안 그래도 다음에 그와 또 한 번 가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의 고민을 듣고 바로 그 기억이 떠올랐다.

같이 몸 부대껴가면서 놀이기구도 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다 보면 아직은 서먹하기만 한 둘이, 급속도로 친해질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민영도 아마 놀이공원을 가 본 적은 그리 많이 없을 테니까.

막 신선하지는 않아도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 저 놀이공원 되게 많이 가봤는데…….”

“……아, 그래?”

이럴 수가.

제 예상을 철저히 빗나간 답변에 예원의 표정은 금방 시무룩해졌다.

화목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랐다더니, 민영은 그들 부부와는 다르게 어렸을 적부터 확실히 많은 경험을 쌓았던 모양이었다.

어쩌지. 그럼 이건 나가린가.

그런데 그때, 그녀의 맘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민영이 곧바로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근데 저 놀이공원 좋아하기는 해요. 한동안은 바빠서 못 가기도 했고.”

“오, 그렇구나! 그럼 가는 거 괜찮겠다. 그치? 이제 스케줄도 좀 널널해졌다며.”

“네, 아마도요. 근데…… 언니도 같이 가시는 거예요?”

“얘는! 나 임신했잖아. 임신부가 놀이기구를 어떻게 타.”

“네? 그럼…….”

“당연히, 오빠랑 둘이 가야지.”

“……네? 미, 민혁 오빠랑 저랑…… 둘이요?”

“응.”

아주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예원을 보며 민영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오빠만…….

완전 숨 막히게 어색할 것 같은데!

“이참에 둘이 좀 친해지라고. 원래 친해지려면 같이 노는 게 최고야. 너네 오빠야 원래 무뚝뚝하니 그렇다 치지만, 너는 친화력도 좋은 편인데 그 정도니까……. 이 상태로 가다가는 둘이 영영 말 못 놓을지도 모르잖아.”

“……그, 그런……가요?”

그 날 이후로 어느덧 몇 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처음에야 물론 반감과 적대감이 더 컸다.

하지만 그 날 그의 오롯한 진심을 전달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들은 극적 상봉을 한 같은 핏줄이 아닌가.

점점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는 건 민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도통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어찌 알았는지 그걸 딱 캐치하고 이렇게 제안해오는 예원이 민영은 은근히 고마웠다.

지원의 누나라서가 아니라, ‘새언니’로서도 굉장히 맘에 드는 사람임에 분명했다.

“아님 뭐, 정 네가 단둘이는 좀 힘들다고 그러면…… 지원이도 같이 끼워. 걔도 놀이공원 잘 안 가서 그렇지, 좋아는 할 텐데.”

“……지원이요?”

“응. 왜, 싫어?”

홍지원과의 놀이공원 데이트라.

한때 혼자서 많이 꿈꿔봤던 거지만, 지금은…….

윽.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입술을 꼭 깨문 민영이 황급히 도리질을 했다.

“그냥, 민혁 오빠랑만 갈게요.”

“어? 왜. 너, 우리 지원이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무슨! 아니에요!”

“…….”

“……아, 아니. 솔직히 예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라고요.”

제대로 된 고백도 못한 짝사랑이지만, 대놓고 퇴짜를 놔준 덕분에 마음 정리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쳇. 됐어. 나의 진가도 모르고, 다른 여자 좋다고 그렇게 목매다는 놈은 내 쪽에서도 사양이다 이거야.

괜히 심통이 나 콧방귀를 뀌는 민영을, 예원은 특유의 탐색하는 눈으로 죽 훑었다.

“그래, 뭐. 그렇담 다행이네. 시대가 아무리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겹사돈은 아직 좀 그렇지?”

“……언니! 지금 무슨 말씀을!”

아니 또 무슨 겹사돈 얘기까지 나와…….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발개진 민영을 보며 예원은 깔깔 웃었다.

“근데 어쩌냐. 넌 아니라고 해도, 걘 아직 현재 진행형일 텐데. 삽질하지 말고 빨리 단념하라고 말해둬야 하나?”

“……아뇨,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어? 뭐가.”

“……홍지원이 좋아한다는 사람, 저 아니니까.”

“……뭐?”

예원의 눈이 금세 동그래졌다.

그저 장난처럼 꺼낸 말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의외인 얘기였다.

“너 아니면 누구야? 내가 알기로 걔 주위에 여자 아무도 없는데? 너 말고는.”

“……그쵸, 없죠. 근데 있어요.”

“뭐야. 말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해줘라.”

“……그냥, 그런 게 있어요. 제 입으론 말 못해요.”

“참나. 뭐길래 그래?”

“……때 되면 걔가 말씀드리겠죠.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잖아요.”

얘가 지금 뭔 소릴 하는 건지.

영 뜬구름 잡기 같은 민영의 말에 예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간에, 조만간 오빠랑 갈게요. 놀이공원.”

“어어, 그래. 알았어. 그럼 내가 너네 오빠한테는 말해 둘게. 괜찮은 시간 정해서 알려줘. 알았지?”

“네. 감사해요, 언니.”

“감사는 무슨.”

방긋 웃어보이는 민영에게 가볍게 화답해 주었다.

하지만 예원은 곧 골똘한 생각에 빠져야만 했다.

아니, 그럼. 걔가 좋아한다는 그 y양은 대체…… 누구란 말이야?

* * *

“어서 오세요. 주문 하시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세상에 어떤 성격 급한 인간이 다짜고짜 말꼬리부터 자르고…….

살짝 인상을 쓴 지영은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주문자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확 굳었다.

“……여긴 왜 왔어.”

“카페에 커피 마시러 왔지, 왜 왔겠어요.”

“…….”

“걱정 마요, 누나 보고 싶어서 온 거 아니니까. 커피 마시러 왔어요.”

물론, 그 문제의 주문자는 홍지원이었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듯한 얼굴. 하지만 그만큼 반갑지 않은 얼굴이기도 했다.

기껏 온 손님을 받지 않을 수는 없기에, 지영은 하는 수 없이 포스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찍고 계산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주변에선 수군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헐. 저거 홍지원 아냐? 완전 닮았는데?”

“그러게, 모자 써서 잘 안 보인다. 좀 더 가까이 가볼까?”

“와씨, 얼굴 개작아!”

“뭐야. 완전 존잘이네.”

홍지원 네가 진짜 뜨기는 떴구나.

나한테도 들리는데, 저게 얘한텐 설마 안 들릴까.

머신에서 커피를 추출하면서 지영은 입술을 사리물었다.

안 그래도 그 날 이후 현실 생활이며 일하는 거며 영 힘들었는데, 당사자의 갑작스런 등장에 또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꼬여 버렸다.

모자에 얼굴이 반쯤이나 가려져도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외모. 어딜 가나 주목되는 시선.

확실히, 그와 자신은 다른 세계에 있는 입장이라는 게 다시 한 번 느껴지고 있었다.

예전엔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갑자기 웬 존댓말이에요? 안 어울리게.”

주위 시선이 신경쓰여 일부러 딱딱한 경어체로 얘기했는데, 그걸 또 바로 콕 집는 게 홍지원다웠다.

“오늘 마치고 뭐해요? 오늘 난 시간 괜찮은데, 누나도 괜찮으면 이따 나랑 같이 저녁 먹을래요?”

“……야. 뭐하는 거야, 지금.”

“뭐가요.”

“몰라서 물어?”

“…….”

“……그때, 그만 접으라고 말했잖아.”

날 향한, 네 마음.

너무도 괴로운 날이었기에,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생각하면 웃음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알아요, 들었으니까.”

“근데?”

하지만 그녀와 달리, 지원은 입가에 살짝 웃음기를 띄웠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난 그 날 대답 안 했어요. 누나 맘대로 먼저, 그냥 그러고 가버린 거지.”

“……뭐?”

기타 치는 사람답게 손끝에 군살이 군데군데 박힌 수려한 손이, 픽업대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집어 들었다.

“누나 알죠? 나 은근히 고집 센 거. 한 번 풀기로 마음먹은 건 절대 안 포기했잖아요, 옛날에도.”

아마도 과외 시절을 얘기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때도 홍지원은 꽤 유별났지.

제 수준에 안 풀릴 문제라고 말해도 밑줄을 쎄가 빠지게 긋고 영어사전을 찾고, 형광펜 도배질을 해가면서까지 기를 쓰고 풀어댔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게 가끔은 안쓰러울 때도 있었다.

뭐, 그 덕분에 그 시절 홍지원의 영어 점수는 가파르게 수직 상승했지만.

그땐 똑똑하고 끈기 있는 제자가 마냥 자랑스럽기만 했었는데.

그것도, 어느새 다 옛날 일이 되어 있었다.

“저녁 먹기 싫으면 그건 다음에 먹어요. 오늘은 그냥 누나 얼굴 본 걸로 만족하지, 뭐.”

“…….”

“갈게요. 또 봐요.”

“……야!”

또 보긴 뭘 또 봐? 설마 또 올 생각인 거야?

왠지 모르게 다급해진 그녀가 불러봤지만, 쓸데없이 다리가 긴 그는 이미 저 멀리로 총총히 사라진 뒤였다.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카운터로 다시 돌아온 지영의 어깨가 축 처졌다.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아.”

나랑 뭘 어쩌자는 거야. 그렇게 모질게 말했는데, 또 왜 저러냐고.

밀어내는 대로 가만히 밀려나주면 좋으련만.

말본새로 보아하니 그럴 기미가 아니었다.

과외 시절 얘기도, 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러 꺼낸 것이었을 터였다.

‘휴, 쟤를 어쩌면 좋지.’

답답함에 숨이 절로 막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낱같은 기대 혹은 희망을 놓지 않는 자신이 느껴져 죽을 맛이었다.

더더욱 절망스러웠다.

* * *

“……이 정도면, 아무도 못 알아보겠죠?”

“응. 나랑 예원이도 항상 이러고 다녔어. 아무 문제없을 거야.”

“……아휴, 진짜. 내가 왜 이런 신세가 되어야 하는 건지.”

팔자에 없던 유명인 신세가 꽤나 고달프구만.

민혁과 예원이 그랬듯, 선글라스와 모자 등으로 중무장을 한 민영이 조수석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본 민혁은 뻔히 알겠다는 듯 웃었다.

“적응해야지. 이제 갈수록 더할 텐데.”

“……오빤, 이 생활에 언제부터 적응했어요?”

“나? 글쎄. 한…… 데뷔 1년쯤 돼서?”

“와. 그래도 비교적 빨리 적응하셨네요.”

난 언제쯤 이게 익숙해지려나. 하물며 친오빠랑 있는 것조차도 이렇게 아직 어색한데…….

안전띠 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민영이 속으로 한탄했다.

“벌써부터 크게 걱정하지 마. 곧 익숙해질 거야. 잘할 거고.”

“……치,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 닮았잖아, 너.”

넌 얼굴도 예쁘고 재능도 있어서,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유명해질 거야.

그러니까, 할 수 있으면 빨리 적응하는 편이 좋지.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진 말에 민영은 볼이 화끈 달아올랐다.

평소엔 별로 안 그렇다가도 이럴 때면 괜히, 톱스타 현민혁이 다름 아닌 제 친오빠라는 점이 불쑥불쑥 실감나곤 했다.

“부모님은 요새 뭐라셔. 자랑스러워하시지?”

“네, 뭐……. 워낙 극성이셔서.”

“극성은.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러시는 거지.”

“…….”

“……내 얘기는, 안 하시고?”

사실 얼마 전, 민영 몰래 예원과 함께 그 부모님을 찾아뵙고 온 민혁이었다.

이제껏 제 동생을 잘 길러주셔서 고맙다고, 작게라도 사례하고 싶다고 했던 그에게 그들은 한사코 거부 의사를 밝혔다.

누구에게 사례 받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민영이가 우리 집에 와준 덕분에 우리는 축복을 받았다고. 그걸로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간 곳이었지만, 감동을 받은 건 오히려 민혁 쪽이었다.

“뭐, 특별하게 말씀하신 건 없었고…….”

“…….”

“그냥, 저한테 좋은 오빠가 생겨서…… 다행이래요.”

뭔가 선후관계가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사실이 그러하니까 뭐.

기실 그건 부모님의 말이기도 했지만, 곧 민영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아직은 그가 다소 불편하고 어렵긴 해도, 오빠라는 존재가 있단 사실 하나만으로 왠지 모르게 의지가 되고 위안을 받고 있으니까.

게다가 그는 요사이 그녀의 양동생인 민아에게까지도 살뜰한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민영의 말에 민혁은 대답 없이 살풋 웃기만 했다.

그런 그를 힐끔 본 민영도 작게 웃었다.

“다 왔다. 내리자.”

“네.”

마침내 놀이공원 주차장에 다다른 그들이 사이좋게 차에서 내렸다.

일부러 야간개장 때를 맞춰온 터라 어둑어둑해진 주변은 나름 한산했다.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눈을 비벼. 눈에 뭐 들어갔어?”

“아, 네. 이상하게 아까부터 눈이 좀 따갑네요.”

“그래? 선글라스 벗어 봐. 내가 봐 줄게.”

뒤따라 선글라스를 벗은 민혁이 얼굴을 가까이 한 채 민영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눈물샘 근처로 속눈썹 하나가 빼꼼 나와 있었다.

“아, 이건가 보다. 자, 어때.”

“오, 괜찮아진 것 같아요.”

“속눈썹이 길어서 잘 빠지나 보네. 나도 그런데.”

“진짜요?”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하다못해 속눈썹마저도 닮았나 보다, 우리는.

민혁이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서로를 향해 피식 웃은 그들은 사이좋은 모습으로 나란히 입구를 향해 걸었다.

팔짱을 끼거나 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단란한 모습.

연인처럼 똑 닮은, 남매의 다정한 한때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됐어요? 뭐 좀 있어요, 오늘은?]

“……예. 잡았습니다.”

지금 저들의 모습이, 이후에 어떤 엄청난 파장을 불러 오리라고는.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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