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88화 (88/102)

88. 믿던 사람에게서 발등을 찍히는 기분

2019.02.05.

“어, 언제……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헤헤. 놀랐죠?”

특유의 맑은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며 눈초리까지 곱게 접힌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제 아내의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제야 그는 완전히 돌아서 그녀를 마주보았다.

수일 만에 만난 아내의 모습이 새삼 놀랍고도 낯설었다.

“뭐, 뭐야……. 아직 에덴에 있을 시간 아니야?”

오늘 마감조라고 했던 그녀는 마치면 먼저 집에 가 있겠다고 했었다.

일 때문에 바쁜 건 피차 마찬가지, 일찍 못 보는 게 조금 서운해도 그러려니 하려고 했는데.

“아, 그게…….”

그의 말에 또로록 눈을 굴리던 예원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

“오늘 하루만 교수님 찬스 썼어요. 민혁 씨 보러 가겠다고 애걸복걸하니까, 결국엔 항복하시던데요?”

“……뭐?”

허. 예상외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민혁은 살짝 헛웃음을 터뜨렸다.

언제는 일 떠넘긴다고 혼날 것 같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

한편, 그런 그를 조용히 올려다보던 예원은 다시금 힘을 주어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고,

민혁은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예원아……?”

“……보고 싶었어요.”

너무너무.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실, 그녀도 굳이 여기까지 올 생각은 절대 없었다.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는 건 맘에 걸렸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가 올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무엇보다 참석을 부추긴 당사자가 다른 이도 아닌 ‘조혜인’이어서 더욱 그랬다.

괜히 그 여자의 장단에 놀아나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그런데 그 생각이 바뀐 건 아까 전.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였다.

‘어, 예원아. 나 왔어.’

드디어 그와 같은 하늘 아래에 있고, 저가 움직이면 언제든 그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닫자 다른 일은 차마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저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움직여 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은 이미 이곳에 당도해 있었다.

착착 진행된 일련의 과정들이 그녀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

뭐 어쨌거나, 그녀의 서프라이즈 등장에 금방 적응을 마친 민혁은 짐짓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단단한 팔로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그녀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나도.”

“…….”

“나도 보고 싶었어.”

마시멜로우 같이 달콤하고 포근한 그녀를 품에 안으며, 민혁은 문득 깨달았다.

저 혼자서만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했던 것은 정말이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결코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 아니구나.

이 여자도 나처럼, 아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를 보고 싶어 했구나.

맞닿은 심장에서 쿵쿵 느껴지고 있는 이 박동소리가 바로 확실한 증거였다.

“……근데,”

그렇게 둘만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얼마쯤 끌어안고 있었을까.

그녀를 품에서 살짝 떼어낸 민혁이 나직이 물었다.

“얼굴이 왜 이렇게 홀쭉해졌어. 나 없다고 설마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은 거야?”

어느새 필요 이상으로 진지해진 남자의 얼굴.

예원은 풋 웃었다.

“치, 아니거든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먹었는데. 이모님들도 얼마나 잘 챙겨주셨다고요. 난 아무 탈 없이 잘 있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뭐 물론, 그와 관련된 인터넷 기사 댓글들만 봐도 식욕이 뚝뚝 떨어지긴 했다마는.

하지만 그녀의 열성적인 변명에도 민혁은 여전히 미심쩍은 듯한 눈빛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잘 지냈다는 것치고는 나름 통통하게 올라있던 볼살이 쏙 들어가 있는데다가, 전체적인 얼굴색도 어쩐지 핼쑥해 보였으므로.

뻔할 뻔자. 보나마나 내 걱정에 먹는 둥 마는 둥 했겠지.

“……각오해. 며칠 내로 내가 몇 킬로는 찌우고 말 테니까.”

그녀를 밉지 않게 흘긴 그가 이내 씩 웃었다.

“아무튼,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마워. 생각도 못 했는데.”

예전에 촬영장에 와 주었을 때도 그렇고.

쉽지 않은 자리일 텐데도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여자가 민혁은 그저 고마웠다.

“아니에요. 근데, 내가 와도 되는 거겠죠? 혹시 실례하는 걸까 봐.”

“실례는 무슨, 아니야.”

시원하게 대답한 그가 어쩐지 움츠러들어 있는 것 같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가서 사람들한테 인사해야지.”

그런 김에 예쁜 내 마누라 자랑도 좀 하고.

한동안 눌려 있던 그의 팔불출 끼가 금세 다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네.”

사이좋게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그렇게, 미소를 띤 채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갔다.

* * *

바로 그 시각, 민혁의 소속사 사무실.

“어, 너 아직도 여기서 뭐해. 집에 안 가?”

무심코 자리를 지나치던 직원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까 전 간 줄 알았던 신입이 이제껏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 네. 출장 가 있던 동안 밀려 있던 일들이 많아서요. 야근 좀 하고 가려고요.”

“아휴, 오자마자 고생하네.”

정규직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마도 아직은 야근이 익숙지 않을 터.

아니나 달라 죽상을 하고 있는 얼굴이 꽤나 볼만했다.

뭐, 그래도 열심은 열심이구만. 기특하네, 짜식.

“참, 실장님이 아까 민혁 씨 집 갔다 오라고 그랬다면서. 별 일 없었지?”

“넵, 그럼요.”

그때,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던 신입이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참, 근데…… CCTV들이 전체적으로 고장 난 것 같던데요. 금방 다시 복귀하느라고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는데, 일부는 아예 먹통인 것 같았어요.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게.”

“어, 그래?”

미소 짓던 직원의 얼굴에 금세 낭패가 어렸다.

실은 이전에도 몇 번 CCTV에 문제를 발견해 고쳐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고 요즘은 한동안 괜찮은 것 같더니 또 시작인 모양.

누가 일부러 건드리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자꾸 말썽인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 진짜. 그놈의 CCTV 확 다 갈아 치워버리든가 해야지……. 암튼 오케이, 체크해 둘게. 수고하고 얼른 집에 들어가. 난 먼저 간다.”

“예, 들어가십시오!”

손을 흔드는 직원에게 꾸벅 인사한 신입은 다시금 모니터를 향해 눈을 돌렸다.

아주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 * *

“아니 이게 누구야! 어서 와요, 예원 씨! 오랜만이네.”

예원의 갖은 우려와 달리, 종방연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행히도 그녀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물론 개중엔 그녀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태반이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탓에 그녀 같은 외부인이 하나 껴 있는 것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장 감독과 그 무리들에게 붙잡혀 사진을 왕창 찍고, 또 한바탕 구구절절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 난 후에야 두 사람은 조금이나마 멀리 떨어져 앉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휴. 정신이 없다, 정신이. 힘들지?”

민혁의 낮은 속삭임에 예원은 살짝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에요. 민혁 씨가 옆에 있는데, 뭐.”

생각지 못하게 바쁜 와중에도 그녀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부러 자리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보란 듯이 그와 눈에 띄게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소기의 목적은 완수한 셈이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그가 저로 인해 자질구레한 구설수에 얽히는 게 싫다.

그 이상한 소문들이 사라질 수 있다면, 그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제 한 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무렴, 이까짓 ‘쇼’가 뭐 그리 어렵다고.

“민혁 씨, 이리 와서 잠깐 얘기 좀 하지.”

그러던 그때. 멀찍이서 또 한 명이 민혁을 불러 왔다.

그녀와도 아까 인사를 나누었던, 제작사 대표인가 뭔가 하는 꽤 높은 직책의 사람이었다.

“아, 예. 잠시만요.”

“…….”

“예원아, 잠깐만 여기서 쉬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네, 다녀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난 민혁은 얼른 그들이 있는 룸 쪽으로 건너갔다.

덕분에 혼자 남은 예원은 이리저리 떠드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을 힐끗거리며 애꿎은 사이다만 들이켰다.

‘이런 기분은 또 오랜만이네.’

저마다 얘기를 나누느라 바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의 존재감이 없는 것인지.

놀라울 만큼 단 한 명도 말을 걸어오는 이가 없었다.

동류의 사람들만 모여 있는 가운데서 나 홀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

오래 전, 그를 따라 클럽에 갔을 때 느꼈던 이질적인 감정이 또 다시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계약신부’로 전전긍긍해하던 그때와, 정정당당히 그의 아내가 된 지금은 그 느낌이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뭐 어때. 내가 뭐 못 올 데 왔나?’

엄연히 내 남편 일터인데. 잠깐 와볼 수도 있는 거지.

쳇.

예원은 다 마신 사이다를 다시 채우기 위해 옆에 있던 초록색 병을 들었다.

그때였다.

“……오셨네요, 결국엔.”

불현 듯 정수리 위로 진한 향수냄새가 훅 내려앉았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는, 장미처럼 매혹적이고 진득한 향기.

“네, 뭐. 그렇게 됐네요.”

……아, 저 여잔 왜 또.

혜인의 얼굴을 힐끔 확인한 예원에게서 떨떠름한 대꾸가 튀어나왔다.

“안 오실 줄 알았어요. 따로 말씀이 없으시길래.”

싱긋 미소 지은 여자는 비어있는 예원의 앞자리에 사뿐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평소처럼 사근거리는 말투였지만, 그것은 예원의 심기를 어김없이 톡 건드렸다.

“저도 충동적으로 온 거라서. 어쨌든 이렇게 왔으니까 된 거 아니겠어요.”

내가 어딜 오건 말건 내 맘이지.

내가 뭐 일일이 너한테 보고해야 되냐?

“……뭐, 그야 그렇긴 하죠.”

얄밉게 입꼬리를 올리던 혜인은 곧바로 옆에 있던 소주병을 들었다.

예원의 술잔을 채워주려는 의도였다.

“됐어요, 괜찮아요.”

하지만 그것은 당사자에 의해 금방 가로막히고 말았다.

“네? 왜요.”

“…….”

“술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 잔 안 하시고 왜……?”

물론 좋아하기야 좋아하지.

하지만…….

“……요 며칠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요. 좀 자제하려고요.”

실은 에덴의 회식 날, 거의 필름이 끊기기 전까지 갔던 자신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그녀였다.

가뜩이나 몸도 좋지 않으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술은 애초부터 피하기로 했다.

엉뚱한 소동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그녀 나름의 대비책이었다.

“어머, 그래요? 그래도 딱 한 잔만 하시지.”

“죄송합니다. 대신, 혜인 씨 잔은 제가 따라 드릴게요.”

“아니, 그래도……!”

“잔 주세요.”

예원은 혜인의 거듭된 종용을 단번에 끊어내고는 술을 따랐고,

멋쩍게 입맛을 다신 혜인은 그런 그녀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

물론 예원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순간 주변의 소음은 깡그리 사라진 채, 둘만이 독대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실은, 전부터 예원 씨랑 술 한 잔 해보고 싶었던 거 알아요?”

“……저랑요?”

“네.”

“왜요?”

“…….”

잠시 말이 없던 혜인은 곧 예의 미소와 함께 답했다.

“……현민혁이 선택한 여자니까.”

“…….”

“술을 마시면 원래 사람이 진실해지잖아요. 나도, 예원 씨에 대해 확실하게 좀 알고 싶었거든요.”

그래, 알고 싶었어.

나 같은 여잘 저버리고 그렇게 내빼듯이 결혼할 만큼.

네 어디가 그렇게 특별하고 대단했던 건지.

네 어디가…… 그렇게 좋았던 건지.

“…….”

예원은 눈앞의 여자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예사로 들었을 말이었겠으나, 상대는 조혜인이다.

그런 단순한 뜻을 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좀 아시겠어요?”

그녀의 나직한 물음에, 혜인은 그저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아뇨,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보아도, 어떻게든 뭔갈 찾아내려 애를 써도.

얼굴 좀 반반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계집애였다.

하다못해 그 얼굴마저도 저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왜, 저 남잔 이런 별 볼일 없는 계집애가 대체 왜 좋다는 걸까.

쟤에 비해 내가 뭐가 부족해서?

“그래요?”

딴엔 제 본색을 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한데, 여자는 전혀 놀라지 않고 대꾸할 뿐이었다.

“죄송하지만 전,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뭘 말이죠?”

순간, 예원의 입가에도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민혁 씨가 왜, 혜인 씨를 그렇게 뻥 차버렸는지 말이에요.”

“…….”

역시, 알고 있었구나.

졸지에 말문이 막힌 혜인은 금세 적대적인 시선이 되어 그녀를 노려보았다.

“……아주 당당하시네요.”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상하리만치 여유 넘치는 저 표정이 더럽게 싫다.

마치 자기가 승자라도 된다는 듯한 저 얼굴도.

하지만,

“글쎄요. 과연…… 그럴까?”

저 웃음도 머지않아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바로 오늘.

“…….”

일순 웃음기를 싹 거둔 혜인은 잔을 들어 소주를 삼켰다.

그리고 다시 제 잔을 스스로 채우며 말했다.

“……예원 씨.”

“…….”

“‘믿던 사람에게서 발등을 찍히는 기분’,”

“…….”

“혹시 알아요?”

다소 생뚱맞게 튀어나온 물음이었다.

예원의 미간은 절로 찌푸려졌다.

갑자기 저게 무슨 말이지?

“그거, 되게 기분 더러워요. 한순간 저 밑바닥 나락까지, 롤러코스터라도 탄 것처럼 곤두박질쳐버리는 느낌이거든요.”

“……아. 그래요?”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마쯤 지켜보고 있었을까.

슬슬 도는 술기운에 눈빛이 나른해진 여자는 이내, 살벌하고도 조용하게 속삭였다.

“난…….”

“…….”

“예원 씨가 그걸 좀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나만 그 기분을 아는 건…….”

……이유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좀 아쉽잖아. 불공평하고.”

“…….”

“안 그래요?”

순간, 예원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자신을 느꼈다.

“……?!”

그리고 동시에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온몸을 덮쳐왔다.

‘뭐지,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바로 그때였다.

“…….”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마침 부르르 진동한 것은.

예원은 홀린 듯 그것을 꺼내 귀에 가져다 대었다.

“여, 여보세요?”

[예원아. 혹시 지금 전화 받을 수 있냐?]

“……네, 교수님. 무슨 일이세요?”

평소보다 무척 다급한 것 같은 그의 목소리.

반면 제게로 향해 있는 여자의 묘한 시선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다른 건 아니고. 그, 가윤인가 뭔가 하는 매니저 말인데…….]

귓가에 뭐라 뭐라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예원은 그 자세 그대로 고정된 채 움직이지 못 했다.

“……네?”

아, 이걸 말하는 거였나.

“…….”

……믿던 사람에게서, 발등을 찍히는 기분이라는 건.

예원의 눈은 한순간 멍해졌다.

#dark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