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같은 방을 쓰는 사이
2018.07.03.
신혼여행을 마친 그들은 별도의 인사는 생략하고 곧바로 신혼집에 입주하기로 했다.
“아오…… 며칠간 놀고먹은 거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냐.”
굳은 어깨를 콩콩 두드리며 집안에 들어선 순간.
예원의 입에선 이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그의 집, 그러니까 앞으로 그들이 살 집에 와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전에 가 본 그의 부모님 집이나 수진의 집도 대단하다고 느꼈었건만.
이제 보니 여기랑은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다.
뭐야, 이거. 궁궐이야?
“여기…… 다 몇 평이에요?”
예원이 뒤따라 들어오는 그에게 물었다.
“들으면, 대충 짐작은 됩니까?”
“……아뇨?”
“그럼 굳이 알려고 들지 마요. 다치니까.”
저놈의 싹수없는 대답은 그녀를 매번 시험에 들게 한다.
저렇게 매번 삐딱하게 굴면 균형감각에 문제 생길만도 한데.
“근데, 제 방은 어디예요? 하도 넓어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성큼성큼 걸어간 민혁은 어느새 널따란 식탁 쪽에 앉아있는 채였다.
“홍예원 씨, 이리 와서 잠깐 앉아 봐요.”
“……왜요?”
“얘기 좀 하자고요.”
엥, 뜬금없이 무슨?
“무슨…… 얘긴데요?”
미적미적 다가와 그의 맞은편에 앉은 예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일단,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요.”
“…….”
“우린, 오늘부터 같은 방을 쓸 겁니다.”
“……네?!”
헐. 이 사람이 무슨 소리야, 지금?
예원의 눈이 일시에 휘둥그레졌다.
“아, 아니. 다, 다른 멀쩡한 방 놔두고 제가 ‘왜’ 사장님이랑 같은 방을 써요?”
“…….”
“혹시나 잊으셨을까봐 말씀드리는데요. 저희, 진짜로 결혼한 거 아니거든요? 저 사장님한테 관심 없어요!”
흥분한 그녀가 손사래까지 치며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영 심드렁했다.
“알아요. 나도 홍예원 씨한테 관심 없으니까.”
“…….”
“그리고 나도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고.”
“……아.”
뒤에 뭐가 또 있는 건가.
한순간 무안해진 예원이 입술을 다물자, 곧바로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보다시피 우리 집은 좀 넓어요. 체계적인 관리가 없으면 금방 더러워지기 십상이죠. 도우미 아주머니가 두 분 정도 계신데, 일주일에 4일 정도, 낮 시간에 주로 오세요. 뭐, 그 시간엔 보통 우리 둘 다 일을 하니까 마주칠 일은 적을 겁니다.”
“아, 네…….”
“그런데.”
웬일인지 그의 입술이 마뜩잖게 굳어졌다.
“그 두 분이 내 일에 관심이 아주 많으세요. 눈치도 아주 빠르시고.”
“…….”
“이리저리 청소하다 각방 쓰는 걸 알아채시기라도 하는 날엔 바로 끝장이라는 겁니다. 홍예원 씨도 그걸 원하지는 않겠죠?”
……아아. 그제야 예원은 조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라면 방도가 없는 것도 아닌데.
“아니 그럼…… 청소는 우리가 한다고 하면 되죠! 아주머님들께는 밥이랑 빨래 같은 거만 부탁드리고요.”
“…….”
“……왜요?”
사람 민망하게 또 왜 저렇게 쳐다봐?
“이 집, 홍예원 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넓어요. 홍예원 씨 혼자서 쓸고 닦고 할 자신 있습니까?”
“……왜 저 혼자 해요? 둘이서 분담해서 하면 되죠!”
“난 안 할 건데요.”
에이씨. 예원의 속이 부글 끓어올랐다.
반면 민혁의 얼굴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가 띠었다.
“효율성으로 보나 경제성으로 보나, 우리가 한 방을 쓰는 편이 훨씬 나아요. 나도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
“크게 걱정할 거 없어요. 옷은 어차피 드레스룸에 둘 거고, 화장대야 홍예원 씨가 맘대로 쓰면 되고. 공유해야 하는 건 침대 정도밖에 없을 테니까.”
“……그게 제일 문제거든요?”
여자의 얼굴은 어느 새 한껏 울긋불긋해져 있었다.
저런 반응 때문에 더더욱 놀리고 싶어진다는 걸 알기는 알는지.
“표면적으로는 그럴 거라고요, 표면적으로는.”
“…….”
“홍예원 씨가 안방 침대 써요. 난 다른 방 침대에서 잘 테니까.”
“……네? 그래도 돼요?”
뜻밖의 순순한 양보.
달아올라있던 예원의 얼굴이 금세 당황으로 물들었다.
“난 어차피 촬영 들어가면 집에서 자는 일이 드물어요. 잠이 그리 많은 타입도 아니고요.”
“…….”
“걱정 말고 안방에서 자요. 안주인이 방에서 버티고 있는데, 설마 각방을 쓰리라고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
안주인…… 이라.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묘하게 다가오는 단어였다.
“아, 그리고.”
그가 지갑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거.”
“이게…… 뭐예요?”
“보면 몰라요? 카드잖아요.”
“이걸 왜, 저한테…….”
왠지 모르게 빤딱빤딱한 남색 카드는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동생한테 들어가는 돈은 내가 따로 충당하겠지만, 일단 평소 생활비는 이걸로 써요. 괜히 부담 가지지 말고요.”
“어. 말씀은 감사한데…… 그래도 제가 사장님 카드를 왜…….”
“왜긴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얼굴.
“우리, 이제부터 부부잖아요. 주머닛돈이 쌈짓돈. 그런 말 모릅니까?”
“…….”
“준다고 할 때 챙겨둬요. 자.”
그가 예원의 손바닥을 끌어다 카드를 탁 올려놓았다.
예원은 졸지에 할 말을 잃었다.
‘……누가 보면 우리가 진짜 부부인 줄 알겠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문젠 됐고. 이제 공동생활 규칙이나 정해 봅시다.”
“……그건 또 뭐예요?”
“앞으로 둘이 한 곳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상호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안 되니까요.”
하여튼 철두철미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그거에 또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으려고.
에휴. 예원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터뜨렸다.
“저기요, 그건 좀 나중에 하면 안 돼요?”
“왜요. 뭐 문제 있습니까?”
“문제는 없는데…… 이제 저녁 먹어야죠! 저 배고픈데…….”
“아.”
그제야 그는 바깥이 많이 어둑해졌음을 깨달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습니까? 이모님이 해놓으신 게 있으려나…….”
“……저기, 사장님.”
“예?”
냉장고 앞으로 향하던 그가 돌아보자, 예원은 왠지 모르게 애절한 투로 말했다.
“우리, 치킨 시켜 먹으면 안 돼요?”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치킨이요?”
“네. 저 치킨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러고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뭔가 퍼뜩 떠오른 듯 신음했다.
“……아, 그럼 되겠네.”
“뭐가요?”
활짝 핀 여자의 광대가 반짝, 빛났다.
“우리, 치맥 해요! 입주 기념으로다가!”
* * *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그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 치킨이…….
“배달이…… 되는구나.”
그 소리에, 영롱한 치킨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대던 그녀가 대번 고개를 들었다.
“참나. 여기가 무슨 산간오지도 아닌데 안 될 게 뭐 있어요? 사장님은 복 받은 줄이나 아세요. 치세권이 아닌 자들의 설움을 모르시는구만…….”
“‘치세권’이…… 뭡니까?”
“치킨집이랑 도보 10분 거리? 암튼 가까운 집이요. ‘역세권’ 같은 말이랑 비슷한 거예요.”
“……아.”
별 희한한 말도 다 있다, 싶다.
그에게서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근데, 매번 사진은 그렇게 많이 찍어서 뭐합니까?”
뭐만 하면 족족 사진 찍어대기에 바쁘니, 원.
“뭐하긴요?”
하지만 예원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엔스타에 올려야죠.”
“……예?”
“엔스타그램이요. 심심할 때마다 복습하는 게 꿀잼이거든요. 사장님은 아이디 없으세요?”
“……난 그런 거 안 키웁니다.”
“왜요?”
“귀찮아서요.”
쳇. 그렇게 매사가 귀찮아서 사장 노릇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아무래도 아직은 연구가 필요한 인간이라고, 예원은 생각했다.
“아무튼 그럼, 잘 먹겠습니다?”
촬영을 다 마친 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치킨 다리를 야무지게 뜯으려던 예원이 주춤했다.
“……진짜 안 드실 거예요?”
“네.”
“진짜죠?”
“네.”
연예인들의 자기관리. 그거 말로만 들었는데.
아랑곳없이 신문을 펴 드는 남자는 정말로 독종 of 독종임이 분명했다.
아니, 아무리 드라마 촬영이 코앞이래도 그렇지.
윤기가 좔좔 흐르는 양념치킨이 앞에 있는데, 어떻게 눈 깜짝을 한 번 안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계산까지 해주신 마당에 저 혼자 먹기는 좀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이 맘대로 치킨을 시킵니까?”
“아니, 전 말로만 안 드신다 그러는 줄 알았죠! 이렇게 왔는데도 진짜로 안 드실 줄은…….”
“…….”
“에이, 그러지 말고 하나 뜯으시죠? 1인 1다리가 깔끔하잖아요.”
“안 먹는 게 제일 깔끔합니다.”
으이그. 저런 아이언맨 뺨치는 철벽남이 있나.
“쳇, 맘대로 하세요 그럼.”
난 최선을 다해 설득했습니다. 엄연히 님이 거절하신 거라고요.
못마땅하게 입술을 비죽이던 예원은 보란 듯이 치킨을 와구와구 뜯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맥주와 함께.
“와…… 진짜 맛있다. 역시 BBC야. 맥주랑 궁합이……!”
“…….”
“……크으, 튀김옷도 예술이네. 대체 어떻게 만들면 이런 맛이 날까나.”
“…….”
“그러고 보니까 양념 맛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캬. 죽인다, 죽여.”
아.
거슬린다. 심히 거슬려.
“……거 좀 조용히 하고 먹으면 안 됩니까?”
“네?”
아차한 예원이 부끄러운 듯 입을 가렸다.
“아, 죄송해요. 제가 맛있는 걸 먹으면 혼잣말 하는 버릇이 있어서요. 좀 그러시면 먼저 들어가셔도 돼요.”
시끄럽다 못해 뻔뻔스럽기까지!
민혁은 여자가 새로이 집어든 매혹적인 치킨 다리의 자태를 슬쩍 보았다.
냄새만 맡는데도 그 매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절로 그려지는 듯했다.
‘하, 젠장.’
그라고 왜 먹고 싶지 않겠는가. 그도 사람인데.
하지만 무작정 참아내는 것이었다. 만고의 인내심으로 말이다.
저 손에 들린 지방과 단백질, 탄수화물 덩어리는 아마 내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군살로 변모하고 말 것이다.
그걸 알면서 한심하게 입으로 넣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맛있……습니까?”
더럽게 맛있어 보인다.
그놈의 고기국수 때도 그렇고.
이 여자에겐 아무래도 음식을 두 배로 맛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왜요? 드릴까요?”
“…….”
어쩌지.
지금 이 순간, 그의 안에서는 이성적인 현민혁과 감정적인 현민혁이 치열한 내적갈등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럼.”
“…….”
“다리 하나만…….”
젠장할 치킨 다리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아주 무력하게도.
‘……후후후.’
암요, 그렇게 나오셔야지요.
사실 그녀에게 혼잣말을 하는 버릇 따윈 없었다.
다 그의 다이어트를 망쳐버리기 위한 수작에 불과했을 뿐.
“여기요.”
새침한 얼굴의 예원이 치킨 다리를 척 내밀자, 그는 때마침 벗겨낸 나무젓가락으로 그것을 어설프게 받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고칼로리의 음식을 먹는 것도 꽤 오래간만이었다.
치킨을 마지막으로 먹은 게 대체 언제였더라.
간도 안 한 닭 가슴살은 토 나오도록 많이 먹었는데.
“어때요? 맛있죠.”
“…….”
대답은 없었지만, 오물거리는 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스몄다.
그것이 곧 ‘맛있다’라는 의미임을 이제 그녀는 모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잘 먹을 거면서 괜히.’
맛있게 먹는 모습이 괜스레 흐뭇했다.
‘하여간에 뻣뻣해가지고는. 먹자고 할 때 먹으면 좀 좋냐.’
하긴. 안 뻣뻣하고 안 삐딱하면 현민혁이 아니다.
저러면서 또 은근히…… 귀여운 구석도 있단 말이지…….
“……어머.”
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불현 듯 든 생각에 예원은 지레 놀라고 말았다.
“왜 그럽니까?”
“아, 아니…… 아니에요. 드세요.”
정신 차리자고 해놓곤 또!
예원은 그렇게, 다리 하나를 맛있게 해치우고 은근슬쩍 몸통도 하나 집는 남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젠, 정말로 이 남자와 부부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구나.
‘휴…… 잘할 수 있겠지.’
사실은, 걱정이 조금 앞섰다.
들떠있던 마음이 어쩐지 뒤숭숭해졌다.
* * *
겨울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카페 에덴의 한 편.
웬 젊은 여자를 앞에 둔 예원은 여전히 뒤숭숭한 심정이었다.
‘프랜차이즈 두 곳에서 2년 넘게 매니저로 근무한 데다, 바로 이전 매장에서는 잠깐 점장으로까지 일했다, 라. 썩 나쁘진 않은데.’
그녀의 눈이 텍스트가 빼곡한 이력서를 빠짐없이 읽어 내렸다.
새 매니저를 뽑기 위한 면접이었다.
일단 조건으로만 봤을 땐, 생각 이상으로 괜찮아 보이는 지원자다.
질문에 족족 막힘없이 대답하는 것도 그렇고.
허나…… 아직은 가장 중요한 관문 하나가 남아있었다.
“저, 근데 혹시…….”
“네?”
“저희 ‘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혹시 알고 오셨나요?”
젊은 여자는 마스카라가 말끔히 발린 속눈썹을 깜빡이며 반문했다.
“사장님이요? 아뇨. 왜요?”
매니저 면접에서 별 걸 다 물어본다는 듯한 얼굴.
아무래도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연기라고 의심하기엔 너무도 말간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하고.
‘오호라. 모른다 이거지?’
그제야 예원은 잔뜩 곤두세웠던 신경을 말아 넣고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인간이 찾아왔나 보다.
마침내!
“아, 아니에요! 그러시군요.”
예원은 신이 나서 금방이라도 찢어지려는 입을 겨우 감추며 말했다.
“그나저나, 바로 이전 매장에선 점장까지 하셨는데……. 다시 매니저로 일하셔도 괜찮으시겠어요?”
혹여 자존심이 상하진 않을까, 살짝 걱정되는 마음에서 꺼낸 질문이었다.
여자는 걱정 말라는 듯 생긋 웃었다.
“그럼요. 점장으로 일하면서 부족한 점도 많았고, 아쉬운 부분도 많았던 것 같거든요. 매니저로 일하면서 좀 쉬어가고 싶어요. 또, 이곳의 분위기도 배우고 싶고요.”
“아…… 예.”
예원은 확신했다. 며칠 내로 이보다 더 완벽한 매니저 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적어도 어제까지 다녀갔던 그 뜨내기들보다는 백배 천배 훌륭한 인재가 분명했다.
“결과는 내일까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서비스로 증정한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여자가 떠나고, 예원은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점장으로서, 드디어 제 손으로 첫 직원을 뽑았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어때요?”
바에 서 있던 채린이 부리나케 달려와 물었다.
“음…… 괜찮은 것 같아.”
이제 숨 좀 돌릴 수 있겠네. 그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채린 또한 반가워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그럼 저 분으로 결정하시는 거예요?”
“그럴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더 있어보려고.”
“네! 어쨌든 잘됐어요. 전 또 그 ‘현민혁명’인가 뭔가 하는 쪽에서 온 줄 알았는데. 진짜 다행이다.”
요 며칠간 호되게 데여야만 했던 그 이름.
지난 기억을 되새긴 예원은 저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사건의 전말은 매우 단순했다.
<현민혁명>이란, ‘현민혁은 혁명이다’라는 문구가 모토인 민혁의 공식 팬클럽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와의 ‘계약결혼’을 시작한 이후, 예원은 어느 새 그들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 왜?
그들에겐 그녀가 ‘우리 오빠를 뺏어간 요물’이었으니까.
그래도 배우 팬덤이라고, 아이돌 팬클럽만큼의 극성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후폭풍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문제의 홍예원이라는 여자가, 민혁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 ‘에덴’의 점장을 맡고 있다는 소문이 그의 팬들 사이에서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진짜 문제가 영 엉뚱한 데서 튀어나왔다는 게 문제지.
전임 매니저의 갑작스런 부재로 인해 새 매니저 채용공고를 야심차게 내걸었던 예원은 요 며칠 오는 족족 미심쩍기만 한 지원자들 덕에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커피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전무한데다, ‘여기 사장이 현민혁이냐’는 질문만 줄창 해대던 그들.
그녀는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민혁의 팬클럽 회원들이 의도적으로 ‘분탕’을 치러 온 것이었음을.
또 거기엔, 우리 오빠를 뺏어간 년이 도대체 어찌 생겼나 구경해보고 싶은 마음도 일부 담겨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흐음.”
하지만 어쨌건, 결과적으로는 그와 상관없이 훌륭한 매니저를 뽑게 됐으니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의도치 않은 노이즈 마케팅을 했다 치고, 매출이나 좀 올랐으면 하고 기대할 뿐.
“좋은 분이셨으면 좋겠는데……. 그쵸?”
“그러게. 근데 성격은 괜찮아 보여. 웃기도 잘 웃는 것 같고.”
“그럼 괜찮겠죠, 뭐. 점장님이 어련히 잘 뽑으셨으려고요. 그만 들어가요, 점장님.”
“응.”
기분 좋게 웃은 그들이 다시 바 안으로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금방 손님이 들어오는 듯한 인기척에, 반색한 예원은 냉큼 돌아서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카페 에덴입…….”
그런데, 정면을 확인한 예원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원치 않은 손님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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