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야?
2018.07.06.
“안녕하세요.”
다름 아닌 카페 빈의 사장, 최우진이었다.
‘아, 한동안 안 오더니 저 인간이 여긴 왜 또?’
정말, 꼭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남자다.
별로 반갑지도 않은데.
“오랜만이네요, 예원 씨. 잘 지냈죠?”
예원은 못마땅한 얼굴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네, 뭐. 저야 늘 그럭저럭…….”
“…….”
“근데, 웬일이세요?”
그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냥, 오랜만에 한번 와 봤어요. 우리 카페보다 장사 잘 되는지 확인도 할 겸.”
분명 누구나 한 번쯤 혹할 정도로 준수한 남자인데.
예원은 이상하게 그가 밥맛이 없었다. 한 번도 아니고 볼 때마다 늘.
어쩌면 에덴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엎치락뒤치락 끈질긴 신경전을 벌여온 상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코딱지만 한 거리에서 그놈의 매출 경쟁이 뭔지.
‘참나. 눈이 그렇게나 크면서 안 보여? 파리만 날리고 있잖아!’
심통이 난 그녀가 남자에겐 보이지 않도록 살짝 삐쭉거렸다.
“그나저나, 그새 유명인사 되셨던데. 맞죠?”
“…….”
“그, 스캔들 말이에요.”
“……네?”
방심하다 흠칫 놀란 예원은 이내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이미 이 근방에 공공연하게 퍼진 사실이라지만, 그걸 이렇게 직접 물어오는 사람은 또 처음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스캔들 같은 건 연예인들한테나 일어나는 일 아닌가요?”
일단은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별안간 웬 폰 하나가 예원의 앞으로 드밀어졌다.
“이거, 홍예원 씨 아니에요? 완전 똑같이 생겼는데.”
띠용. 예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유심히 보니 그것은, 결혼 전 명동에서 공개 데이트를 했을 때 찍힌 사진이었다.
솜털 머리띠를 쓴 채 방긋 웃고 있는 자신을 보며, 예원은 문득 혀를 깨물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꼈다.
이게 아마…… ‘길거리 좌판에서 액세서리를 주고받는 오붓한 커플’이라는 설정이었을 텐데.
이렇게 쪽팔리는 짓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떼를 썼었다.
하지만 결국엔, 또 그놈의 계약 앞에 허무하게 굴복하고 말았지만.
‘아오, 하여튼 인터넷이 너무 과하게 발달한 게 탈이라니까.’
“아하하, 그러게요. 어쩜 이렇게 똑같지! 신기하네…….”
그런데 그때,
“남편은 잘해줘요?”
갑작스런 질문이 들어왔다.
답지 않게 어리바리해진 예원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네?”
“현민혁이 잘해주냐구요. 그 전 남친보다 더.”
……뭐지?
그녀의 얼굴이 곧바로 구겨졌다.
‘이 남자가 이런 건 왜 물어봐? 나한테 전 남친이 있었던 건 또 어떻게 알고. 설마…… 내 뒷조사라도 한 건가?’
순간, 온갖 의문들이 치고 올라왔다.
그런데 그보다도, 이상하리만큼 빈정이 확 상한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근데 누구 맘대로 현민혁이래? 그 사람 이름이 뉘집 개 이름이냐. 지가 친구라도 돼?’
……같은 생각이 불쑥 든 것이다.
“……저희 ‘사장님’이요?”
남자의 무례를 의식해 호칭을 유독 강조해 되물었다.
“에이. 남편한테 사장님이 뭐예요, 남처럼.”
“…….”
“아무튼, 잘해줘요?”
아니, 그러니까. 남이사 잘해주든 말든?
남의 이름을 존칭도 없이 찍찍 내뱉는 남자가 괘씸해진 나머지, 그녀는 보란 듯 힘주어 대답했다.
“그럼요! 남들 하는 만큼은 다 해주죠. ‘우리’ 민혁 씨도.”
그런데, 뭔가가 요상했다.
어찌 대답하나 지켜보는 듯하던 남자가, 방금 전과는 달리 약간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은 것이었다.
“그렇구나.”
“…….”
“……아깝네.”
“……네?”
수상쩍은 눈초리로 쳐다보는 예원에게, 남자는 계속해서 뜻 모를 질문들을 날려댔다.
“그럼 남편 말고. 사장으로서는 어때요?”
“……사장……으로서요?”
“네. 그 유명한 현민혁 씨가 나처럼 카페 사장을 다 한다니. 신기하잖아요. 좀 궁금하기도 하고.”
“…….”
“어때요?”
우진은 특유의 악의 없는 얼굴로 싱긋 웃었다.
* * *
글쎄.
그 남자 앞에선 뭐라 대답하지 못했지만, 지금 예원은 사장으로서의 현민혁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장은, 간단히 말해서……
완전 ‘제멋대로’라고.
“네? 방금 뭐라고…….”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이틀 동안은 통으로 쉬자고요.”
아직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은 사장은 저 기함할 소리를 직원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었다.
아니, 이 업계 사람들한텐 최고 대목인 크리스마스에 뭘 어쩌고 어째?
“아니, 사장님. 크리스마스에 카페를 왜 쉬어요. 그 날 하루 매출이 얼만데!”
깜짝 놀란 예원이 바로 맞받아쳤지만, 민혁의 얼굴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어차피 우리한테 중요한 건 장기적인 수익이지, 매출이 아니에요. 하루 이틀 쉰다고 가게가 망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물론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치만, 손님들은 정기휴일이 아닌 날에 카페가 닫혀있으면 엄청나게 실망해서 돌아간다고요. 하물며 다른 날도 아니고 크리스마슨데, 어떻겠어요?”
다섯 해의 크리스마스를 이미 경험해본 그녀가 단단한 목소리로 주장했지만, 민혁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럼 미리 공지하면 되죠. 이번 크리스마스엔 휴무라고. 얘기하고 쉬겠다는데, 그 정도도 이해 못할 손님들이 있을까요.”
“…….”
“홍예원 씨 말은 잘 알겠지만, 휴일은 엄연히 내가 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난 고생한 우리 직원들과 아르바이트생들한테, 연말 기념으로 짧은 휴가를 주고 싶은 거구요.”
“…….”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지, 난 잘 모르겠는데요.”
이야기를 하던 민혁의 눈길이 불현 듯 다른 두 매니저에게로 향했다.
“점장님 말고, 다른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원 또한 즉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매니저들은 민혁과 예원의 부담스러운 시선 탓에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 난 그냥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결국, 구석에서 쭈뼛거리고 있던 하연이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내놓았다.
“두 분 다 맞는 말씀이시지만…… 제 생각도 점장님과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마슨데, 쉬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은데요……. 근처에 있는 다른 카페들도 아마 다 영업할 거고요.”
그라췌!
동조자의 등장에 예원은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좋아요. 그럼, 주 매니저는?”
그 말에, 지금까지 지퍼를 잠근 듯 조용히 있던 새 매니저 주가윤이 고개를 들었다.
예원은 의기양양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그녀도 동의하리란 생각에서였다.
“물론, 두 분 말씀도 일리가 있긴 합니다만…… 저는…….”
하지만 그건, 예원의 오산이었다.
“사장님 뜻대로 하시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일시에 휘둥그레진 예원의 눈길이 새 매니저에게로 향했다.
“아까운 날인 건 맞죠. 대목 중에 대목인 것도 맞고요. 하지만 사장님이 세우신 방침이 그렇다면, 직원인 저희는 그대로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결정하시기까지 나름의 이유가 있으셨을 테니까요.”
“…….”
“그렇지 않을까요, 점장님?”
똑부러진 가윤의 시선이 슬쩍 예원에게로 향했고, 그것은 금세 옆에 있는 하연에게로 옮겨갔다.
“안 그래요, 매니저님?”
“……네?”
“…….”
“아…… 네. 사장님 뜻이 정 그러시다면야…… 저흰 뭐…….”
……쟤가 그런다고 또 홀랑 넘어가냐, 넌!
당황한 예원이 하연을 휙 째려보았지만, 반대편의 민혁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 얘긴 나중에 마무리 짓는 걸로 하고. 오늘 회의는 이쯤 합시다. 이따 저녁에 회식 있는 거 알죠?”
“네.”
“네, 사장님.”
“그럼 나가서들 일보세요. 점장님은, 잠깐 나 좀 보고요.”
“…….”
목례를 마친 두 매니저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사무실엔 금세 두 사람만이 남았다.
도로 자리에 앉는 사장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예원은 눈에 띄게 불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도, 빨리 나가봐야 하는데요.”
“…….”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일개 점장 주제에 사장을 상대로 막 대들었다.
그러니 저를 여기 남겨둔 것은 아마도 방금 전 일에 대해 요목조목 따지기 위함이리라.
그런데 잠시 뒤, 그에게서 나온 말은 예원의 예상과는 영 딴판이었다.
“혹시, 크리스마스 이브에 따로 할 일 있습니까?”
“……네?”
……이 남자가 지금 누굴 놀리나?
어이가 없었다. 그녀에게서 저도 모르게 비꼬는 투가 나왔다.
“……네, 있었죠. 있었는데, 방금 없애셨죠. 어떤 분께서.”
“…….”
미간을 찌푸리던 그가 다시금 물었다.
“그럼 그 날 하루. 나한테 반납 가능합니까?”
“……저녁까지요? 하루 종일?”
“네.”
그의 입장에선 당연히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물어본 것이었겠지만, 그 순간 예원의 표정은 무척 곤란하다는 듯 변했다.
“아뇨. 그 날은 안 돼요.”
“……왜. 왜 안 됩니까.”
“그런 게 있어요.”
그런 게 있다, 라.
그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다.
“남들 다 데이트하고 노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공식적으로 남편까지 있는 홍예원 씨가 무슨 할 일이 있다는 거죠.”
“…….”
“뭡니까. 나 몰래 어디서 데이트라도 합니까?”
허, 참. 기가 막혀. 이러니 내가 곱게 말을 할 수가 있냐고.
예원의 눈빛이 즉시 싸해졌다.
“해리포터 봐야 돼요. 나 홀로 집에도 원 투 쓰리 다 봐야 되고. 연례행사 같은 거라서요.”
“……장난해요, 지금?”
그래, 내가 지금 당신이랑 장난할 때는 아니지.
예원은 나지막한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장님. 저한테도 프라이버시란 게 있어요. 사장님께서 공식적으로 하사해주신 휴일에 제가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하겠다는데. 그런 것까지 제가 미주알고주알 말씀드려야 하나요.”
“…….”
“공과 사는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민혁은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다시 한 번 상기시켜서 미안한데. 우린 엄연히 계약관계예요.”
“…….”
“그거, 잊었습니까?”
의도가 뻔히 보이는 질문.
하지만 예원은 여전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잊었어요. 근데, 그래도 그 날은 안 돼요.”
“…….”
“절대.”
* * *
툭.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야?”
들고 있던 대본을 테이블에 내팽개친 민혁이 인상을 썼다.
사실, 이번 휴가는 전적으로 홍예원을 위한 것이었다.
연말이라 고단할 것을 생각해 기껏 이틀 휴가까지 줬건만.
고작 하루 반납하는 것도 안 된단 말인가? 엄연히 계약까지 한 사이에?
“……흠.”
생각할수록 괘씸한 여자였다.
무엇보다, 그 ‘프라이버시’라는 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서 대체 뭘 한다는 건지. 정말로 집에 틀어박혀 TV나 보고 있을 생각은 아닐 테고.
왠지 모르게 지끈지끈한 머리를 짚던 민혁은 문득 생각했다.
설마, 진짜 데이트라도 하는 건가?
“……그건 아닐 텐데.”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그런 걸 숨길 여자는 아니었다. 차라리 대놓고 말했으면 말했지.
게다가 (가짜)결혼까지 한 몸으로, 대놓고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한 여자도 못 되었다.
뭐지. 뭔가 중요한 게 있는 거 같은데, 그걸 영 모르겠단 말이야.
“…….”
그가 그렇게 한참동안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였다.
“뭐하냐?”
별안간 성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른 원래의 자세로 돌아온 민혁은 던져놓았던 대본을 들었다.
“아무것도 아냐.”
방금 전까지 무지막지하게 심각한 얼굴을 해놓고 아무것도 아니기는.
결혼을 해서일까? 요즘따라 수상한 구석이 부쩍 는 녀석이었다.
“야, 팬미팅에 쓸 영상 나왔는데 안 볼래?”
“영상? 뭔 영상.”
“너 이번에 춤추고 노래하는 거. 메이킹 필름.”
“뭐?”
대본을 보던 그의 시선이 곧장 성환에게로 향했다.
“난 그런 거 찍은 적 없는데?”
“넌 찍은 적 없겠지. 찍힌 거면 모를까.”
아, 그런 건 또 언제.
얼굴을 구긴 민혁이 딱딱하게 말했다.
“당장 지워. 그냥 현장에서만 보여주면 되지 그런 걸 왜 만들어? 내가 무슨 가수 데뷔할 것도 아닌데.”
그러나 성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얼굴로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릴 뿐이었다.
“네가 팬미팅이 처음이라 뭘 모르는 모양인데, 원래 이런 거 다 하는 거야. 가수도 아니고 배우가, 팬미팅에서 이런 거 아님 뭘 보여주냐. 안 그럼 허전하고 재미없다고 다신 안 와, 이 자식아.”
“안 하면 되지, 그럼.”
누가 와달라고 사정사정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내가 갑자기 웬 팬미팅을 하냐고!
“빨리 지워. 그렇잖아도 충분히 쪽팔리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꼬임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거였다.
공개연애 및 결혼소식 때문에 상심한 팬들을 달래줘야 한다느니 뭐니 하는 말에 속아선…….
잔뜩 짜증이 난 민혁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한 성환은 몇백장은 족히 될 것 같은 엽서꾸러미만 그의 앞으로 턱 가져다 놓았다.
“아, 됐고. 넌 이따 여기다 사인이나 해.”
“형!”
“그렇게 말해봤자 안 돼. 잔말 말고 넌 시키는 대로만 해, 제발. 어?”
“…….”
제 앞에 놓인 펜과 엽서들을 내려다본 민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배우가 팬들을 위해서 연기나 열심히 하면 되지, 이런 게 다 뭐라고.
‘모르긴 몰라도, 이번 생일은 사상 최악의 생일이 되겠구만.’
체념한 그는 별 수 없이 펜을 들어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퍼뜩, 뭔가 생각이 났다.
“형.”
“왜.”
“……나도 엔스타그램이나 시작해볼까?”
“엔스타그램? 네가 갑자기 웬일이냐.”
그가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아니, 그냥…… 남들도 다 하길래. 혹시 팬들이 좋아할까 싶어서.”
하지만 성환은 별꼴이라는 듯 웃었다.
“아서라, 자식아. 내가 널 모르냐? 얼마 안 가서 귀찮다고 GG칠 놈이. 대신 관리해달라고 징징거릴 바엔 아예 시작을 하지 마. 어?”
“…….”
묵직하게 꽂힌 팩트 폭력에, 그는 그만 입술을 다물었다.
“아참, 이거.”
그때, 그의 앞으로 뭔가가 불쑥 내밀어졌다.
보라색 리본으로 포장된 자그마한 선물상자였다.
“뭔데, 이게.”
“……조혜인이, 너 전해주라더라.”
사인을 하던 손이 뚝 멈추었고, 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형이 걜 만났어?”
“어. 아까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는 언제나처럼 바로 폭발했다.
“형은 이런 걸 왜 받아와?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면 되는 걸!”
“아, 아니,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그러기엔 옆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 내가 네 매니저인 거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라고? 또 이상한 소문 생기게?”
“……아무리 그래도!”
한창 열을 올리던 민혁이 말끝을 뚝 잘랐다.
사실 전해달라고 해서 전해주었을 뿐, 성환에겐 잘못이 없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혜인’에 관해서는 유독 감정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자신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
젠장. 그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곱게 포장된 선물상자는 그의 손에 의해 곧장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다음부턴 절대 이런 거 받아오지 마. 받는다 해도 어차피 쓰레기통에 쑤셔넣을 거니까, 자기가 알아서 하라고 해.”
“……알았다. 그러니까 진정해.”
“…….”
“야, 전화 왔다.”
테이블에 놓인 그의 휴대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누군데.”
“……몰라? 이름 없는 번혼데.”
액정에 뜬 번호는 따로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그런데 그 번호가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아서, 민혁은 잠시의 망설임 끝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이모님?”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