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굴레
2018.12.11.
「……네?」
티비 속 지원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걸 어떻게…….」
이 타이밍에 ‘현민혁’이란 이름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한 표정.
그것은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은아와 예원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나. 저것들이 저걸 어떻게 알았대? 귀신이네, 귀신!”
“…….”
TV에선 어느새 민혁의 최근 모습이 담긴 VCR이 인서트로 요란하게 나오고 있었다.
가히 흥신소 뺨치는 방송국의 능력에 순수하게 감탄하는 은아와 달리, 옆에 앉은 예원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간 민혁의 도움 덕에 재하와의 일대일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번 오디션만큼은 꼭 자력으로 올라가겠다고 선언했던 지원이었다.
그랬기에 민혁과의 관계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로 했었다.
만약 이번 기회로 운 좋게 괜찮은 결과를 얻어 데뷔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때 가서 자랑스럽게 밝혀도 늦지 않을 거라며.
매형 후광 없이도 기필코 잘해내겠다고 공언하던 그 얼굴이 아직까지도 선한데.
「우리 제작진들이 원래 모르는 게 없어요. 무서운 사람들이야, 다들.」
「…….」
「아무튼, 무슨 관계예요?」
한순간 경황이 없어진 동생의 얼굴을 따라, 예원의 얼굴도 미세하게 굳었다.
「저희…… 매형입니다.」
「매형? 현민혁 씨가?」
「아, 그럼 누나 분이랑…….」
「……네.」
지원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심사위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아는 척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어, 나 현민혁 씨 결혼식 갔었는데! 그러니까, 꼭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더라니.」
「어쩐지…… 어딘가 남다르다 했어요. 역시 그 ‘피’가 있었네.」
「아니, 매형이라는데 피랑 무슨 상관이에요?」
「크크크, 그러니까요. 뭔 소리야.」
「아, 아니, 어쨌든 지금은 가족이잖아요! 매형은 뭐 가족 아닌가? 그거 엄연히 차별 발언이에요!」
「…….」
당사자 코앞에서 이루어지는 바보 같은 만담에 지원은 어색하게 웃었지만, 예원은 그 속에 담긴 감정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곤란함. 당황스러움.
그리고…….
자신에게 쏠려야 할 관심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데 대한 불편함.
「그럼, 이번에 올 때 매형이 응원 많이 해줬어요?」
「네? ……네.」
「햐. 언제 한 번 우리 게스트로라도 모시면 좋은데.」
「아니 현민혁 씨가 가수예요? 무슨 게스트를.」
「왜, 전에 ‘스톰’ 하셨었잖아. 재하랑 같은 그룹.」
「아~ 맞다. 그러네?」
「안 되겠다. 이따 재하한테 연락 한 번 해봐야겠는데?」
「오오.」
굳이 출연까지 안 가더라도, ‘현민혁’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이상 화제성 하나는 따 놓은 당상이다.
자기들끼리 희희낙락하던 심사위원들은 그제야 다시 지원 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무튼 홍지원 군. 우리 매형 분 봐서라도 열심히 하길 바라요. 홍고추, 합격입니다.」
「……감사합니다.」
뒤늦게 작은 미소가 번지는 두 남녀의 샷 뒤로, 침착한 표정을 한 지원의 짤막한 인터뷰가 곧장 이어졌다.
「어땠어요? 아까 그 질문 받고?」
「음…….」
제작진의 질문에 지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갑작스러워서 좀 당황하긴 했는데……. 저도 언젠가 그런 질문이 들어올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어서요.」
「……그냥 열심히 해야죠, 매형 보기 부끄럽지 않으려면.」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된 자막이 친절하게 두 번 새겨졌다.
그 뒤엔 곧바로 다음 참가자들의 순서였다.
“합격! 허어. 어쩜, 저러다 우리 지원이 정말 우승하는 거 아니야? 응?”
들뜬 은아가 옆에서 설레발을 떨어댔지만, 정작 예원의 표정은 무감각했다.
“……글쎄.”
물론 그녀도 제 동생 지원이 승승장구할 수 있기를 누구보다 간곡히 바랐다.
다만, 방송이 저런 식으로 흘러갈 거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을 뿐.
예원의 입술이 살짝 깨물렸다.
씁쓸하게 미소 짓던 동생의 표정이 뇌리를 떠나질 않았다.
* * *
그 방송이 나간 후.
며칠 간 온오프라인은 혜성 같이 나타난 듀엣 팀 ‘홍고추’의 이야기들로 들끓었다.
[‘드림스타 코리아6’ 혼성 듀엣 ‘홍고추’, 독특한 팀명만큼 독특한 매력 선보여]
[‘드스코6’ 홍고추, 극찬 끝에 다음 라운드 진출]
[‘드스코6’ 홍고추, 새로운 스타 등극 예감?]
물론 두 사람 중 상대적으로 더욱 주목을 받은 건, 어느샌가 ‘얼짱 남고생 기타리스트’라는 꼬리표가 붙어버린 지원이었지만.
[‘드스코6’ 홍지원, 배우 현민혁과 매형-처남 관계?]
[홍지원, ‘현민혁 처남’으로 화제…… ‘드림스타 코리아6’ 시청률도 껑충]
[‘드스코6’ 홍지원, 정재하를 잇는 차세대 기타리스트 되나]
[‘드스코6’ 화제의 참가자 홍지원, 배우 현민혁과 얽힌 사연은?]
주룩주룩 내리는 비 탓에 버스 창문엔 습기가 가득했다.
미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예원은 흔들리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휴대폰을 응시했다.
헤드라인 곳곳에 박힌 ‘현민혁’이라는 이름에 시선이 한참이나 머물렀다.
“…….”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주목 받는 수준이었던 지원은 어느새 커다란 라이징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현민혁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잘난 남자인 줄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요사이 그녀가 몸소 느낀 현민혁의 파급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어딜 가든 사람들은 민혁에 대한 얘기를 주야장천 떠들어댔다.
그녀가 그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든, 모르든 마찬가지였다.
만약 알고 있는 상대라면 대개 반응은 두 가지.
부러움 또는 시기.
당연히 대부분은 후자 쪽에 가까웠다.
처음 그와 계약 연애기간을 가질 때만 해도 이 정도로 극성맞은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왜 하필, 그와 마음을 확인하고 난 직후에 이렇게 된 건지 모를 일이었다.
정말이지 공교롭게도.
‘……웃겨, 진짜.’
괜히 심통이 난 예원은 신경질적으로 홀드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일순 까매진 액정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오래 전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예원 씨. 사람한테는 다 자기 세계라는 게 있어요. 어떤 짓을 해도,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세계……. 그런 점에서 홍예원 씨는, 오빠랑 너무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고요.’
‘지금 홍예원 씨가 겪고 있는 일들은, 뭐랄까……. 한여름 밤의 꿈같은 거예요. 원래대로라면 절대 겪을 수 없고 빠져들 수도 없는 허황된 꿈이요. 꿈은, 그저 꿈일 뿐이죠.’
그를 따라 갔던 친구 결혼식 날. 클럽에서 만났던 그 빼빼로가 한 말들이었다.
그때는 세계니 꿈이니 하던 게 그저 개풀 뜯어 먹는 소리 같은 걸로만 들렸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뭔가 느낌이 달랐다.
그 말이…… 퍽 틀리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느낌.
그도 그럴 게, 일련의 사건들과 요즘의 일들을 돌이켜 봤을 때 그는 확실히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세간의 눈에 그녀는 남자 하나 잘 만나 팔자 고친, 재투성이 신데렐라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터였다.
부정하고 싶지만, 결코 부정할 수는 없는 진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세계…….’
그건,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난 그걸 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거지?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시선을 내리깐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예원은 이내 고개를 들어 창 위로 송골송골 맺히는 빗방울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구 쏟아지는 비 때문일까.
어쩐지 기분이 울적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예원은 습관적으로 허공에 인사를 흩뿌리고 허탈해졌다.
불 꺼진 거실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으므로.
오늘도 촬영이 있다던 그가 집에 이리 일찍 도착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참나, 뭘 기대한 거야.’
늦은 점심을 먹은 이후, 이 시간까지 아무것도 공급받지 못한 배는 그녀로 하여금 무언가를 섭취하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픔보단 이 찝찝함을 해소하는 것이 먼저였다.
비록 우산을 쓰기는 했으나, 사방으로 들이친 비 탓에 온몸이 끈적끈적하고 머리도 엉망이었으므로.
일단 샤워를 하고 나면 뜻밖의 기분 전환이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나마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아.”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따뜻한 물을 맞고 있었나 보다.
개운하게 몸을 씻고 나오니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가 있었다.
다행히 기분은 아까보다 한결 나아진 상태였다.
저녁식사야 이미 뭐 그른 것 같고, 얼른 머리 말리고 잠이나 자야지.
그 생각에 이른 예원은 드라이어를 작동시키고 아무 생각 없이 바람에 제 머리를 맡겼다.
그때였다.
─지잉, 지잉.
위잉거리는 드라이어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화장대에 앉아 있던 예원은 얼른 드라이어를 끄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협탁 위에 놓여 있던 폰이 열심히 진동하고 있었다.
“……누구지?”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지영인가? 아님, 민혁 씨?
고개를 갸웃거린 예원은 얼른 다가가 홀연히 놓여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뜻밖에도 발신자는 따로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여보세요?”
숫자를 확인한 그녀가 별 거리낌 없이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말씀하세요.”
[…….]
한데 어쩐 일인지, 전화를 걸어온 상대 쪽에선 묵묵부답이었다.
예원의 입술은 곧바로 삐죽 튀어나왔다.
뭐야, 왜 걸어놓고 말을 안 해?
“말씀 안 하실 거면 끊겠습니다.”
나름 정중하게 마무리 짓고 끝내려는데, 그제야 나직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예원아.]
그 목소리가, 왠지 소름끼치게 낯이 익었다.
[오랜……만이구나.]
“…….”
[제일큰엄마야. 나, 기억하니?]
어디선가 빠직, 하는 소음이 들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박제된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던 예원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네?”
그건 바로,
제 마음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껍데기가 콱, 부서져 내리는 소리였다는 것을.
* * *
한편 그 시각.
평소보다 이르게 촬영을 마친 민혁은 서둘러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다.
막판 촬영이 몰린 며칠 새 제대로 잠을 잔적도 없는 그였지만, 잠이나 휴식에 대한 생각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상태였다.
잠시라도 홍예원의 얼굴을 더 보는 것.
지금은, 그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목표였다.
‘아…… 좀 막히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평소였다면 뻥뻥 뚫렸을 길이 비 때문에 정체되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그녀가 진작 집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각인데.
차에 있는 시계를 확인한 민혁은 운전대를 쥔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실은, 오늘따라 마음이 더 조급한 이유가 있었다.
며칠간 전화로만 마주해야 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웬일인지 평소보다 다소 어둡게 느껴진 탓이었다.
‘나 없는 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설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무 말 않고 혼자서 삭이는 그녀 특유의 스타일을 알고 있는지라,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나도 감히 뭘 물어보지 못 할 것 같았다.
어떻게든 달래서 알아내는 수밖에.
이놈의 드라마부터 얼른 끝나야 뭐라도 해줄 수 있을 텐데.
좀 더 쉬지 않고 바로 차기작에 들어가 버린 것을, 요즘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후회하고 있었다.
“예원아!”
그렇게 반가운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자연히 제 아내부터 찾았다.
하지만 불만 켜져 있는 1층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아마도 한참 전에 2층으로 올라간 모양.
흐음. 그는 바로 지체 없이 계단을 올랐다.
“예원아? 예원아.”
혹시나 이른 잠에라도 들었을까.
그는 그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그녀를 불렀다.
그런데 이제 막 2층으로 들어선 그를 반긴 것은, 아내의 따뜻한 환대가 아니라 왠지 모르게 무척 날카로운 듯한 말소리였다.
“……알겠으니까 이만 끊으시라고요!”
가만. 저 목소린…….
‘……예원이 목소린데.’
잠깐 멈칫하던 민혁은 말소리가 들려오는 방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째 말소리가 크게 들린다 싶더니, 문이 덜 닫혀 틈새가 약간 벌어져 있었다.
“……?”
조금 의아했지만, 그는 섣불리 문을 열지 않고 빼꼼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늘 평온하고 유순하던 여자의 얼굴은 눈에 띄게 붉으락푸르락해져 있었다.
[……예원아, 그러지 말고 잠시 얘기 좀 하자. 응? 큰아빠도 너 보고 싶대. 우리 못 본 지도 너무 오래 됐고, 할 얘기도 많잖니.]
“그런 거 없어요, 전.”
[예원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한테 전화하셨어요?!”
그녀가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이렇게 전화하면, ‘아이구 감사합니다. 웬일이세요?’ 등신 같이 환영이라도 해드릴 줄 아셨어요? 제가 바보예요? 대체 절 어떻게 생각하신 거예요?”
[아니, 우린 그게 아니라…….]
그래, 바보는 바보인가 보다. 이렇게 눈물이 차오르는 걸 보면.
울컥 북받치는 감정을 억지로 누른 예원은 또박또박 짚어 말했다.
“……정말 진심으로 제가 보고 싶으셨던 거면, 진작부터 연락하셨었겠죠.”
지금이 아니라 몇 년 전에.
물론, 그럴 사람들이었으면 애초부터 우릴 버리지도 않았겠지만.
“우리, 십몇 년을 소식도 없이 지냈어요. 저도 지원이도, 이젠 정말 남이구나 하고 까맣게 잊고 지냈다고요. 근데, 이제 와서 이렇게 뻔뻔하게 연락을 하세요?”
[……예원아…….]
예원의 서슬 퍼런 기세에 상대의 말소리는 잠시 위축된 듯 작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할 말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땐 우리도 여유가 없어서 그랬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다들 형편이 많이 안 좋았잖니. 하지만 이젠 지원이도 번듯하게 잘 자랐고, 너도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고 있고. 그럼 된 거 아니니? 꼭 지난 일을 그렇게 문제 삼아야겠어? 가족 사이에.]
“……가족……이요?”
가족이란 게,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아무 데나 막 갖다 붙일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된 거지.
속으로 읊조린 예원은 저절로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제가 결혼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
“전 따로 말씀 드린 적 없는 것 같은데.”
정곡을 찔린 듯한 여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실은, 이번에 지원이 티비 나온 거 봤다. 처음엔 좀 긴가민가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우리 지원이가 맞더구나. 어쩌면 그렇게 어렸을 적 모습이 고대로 남아있는지…….]
“…….”
[근데 너도 참 그렇다, 얘. 그새 식까지 올렸으면서 어떻게 우리한테 연락 한 번을 안 할 수가 있니? 너 결혼했다는 거 알고 큰아빠들이랑 고모가 얼마나 서운해 했는데. 다른 사람이면 말도 안 해. 어떻게 ‘현민혁’씩이나 되는 남자랑 결혼하면서 일언반구도 없이…….]
‘현민혁’씩이나 되는 남자……?
하. 예원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연락을 한 의도가 너무 투명하게 보이는 나머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왜 연락을 안 했냐고?
그야 당연히.
“……이럴까봐 연락 안 드린 거예요.”
이렇게, 주제도 모르고 나대실까 봐.
제가 그 사람 보기 너무 쪽팔리잖아요.
이를 악문 예원이 낮게 읊조렸다.
[……뭐?]
“이제 와서 콩고물이라도 하나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싶으셨나본데, 다 소용없어요. 이미 그 더러운 수 다 읽혔으니까.”
[…….]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우린 이제…… 아니, 아주 오래 전부터 가족도 뭣도 아니에요.”
[예원아!]
전화는 그렇게 뚝 끊겼다. 물론 예원의 일방적인 통화 종료였다.
“……하아.”
한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만 예원은 폰을 손에 꼭 쥔 채, 옆에 있는 침대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방금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통 믿기지가 않았다.
“……예원아.”
그런데 그때.
제 이름이 주문이라도 되는 양, 그녀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민혁 씨?”
문 앞에 떡하니 서 있는 남자를 본 그녀의 눈은 일순 커다래졌다.
빨갛게 달아오른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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