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Over the rainbow
2018.10.12.
‘나만을 위한…… 콘서트라고?’
예원은 얼른 주변을 살폈다.
지원의 말마따나, 그곳의 풍경은 그녀가 평소 알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멀쩡히 있던 테이블과 의자들이 양 옆으로 주욱 빠져 있고, 별 휘황찬란한 장식들이 곳곳에 매달려 있다.
임시방편으로 자리를 급조한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엔 지원의 친구들도 섞여 있었는데, 각자 악기를 하나씩 전담하고 있었다.
기타, 일렉기타, 베이스, 키보드. 그리고 장소의 협소함을 감안한 선택이었을 카혼(육면체 모양의 타악기. 드럼의 역할을 대체함)까지.
약간 어설프기는 해도, 장난기라곤 1g도 없어 보이는 아주 제대로 된 무대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당최 무슨 전개인지 알 수가 없다.
예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언니.”
지원의 바로 뒤, 키보드 앞에 앉은 예쁘장한 여자애가 마이크를 통해 그녀에게 꾸벅 인사했다.
“지원이 친구 고민영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 말에, 예원은 잠시 멈칫했다.
‘어라?’
생긋 웃는 얼굴이 누군가와 꼭 닮아있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 얼굴은 꼭…… 뭐랄까…….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겁니까?”
그래, 그 남자.
그 남자와 꼭 닮았어.
그런데…….
“얼른 앉죠. 곧 공연 시작인데.”
익숙한 향기,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방향을 틀었다.
“민혁 씨……?”
지금쯤이면 당연히 촬영을 하고 있을 시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어떻게 여길?
“빨리 앉으시죠, 손님. 저희 게스트 가수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거기다 언제 나타났는지, 오른편에선 유니폼 차림의 지영까지 합세해 성화를 부려댔다.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그녀가 앉기만을 하나같이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
아나, 정말. 부담스러워 죽겠네.
결국 예원은 민혁과 지영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채 자리에 착석했다.
그런 누나를 바라보는 지원의 입가엔 설렘 반 초조함 반의 미소가 흘렀다.
“놀랐어, 누나?”
“어……. 조금.”
너라면 안 놀라겠냐, 이 자식아.
소심하게 대답하면서도 저를 찌릿 흘겨보는 누나의 눈초리에, 지원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천천히 설명했다.
“실은 많이 고민했어. 어떻게 해야 누나 맘을 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날 믿어줄까. 수백 번을 생각해봤는데…… 이 방법이 제일 적당할 것 같았어. 내 의지를 전하려면 말이야.”
“…….”
“누나가 왜 그러는지 알아. 그 이유도 충분히 이해하고. 하지만…… 이대로 허무하게 포기하기는 싫어, 누나.”
그 대목에 이르러 지원의 눈빛은 한층 더 진지해졌다.
“내가 과연 ‘될’ 놈인지 ‘안 될’ 놈인지, 지레 짐작하지 말고 직접 들어서 판단 해 줘. 누나한테…… 제일 먼저 인정받고 싶어.”
왠지 모르게 애틋하게 들리는 목소리.
동생에게 시선을 고정한 예원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문득 우스운 격세지감 같은 것이 들었다.
‘저게…… 언제 저렇게 컸을까.’
품에서 철없이 칭얼대던 것이 엊그제 같기만 한데.
그랬던 아이가, 이제는 그녀의 반대를 딛고 당당히 제 꿈을 찾아가겠노라 선언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어른스럽고 의젓한 방식으로.
“첫 곡은 특별히,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로 준비했어. 잘 들어줘.”
툭, 툭, 툭, 툭. 기타 바디를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제목을 알리지도 않은 노래는 그렇게 곧바로 연주되었다.
잔잔한 기타선율에 이어, 카페 안은 이내 지원에게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저기 어딘가, 무지개 너머, 높은 곳에,
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
자장가에서 한 번 들었던 나라가 있어…….」
저 언덕 너머의 엷은 무지개를 닮은 듯한,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노랫소리로.
* * *
그로부터 하루 전.
“누나가…… 뭐래요?”
“뭐라고 하긴. 내 동생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노발대발이지, 뭐.”
재하의 작업실에서 만난 민혁과 지원은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러게, 갑자기 웬 가수가 되겠다고 나서서 하나뿐인 누나 속을 썩히냐, 썩히길?”
그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그이기에, 농담도 농담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민혁의 뼈 있는 말에 지원은 고개를 씁쓸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매형. 괜히 저 때문에.”
한껏 풀이 죽어 제 눈길조차 피하는 처남을 보자, 그는 이내 슬몃 미소 지었다.
“그런 틀에 박힌 사과 들으려고 한 말은 아냐.”
“…….”
“그래서, 어떡할 거야. 이제.”
그제야 지원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렇잖아도 어제…… 혼자서 내내 생각을 해봤는데요. 아무래도,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 같아요.”
“승부수? 그게 뭔데.”
“그게…….”
“…….”
“누나를 상대로…… 공연을 해보려고요.”
순간, 뒤쪽에 제3자로 빠져 있던 재하가 깜짝 놀라 등판했다.
“공연? 무슨 공연.”
지원은 쑥스러운 듯 답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조촐하게 누나만을 위한 공연을 하고 싶어요. 누나가 좋아하는 노래들로만 골라서…… 오디션 전에 실전 경험도 쌓을 겸, 누나도 한 번 설득시켜보려고요.”
공연이라…….
곰곰이 생각하던 민혁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
그래, 그 여잔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 약하니까.
동생으로서 예원을 오랫동안 지켜봐서일까.
지원은 역시나 그녀를 공략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언제가 좋을지 모르겠어요. 며칠 안으로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너무 이르면 그것도 좀 그럴 것 같고…….”
“내일.”
“……네?”
“내일 밤에 바로 해. 당장.”
“내, 내일이요……?”
그러나 불쑥 튀어나온 매형의 말에, 지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준비가 아직 하나도 안 됐는데…….”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져 있는 처남을 보며, 민혁은 빙긋 웃었다.
“누나가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들로만 하겠다며. 꼭 완벽할 필요가 있나?”
“…….”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일반 관객들을 상대로 한 공연이었다면 당연히 안 될 말이지만, 누나를 위한 공연이기에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은 무엇보다, 그녀의 상한 마음을 ‘빠르게’ 어루만져주는 것이 중요했다.
“완벽함만 따지다간 정작 중요한 걸 놓칠 수가 있어.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실망시켰을 때 얼른 만회하는 게 나아.”
“…….”
“세션이야 너랑 같이 연습하던 밴드부 애들이 좀 도와주면 되는 거고. 뭐하러 일을 질질 끌어?”
“……네, 그게 낫겠네요.”
생각 끝에 지원이 동의했다.
민혁은 곧바로 재하에게 시선을 옮겼다.
“공연장, 바로 섭외 가능해?”
“글쎄. 규모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지만, 그렇게 한 사람만을 위한 공연이라면야 어디서든 가능하지. 너네 카페에서 대충 꾸며서 해도 되고.”
“안 돼. 이왕 할 거 서프라이즈로 해야 하는데, 거긴 전략상 탄로 날 확률이 커. 안 그래보여도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아.”
“어때. 지원이 넌 마땅히 생각나는 곳 있어?”
지원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그에게 물어봐야,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은 딱 한 곳이었다.
“……네. 아는 누나한테 부탁하면, 가능할 것도 같아요.”
“누구. 지영 씨?”
순간, 놀란 지원이 그를 홱 쳐다보았다.
“형이 지영 누날…… 어떻게 아세요?”
참나, 이 자식이 나를 뭘로 보고.
“네 아는 누나이기 이전에 내 아내의 절친이야. 모른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아.”
참, 그랬지.
유독 지영에 한해서는 민감해지는 자신이었다.
머쓱해진 지원이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그건 그렇고. 생각해 놓은 노래 리스트는 있어?”
“네.”
“그래? 무슨 노랜데.”
“아, 저 그게…….”
그런데 그 순간, 별안간 작업실 문이 활짝 열렸다.
“홍지원! 넌 어떻게 된 게 매번 말도 없이…….”
“…….”
“……어?”
저에게로 쏠리는 세 명의 시선에, 세찬 기세로 들어오던 민영은 일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누구…… 세요?”
그녀의 시선은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로 꽂혀있었다.
“누구긴 누구야.”
저 조각 같이 생긴 얼굴을 보고도 누구냐는 소리가 잘도 나오네.
피식 웃은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소개했다.
“인사해, 우리 매형 현민혁 씨. 이쪽은, 저랑 이번에 오디션 같이 나가게 된 같은 반 친구예요.”
“아. 반가워요.”
저 여자애가 말로만 듣던 그 아이구나.
민혁은 선뜻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이름이?”
TV 속에서나 보던 현민혁이 바로 제 코앞에 있다니.
평소 좋아하던 연예인은 아니어도 응당 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리벙벙해진 민영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손길이 이내 맞닿았다.
“안녕하세요, ‘고민영’이라고 합니다.”
“…….”
그런데, 불시에 그 이름을 맞닥뜨리게 된 민혁은 순간 저도 모르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민영.
그렇게 독특한 이름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심장은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매번 이렇게 반응하고 만다.
이젠 이러지 않을 때도 되었는데.
“갑자기 웬 듀엣을 하겠다고 데리고 온 앤데, 얘도 꽤 재능 있어. 둘이 합도 잘 맞는 편이고.”
“…….”
“어때. 예쁘지?”
그 애와 이름이 같단 사실을 알아서일까.
그는 눈앞의 여자애가 이상하게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다.
눈도, 코도, 입술도, 얼굴형도…….
꼭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었다.
“어……. 예쁘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그 혼자만의 터무니없는 착각으로 끝날 터였지만.
그렇게 잠시, 민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혁은 도로 자리에 앉으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튼, 학생도 이리 와서 앉아요. 하던 얘기는 마저 해야지. 무슨 노래 할 생각인데?”
잠시 뒤, 지원이 곧 확고한 어조로 답했다.
“……우선, ‘Over the rainbow’요.”
“오버 더 레인보우?”
순간 재하와 민혁의 눈빛이 마주쳤다.
오버 더 레인보우라면, 그들 또한 익히 잘 알고 있는 노래였다.
“나쁘진 않은데…… 왜 하필 그 노래야? 다른 노래도 많은데.”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 삽입되었던 희대의 명곡.
하지만, 좋은 곡들이 쌔고 쌨는데 굳이 그런 오래된 곡을 고를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를 알만하다는 듯 바라보던 지원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그 옛날 노래를, 우리 누나가 제일로 좋아하거든요. 제일 많이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고.”
“어?”
……어라, 가만.
“너희 누나…… 노래도 불러?”
멈칫한 민혁의 물음에, 지원은 새삼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요. 명색이 남편인데, 형은 지금껏 그것도 모르셨어요?”
“…….”
“자주 안 불러서 그렇지, 알고 보면 얼마나 잘하는데요. 이 핏줄이 다 어디서 왔겠어요.”
자식, 잘난 척은.
한참 어린 처남의 태도가 영 고깝긴 했지만, 덕분에 그는 그녀에 관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도…… 노래를 잘 부르는구나.
“아무튼, 그 노래는 꼭 해야 해요. 제 상황하고 딱 맞는 곡이기도 하지만, 누나가 예전에 했던 말이 있어서요.”
“예원이가…… 뭐랬는데?”
원체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이다 보니 좋아하는 덴 큰 이유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동생에게서 흘러나온 대답은 영 뜻밖의 것이었다.
“그게…….”
“…….”
“꼭 자기 얘기 같아서 좋대요. 그 노래 가사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고서, 지원은 쓰게 웃었다.
* * *
조촐한 무대에선 왠지 모를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노래가 서서히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민혁은 문득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감격한 듯 보이는 얼굴 위로는 어느샌가 눈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몰라보게 잘 큰 동생으로 인한 뿌듯함 때문인지, 아니면 노랫말과 멜로디의 순수한 아름다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지금 이 여자, 무지하게 감동받았다는 것.
「……If happy little blue birds fly beyond the rainbow,
행복한 작은 파랑새들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갈 수 있는데,
why, why can’t I?
왜, 왜 나는 날아갈 수 없겠어?」
‘그 노랠 들으면, 자기도 이상하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대요. 어쩌면 누나한테 그 노랜,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쳐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주는, 일종의 도피처 같은 노래였던 거죠.’
한껏 감화된 듯한 여자의 얼굴 위로 지원이 했던 말이 아스라이 겹쳐졌다.
그러자 오래 전, 그녀에게서 들었던 말도 함께 떠올랐다.
“전요, 고등학교 때부터 안 해본 알바가 없어요. 꼴이야 어떻든 대학에는 꼭 가고 싶었거든요.”
“제 동생은, 저처럼 고생 많이 안 하고 최대한 공부만 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야 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애니까요.”
어쩌면 당신은…… 무지개 너머로 자유롭게 날아가는 파랑새의 삶을 부러워했던 걸까.
몇 분이 몇 초처럼 흘러, 노래는 어느덧 끝이 났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눈물짓고 있었다.
“…….”
그의 얼굴이 안쓰러움으로 물드는 사이, 객석 뒤쪽에선 그를 깨우듯 짝짝짝,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워호! 앵콜!”
“멋있다!”
채린, 예빈, 가윤을 포함한 에덴 식구들과 지영의 카페 동료들.
민혁과 지영의 초대로 온 관객들이 그새 하나둘 도착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아직 부족한 노랜데도,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실 이 노래는, 제가 예전부터 누나에게 꼭 불러주고 싶었던 노래였습니다.”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전, 지원은 조용히 누나를 향해 운을 떼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오로지 저 하나만을 위해 희생해온 누나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무뚝뚝한 남동생이라는 핑계로, 늘 허둥지둥 미뤄만 왔었죠.”
“…….”
“하지만 오늘은, 이 자리를 빌려 누나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유순한 지원의 눈길이 제 누나에게로 향했다.
예원의 눈시울은 한층 더 붉어졌다.
“누난 지금껏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내 걱정은 말고 매형이랑 함께 편히 쉬어. 앞으로는 내가 잘할게.”
“…….”
“누나에게도, 나에게도. 파랑새가 될 자격은 충분히 있다는 소리야.”
그렇지 않아?
그가 그렇게 물은 순간, 여자의 눈에선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마치 대답이라도 한 것처럼.
“…….”
“…….”
똑 닮은 남매는 그렇게, 서로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지었다.
왠지 보는 이가 다 뭉클해지는 광경.
……하지만, 공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 그럼, 이쯤에서 다음 곡으로 바로 넘어가볼게요. 분위기를 좀 바꿔서, 이번 노래는 우리 누나가 샤워할 때 주로 부르는 신나는 노래로 가겠습니다. 싸이의, ‘챔피언’입니다.”
“……뭐?”
채, 챔피언?!
미소 띤 얼굴로 듣고 있던 예원의 표정에 빠직 금이 갔다.
‘샤워할 때 부르는 노래라니! 저 자식이 정말!’
오버 더 레인보우의 여운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개울처럼 흐르던 눈물도 거짓말처럼 뚝 멎어있었다.
“야! 뭐하는 거야, 지금!”
하지만 그런 그녀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가만있던 카혼과 베이스, 일렉기타는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합주를 시작했다.
“챔피언!”
“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네가!”
감동 무드였던 분위기가 단숨에 클럽으로 탈바꿈되었다.
예원은 금방이라도 엉덩이에 뿔이 날 듯 울면서 웃었다.
“……하, 저거 완전 미친 거 아니야?”
……하지만 물론, 그녀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함성에 동조했지만.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
감동과 광란이 뒤섞인 밤이, 그렇게 너울너울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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