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반짝거리는 여자
2018.10.16.
“아,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대박이다. 보통내기가 아닌 줄은 진즉에 알았지만…… 넌 어쩜 그렇게 노래를 잘하냐? 신기해, 진짜.”
“……뭘요.”
열정적인 공연이 끝난 후, 지영은 지원과 함께 귀갓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두 곡 뒤로도 지원은 평소 밴드 멤버들과 함께 공연했던 노래들을 퍼레이드 식으로 늘어놓았다.
별 생각 없이 참석했다가 생각 이상의 수준급 노래를, 그것도 공짜로 듣게 된 관객들은 하나같이 열광을 쏟아냈다.
하룻밤만 카페를 빌릴 수 있겠냐는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줄 때까지만 해도, 얘가 그 정도 실력일 줄은 몰랐는데.
온갖 감언이설로 끝내 사장님을 설득해낸 자신이 지영은 대견하게만 느껴졌다.
사장님, 미래의 대스타를 위해 큰일 하신 겁니다. 암요.
“암튼, 그 정도면 적어도 본선 진출은 따 놓은 당상이겠더라. 열심히 해. 네 누나 보기 부끄럽지 않게.”
“……네, 감사해요.”
제가 그 누나라도 되는 양 뿌듯하게 웃던 지영은 잠시 뒤, 문득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근데…… 난 집이 요 앞이라 그렇다 치고, 너는 왜 홍예원이랑 같이 안 갔어? 민혁 씨가 태워다 준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러긴 했지.
픽 웃은 지원은 가볍게 대답했다.
“부부 사이에 끼기 싫어서요. 보나마나 둘이서 깨가 쏟아질 텐데, 그 사이에 끼면 괜히 저만 어색해지잖아요.”
물론, 당신과 함께 걷고 싶었기도 했고.
뒷말은 생략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지영의 얼굴은 절로 착잡해졌다.
‘참…… 얜 아직 모른댔지.’
깨가 쏟아지기는. 또 그 바보가 혼자서 눈물바람이나 안 지으면 다행이지.
어쨌든 모르는 이상, 제가 먼저 그 사실을 알려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지영은 애써 발랄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 뭐 어때, 누나 부분데. 나중에 너도 여자친구 사귀면 대놓고 괴롭혀. 닭살 막 떨고.”
“…….”
“참, 근데 넌 좋아하는 여자애 없어? 너 정도면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 짱일 것 같은데. 아무나 하나 골라잡지 그래. 나 같음 그러겠다.”
그녀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 말이나 뱉어놓는 사이, 지원의 걸음은 문득 멈추었다.
“내가…… 어떤데요?”
“어?”
“나 정도가…… 무슨 뜻이냐고요.”
덩달아 걸음을 멈춘 지영은 생각지 못한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가, 갑자기 이런 건 왜 물어보지?
“뭐,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착하고, 어리고……. 빠지는 게 없는 남친감이지. 누구 닮아서.”
물론 그 누구란 제 친구 홍예원을 일컫는 것이었다.
괜스레 민망해진 그녀가 헤헤 웃었지만, 반대로 지원의 입꼬리는 살짝 처졌다.
“그럼, 누나는 어때요.”
“응? 뭐가?”
살짝 삐딱한 지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진득히 머물렀다.
“누나한테는 나…… 남자친구로 괜찮을 것 같아요?”
그 순간, 지영의 눈동자는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뭐?”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
“누나는 진짜 다 좋은데, 딱 하나가 흠인 것 같아요.”
“…….”
“눈치가 없다는 거.”
한껏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여자를 웃음기 띤 얼굴로 바라보던 지원은 매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슬쩍 건넸다.
“이게…… 뭐야?”
“보면 몰라요? 꽃이잖아요.”
사실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심플하게 빨간 장미꽃 딱 한 송이.
“어디서 들었는데, 여자한테 고백할 때는 꽃이 필수라 그래서. 꽃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던데요. 거의 99프로.”
“…….”
“설마, 누나가 그 1프로에 속하는 건 아니죠?”
졸지에 웬 꽃을 들게 된 제 손을 내려다본 지영은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얘가 지금, 어째서 나에게?
“지원아, 너…….”
“나름대로 티 많이 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꾸준히 모르더라고요. 뭐, 그 덕분에 지금까지 혼자서 맘껏 짝사랑할 수 있었지만.”
이것이 그간 얼마나 별러왔던 고백이던가.
지원은 사춘기 소년처럼 떨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오랫동안 속으로만 되새겼던 말들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속삭였다.
“내 꿈, 누나가 만들어 준 거라고 말했죠. 난 이제, 그 꿈을 반드시 이뤄낼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지.”
“…….”
“나,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누나가 꼭 지켜봐줬으면 좋겠어요.”
“…….”
“누나 보라고 하는 거니까. 다.”
아직 주민등록증의 피도 안 말랐을 소년의 것치고는 꽤나 절절한 고백.
지영은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껏 까맣게 몰랐던 자신이 스스로도 이해되질 않았다.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을까.
저 다른 눈빛을, 저 숨결을.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긴 무게를.
“……지원아.”
“대답은, 다 끝나고. 그때 다시.”
“…….”
“나 아직 제대로 고백한 거 아니니까, 섣불리 대답할 생각하지 마요. 알았죠.”
“…….”
“말해도…… 안 들을 거야.”
아니, 어쩌면.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있는 힘껏 부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나이가 드는 것은 그녀가 지독히 싫어하는 일 중 하나였지만, 지영은 이럴 때 스스로의 성숙을 여실히 실감했다.
요즘은 종종 사람의 마음이 거울처럼 읽힐 때가 있었다.
겉으로는 한껏 여유로운 척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눈앞의 남자애에게서 빼꼼 고개를 들고 있는 탓에, 지영은 다른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런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야, 홍지원!”
그때, 먼발치에서 뛰어오는 듯한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길 무섭다고 같이 가재니까 또 먼저 가냐? 넌 진짜 치사하게 꼭……!”
그런데, 한달음에 달려온 민영의 눈길은 자연스레 두 남녀 사이에 있는 붉은 무언가로 향했다.
눈이 제대로 박혀 있는 이상 그것을 못 알아챌 린 없었다.
‘아차, 꽃!’
지영은 얼른 손을 뒤쪽으로 감추었다.
엄청 찰나였는데, 혹시 봤으려나.
수상쩍은 듯 와 닿는 눈길에 얼굴이 절로 달구어진다.
그녀가 얼른 수선을 떨었다.
“자, 잘됐네. 그렇잖아도 난 지금 가보려던 참인데…….”
“…….”
“민영…… 이라고 했나? 난 됐으니까, 지원이랑 둘이서 사이좋게 가. 난 집이 워낙 코앞이라…….”
“…….”
“이만 가 볼게. 다음에 보자.”
이야기를 마친 지영은 끝까지 손을 사수하며 쫓기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뒷모습에, 교복을 입은 두 소년소녀의 시선이 한참동안 머물렀다.
그러다 지원에게서 먼저 픽 웃음이 새어나왔다.
“……우리도 그만 가자. 늦었는데.”
“어? 어어…….”
살짝 씁쓸한 웃음을 지은 지원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민영은 그 상태 그대로 선뜻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방금 전 제가 본 것에 대해 다시 곱씹어 생각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방금 그거…….
“분명히 꽃이었는데.”
뭐야, 혹시 저 자식이……?
나지막한 혼잣말과 함께, 그녀의 눈썹머리는 사이좋게 맞붙었다.
순간 묘한 오감이 작동한 것이었다.
하지만,
“……설마.”
민영은 금세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이차가 얼만데.
무려 아홉 살이나 차이 나는 누나의 절친한 친구라고 했다.
가뜩이나 목석같은 자식이 저런 힘든 여자를 상대로 그런 순정 따위를 품고 있을 리가.
모든 것은, 저만의 쓸데없는 망상임이 분명했다.
“……야! 같이 가!”
근데 난…… 왜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거지?
지원에게로 힘차게 뛰어가며, 민영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그 시각, 민혁과 예원의 신혼집.
“크으.”
맥주를 맛있게 들이켠 예원이 우렁차게 입맛을 다셨다.
그녀가 앉은 식탁 맞은편에는, 언제나 그렇듯 그런 그녀를 신기하게 보는 민혁이 자리하고 있었다.
똑같이 맥주캔 하나를 손에 쥔 채로.
“술 마시는 거 오랜만에 보네요. 요즘은 통 안 마시더니.”
“……그러게요.”
그놈의 회식 사건 때문에 한동안 금주를 한 탓일까, 아니면 한바탕 광란의 밤을 보내고 온 탓일까.
오늘따라 맥주 맛이 더욱 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예원은 물기가 흘러내린 맥주캔을 공연히 어루만지며,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오늘…… 고마웠어요.”
“뭐가요?”
“지원이요. 민혁 씨가 도와준 거잖아요.”
“……아, 그거.”
그런 걸로 굳이 유세를 떨고 싶진 않은데.
민혁은 겸손하게 미소 지었다.
“난 뭐 별 거 안 했어요. 노래 부른 당사자가 고생했지.”
“…….”
“그쪽이 보기엔 어땠어요. 그쪽 동생, 꽤 쓸 만하죠?”
“……네, 그렇더라고요.”
자조적으로 웃은 예원은 솔직하게 수긍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또 뭔 개수작을 부리는 거냐며 호통을 칠 작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에 선 제 동생은 정말, 웬만한 기성가수들에게 가져다 대도 안 꿀릴 만큼 반짝반짝 빛났으니까.
한데 그쯤 되니 한편으론 이상한 마음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누난데, 어째서 나한테는 그런 재능을 지금까지 꽁꽁 숨겨두고 하나도 안 보여준 건지.
이해는 되지만 살짝 서운해질 뻔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죽어도 가수는 안 된다 바락바락 화낼 때는 언제고.
이러니 사람 마음이 갈대 같다고 하는 거지.
어떻게 그거 하나에 이렇게 홀랑…….
마음이 고개를 살랑살랑 저어댔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하나 알게 된 건 있네요.”
“뭐요?”
그의 입가에 씨익, 시니컬한 미소가 걸렸다.
“……홍예원 씨 노래 취향.”
“켁─.”
맥주 마시다 사레에 걸리긴 또 난생 처음이다.
째려보는 그녀는 본 체 만 체, 민혁은 무심한 표정으로 짓궂게 놀려댔다.
“챔피언이라……. 샤워할 때 부르면 신날 것 같기는 한데. 꽤 볼만도 할 것 같고.”
“…….”
“우리 집 욕실 방음 좋아요. 원하면 맘껏 불러도 돼요. 안 말릴 테니까.”
“……아흐, 진짜.”
짜증이 솟구친 예원이 맥주캔을 탁 내려놓았다.
“그만 좀 놀리세요! 내가 그 자식 때문에 정말! ……어후, 이게 무슨 망신이야.”
“왜요, 챔피언이 뭐 어때서. 신나고 좋기만 하더구만.”
“그렇게 좋으면 현민혁 씨나 실컷 부르시든지요.”
내가 그 노래 다신 부르나 봐라.
헛웃음과 함께 그녀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데, 그가 이어 말했다.
“그게…… 그렇게 싫었습니까?”
“…….”
“오랜만에 제대로 웃는 모습 봐서…… 좋았는데, 난.”
그 말에, 그녀의 얼굴에선 또 다시 웃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하긴, 최근 들어서는 웃을 일이 거의 없었다. 울 일만 들입다 많았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이 남자가 좋아할 일인가.
내가 웃거나 말거나, 그게 저 남자한테 무슨 상관이라고.
“…….”
이렇게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올 때면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재빨리 화제를 돌리는 수밖에.
잠시 눈을 내리깐 채, 망설이던 예원은 그간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술김에 툭, 던져 놓았다.
“제가, 비밀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
“실은요. 저도 옛날에…… 가수를 꿈꿨던 적이 있었어요.”
방심하던 그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네. 아마 지원이도 모를 거예요. 한 번도 얘기해 준 적이 없어서.”
“……왜, 얘기 안 했습니까?”
왜라고 할 것까지 있나.
그야 당연히…….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었으니까요.”
그녀는 허심탄회한 어조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세상에 나보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나 까짓 게 무슨 가수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아예 시도도 안 했고요. 두려워서.”
“…….”
“괜히 이루지도 못할 꿈에 기대서 허송세월 보내기보다는, 현실적인 꿈을 택하는 게 낫다. 그러면 적어도 돈은 빨리 벌 수 있을 테니까. 실은, 그래서 커피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건, 그나마 제가 타협할 수 있었던 꿈이라.”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혼자만을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굴기에, 그녀는 포기해야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으므로.
“근데 오늘 지원이를 보니까…… 내 생각이 틀렸던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
“걔랑 나는 애초에 출발선부터 달랐던 건데. 내가 괜히 겁먹고 포기해버렸듯이 걔도 곧 그러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던 것 같아요. 걔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
“뭐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 애가 부러웠는지도 모르죠. 나 같은 애가 어떻게…… 언제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 보였겠어요. 그 애처럼.”
한때는 그녀도, 남들처럼 특별한 행복의 한 가운데 서 있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전민혁의 옆자리를 고집하고 그와 결혼하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애라면 자신을, 그렇게 반짝거리게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마음에.
‘물론 철저히 내 착각이었지만.’
하지만 이제는, 제발 평범한 행복만이라도 제게 허락됐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언감생심 더 큰 건 안 바라니까.
단숨에 싹 비운 맥주캔을 식탁에 내려놓은 예원은 시원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 이제 이만 잘래요. 사장님도 올라가서 쉬세요.”
꾸벅, 고개를 까딱인 그녀가 먼저 계단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뒤늦은 남자의 목소리가 그런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반짝반짝거려요, 충분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나직했다.
“머신 앞에 서 있을 때, 커피 내릴 때, 라떼아트를 할 때, 그걸 나한테 일일이 설명할 때. 그럴 때.”
“…….”
“항상…… 빛나 보였어요, 그쪽도.”
쑥스러움에 제대로 말해 준 적은 없지만 실로 그랬다.
정말이지 저 여잔, 스스로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그게 그가 생각하는 여자의 가장 큰 결점이었다.
“나처럼, 지원이처럼. 그렇게 매사에 주목받는 삶만 반짝거리는 건 아니에요.”
“…….”
“그러니까…… 그런 걸로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요. 우울해하지도 말고.”
항상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녀를 향해 똑바로 선 그의 입꼬리가 스륵 말려 올라갔다.
그 특유의 밝고 예쁜 미소였다.
“…….”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그에게로 뒤돌아 선 채,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던 여자는 웬일인지 뚜벅, 뚜벅, 그의 앞으로 다시 걸어왔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뻗었다.
“……?”
목선에 와 닿는 서늘한 감촉에 순간 정신이 들었다.
가느다란 팔이, 그의 목덜미를 느슨히 감싸 안은 것이었다.
“……예원 씨?”
그렇게까지 말해주었는데도, 저를 올려다보는 여자의 표정은 어쩐지 슬퍼보였다.
가까이 밀착한 여자에게선 희미한 맥주향기와 함께 왠지 모를 달큰한 내음이 풍겼다.
그렇게 잠시 뒤.
붉은 입술 새로 분명치 못한 발음이 천천히 새어나왔다.
“……나, 지금 제대로 취했어요. 그러니까…….”
“…….”
“다 잊어버릴 거예요. 내일이면.”
이게 무슨 말일까.
민혁은 생각해보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여자의 입술이 그의 오른쪽 볼에 촉, 뜨겁고도 서늘한 흔적을 남긴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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