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서약의 키스
2018.06.19.
“…….”
“…….”
몰라보게 단장한 두 사람은 마침내 시선을 맞추었다.
그 짧은 새에도 꽤나 복잡한 눈빛들이 오갔지만, 원체 연기엔 도가 튼 그들인지라 누구도 그것을 눈치 채긴 힘들었다.
“으유, 식전엔 신부 보는 거 아니래니까. 그새를 못 참고 또 달려온 거야?”
“예. 그렇게 됐네요.”
방금 전까지 시종일관 눈물바람이던 은아는 이 상황이 마냥 흐뭇한 듯 금세 싱글벙글해져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효과적인 현민혁 매직.
“그럼 이렇게 된 거, 둘이서 잠깐 얘기 나눠. 나랑 지영인 이만 밖에…….”
“…….”
“지영아. 지영아?”
“…….”
푸흡.
립스틱이 깔끔히 발린 예원의 입술 새에서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그곳엔 은아와 예원, 민혁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존재하고 있었는데.
바로 다름 아닌 민혁의 열혈팬, 김지영이었다.
“어…….”
한때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우상을 실물로 영접한 지영은 망부석이라도 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보다 못한 예원이 툭 쳐주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정도로.
“아, 안녕하세요……. 예, 예원이 친구 김지영이라고 합니다…….”
“아, 예.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허억!
그 짧은 한 마디에 심장이 멈추기라도 한 듯 헛숨을 삼키기까지.
예원은 초조한 와중에도 웃겨 죽을 지경이었다.
살다 살다 김지영이 저러는 꼴을 다 본다.
“그, 그럼 이야기 나누세요……. 전 이만…….”
“그래, 이야기들 나눠. 우린 나가 있을게.”
멀뚱한 눈치의 은아가 지영을 대동하고 나가자, 대기실엔 마침내 두 사람만이 남았다.
잠시 뒤, 비로소 예원에게로 돌아선 민혁은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꼭,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예쁘네요, 오늘.”
올, 웬일로 저런 말을?
“영 딴 사람 같긴 하지만.”
……우씨, 그럼 그렇지.
“……감사합니다.”
칭찬을 할 거면 좀 제대로 해주든가!
어쨌든 온 말이 있으니 응당 가는 말도 있어야 하는 법이었지만, 그건 그냥 쿨하게 생략하기로 했다.
멋지다, 잘생겼다 따위의 말쯤이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본 남자일 것이기에.
“…….”
대신, 예원은 뻔한 질문 하나를 조심스레 건넸다.
“……우리, 잘할 수 있겠죠?”
오늘의 이 결혼식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결혼생활까지……
모두 다.
“그럼요. 나만 믿어요.”
식을 코앞에 앞두고 볼이 발갛게 상기된 예원과 달리, 그에게선 긴장하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연예인. 타고난 무대체질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건가.
“그 남잔, 온대요?”
……아, 전민혁.
잠시 생각하던 예원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모르겠어요.”
장기간의 고민 끝에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 애가 그걸 읽었는지, 답장을 보내긴 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심란한 마음에 그쪽으로는 절대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니까.
“안 와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들을 거 다 듣고, 볼 것도 다 봤을 테니까. 안 그런 척해도 아마 속이 말이 아닐 겁니다.”
……정말 그럴까?
겉으론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예원은 내심 의문이 들었다.
전민혁에게, 그리고 강세찬에게.
과연 일말의 후회라는 게 남아있을지…….
“…….”
이상하게 조용해진 걸 보니 또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모양이다.
민혁은 여자의 가녀린 양쪽 어깨를 쥐고 단호히 돌려세웠다.
그녀의 큰 눈이 한가득 그의 얼굴을 담았다.
“얼굴 펴요.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행복한 신부로 보여야 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하지.”
“…….”
“내가 기껏 계약한 보람이 없잖아요.”
부케와 짝을 맞춘, 라펄 모양의 부토니에를 가슴팍에 단 새신랑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자, 복잡해보이던 신부의 얼굴에도 그제야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때였다.
“저기…… 밖에서 어떤 분이 찾으시는데요…….”
다시금 나타난 지영이 쭈뼛대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 네. 갈게요.”
“…….”
“그럼, 좀 이따 식장에서 봐요.”
그가 성큼성큼 자리를 뜨자, 애써 맘을 가다듬은 예원은 제게로 다가서는 지영을 찍 흘겨보았다.
“넌 또 왜 왔어.”
“왜긴? 친구니까 오지. 지금 바깥에 사람들 쫙 깔렸어. 까딱 잘못하면 미아 될 판이라니까.”
그렇겠지. 그렇게 동네방네 광고를 해댔으니.
예원은 몰래 살짝 한숨을 쉬었다.
‘사진 찍을 때 비교나 안 되면 좋겠다. 보나마나 쭉쭉빵빵 연예인들이 한 무더기일 텐데.’
착잡한 듯 입술을 앙다무는 예원을, 지영은 왠지 모르게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긴장되지는 않아?”
“……긴장돼.”
말해 무엇 할까. 전국민을 상대로 펼치는 사기결혼을 하기 직전인데.
그런데 순간, 지영의 입가에는 마치 다 안다는 듯한 음흉한 미소가 띄워졌다.
“흐흐, 그렇겠지.”
“……뭐냐, 그 웃음은?”
“야, 너. 준비는 잘했지?”
“준비? 무슨 준비.”
“아, 그걸 몰라서 물어?”
팍 짜증을 내던 지영은 그녀의 귓가에 바짝 붙어선 작게 소곤거렸다.
“……‘첫날밤’이잖아, 오늘.”
“뭐?”
감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처, 처, 첫날밤이라니!
“뭐, 뭔 소리야 갑자기!”
“왜, 첫날밤 아니야? 벌써 두 번째 밤인가?”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세 번째?”
“……야!”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뭐, 뭐.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지영은 그런 예원을 웬 내숭이냐는 얼굴로 한껏 흘겼다.
“으유, 신통방통한 기집애. 전민혁이랑 헤어졌다구 그렇게 울고불고 할 때가 언젠데, 어떻게 또 민혁 씨 같은 남자랑 덜컥 결혼을 한다고…….”
“……‘민혁 씨’?”
지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엄연히 친구 남편인데, 언제까지 남처럼 현민혁, 현민혁 할 순 없잖아. 안 그래?”
“……으이그.”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결혼의 최대 수혜자는 김지영인 것만 같다.
“하여튼, 준비는 잘한 거지? 어?”
“……넌 자꾸 뭔 준비 타령이야!”
준비랄 게 있나.
어차피 신혼여행도 가까운 제주도겠다, 그냥 몸만 가서 푹 자고, 며칠 관광 좀 하다 돌아오면 되는걸.
게다가…….
“……만날 보던 남자라 별 감흥도 없고만.”
결정적으로, 그는 홍예원을 전혀 동하게 할 수 없는 남자이지 않은가.
매우 여러 가지 의미로.
“헐. 자랑 한 번 되게 참신하게 하네. 천하의 현민혁도 나한테는 별 거 아니다, 뭐 그런 거야?”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는…….”
지영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혀를 찼다.
“쯧쯧. 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러나 본데, 민혁 씨가 아이돌 시절에 지금보다 인기가 덜했던 게 뭣 때문이었는지 알아?”
“……뭐 때문이었는데?”
속삭이는 목소리가 한층 더 은밀해졌다.
“너~무 남자다우니까. 명색이 아이돌이니까 정재하처럼 좀 소년미도 있고 그랬어야 되는데, 민혁 씬 그때부터 아주 사나이 중에 사나이였던 거지. 시대를 앞서나간 짐승돌!”
“짐승……돌?”
어쩐지 그와는 영 안 어울리는 것 같은 단어 같으면서, 또 묘하게 수긍이 가는 면이 있었다.
‘하긴, 그때도 그 키랑 그 체격이었으면…… 짐승돌 소릴 들었을 법도 하네.’
“암튼…… 기대할게, 친구야?”
“……또 뭘?”
“뭐기는?”
지영의 손이 예원의 어깨를 척 짚었다.
“허니문 베이비, 알지?”
……무, 무슨 베이비?
“에이씨!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그 손을 팩 쳐낸 예원이 소리쳤다.
허니문 베이비는 얼어 죽을!
“쳇,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그러냐? 이제 좀 있음 유부녀 될 기집애가. 하여튼, 내가 널 위해 특별히! 결혼 선물을 넣어뒀으니까, 나중에 숙소 가서 짐 풀 때 꼭 열어봐. 알았지, 친구야?”
“……어?”
김지영이 주는 선물이라.
예원과 지영에게 ‘선물’이란, 각자의 생일 때에나 간혹 주고받는 희귀한 것이었다.
즉, 레어템 중에 레어템이란 소린데.
나 못지않은 짠순이 김지영이 갑자기 웬일일까.
‘뭐, 굳이 주겠다는 걸 사양할 필요는 없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면사포를 쓴 예원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 * *
화려한 네일아트를 한 손톱이 휴대폰 액정을 재빠르게 터치했다.
「배우 현민혁, 장가간다…… 오늘(xx일) 일반인 여성과 결혼」
꽤나 눈에 띄는 헤드라인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떠 있었다.
그것을 홀린 듯 클릭한 혜인은 곧바로 뜨는 기사의 내용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국민 남친’ 현민혁(31)이 품절남 대열에 합류한다.
현민혁은 오늘(xx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신영호텔 명륜관에서 가족과 친지, 지인들을 초대해, 일반인 여자친구와 비공개 웨딩마치를 올린다.
그는 앞서 지난 x월 일반인 여성과의 열애사실을 밝힌 바 있으며, 차근차근 사랑을 키워온 끝에 결국 소중한 결실을 맺게 됐다.
이날 결혼식은 공식 기자회견이나 포토타임 없이 비공개로 진행된다.
예비신부는 4살 연하의 일반인이며, 커피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미모의 재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결혼식의 사회와 축가는 현민혁과 같은 소속 그룹이었던 아이돌 그룹 ‘스톰’ 출신의 가수 정재하가, 주례는 드라마 <엄마라는 이름으로>에서 모자관계로 호흡을 맞춘 원로배우 채수진이 맡을 예정이다.
현민혁의 바쁜 스케줄 사정상 부부는 결혼식을 치른 뒤 제주도로 짧은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며, 신접살림은 현민혁이 기존에 거주하던 xx동의 한 주택에서 차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민혁은 지난 xx일 자신의 팬카페에 결혼 사실을 알리는 손편지를 올려 화제를 모았다.
현민혁은 지난 200x년 아이돌 그룹 '스톰'으로 데뷔한 이후 연기자로 전향해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또한 현민혁은 최근 종영한 MBS '못말리는 청혼' 촬영을 마친 후 휴식하며 결혼식을 준비했다.」
기사를 끝까지 다 읽은 혜인의 시선이 문득 ‘결혼식’이라는 단어에 끈덕지게 머물렀다.
폰을 쥔 아귀힘이 절로 느슨해졌다.
“…….”
현민혁이…… 결혼을 한다.
그토록 그녀에게 죽고 못 살던, 언제까지고 그녀만 그리워할 줄 알았던…….
그 현민혁이!
“……하.”
‘좋아하는 여자…… 최근에 생겼어.’
그땐 솔직히, 그냥 해본 소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거기서 한 술 더 떠 열애설이 났을 때도 그러려니 했었다. 그래봤자 얼마 가지도 않으리라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결혼은……
결혼은 그런 것들과는 영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 않은가!
‘혜인아, 난 너밖에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의심도 하지 말고.’
‘…….’
‘사랑해.’
‘……나두 사랑해, 민혁 씨.’
어느 새 까마득해진 기억.
한때 그는 세상에 여자라면 조혜인 단 하나뿐인 양 굴었었다.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한다 말하고, 영원을 약속했다.
현민혁은 분명히 조혜인을 사랑했다.
그녀의 기준에선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았던, 그 빌어먹을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
모든 걸 망쳐버린 게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인정하는 것이 도통 쉽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앞에선 더더욱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욕심을 꾹꾹 누르며 좀 더 먼 훗날을 기약했다. 어차피 그가 자신 외엔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거란 확신도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이런 식으로 선수를 치다니.
때를 기다려온 대가가 고작 이런 거라니!
“혜인 씨 다시 스탠바이 할게요!”
“……아, 네!”
혜인은 쓰레기 같은 텍스트들을 다시금 찌릿 노려보았다.
분노와 질투심이 화르륵 끓어올랐다.
‘두고 보라지, 어디.’
한순간 빛이 사라져버린 폰이 테이블 위로 툭 내팽개쳐졌다.
* * *
“그럼 지금부터, 신랑 현민혁 군과 신부 홍예원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재하의 씩씩한 목소리가 식장을 울렸다.
식장은 특이하게도 호텔 내부의 야외 장소였다.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결혼식을 고집한 민혁의 선택이었다.
“먼저, 신랑 입장!”
재하의 말과 함께 경쾌한 배경음이 깔리고.
주위의 환호에 싱긋 미소 짓던 민혁은 이내 살짝 긴장한 듯한 얼굴로 먼저 버진 로드를 걸었다.
“와아.”
“진짜 잘생기긴 잘생겼네.”
“저 다리 길이 좀 봐…….”
방금 막 드라마에서 톡 튀어나온 것 같은 새신랑의 모습에 하객들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리가 긴 탓인지, 걸음이 빠른 탓인지.
다음 순서는 무척이나 금방 돌아왔다.
“신부, 입장!”
흡. 부케를 든 예원이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몇 개월 전, 그녀가 설레며 꿈꾸었던 결혼식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지금 저 멀리 웨딩아치 앞에 선 남자도, 그녀가 생각한 남자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
어쨌든 이것도 자신의 선택이었다.
어떻게든 스스로 책임져야 할.
‘후…… 괜찮아, 할 수 있어’
용기를 낸 예원은 조심조심,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와아!”
분명 길이로는 얼마 되지 않을 길이 왜 이리 구만리처럼 느껴지는지.
제 몸에 꼭 맞춰 제작한 웨딩슈즈와 드레스는 또 왜 이리 불편한지.
진짜 결혼도 아닌데 이게 이렇게까지 떨릴 일인지 모르겠다.
콩닥콩닥 뛰어대는 심장의 소리가 5m 근방까지 들릴 것 같았다.
제대로 걷고 있기나 한 건지도 모를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예원은 버진 로드를 무사히 지나 남자의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
제게로 내밀어지는 큼지막한 손을 보며, 예원은 입술을 감쳐물었다.
웨딩장갑을 낀 손이 드디어 그의 손바닥과 부드럽게 맞닿았다.
“다음으로, 주례사가 있겠습니다. 오늘 예식의 주례를 맡아주신 분은 배우 채수진 선생님입니다. 모두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우렁찬 박수소리와 함께, 뒤편에서 눈에 띄게 마른 수진이 천천히 등장했다.
민혁과 예원이 한사코 부탁한 까닭에 할 수 없이 주례를 맡게 된 그녀는 좌중을 둘러보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뜻 깊은 날, 뜻 깊은 곳에서 여러분들을 모셔놓고 이 결혼식의 주례를 맡을 수 있음에 깊이 감사합니다. 직업이 배우인지라, 늘 남이 써준 글만 읽어왔습니다. 다소 부족한 주례사라도 부디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말주변이 없어서 길게도 못하거든요.”
능청스러운 멘트에 하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정말 중요한 당부만 담은, 무척이나 짧은 주례사를 마친 수진은 드디어 다짐 받듯 물었다.
“신랑 현민혁 군은, 신부 홍예원 양을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겠습니까?”
진지한 얼굴의 민혁이 수진을 보며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예.”
“신부 홍예원 양은, 신랑 현민혁 군을 남편으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겠습니까?”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예원 또한 곧 수진을 바라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네.”
수진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로써, 두 사람의 혼인이 원만히 이루어졌음을 엄숙히 선언하는 바입니다.”
다음 순서로 얼마 전 함께 손수 골랐던 결혼반지까지 교환하고 나자 예식은 비로소 끝이 났다.
하지만, 진정한 끝은 그것이 아니었다.
“키스해! 키스해!”
하객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하나같이 얄궂게 외쳐댔고, 두 사람은 대번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어, 어떡하죠?’
‘…….’
그냥 대충 하는 시늉만 하고 끝내야 하나?
한순간 머릿속이 하얘진 예원은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분명치 못한 시야에, 돌연 누군가의 얼굴이 잡혔다.
차분한 검은 머리, 하얀 얼굴. 어딘가 어두운 분위기.
멀찍이서 그녀를 씁쓸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전민혁의 얼굴이었다.
“……!”
눈이 마주치고, 예원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쟤가, 정말로 여기에 왔다고?’
일시에 정지된 사고회로.
바로 옆엔 함께 온 듯한 강세찬도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거라곤 오직 그.
전민혁의 얼굴뿐이었다.
“……?”
한편 민혁은 갑자기 굳어버린 여자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여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자마자,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뻔뻔하게 애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저 남자가, 이 여잘 매몰차게 버렸던 바로 그 남자라는 것을.
“신랑, 이대로 넘어갈 겁니까?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재하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하지만 신부는 계속해서 다른 남자를 쳐다보고 있고.
이제 곧 사람들이 수상하게 생각할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리고…….
“…….”
그 또한 이상하게 짜증이 일었다.
이제 막 남편이 된 남자의 앞에서, 다른 남자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
맘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꼴 보기 싫어.
“……홍예원 씨.”
민혁의 속삭임에, 그녀의 고개가 멍하니 그에게 돌아갔다.
“미안한데, 실례 좀 하죠.”
실례?
그녀가 그 말의 의미를 미처 헤아릴 틈도 없이, 민혁은 큼지막한 손으로 예원의 볼과 귀 언저리를 폭 감쌌다.
그 순간이었다.
“……!”
두 남녀의 입술이, 자석처럼 뜨겁게 맞물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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