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톱스타의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
2018.12.07.
“뭐, 뭐, 뭐예요 갑자기…….”
한순간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예원은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여보’라니. 이 무슨 해괴하고 갑작스런 어택이란 말인가.
제멋대로 씰룩거리려는 입가를 다잡으려 노력했지만, 그것도 이미 힐끗 뒤를 돌아본 채린에 의해 다 들켜버리고 난 후였다.
에이 씨 진짜.
[잘 있었어, 여보? 매장엔 별 일 없었지?]
“……잠깐만요.”
나직한 웃음과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그녀는 다급한 걸음을 옮겨 사무실로 향했다.
[말하는 거 보니까 별로 바쁘진 않은가 보네.]
“뭐하는 거예요 지금?”
[왜.]
왜? 왜애애?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요? 가, 갑자기 무슨 그런…….”
[왜, 여보라고 해서? 맞잖아, 여보.]
“맞긴 뭐가 맞아요!”
미처 몰랐지만, 본격적으로 고삐가 풀린 남자는 진도 나가는 속도가 거의 KTX, 아니 LTE급이었다.
그에 비하면 예원은 이제 인력거 타고 겨우겨우 힘겹게 따라붙고 있는 수준이랄까.
요 며칠, 그는 마치 하나의 불도저와도 같아 보였다.
순식간에 끝 간 데까지 밀고 들어올 것 같은, 거침없는 불도저.
[호칭 정리는 모든 관계의 첫걸음이야. 언제까지 생판 남처럼 부를 순 없잖아.]
“…….”
[이러다간 우리, 아이 낳고도 ‘민혁 씨, 예원 씨’ 그러고 있을 판이라고.]
“……아이요?”
참나, 또 얘기가 뭔 거기까지 튄담.
“아니 뭐, 설마 그때까지 그러겠어요? 그땐 당연히 또 다르게 부르겠죠. 주혁 아빠, 주혁 엄마…… 뭐 그런 식으로…….”
[주혁 아빠?]
“…….”
[그거, 당신이 미리 지어놓은 이름이야?]
엥? 말을 잇던 예원은 순간 멈칫했다.
출산은커녕 결혼조차도 꿈꿔보지 않았던 자신이 아기 이름을 지어놓다니.
그럴 리는 없었다.
“아, 아뇨. 그건 그냥 저도 모르게 나온 이름…….”
[현주혁. 현주혁이라……. 괜찮네. 내 이름이랑 비슷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아. 어감도 좋고.]
“…….”
[좋아. 아들 낳으면 그 이름으로 하자. 딸 이름은 내가 차차 생각해 보지 뭐.]
“……허, 참.”
예원은 결국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김칫국도 유분수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구만.
“그건 그렇고…… 왜 전화했어요?”
[그냥. 보고 싶어서.]
“네?”
순간, 그 특유의 듣기 좋은 음성이 귓가를 아득하게 간질였다.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
“…….”
[어제부터 내내 당신 생각만 나는데, 금방이라도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걸 얼마나 꾹 참았는지 몰라. 촬영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싶더라고.]
“……오늘 또 볼 거면서 뭘 그랬어요.”
[알아. 근데,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돼.]
그리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 밑으로는 자조적인 웃음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다.
강직한 나뭇가지처럼, 오직 저에게로만 올곧게 뻗어 있는 듯한 그의 마음이 예원은 새삼 절실하게 느껴졌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조금.”
[조금? 겨우 그거밖에 안 돼?]
“그럼, 뭘 얼마나 바라요? 그러게 누가 그렇게 드라마 열심히 찍으랬나…….”
신혼 초, 그를 열심히 타박하라던 수진의 말이 생각나며 픽 웃음이 흘렀다.
그땐 무심코 흘려 넘겼던 그 말이 지금은 이렇게 공감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인기 얻었으면 대충 좀 일하지, 아직도 왜 그리 소처럼 일을 해서.
[아, 내가 잘못했네. 꼼짝 않고 에덴에 붙어 있었어야 하는 건데.]
“알면 좀 와요. 이게 무슨 사장이야. 존재감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요.”
[알았어, 조만간 또 갈게. 아참, 지원이는 잘 보내주고 온 거야?]
“그럼요. 가서 선물도 주고, 확실히 배웅하고 왔어요.”
[잘했네. 지영 씨도 같이 데려가지 왜.]
“같이 가긴 했는데……. 걘 왜요?”
[어? 아, 아니. 그냥,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어차피 만날 혼자 다니는데 뭐가 심심해요.”
쳇, 내가 혼자 다니건 둘이 다니건 관심도 없던 사람이 무슨.
예원은 문득 웃음기를 거두고 새침하게 말했다.
“……오늘, 일찍 와요. 맛있는 거 해줄 테니까.”
[진짜? 뭐 해 줄 건데?]
“그거야 당연히 비밀이죠. 궁금하면 와서 확인하시든가요.”
[치사하네. 알았어, 최대한 일찍 갈게.]
“네. 아무튼…….”
끝으로, 저도 모르게 ‘사랑해요’라는 말이 순간적으로 톡 튀어나올 뻔 했다.
지레 흠칫 놀란 예원은 얼른 통화를 갈무리했다.
“……그, 그럼, 나중에 봐요.”
[응, 나중에 또 연락할게.]
폰을 귀에서 떼고 액정에 뜬 종료 버튼을 꾹 누르고 나서야, 그녀는 참고 있던 숨을 후 내쉬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아예 안 해 본 말도 아니건만, 어째서 이 말은 생각만 해도 이리 낯이 간지러운지 모를 일이었다.
‘아직은 좀…… 그렇지.’
아무리 자존심 따윈 내려놓고 살기로 했다지만, 이미 그에게 폭 빠져 있는 걸 다 들킨 마당에 이런 말까지 남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밀당’은 고사하더라도 초장부터 그에게 끌려가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한 자락 남은 그녀의 마지막 고집이었다.
“…….”
아휴, 됐다. 일이나 하자. 일.
눈치 없이 승천하려는 광대를 억지로 누르고 누른 예원은 다시금 바(Bar)로 나갔다.
그곳에선 아까와 달리 방긋 웃고 있는 채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사장님이셨죠?”
“으응.”
“사장님은 잘 지내세요? 그러고 보니까 요즘 통 못 뵌 것 같은데.”
“이제 촬영 막바지래. 한창 바쁠 때라……. 촬영 끝나면 아마 자주 들를 거야.”
“아, 그러시구나…….”
아쉽다는 듯 채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요즘 그 드라마 진짜 인기 많더라고요. 제 친구들 중에서도 이번에 사장님 팬 된 애 짱 많아요. 원래 잘생긴 건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특히 더 멋있다고.”
“그래?”
역시, 내 눈이 삔 게 아니었어.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구만.
그녀의 어깨가 괜스레 으쓱거려질 무렵, 채린은 이윽고 말을 이었다.
“근데 신기한 게, 아직도 사장님 유부남인거 모르는 애들이 있더라고요. 쯧쯧, 결혼식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했는데……. 걔넨 무슨 북한에서 살다 온 줄 알았다니까요.”
“……너 설마, 그 부인이 나라고 막 떠들어대고 다닌 건 아니지?”
“네? 설마요. 점장님 융단폭격 맞으라는 것도 아니고, 제가 설마 그랬겠어요?”
식겁한 듯 고개를 가로저은 채린이 얼른 말했다.
“그냥 엄청 예쁘고 잘나가는 부인 있으니까 눈독 들이지 말라고만 했는데, 엄청 부러워하긴 하더라고요. 언제 나 몰래 남의 남자가 된 거냐고 막…….”
“…….”
“대체 어떤 여자길래 현민혁을 사로잡은 건지, 진지하게 그 얼굴 좀 보고 싶다고 하던데요.”
제 친구들의 반응을 떠올린 채린이 개구지게 낄낄거렸다.
반면, 예원의 얼굴은 점차 미미하게 굳었다.
“그 사람이…… 진짜 그렇게 인기가 많아?”
“새삼스럽게 뭘 물어보고 그러세요, 사장님이야 예전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한류스타였는데. 요즘은 제 여동생 친구들도 난리래요. 전 다 끝나면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 유난히 멋있게 나오시기는 하나 보더라고요. 확실히 역할이 검사 역할이라 그런지…… 지적인 섹시미가. 크으.”
“…….”
“아 점장님, 저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아까부터 참아서.”
“……어어, 그래.”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는 채린을 보며, 예원은 살짝 착잡한 표정이 되었다.
왠지 모르게 한순간 그와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
기분이 이상야릇했다.
제 속에서 스물스물 일어나고 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그녀 스스로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남편이 인기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 사람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배우인데.
남들처럼 인기 없어서 빌빌대는 것보단 낫지, 그게 뭐라고.
당연한 거잖아……. 당연한 건데…….
‘대체 어떤 여자길래 현민혁을 사로잡은 건지, 진지하게 그 얼굴 좀 보고 싶다고 하던데요.’
그리 생각하면서도, 방금 전 채린의 말이 화살처럼 마음에 콕 박혔다.
분명 그 뉘앙스가 긍정적인 의미는 아닐 터였다.
예전에는 저런 얘길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억울하고, 짜증나고, 불편한 느낌이 드는 거지.
“……아, 나 왜 이러냐.”
신경 쓰지 말자, 홍예원. 신경 쓰지 마.
예원은 애써 그렇게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안녕하세요, 에덴입니다!”
그때, 때마침 입구의 자동문이 스윽 열렸다.
어중간한 오후라 다소 인적이 뜸한 매장에 척척 들어선 손님들은, 다름 아닌 젊은 여자 세 명이었다.
“어서 오세요. 주문하시겠어요?”
빠르게 영업용 미소를 장착한 예원이 카운터로 다가오는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그녀를 말없이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도통 주문할 생각은 않고 있었다.
꼭, 신기한 생물을 관찰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님……?”
의아해진 그녀가 재차 묻자, 그 무리 중 한 명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혹시, 홍예원 씨…… 맞으세요?”
“네?”
“…….”
“……아, 네. 그런데……요?”
예원의 대답에, 세 명의 여자는 알 수 없는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더니,
“…….”
풉, 명백한 비웃음을 흘렸다.
그것을 깨달은 예원의 미간에는 희미한 주름이 졌다.
뭐야, 이것들? 나 아나?
“흐음…… 더치커피, 없어요?”
“……아, 예. 지금 더치커피는 사정상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라서요. 죄송합니다.”
“아, 뭐야. 카페에 더치커피도 없어요?”
제대로 하는 집이래서 왔더니 준비상태가 영 엉망이네.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쉬쉬하는 듯하면서도 적나라했다.
예원의 얼굴엔 더더욱 구름이 끼었다.
“어쩔 수 없네.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주세요. 세 잔 다 샷 추가해서요.”
“……네. 만 육천오백 원입니다.”
계산을 마치고 그녀가 커피를 뽑는 동안에도, 멀리 떨어진 세 여자는 들릴 듯 말 듯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아우, 조명이 저게 뭐야?”
인테리어가 영 엉망이네 뭐네, 부터 시작해 테이블 세팅, 작은 장식, 심지어 머신의 색깔까지 걸고넘어진다.
대충 보아도 악의적인 의도로 온 진상 무더기가 분명했다.
‘아오, 저것들이 진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진상 손님 한두 번 만나본 것도 아니지만, 어째 오늘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머신 앞에 선 예원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미리 준비해둔 얼음물 잔에 샷을 붓는 손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 나왔습니다.”
“아, 네. 잘 마실게요.”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받아든 여자 셋은 그렇게 홀연히 바깥으로 나갔다.
예원의 얼굴을 끝까지 똑바로 쳐다보고는, 낮은 수군거림과 함께.
“……뭐 별로 예쁘지도 않구만.”
“그러니까. 무슨 자신감으로 쌩얼이야?”
“저런 게 다 근자감이지 뭐…….”
또각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맞춰 예원의 얼굴 또한 발갛게 달아올랐다.
역시, 그랬다.
한 치 의심의 여지도 없이, 정확히 자신을 겨냥한 말들이었다.
“……허.”
일순 얼이 빠져나갔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28년을 살아오면서, 면전에서 저렇게 노골적인 악담을 듣기는 또 처음이다.
단순히 좀 깐깐하고 까다로운 손님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테지만,
저 여자들은 분명…….
“어, 점장님. 여기 서서 뭐하세요?”
그새 화장실에 다녀온 채린이 다가와 물었으나, 예원은 시선을 입구 쪽으로 고정한 채 잠시 움직이지 못 했다.
“……채린아.”
“네?”
“가서 각얼음 좀 가져와.”
“각얼음이요? 갑자기 각얼음은 왜…….”
“빨리.”
“……네, 네.”
갑작스런 주문에 의아해하면서도, 채린은 제빙기에서 얼른 각얼음을 퍼 가져왔다.
“고마워.”
큼지막한 유리 계량컵에 그득히 담긴 얼음을 보며, 예원은 순간 세 여자의 머리에 얼음을 남김없이 쏟아 붓는 자신을 상상했다.
‘앗, 차거! 뭐하는 거야, 당신! 악!’
‘야! 미쳤어 너?!’
만약 그랬다면, 이 꽉 막힌 속이 조금이나마 시원해졌을 텐데.
하지만,
“…….”
그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예원은 순식간에 얼음 세 조각을 제 입안에 넣고는 사정없이 씹었다.
그 세 여자를 잘근잘근 밟아주기라도 하듯이.
으드득, 아그작 아그작.
“저, 점장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빠득거리는 잇소리와 딱딱하게 굳은 표정.
어쩐지 살벌해 보이는 예원의 모습에, 졸지에 옆에 선 채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채린아.”
“네?”
어느새 산산조각이 난 얼음들을 혀에서 굴리던 그녀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넌, 과하게 잘난 남자 만나지 마.”
“……네?”
“잘 새겨들어 놔. 꼭.”
예원은 진심으로 당부했다.
그런 남잔 자고로 얼굴 값 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니까.
그거, 진짜 사람 여러모로 피곤하게 하거든.
정말, 정말로.
* * *
「다음 소식입니다. 요즘 30%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마이 시크릿 맨>이 전 세계 총 26개국에 사상 최고가로 수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드라마 전개상 초중반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판권 판매가 진행 중이므로, 종영 시에는 아마 지금보다 더욱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그에 따라 배우 현민혁 씨와 조혜인 씨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실정입니다. 연일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드라마 <마이 시크릿 맨>, 그 촬영현장을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몇 주 후.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되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는 리포터의 낭랑한 목소리에 이어, 곧바로 바쁜 촬영현장을 담은 스케치 영상이 좌라락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유, 우리 현 서방. 저 인물은 하여튼 어디서든 빛이 나네. 응? 군계일학이다, 군계일학이야. 안 그러니?”
늘 그렇듯 자랑스러운 조카사위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는 이모의 옆에서, 예원은 오징어 몸통을 씹으며 시큰둥하게 맞장구를 쳤다.
“어…… 그렇지.”
“드라마가 잘 돼서 그런가, 요즘은 특히나 티비에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 인기도 더 많이 끌고…….”
“…….”
“어쩌냐, 울 예원이. 긴장 좀 해야겠는데?”
옆에서 부러 장난을 걸어오는 이모를 슬쩍 흘겨본 예원은 콧방귀를 뀌었다.
“……쳇, 긴장은 무슨. 어차피 내 남편이구만.”
물론 아닌 게 아니라, 예원은 사실 요새 남편의 인기를 몸소 체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들만 해도 그랬다.
그가 카페 사장이라는 사실이 더욱 공공연히 퍼지면서 손님 자체의 수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지난번의 그 여자들을 능가하는 손님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가곤 했다.
게다가 일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뭐라 뭐라 수군거릴 때면 그야말로 딱 미칠 지경이었다.
혹시나 또 저번처럼 민낯이네 뭐네 하며 엉뚱한 책이 잡힐까 싶어, 요즘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공들여 화장까지 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민혁 본인은 그런 사실들을 전부,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왜냐?
……그녀가 하나도, 단 하나도 말하지 않았으므로.
‘휴. 이 순간도 지나가리라.’
그에게 말해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와 결혼한 이상 어느 정도 예상치 못한 바도 아니었다.
지금껏 그 강도가 약해 미처 못 느꼈을 뿐이지.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으레 그래왔듯, 그녀는 이번에도 하루하루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것도 잠시뿐일 테다.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참아.
그리고 다행히, 그의 촬영도 이제 며칠 뒤면 곧 끝이 난다고 했다.
“저거 그만 보고, 빨리 그거나 틀어. 시작하겠다.”
“아참, 그렇지. 아유 내 정신 좀 봐. 사위 보려다가 우리 지원이 놓칠 뻔 했네.”
손뼉을 친 은아가 영혼의 단짝 같은 리모콘을 집어 들고는 잽싸게 조작했다.
채널을 돌리자마자, ‘드림스타 코리아6’라고 적힌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히며 방송이 시작되었다.
“오늘 지원이 중간결과 나오는 날이지?”
“응. 저번 주에 무대 했으니까, 아마 그럴 거야.”
지난주엔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에 엔딩이 끊겨버렸다.
하필이면 지원과 민영 팀의 합격 여부를 가리는 구간에서 뒷부분이 편집이 되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와 출중한 미모의 듀엣 참가자로 화제를 모았던 팀인 만큼, 지원과 민영은 참가자들 가운데서 가장 주목 받으며 순항하고 있었고 방송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지원과 민영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부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각자 기타와 마이크를 든 채 사이좋게 서 있는 두 사람이 클로즈업돼 비치자 은아는 절로 탄성을 내뱉었다.
“쟤네, 정말로 사귀는 거 아니라니?”
“어, 홍지원 말론 아니랬는데. 근데 방송 보니까 아닌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치? 아유, 둘이 너무 예뻐 정말. 이상하게 잘 어울린단 말이야…….”
“아 좀 조용히 해 봐, 이모. 심사위원 말한다.”
하나의 실수도 없었던 완벽한 무대가 끝이 나고, 제일 가운데 앉은 심사위원이 이제 막 심사결과를 발표하려는 모양이었다.
은아와 예원은 똑같이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한껏 집중했다.
「다음, ‘홍고추’. 하하, 팀명이 참 언제 봐도 재밌어요.」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성을 딴 ‘홍고’에다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뜻을 합쳐 손수 ‘홍고추’라는 팀명을 지은 민영이 머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전 처음에 두 사람을 보면서 살짝 반신반의했어요. 외모가 워낙 출중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리저리 화제가 된 것도 있는데……. 사실 그런 팀 치고 실력이 그렇게 받쳐주는 팀이 그리 많지가 않거든요. 근데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제 안의 편견을 좀 깨뜨려 준 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초조한 듯 심사위원을 바라보던 지원과 민영의 표정이 풀어지며, 이내 밝은 비지엠이 깔렸다.
분명 좋은 신호였다.
「한 주 한 주 정확하게 실력이 나아지고, 두 사람 사이의 호흡도 갈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서로 의지하는 모습이 무대에서도 많이 보였고, 눈뿐만 아니라 귀로도 그게 들렸어요. 나는 그걸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감사합니다.」
됐다. 됐어!
심사를 듣는 두 남녀의 입가에 짠 듯한 함박미소가 걸렸다.
「흐음. 그런데…….」
그때, 말을 잇던 심사위원이 돌연 입을 다시며 밑에 있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홍지원 군.」
「네?」
「예선에선 몰랐는데, 여기 보니까 지원 군이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와 있네.」
지원과 민영의 표정은 한순간 어리둥절한 듯 변했고, 주위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특이한 이력……이요? 그게, 무슨…….」
비지엠은 어느 순간 긴박한 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상하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성우의 내레이션에 이어, 선글라스를 낀 채 무겁게 닫혀 있던 남자 심사위원의 입이 열렸다.
「지원 군.」
「예?」
「배우 현민혁 씨하고, 무슨 연관이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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