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90화 (90/102)

90. 끝

2019.02.12.

그녀는 마침내 알 수 있었다.

혹시나 하고 의심했던 제 예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

예상은 했지만 결코 보고 싶지는 않았던 인물이 그 곳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온통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방 한 가운데서, 예원의 화장대와 서랍을 미친 듯 뒤적이고 있었던 듯한 여자.

다름 아닌 주가윤이었다.

“…….”

“…….”

정통으로 눈이 마주친 두 여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나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니.

방음이 뛰어난 집이라던 그의 우스갯소리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참으로 쓸데없는 옵션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한참 만에 입술을 뗀 예원이 침착하게 물었다.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놀라울 것도 없는 탓이었지만, 한껏 당황한 여자의 표정은 예원과 판이하게 달랐다.

완전한 낭패. 이 타이밍에 그녀가 등장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점장님.”

“…….”

이런 상황에서까지 점장님이라니.

살다 살다 저 소리를 듣는 것이 이리도 달갑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원은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억지로 삼키고 표정을 굳혔다.

“……이제 연극은 그만하죠. 나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

“묻잖아요.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아마도, 그 말이 기폭제였다.

평소처럼 순둥순둥한 얼굴을 하고 있던 여자의 표정은 조금씩 표독스러워졌다.

아니, 본모습을 찾았다는 표현이 맞겠지.

분홍빛의 혀가 낼름 밖으로 나왔다 사라지며 입꼬리가 픽 올라간다.

노골적인 비웃음.

위로 구부러진 채 꼭 다물어진 입매는 꼭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 들켰네. 재수없게.

“주가윤 씨.”

기다림을 못 이긴 예원이 한 번 더 그 이름을 부르자, 여자는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벌써 오셨어요? 이제 곧 나갈 생각이었는데.”

“…….”

“피차 불편해졌잖아요.”

덕분에.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묘하게 제 잘못으로 돌려버리는 뉘앙스에, 예원은 일순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제가 알고 있던 주가윤과 눈앞의 여자는 정말이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표정.

일순 엄청난 환멸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목소리가 저절로 덜덜 떨려 나왔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예요?”

“…….”

“대체…… 왜 이런 짓을…….”

제 손으로 여자를 직원으로 채용하던 그 날이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점장 신분으로 손수 뽑은 첫 동료였기에 그만큼 믿음과 자부심도 남달랐던 직원.

비록 그네에 관해 좋지 않은 소릴 일부 주워듣기는 했어도, 사람이란 본래 다들 입체적이라 어쩔 수 없는 거다, 애써 그렇게 포장하며 넘겼다.

솔직히 말하면 애초에 안 좋은 쪽으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그런데.

“……네가 나한테서 가장 소중한 걸 뺏어갔으니까.”

“…….”

“고작 네까짓 게.”

막상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면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긍정적인 감정이라곤 정말 1g도 보이지 않는, 차갑고 딱딱한 눈빛. 표정.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어. 널 볼 때마다 수십번 생각했지. 왜 하필 너 같이 보잘 것 없는 애였을까. 왜 너여야만 했을까. 쪼끔 반반한 그 얼굴 빼면, 솔직히 말해서 네가 나보다 잘난 것도 없는데. 쥐뿔 아무것도 없는데 말야.”

“…….”

“안 그래?”

두 여자의 시선이 날카롭게 부딪쳤다.

떨리던 예원의 입술은 꼭 앙다물어졌다.

“꽤나 억울하다는 표정이네. 왜, 열불 나? 짜증이 막 솟구쳐? 나 막 죽이고 싶고 그래?”

“…….”

“아니지. 현민혁을 꼬실 거였으면 이 정돈 첨부터 각오했어야지. 안 그럼 너무 양심이 없는 거잖아.”

“…….”

“설마, 이 정도 갖고 신고할 건 아니지?”

저렇게 싫은 걸 여태껏 어찌 숨겼을까. 통한의 인내력이네.

이야기를 듣던 예원은 문득 헛웃음을 터뜨렸다.

여자가 하는 말들이 웃겨서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향한 자조가 들어서이기도 했다.

이건 뭐 제 손으로 제 발등을 야무지게 찍은 꼴이 아닌가.

지난날의 자신은, 순진해도 얼마나 순진했는지.

“……여긴, 왜 들어온 거죠?”

“…….”

“뭔지는 몰라도…… 그쪽이 원하는 건 여기 없을 거예요.”

예전에 민혁이 했던 말로 미루어보아, 그의 방을 찾으려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부부라면 응당 한 방을 쓰리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런데 차갑게 읊조린 예원의 말에 여자는 피식 웃었다.

별 웃긴 얘기를 다 듣겠다는 듯이.

“내가 원하는 게 뭔 줄 알고?”

“…….”

“미안하지만, 난 이미 찾았는데.”

여자가 치켜든 손아귀에서 팔랑, 종이 한 장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챈 예원의 눈빛도 같이 흔들렸다.

“그냥 혹시나 해서 뒤진 건데 이런 게 나오더라고. 근데 뭐, 딱히 놀랍지는 않네.”

“…….”

“내가…… 지금껏 몰랐을 것 같아?”

이윽고 떠오르는 회심의 미소.

“너네 가짜인 거!”

패기롭게 고함을 친 여자의 손에 들린 것은, 바로 계약서였다.

멋모르고 제가 마구잡이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추억이라 생각해 그냥 놔두었던 그것.

허를 찔리고 만 기분에 예원은 그만 입술을 딱 벌렸다.

이 타이밍에 저게 튀어나올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저걸 진즉에 찢어버렸어야 했는데!

“분수에 안 맞는 마누라 노릇도 지쳤을 텐데, 내가 이참에 일찍 끝내게 해 줄게.”

“…….”

“방송사가 좋을까, 신문사가 좋을까. 점장님이 한 번 선택해 보세요.”

원하는 대로 해드릴 테니까.

일부러 하는 존댓말에 섞인 노골적인 조롱조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가차 없는 여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커피 하는 사람답게 치장 없이 단정한 손끝이,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액자를 집어든 것이었다.

예원의 생에 있어, 몇 안 되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그 사진을.

“봐, 사람들은 과연 뭐라고 할까?”

“…….”

“잘생기고 재능 많기로 소문났다는 홍지원의 하나뿐인 누나가, 감히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죽일 년이라고 하면?”

“…….”

“꼴에 현민혁 와이프라고 기세등등하더니, 알고 보니 이도저도 아닌 멍청이였다고 하면?”

내내 어리둥절해했었는데, 그 말에 곧바로 느낌이 왔다.

사진을 훔쳐간 것도…… 저 여자였구나.

정말이지 여자의 말대로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간 쌓여있던 울분이 펑 터지며 다리의 힘이 풀렸다.

명치 쪽이 아릿해지고, 열이 오른 머릿속은 팽이처럼 핑핑 돌고 있었다.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러지? 내가 뭘 잘못해서?’

여자의 손아귀에 아무렇게나 잡힌 제 가족사진을 보며, 예원은 독하게 이를 악물었다.

안 돼, 지원이는. 걔까지 여기 엮이게 할 순 없어. 절대.

“그거 당장 내려놔요. 좋은 말로 할 때.”

“싫은데?”

“놔두라고요.”

“내가 왜?”

“주가윤 씨!”

“어디다 대고 소리를 질러!”

되레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상대 덕에, 바짝 치켜뜬 눈 아래로 소리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예원을 보며 오히려 재미있어하는 기색이었다.

“왜, 무서워?”

“…….”

“그러게 겁도 없이 무서울 짓을 왜 했어.”

네 주제도 모르고.

나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패배감이 뼛속을 아프도록 파고들었다.

저도 모르게 깨문 아랫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뭘…… 뭘 원하는 거예요.”

“…….”

“나한테서 뭘 원하는 거냐고요.”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묻자, 여자의 입가엔 잠시 흡족한 미소가 띠었다.

하지만 그곳엔 금방 미소가 사라지고 이내 차가움만이 남았다.

“이미 다 알면서 뭘 묻고 그러시나.”

“…….”

“현민혁한테서 떨어져, 오늘부로 당장. 그리고 하루빨리 내 눈 앞에서도 좀 꺼져줬으면 좋겠어.”

“…….”

“그렇게만 하면, 이딴 것쯤은 그냥 모른 척 눈감아 줄게.”

나한테도 그 정도 아량은 있으니까.

제가 뭐라도 된다는 듯, 잔뜩 오만해진 여자의 표정에 예원은 입술을 감쳐물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비틀릴 대로 비틀린 여자는 저와의 약속을 무참히 어기고 모든 사실을 세상에 까발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만 모른 척하면 모든 건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다.

그도 평안하고, 지원도 무사할 것이다. 나만 희생한다면.

제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

그녀로서는 거기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

그렇게 후환이 두려운 와중에도, 곧이곧대로 그러겠다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싫다면요?”

“뭐?”

“그럴 수 없다면요.”

그를 사랑하니까. 이대로 그 남자 곁에 있고 싶으니까.

예원은 할 수 있는 한으로 절박한 표정을 쥐어짜내며 되물었다.

혹시나, 여자가 그런 자신을 보고 살짝 흔들리기라도 할까 싶은 마음에.

“……뭐,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이미 그녀의 가장 큰 치부를 손에 틀어쥔 여자는 마냥 코웃음 칠뿐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 끝까지 맘대로 해보든지.”

“…….”

“난 내 식대로 끝을 보게 해줄 테니까.”

제게 애걸하는 꼴이 가소롭고 한심해서 미치겠단 얼굴.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 상황이 너무나 즐겁다는 듯한 얼굴.

예원은 애써 눌렀던 분노가 울컥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

……더 이상은 한계라고 생각한, 그 순간이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그녀가, 가윤의 머리채를 홱 잡아챈 것은.

“시발, 이 미친년이!”

“악!”

어째 호락호락하게 넘어간다 했지. 순순히 알겠다 할 계집애가 아니었는데!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린 여자가 액자와 종이를 가로채려는 손길을 간신히 잡아 예원을 패대기쳤다.

용기만 충만할 뿐 나약하기 그지없는 몸은 엉망이 된 바닥 위로 털썩 나동그라졌고, 잔뜩 헝클어진 제 머리를 매만진 가윤은 가쁜 숨을 헐떡였다.

“하, 이거 진짜 웃긴 년이네. 야.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

“너 그냥 지금 x 된 거라니까?”

바짝 숙이고 나와도 모자랄 판국에 이 계집애가 뭘 믿고 덤벼?

한순간 열이 받은 여자가 바닥을 향해 정신없이 뇌까렸다.

그때였다.

“제수씨, 도대체 무슨 일…….”

타이밍 좋게 제3자가 나타났다.

예원의 비명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2층으로 달려온 성환이었다.

그는 방의 꼴을 보더니 무척이나 놀란 얼굴을 했다.

“……누구?”

눈이 휘둥그레진 여자를 보며 의아해하던 그가 이내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종종 에덴에 들렀을 때 봤던 터라 안면이 이미 익은 여자였다.

‘그런데 저 사람이 여긴 왜…….’

당황한 성환의 눈길이 서 있는 가윤과 바닥에 앉아 있는 예원을 번갈아 보았다.

난장판이 돼 있는 방과, 엉망이 된 채 대치하고 있는 두 여자의 모습은…….

“제, 제수씨. 이게…….”

“예원아!”

하지만 미처 상황파악을 할 새도 없었다.

그 순간, 이 집의 주인이자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가 들이닥쳤으므로.

“무슨 일이야?”

사실, 통화를 끊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집으로 향한 그였다.

성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급하게 달려온 듯한 민혁은 주저앉아 있는 예원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몸을 낮췄다.

“왜 이렇게 있어, 예원아. 방은 또 왜 이렇…….”

예원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말을 잇던 그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맑고 커다란 눈망울에 잔뜩 당황한 가윤이 비쳤다.

순식간에 등장한 두 남자 탓에 여자는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가윤 매니저가…… 여긴 웬일이죠.”

“…….”

표정을 굳힌 그가 물었으나, 상대에게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늘어진 눈초리의 민혁이 사방을 둘러보고는 다시 가윤을 빤히 쳐다보았다.

“……설마, 이거 가윤 매니저가 그런 겁니까?”

“…….”

“그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죠?”

민혁이 턱짓하자, 각각 종이와 액자를 쥔 여자의 양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한순간 궁지에 몰린 쥐가 돼 버린 셈이었다.

딱딱히 굳은 표정의 세 사람을 보며 가윤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꽤나 순조로웠다.

순한 양의 탈을 쓰고, 뭣 같은 매니저 생활과 더불어 역겨운 연기까지 해가며 둘을 갈라놓으려 했다.

그렇게 완전범죄로 끝낼 수 있었는데, 순식간에 모든 게 망가져버린 것이다.

저 같잖은 계집애 하나 때문에!

“이런 썅…….”

하지만 반대로, 그 계집애는 늦지 않게 달려와 준 제 남편 덕에 한결 안정되고 있는 중이었다.

나지막이 욕을 중얼거리는 가윤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던 예원은 잠시 뒤, 민혁의 팔을 지지대 삼아 일어섰다.

그러고는, 애써 어렴풋이 웃었다.

“……어쩌죠. 방금 전에 하신 그 말, 정말로 못 지킬 것 같은데.”

이렇게 와준 그를 보니 더더욱 확신이 들었다.

“난, 이 사람 못 놔요.”

당신이 뭘 어떻게 떠들어대든지 간에. 어떻게 우릴 흔들든지 간에.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어.

난, 죽어도 이 사람 옆이 아니면 안 되게 되어버렸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그녀의 옆에 선 민혁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눈앞의 여자가 설마 제 과거와 연관돼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주가윤 씨가 한 번 설명해 보시지 그래요. 방금 전까진 말씀 잘하셨잖아요.”

“…….”

“제 남편이 궁금해 하는데.”

제 남편. 그 자연스러운 표현이 잠잠해져 있던 불씨를 당겼다.

당황으로 물들었던 여자의 눈은 금세 살벌하게 독기를 품었다.

“……가윤 씨?”

오랜 시간 선망해왔던 남자의 입술에서 힘없이 흘러나오는 제 이름.

어느새 눈이 붉게 충혈된 가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당신에게서 바랐던 목소리는 그런 게 아니라고.

그렇게 남처럼, 몰랐던 것처럼 부르지 말란 말이야.

“……니들이 이러고도 행복할 수 있을 줄 알아? 천만에.”

“…….”

“내가 아니면, 누구도 안 돼!”

쨍그랑! 사납게 내팽개쳐진 액자가 바닥으로 돌진하며 엄청난 파열음을 냈다.

이성을 잃어 눈에 뵈는 게 없어진 듯한 여자는 그 길로 곧장 예원에게로 달려들었다.

예원의 여린 목이 두 손아귀 안에 거칠게 잡혔다.

“처음부터 네가 문제였어. 다 너 때문이라고!”

“켁! 잠깐……!”

“너만 없었으면 돼, 너만 없었으면……!”

이럴 수가.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상황에 민혁과 성환의 움직임은 저절로 다급해졌다.

그제야 모든 것이 빠르게 이해되고 있었다.

“형, 와서 좀 잡아!”

악에 받친 여자의 힘이 어찌나 거센지, 장정 두 명의 힘이 합세하고서야 그 손길을 겨우겨우 떼어낼 수 있었다.

간신히 숨을 쉬며 콜록거리는 예원을 두 팔로 감싸 안은 민혁은 거친 심호흡과 함께 여자를 노려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싸늘한 듯 침착해져 있었다.

“가서 당장 112에 신고해. 그때까지만 잠시 형이 데리고 있어 줘.”

“그래, 알았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끝까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가윤을 붙잡은 성환이 서둘러 나가고, 문이 닫히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세상에 뭐 이런 상황이.

가까스로 숨을 돌리며 침을 삼킨 그가 얼른 눈꺼풀을 내렸다.

제 품 안에서 축 늘어진 예원이 바로 보였다.

“예원아, 정신 좀 차려 봐.”

“…….”

“괜찮아? 어?”

잔뜩 풀린 눈이 천천히 깜빡여졌다.

예원은 떨리는 입술을 조금씩 달싹였다.

“민혁…… 씨…….”

그가 안심할 수 있게, 좀처럼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짜내려 했다.

괜찮다 말하고 밝게 웃으려 했는데.

그랬는데…….

“난, 괜찮아요……. 괜찮…….”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예원아! 예원아!”

일순 찾아온 암전과 함께, 그녀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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