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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4화 (4/102)

4화.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남자

2018.04.17.

[……전화하면 안 됩니까?]

중년 여자의 것이라 하기엔 너무나 굵직하고 감미로운 목소리.

예원의 손이 반사적으로 헙, 입을 가렸다.

사, 사장이잖아!

[현민혁입니다.]

‘……예, 알아요. 너무 잘 아니까, 그 이름은 제발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요.’

받아선 안 될 전화를 받아버렸다.

하지만 예원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대꾸했다.

“네, 사장님.”

[에덴에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아뇨, 아무 일 없습니다.”

[홍예원 씨도요?]

“……네, 그럼요.”

있어봐야 당신이 뭘 어쩔 수나 있냐고.

그녀는 착잡한 나머지 애꿎은 상대에게조차 마음이 삐뚤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 그나저나. 이제 뭐라고 해야 돼?’

며칠 전, 제가 술김에 저질렀던 만행을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녀였다.

‘그거 아세요? 전 사장님이 진짜, 진짜 싫어요! 세상에서 제일!’

……진심이었다.

진심은 진심이었는데, 그야말로 홧김이었다. 맨 정신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

결국 당분간은 몸을 사리고 일체 그를 피해 다니기로 작정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다 부질없어진 일이었다.

이제 남은 건, 혹시나 그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기대.

하지만 그것을 깨부수기라도 하듯, 나직한 남자의 물음이 곧장 그녀의 귓전을 때려왔다.

[……이제, 몸은 좀 괜찮습니까?]

“네?”

[술, 많이 마신 것 같던데.]

……젠장. 죽고 싶다.

“네, 뭐…… 덕분에…….”

[다행이네요.]

“…….”

[그냥 확인차 전화했습니다. 매장에 무슨 일 있으면 알려줘요. 조만간 갈 테니까. 그럼.]

뚝.

짧았던 통화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겼다.

예원은 최종 통화시간이 깜빡이고 있는 액정을 쫙 째려보았다.

‘아으, 싸가지.’

하여튼 지 할 말만 하고 끊는 덴 뭐 있다니까. 매번 이런 식이다, 매번.

‘뭐, 국민 남친? 국민 남친 좋아하시네. 하기야, 천하의 현민혁이 이렇게 지긋지긋한 인간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하겠지.’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선 문득 그를 처음 봤던 날이 휑 스쳐지나갔다.

‘인사해, 예원아. 여긴 내 조카 현민혁. 앞으로 내가 없는 1년 동안만 우리 카페 사장을 맡아줄 거야.’

‘반갑습니다. 현민혁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장님이었다. 그런데 그 사장님의 조카가 바로 ‘현민혁’이었다니!

처음엔 무슨 새 알바생을 소개하는 건 줄 알았다. 필요 이상으로 태연했던 두 남자의 태도 때문에.

남자가 그리 무뚝뚝하게 말해주지 않았어도 그 이름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그 남자를 모르면 간첩을 넘어 원시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얄궂게도 그는 남자친구였던 민혁과 성만 빼놓고는 동명이인이었고, 그렇기에 왠지 친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또 현민혁이 그냥 톱스타인가. 연예인에 무지한 편인 예원에게도, 그는 꽤나 신기한 존재였다.

……딱 처음 봤을 때까지는.

‘얜 커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 무작정 사업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뛰어든 거니까, 커피에 대한 부분은 예원이 네가 좀 많이 알려줘. 알았지?’

그 말에, 순간 그녀는 이렇게 대답할 뻔 했다.

‘……제가 왜요?’

하지만 예의바른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고, 윤 교수는 ‘예원아, 믿는다!’ 식의 망발을 던져놓고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아내와 함께 유학 가 있는 아들을 보러 간다며.

애초에 그녀가 이 카페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오로지 윤 교수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준 사람. 남몰래 키워왔던 꿈 대신, 또 다른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사람.

그런 교수님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무려 1년간 카페 일엔 손을 떼겠다니!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새 사장의 곁을 지켜주라니!

코가 꿰여도 단단히 꿰였지. 스물일곱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점장을 달게 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된 이상 그것은 막연히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예원은 그렇게, 졸지에 연예인 커피 꿈나무의 베이비시터가 되었다.

다만,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상반기 매출 분석자료, 상품별로 정리해 주세요.]

[재고목록 확실히 입력바랍니다. 디저트 폐기율도 정확히 계산해주시구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이윤 확충 방안도 좀 부탁합니다. 내가 직접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요구사항만 더럽게 많은 남자는, 이제 막 점장을 단 그녀를 들들 볶아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참깨처럼 들들.

“……아휴.”

참 여러모로 피곤한 삶이다, 홍예원. 너 어쩌다 이렇게 됐냐.

다시 한 번 자괴감을 느낀 그녀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던, 그때였다.

“사장님이죠!?”

어우 깜짝이야!

예원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야! 놀랐잖아!”

“맞죠, 사장님이죠?!”

갑작스레 사무실 문을 발칵 열어젖힌 채린이었다.

예원은 무척 마뜩잖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래, 맞아. 사장님이야.”

“우와. 사장님이 뭐라세요?”

“……그냥, 별 거 없었어.”

“진짜요? 언제 한 번 카페 안 오신대요?”

으이구, 결국 기대한 건 그거였구나.

“아니. 그런 얘긴 한 마디도 없으시던데.”

“아…….”

아직 어려서 그런가, 저렇게도 연예인에 관심이 많다.

시커먼 채린의 속이 현미경을 들이댄 것마냥 빤히 보였다.

“뭐가 그렇게 보고 싶어. 어차피 TV에서 만날 보는 얼굴이잖아.”

하지만 채린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댔다.

“그거랑은 다르죠! 실물은 TV보다 더더더더! 잘생겼대요. 기자들이 말하는 카메라빨 안 받는 연예인 1위라던데. 점장님은 실제로 보신 적도 있으시면서 모르세요?”

……글쎄.

그녀는 문득 젊은 사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위로 굴렸다.

뭐, 특출난 얼굴인 것 같긴 했다. 매끄럽고 흰 얼굴에 눈썹이 빼곡했고 그 밑의 눈매며 코, 입술까지 마치 그려놓기라도 한 듯 수려했으니까.

여느 남자답지 않게 좀 곱상한 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남성적인 매력이 없는 타입은 아니었다. 키도 크고 체구도 꽤 건장했다.

연예인은 연예인이라고, 확실히 전체적으로 눈에 띄는 남자이기는 했는데…….

그치만 같은 민혁이라도, 우리 민혁이가 훨씬 더 잘생겼…….

“점장님.”

“…….”

“점장님!”

“어?”

또 한 번 정신줄을 놓고 있던 예원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또 왜 멍을 때리고 그러세요, 수상하게시리.”

“……미안, 내가 생각할 거리가 좀 있어서.”

잠깐 긴장을 늦췄더니 또 이런다. 이제 이런 버릇은 좀 고쳐야 하는데…….

아무리 그런 일이 있었다 한들, 10년이란 세월을 한꺼번에 지워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 오죽 많아야지.

“저기요, 주문 안 받아요?”

“어! 손님 오셨나 보다.”

포스를 향해 부리나케 뛰어가는 채린의 모양을 바라보며, 예원은 답답한 숨을 뱉었다.

어쩐지 오늘도 한 잔 걸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한편 그 시각.

“빨리빨리 좀 움직여. 누구랑 그렇게 전화를 하냐?”

이제 막 민혁의 차에 합류한 매니저 성환이 물었다.

“점장.”

민혁은 어느새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긴 채 무심하게 대꾸했다.

“아, 그 카페 점장?”

“어.”

아아, 그렇군.

예의상 먼저 물어본 질문이었지만, 진짜 궁금한 건 어차피 따로 있었다.

“예쁘냐?”

……저 질문은 어째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어요.

“형은 그 뭐만 하면 예쁘냐고 물어보는 것 좀 고쳐. 예쁘면 형이 뭐 어쩌게.”

“자식.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지. 하여튼, 예쁘냐고.”

“뭐…….”

‘이쪽은 이번에 새로 점장이 된 홍예원 씨. 유능한 바리스타에다, 내 제자이기도 하지.’

‘……안녕하세요. 홍예원입니다.’

외삼촌인 정한에게서 그녀를 처음으로 소개받던 날. 못마땅하다는 듯 저를 올려다보던 여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앙큼할 것 같은데, 또 어떻게 보면 한없이 곰탱이일 것 같았던 얼굴. 딱 어떻다, 하고 설명하기엔 힘든 외모였다.

다만, 눈 하나는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유리구슬처럼 투명해서 반짝반짝 빛나던 눈동자가 이따금씩 생각날 때가 있었던 것이다.

평소엔 찍 소리도 못 하다가, 술의 힘을 빌려서야 제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여자를 생각하니 문득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뭐라고 했었지. ‘저는 사장님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했던가?

‘싫으면 싫은 거지, 제일 싫을 것까지야.’

퍽 유감이기는 해도,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더 이상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자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이고, 그건 카페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성환의 기준처럼 예쁘냐, 안 예쁘냐를 놓고만 본다면 분명 예쁜 축에 가까운 여자인 것 같다.

물론 그런 쪽으로는 아예 생각도 해본 적이 없지만.

“글쎄. 봐줄 만은 했던 것 같아.”

“오, 그래? 예쁜가 보네.”

오랜 기간 연예계에서 생활하며 출중한 외모들을 원체 많이 봐와서일까. 민혁은 다른 사람의 외모를 칭찬하는 데 아주 인색한 편이었다.

그런 그를 뻔히 아는 성환은 대충 알아서 필터링해 듣곤 했다. 민혁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보통 수준은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그 사장 노릇이라는 건 좀 할 만하냐?”

사장 노릇이라.

그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픽 웃었다.

“‘이 짓’보다는 백번 낫지.”

잊을 만 하면 나오는 특유의 염세적인 말투에, 성환의 눈이 룸미러를 통해 그를 넌지시 힐끔거렸다.

“에이, 또 왜 그러냐. 네가 ‘이 짓’ 해주는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밥 벌어먹고 사는데. 나도 그렇고.”

“…….”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건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쪽으로 아예 나앉는 건 좀 곤란하다. 알지?”

대꾸할 필요도 없는 너스레.

민혁은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저번에 내가 부탁한 건. 아직도 별 소식 없어?”

그러자, 빙글거리던 성환의 얼굴엔 금세 허탈함이 떠올랐다.

아무리 단서가 부족하기로서니, 사람 하날 수소문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어. 어찌나 꽁꽁 숨겨놨는지, 영 찾기가 힘들다 야. 일단 계속 정보 받고는 있는데, 안 되면 좀 더 밑에서 찾아보려고. 너희 아버지 정도면 아예 저 멀리 지방으로 보내버렸을 수도 있잖아.”

……그래,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양반이지.

“그럴 수도 있겠네.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해. 무리하지 말고.”

“알았다. 걱정 마.”

“그건 그렇고, 차기작 얘기는 들은 거 없어?”

“……어?”

“저번에 정대웅 감독 영화 얘기 나왔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됐어.”

“……아, 그거.”

갑작스레 말수가 적어진 것이 어째 성환답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 민혁의 눈썹은 곧바로 치켜 올라갔다.

“왜, 잘 안 됐어?”

“……아, 그게…….”

에잇, 모르겠다.

잠시 뜸을 들이던 성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 기분 나빠하진 말고 들어. 알았지?”

“…….”

“최종 후보까진 들었다고 하는데, 마지막에 가서 정 감독이 고심 끝에 고사했대.”

뭐라고?

저도 모르게 속으로 반문한 그는 미간에 빠직 주름을 세웠다.

고심을 했든 어쨌든, 요지는 제가 까였단 것 아닌가.

성환 딴에는 신경 쓴답시고 포장한 거였겠지만, 그는 그것이 그저 고깝게만 들렸다.

근데, 왜일까.

“왜. 뭐 때문에.”

내가 뭐가 부족해서. 연기력이나 외모는 물론이고, 이만하면 티켓파워도 괜찮은 편인데.

물론 아직은 드라마 판에서 주로 선호하는 축이긴 하지만, 그 감독은 분명 그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폴폴 풍겼었다.

그 덕에 영화에는 별 생각이 없던 그도 내심 욕심을 냈고, 당연히 긍정적인 결과가 들려오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뭐긴 뭐겠냐.”

모든 전말을 알고 있는 성환에게서는 그저 나직한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또, 그 게이니 뭐니 하는 개소문 때문이지.”

그 순간, 잘 유지하고 있던 그의 포커페이스는 단숨에 깨지고 말았다.

“……뭐?”

성환이 착잡한 듯 설명했다.

“알잖아, 너도. 널 둘러싼 소문이 어떤지.”

“…….”

“대충 들은 얘기론 그래. 마스크도 좋고 연기도 좋고 다 좋은데, 그 소문이 자꾸만 걸렸댄다. 기왕이면 잡음 없는 배우 쓰고 싶다고…… 그리고 이번 작품은 특히 정 감독이 칼을 갈고 나온 작품이라, 그런 곁가지들 없이 작품 그 자체로만 주목받고 싶다 그러는 것 같더라고.”

“…….”

“하도 어이가 없어서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물어보니까 얘기해주는 거야.”

……그래서 내가 까였다고?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민혁의 멀끔한 얼굴에는 한순간 낭패가 어렸다.

게이 소문. 그것은 스톰 시절 때부터 민혁을 끈질기게 따라다닌 악질 루머들 중 하나였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꽤나 오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열정만 가득하고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몇 년 전, 그는 그것이 불러올 파장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 퀴어 영화 한 편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수위가 높지도 않았고, 그 나름의 작품성도 인정받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도 했으며, 주목도 많이 받은 영화였다.

장르 특성상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가 지금의 톱스타 반열에 오르는 데 꽤 큰 기여를 한 작품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문제는 애석하게도, 그를 기점으로 그가 게이라는 소문이 이 바닥에 파다하게 퍼졌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금방 수그러들 소문이라고 생각해 안일하게 여겼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유명 게이 커뮤니티에서 실시된 인기투표에서 그가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기현상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순조롭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그의 평소 행동패턴이었다.

민혁은 평소 여자연예인들과의 친분이 전혀 없었다. 그가 만나고 다니는 사람들은 오로지 남자들 뿐.

‘스톰’의 같은 멤버였던 절친 재하와의 관계도 그 루머에 단단한 한 몫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따라붙는 대표적인 수식어 중 하나는 ‘여배우 보기를 돌 같이 하는 배우’였다.

애정신을 찍는 데는 딱히 문제가 없지만, 그와 별개로 메이킹 영상이나 제작발표회 같은 데서 하는 행동들을 볼 때는 그만한 철벽남이 절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대세 연예인이라면 다들 한 번씩은 나본다는 열애설도 그에게만은 전무했다. 되레 작품에 함께 출연한 남자배우들과 엮여 ‘브로맨스’ 타령만 수도 없이 들었을 뿐.

다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늘 당당했다. 사실이 아니니까. 피곤하게 그런 루머에 일일이 대응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성환의 말을 들은 그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그냥 무시해버릴 헛소문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다하다 이젠 커리어와 직결되는 캐스팅에서까지 까이다니.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하아.”

도대체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그런 민혁의 심경을 매니저인 성환이 모를 리 없었다. 가장 가까이서 그를 지켜 본 세월만 몇 년이었던가. 아무리 헛소문이라지만 이쯤 되면 가만히 보고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저, 민혁아.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그 소문 좀 어떻게 처리해야 되지 않겠냐?”

그라고 왜 바로잡고 싶지 않을까. 무엇보다 제일 억울한 건 당사자인 민혁 본인이었다.

하지만, 바로잡고 싶어도 방법이 없는 것을.

“……내가 뭘 어떻게 하라고. 기자회견이라도 열어?”

이런 분위기라면, 만에 하나 기자회견을 연다 해도 사람들은 그가 헛소문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커밍아웃’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착잡해진 그에게, 성환은 뭔가 묘안이 있는 듯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직빵인 방법이 하나 있지.”

“직빵?”

말하는 투를 봐선 어딘가 석연찮은데, 그래도 어디 속는 셈치고 들어나 볼까.

민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게 뭔데.”

옳다구나.

그를 힐끔 돌아본 성환은 씩 웃었고, 민혁은 그 미소에서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괜찮은 여자 하나 물어서 공개 연애해라. 최대한 시일 내로 빨리.”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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