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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21화 (21/102)

21화. 결혼식

2018.06.15.

침대 맡에 앉아있던 민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드라마요?”

“응. 미니시리즈라는데, 곧 촬영 들어갈 건가봐. 어제 급하게 연락 받았어.”

“……안 돼요.”

“민혁아.”

그는 단호한 눈빛으로 수진을 바라보았다.

“몸도 성치 않으신 분이 무슨 드라마를 찍는다고 그러세요. 안 될 거 뻔히 아시잖아요.”

“…….”

“그러지 마시고, 이젠 그냥 편히…….”

“아니, 아니야.”

허나 수진은 그만큼이나 완강했다.

“난 촬영장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해. 지금 이렇게 매일 누워있기만 하는 거…… 난 이게 제일 불편하고 힘들다, 민혁아.”

“…….”

“일일극이나 주말극 같이 힘든 건 나도 안 해. 단막극이나 미니시리즈 같은 것만 몇 개 할 생각이야. 그 정돈 괜찮잖니.”

“……하지만.”

다시금 반박해보려던 민혁의 말이 뚝 잘렸다.

그를 향한 수진의 눈빛이 너무도 명료한 탓에.

“내가 전에도 말했지. 송충이가 솔잎을 먹듯이, 연기자도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해야 하는 거라고. 그래야 제대로 살 수 있는 거라고.”

“…….”

“엄마도…… 이제 좀 살고 싶어.”

“…….”

약간 애처롭게까지 들리는 그 목소리에, 결국 민혁은 입술을 다물고 말았다.

살짝 울컥한 듯한 얼굴로.

“…….”

한편, 둘의 모양을 옆에서 멀뚱히 바라보던 예원은 영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죽을 맛이었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유명 배우 ‘채수진’이 분명한데. 그런 그녀를 ‘엄마’라 부르고 있는 남자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원이 알기로 채수진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여배우였으니까.

‘아니 그럼. 지난번에 뵌 그 분은 또 누구야?’

태도가 영 이상했던 것도 그렇고. 진짜 엄만 이 쪽인 걸까.

아리송해진 예원이 작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귀한 손님도 왔는데 대접을 못 해서 이걸 어쩌나.”

“……네?”

순간 제게로 확 집중되는 시선에, 예원은 눈을 대번 동그랗게 떴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머님을 뵙는 줄 알았으면 과일 같은 거라도 좀 사오는 건데…….”

손사래를 친 예원이 허둥지둥 당황하자, 수진은 마냥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과일이야 집에도 많은데, 뭐. 난 그냥 예원 씨 얼굴이 보고 싶어서 부른 거니까, 괜히 부담 같은 거 갖지 말아요. 알았죠?”

“……네, 어머님.”

수진이 금세 무심해진 얼굴로 민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민혁아, 뭐하니. 얼른 가서 과일 좀 깎아 내오지 않고.”

“……네?”

방심하던 그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제, 제가 깎아요?”

“그럼, 여기 너 말고 깎을 사람이 누가 있어. 예원 씬 손님이고, 주인인 난 이러고 있는데. 내가 가서 깎으란 말이니?”

반박하기에는 너무나 논리정연한 말.

“……아, 아뇨. 제가 깎아 올게요.”

“그래. 바나나도 있고 딸기도 있고. 참, 사과랑 배도 있으니까 종류별로 다 가져오렴.”

그의 표정이 티 나지 않게 구겨졌다.

“……예.”

느릿느릿 방을 나서는 민혁의 뒤로 척,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수진은 그제야 예원을 올곧이 마주보았다.

“휴, 이제야 좀 조용히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네.”

“…….”

“그쵸?”

……응?

“네?”

잠시 영문을 몰라 하던 예원은 이내 여자의 진짜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아, 일부러 저 남잘 내보내려고……?’

수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례지만, 예원 양 나이가 혹시 올해로 몇 살이죠?”

일주일 전 이미 한 번 받아본 질문.

덕분에 예원은 비교적 여유롭게 대답할 수 있었다.

“……스물일곱입니다. 해 바뀌면 금방 또 스물여덟이 되고요.”

“으음, 우리 민혁이랑은 네 살 차이구나.”

“……네.”

그런데 어째 그때랑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어쩐지…… 조금 더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랄까.

“그럼, 사귄 지는 얼마나 됐어요?”

“사귄…… 지요?”

말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혹시나 이상하게 여기시면 어쩌지.

잠시 고민하던 예원은 머뭇머뭇 대답했다.

“두 달…… 정도 됐습니다.”

“두 달?”

예상대로 수진은 약간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잠시 뒤, 그 입가엔 이내 빙긋 웃음이 떠올랐다.

“……저놈이 웬일이래. 녀석도 참.”

“…….”

“좀 놀랍네요. 원래 여자라면 죄다 돌 같이 보는 놈이었거든, 쟤가. 좋아라하는 여자애도 한 명도 없었고.”

‘네, 그랬을 것 같아요…….’

저절로 튀어나오려는 대답을 예원은 애써 속으로 삼켰다.

원체 그렇게 생겨먹은 남자라 그닥 놀랍지도 않다.

“이렇게 곱고 예쁘고, 심지어 어리기까지 한데. 결혼은 아직 너무 이른 거 아닌가.”

“…….”

“우리 민혁이,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네?”

느닷없는 질문.

흠칫한 예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잖아요. 고작 두 달 만에 결혼을 결심할 정도면 꽤나 확신이 들었던 모양인데. 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았던 건가, 싶어서.”

“아……. 어, 그게요…….”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고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글쎄. 뭐가 좋았을까. 내가 만약 저 남자와 진짜로 결혼을 하는 거였다면…….’

예원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음…… 이건 좀, 사소한 거긴 한데요…….”

“…….”

“제 생각보다, 꽤 따뜻한 사람이더라고요. 정말 안 그럴 것 같이 생겨선.”

그녀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위로 말려 올라갔다.

지난 일들이 자연스레 곱씹어진 탓이었다.

“곤경에 빠진 사람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여자들이나 부하직원들한텐 조금 모질게 구는 것 같아도, 어른들께만은 무지무지 깍듯하고.”

“…….”

“가끔은 또 어쩜 저렇게 정나미가 없나 싶은데, 알고 보면 썩 그렇지만은 않고……. 진짜 의외지만, 배려 같은 것도 할 줄 알고…….”

뭘 말해야 하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막상 입을 열자 그에 대한 생각들이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그런 게…… 좋아보였던 것 같아요. 약간, 반전 매력처럼요.”

“…….”

그런 예원의 대답에 수진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민혁이 쟤가 겉으론 저래도, 속은 참 깊고 여린 아이거든요. 예원 양이 아주 제대로 봤네.”

“…….”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뭐하지만…… 우리 민혁이, 참 좋은 애예요. 좀 까칠하고 모난 듯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세상에서 제일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애고요.”

“…….”

“민혁이가, 혹시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가요?”

어…….

예원의 눈동자가 슬쩍 왼쪽 위로 굴렀다.

“……아뇨. 그냥, 어머님이라고만…….”

원래도 말이 많지 않은 남자는 가족에 대해선 유난히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어차피 딱히 궁금하지 않았던 터라 굳이 묻지도 않았었는데.

“딱 봐도 알겠지만, 민혁이는 진짜 내 아들이 아니에요. 안 닮았잖아, 나랑. 한 군데도.”

“…….”

“민혁이랑 난, 몇 년 전에 드라마에서 처음 만났어요. 엄마랑 아들로. 뭔지 혹시 알려나?”

“……아! 네, 알아요.”

그게 제목이…… <엄마라는 이름으로>였지, 아마.

시청률이 그리 잘 나온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웰메이드 드라마로 유명한 작품이었다.

남자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뭐 어쨌단 거지?’

예원은 잠자코 이야기를 마저 들어보기로 했다.

“배우란 직업이 참 희한한 게. 극중에서 아무리 가족사이고 친한 사이라도, 촬영이 다 끝나고 나면 자연스레 사이들이 소원해져요.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다들 톱스타라 워낙 바쁘기도 하고…… 정신이 없거든. 금방 또 다른 작품 배우들이랑 친해져야 되니까.”

“…….”

“근데 민혁인…… 참 달랐어요.”

수진의 눈초리가 회상에 젖은 듯 금세 이지러졌다.

“한창 촬영할 때야 간혹 엄마라고 불러도 그러려니 했었는데. 촬영 끝난 지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엄마, 엄마’. ……꼭 진짜 아들이라도 되는 마냥 그러더라고.”

“…….”

“그때부터 민혁인 자연스럽게 내 아들이 됐어요. 남편도, 자식도, 아무것도 없는 나한테…… 쟤는 유일한 가족이 되어준 거지.”

이럴 수가.

예원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간혹 이상하게 인간적일 때를 빼놓고는 세상 차갑기만 한 저 남자가, 누군가에게 그리도 살갑게 아들 노릇을 했다니.

그것도 진짜 엄마도 아닌 사람을 상대로……?

“항상 가족의 품을 그리워했던 애예요. 어린 나이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하나뿐인 여동생도 입양 가 버리고. 곁에 남은 건 아버지뿐이었는데, 그 아버지마저도 새어머니랑 재혼을 해버렸지. 꼽사리로 들어온 배 다른 형까지 있었던 바람에 늘 혼자처럼 지냈고.”

“…….”

“민혁이가, 이런 얘기는 안 해주죠?”

해 줬을 리가…… 없었다.

“……네.”

“그럴 만도 하지. 제 치부를 들키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놈이니까.”

“…….”

“아까도 봐요. 금방 또 눈물 터질 것 같으니까 잽싸게 참는 거.”

그러고 보니 또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잠깐 동안 지켜본 그는 눈앞의 여잘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챙기는 모습이었으니까.

뭐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근데 혹시, 어디가 편찮……으세요……?”

수진은 말없이 빙긋 웃더니, 나지막이 답했다.

“암이에요. 췌장암.”

“……!”

“수술 받고 괜찮아졌었는데, 이제는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네. 다른 데까지 전이가 돼서.”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매스컴에도 전혀 보도되지 않았었는데.

‘전이?’

여자의 핼쑥한 외양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

절로 헉 소리가 나오려 했지만, 정작 여자의 표정은 너무도 무덤덤했다.

예원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

“아, 아니…….”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괜찮을 리가 없잖아!

“죄,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금세 꼬무룩해진(시무룩해진) 그녀를 보며 수진은 너그럽게 미소 지었다.

“지금은 진통제 덕분에 괜찮아요. 물론 이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지만.”

“…….”

“처음에는 그냥, 나 자신을 놔버리고 싶었어요.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엉엉 울고만 싶었고, 당장이라도 콱 죽어버리고 싶었고. 그랬는데…….”

“…….”

“그때, 내 무릎 아래서 펑펑 울고 있는 저 녀석이 보였어요.”

수진은 마치 그가 눈앞에 있는 듯,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내가 울어야 되는 만큼 대신 울어주는 저 놈 봐서라도, 내가 살 수 있을 때까진 살아야겠다. 그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견딘 거예요.”

“…….”

“민혁이가 결혼을 좀 서둘렀죠. 미안해요. 내가 지 결혼하는 건 꼭 보고 죽고 싶다 그랬거든요.”

사실, 그리 말해놓고도 여러 번을 후회한 그녀였다.

녀석에게 괜한 부담을 지워준 것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눈앞의 여자애를 마주한 지금, 수진은 그리 말하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보니 호수처럼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민혁의 것과 꼭 닮아있었다.

“민혁이한테도 말해둔 거지만, 나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내가 어찌 살든 말든,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야 될 사람들이잖아요. 새신랑, 새신부.”

“……그래도…….”

알게 된 이상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예원이 난처한 듯 주저했지만, 수진은 여전히 확고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 이래봬도 여배우예요. 아들 내외한테 예쁜 모습만 보여주진 못할망정, 추하고 미운 모습 같은 건 보여주기가 싫어서 그래요.”

“…….”

“다만, 이렇게 가끔씩만 찾아와줘요. 아주 가끔씩만. 알았죠?”

모든 말을 마친 수진은 조용히 예원의 손을 끌어다 그러쥐었다.

예원의 눈동자가 경황없이 흔들렸다.

“고마워요, 예원 양.”

“…….”

“우리 민혁이 짝이 돼 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마른 손가락을 통해 느껴지는 앙상한 뼈마디.

생전 처음 만난 여자에게서 전해져오는 따뜻함에, 예원은 순간 감정이 울컥 북받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분이다.’

확실해.

이 분이, 저 남자의 진짜 엄마야.

비록 진짜 피가 섞이진 않았더라도…….

“…….”

“…….”

두 여자는 잠시간 말없이 애틋한 시선을 교환했다.

예원도 더 이상 안타까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저, 말간 눈빛으로 수진을 마주볼 뿐.

‘이런 분이라면, 시어머니로 모시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 놈은 과일 깎아 오랬더니 밭을 갈러 갔나. 왜 이렇게 안 오지?”

“……그러게요.”

때마침,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드디어 그가 과일을 다 깎아온 모양이었다.

“저…… 엄마.”

“응?”

한데 그는 어쩐지 곤란한 얼굴이었다.

그가 들고 온 접시를 넌지시 넘겨보던 수진은 돌연 픽 웃었다.

“아이구, 저런.”

……엥? 갑자기 왜 웃으시지?

예원은 그제야 그가 가져온 접시를 제대로 확인했다.

거기엔…….

“…….”

모양도 삐뚤빼뚤한데다, 그새 갈변까지 된 과일 조각들이 볼품없이 널려 있었다.

“풉…… 푸하하하!”

예원은 그만 크게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일순 모든 게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흠흠.”

짧은 웃음을 금방 그친 그녀가 그에게서 접시를 휙 낚아챘다.

“잠시만 계세요, 어머니. 제가 가서 깎아 올게요.”

“……왜요, 보기만 이렇지 맛은 괜찮은데.”

억울한 듯 말하는 그를, 예원은 말없이 바깥으로 내몰았다.

‘이 남자, 결혼하기 전에 과일 깎는 연습은 필수로 시켜둬야겠네.’

라고 생각하며.

* * *

그로부터 몇 주 뒤.

“형!”

결혼식에 맞춰 단정하게 차려입은 지원이 민혁에게 인사했다.

“어, 왔구나.”

고급스러운 턱시도를 입은 그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눈이 부실 정도였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지원은 괜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근데…… 그 분은, 아직 안 오셨어요?”

“누구.”

눈썹을 들썩이던 민혁이 대번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 좀 늦는대. 그래도 사회니까 그리 늦지 않게는 올 거야.”

“네…….”

지원은 잠시 긴장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형, 오늘 멋지세요.”

지원답지 않은 새삼스러운 칭찬. 민혁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몇 번의 만남 끝에 이제는 어느 정도 그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일까.

지원의 태도는 그새 꽤나 고분고분해져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퍽 다행인 일이었다.

“……고맙다.”

“결혼 축하드려요, 매형. 우리 누나, 절대 울리시면 안 돼요.”

……웃게 해줄 일도 없겠지만, 적어도 울릴 일은 없겠지.

“그래, 걱정 마.”

한편, 신부대기실.

그곳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아이, 이몬 아까부터 왜 자꾸 울어!”

누가 보면 이모가 시집가는 줄 알겠네.

웃음기를 머금은 예원이 젖은 볼을 닦아주자,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던 은아는 그녀를 찌릿 흘겼다.

“섭섭해서 그러지, 이것아. 섭섭해서! 아휴, 쥐방울만 하던 게 언제 이렇게 커서…….”

이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지난 세월.

어느덧 나이를 스물일곱이나 먹었다지만, 아직도 은아의 눈엔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조카였다.

그 얼굴을 연신 애틋하게 보듬던 은아는 문득 손을 뻗어 예원이 쥔 라펄 부케를 올려 보였다.

“너, 기억하지? 이 꽃 꽃말.”

……당연히 기억하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

이 세상에서 최고로 낯간지러운 꽃말인데.

콕콕 찔리는 양심을 애써 외면한 예원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예원이, 잘 살아야 돼. 응? 알았지?”

“……알았어. 걱정 마, 이모.”

예원은 부러 더욱 밝은 미소를 지으며 우는 이모를 다독였다.

1년 뒤, 그들의 이혼 소식에 대경실색할 이모의 얼굴이 벌써부터 떠오르는 듯했지만, 사실은 그때 가서 밝히면 그뿐일 테다.

어차피 그때에도 그녀의 호적은 아무도 밟지 않은 첫 눈처럼 깨끗한 상태일 테니까.

“이모님.”

그때, 남자의 굵직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현 서방!”

그제야 예원은 이모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옮겼다.

각 잡힌 턱시도를 입은 수려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척척 걸어오고 있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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