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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화 〉71국 - 너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73/75)



〈 73화 〉71국 - 너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오랜만에기원에 온 신세연의 기분이 굉장히 좋지 못한 것 같아 정도찬은 슬금슬금 신세연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얘는 왜 이렇게 화나 있는 거지?’

자신을 보고도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신세연 분노의 5단계  2단계인 소노(小怒) 상태인 것 같은데 대체  때문에 저러는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도찬 자신이 딱히 뭐 잘못한 건 없는데?

정도찬이 난 아무런 잘못 없다는 듯 신세연을 빤히 쳐다보고 있지 신세연이 살짝 이를 악물었다.

반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중노(中怒)였다!

이 상태의 신세연은 아직은 통제를 잘 하고 있어 신경만 건들지 않는다면 별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법.

그 위험은 보통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세연의 중노를 목격한 사람은 각자 살아남기 위한 신체와 전문기술의 단련이 필수불가결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신세연과 가장 오래 알고 지내온 정도찬 역시 신세연의 화를 풀 전문지식과 자격, 돌발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 훈련, CQC등을 숙지하며 활동하고 있었다.

정도찬은 조심스럽게 신세연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는 열심히 머리를 세팅한 신세연의 짜증을 돋굴 가능성이 컸기에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다.

“왜 이렇게 화가 났어? 괜찮아?”

한순간 긴장감이 흘렀다.

이 타이밍에 고개를  돌리면 대노(大怒)에 진입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뜻이고, 그게 아니라면….

신세연은 괜히 정도찬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됐어!”

‘말했다!’

정도찬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시 입을 열었다는 것은 극소노(極小怒) 상태에 진입했다는 뜻이었고, 이는 신세연의 분노가 거의 풀렸음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난관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말 안 했어?”
“......?”

정도찬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쳐다보자 신세연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신생팀 팀장 한다며?”
“어…. GSG팀.”
“왜 나한테  안 했어?”
“해야…. 되나?”

정도찬은 순간 자신의 발언을 후회했다.

정도찬의 말을 들은 신세연이 다시 이를 악물었기 때문이었다.

정도찬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는 지명 당하는 입장이 아니라 지명을 하는 입장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각한 거지.”

갑조리그는 아니지만, 신세연 역시 여자바둑리그의 6개   하나를 책임지는 팀장.

아무리 여자바둑리그가 갑조리그에 비해 저평가받고 있다지만, 그래도 팀장은 팀장이다.

용 꼬리보다는 뱀 머리라고, 경력 적인 면에서 갑조리그의 팀원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여자바둑리그의 팀장으로 활동하는 것이 더 좋았으니.

정도찬은 굳이 신세연에게 자신의 팀 이야기를 꺼내서 고민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정도찬이라고 자신의 팀에 친구들을 넣고 싶지 않았겠는가?

누구보다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냥 미친 척하고 해버릴까 고민마저 했던 게 정도찬이었다.

그러나 이재영도, 정휘운도, 일찌감치 다른 팀들과의 합의 하에 다음 시즌 팀을 정한 상태였고, 신세연은 아예 한 팀의 팀장이었으니….

정도찬은 자신의 팀에 친구들을 넣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도  한 것이다.

신세연은 신세연 나름대로 이런 정도찬의 태도가섭섭했다.

‘말 정도는 해줄  있었잖아.’

당연히 이번 시즌부터 같은 팀으로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신세연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정도찬보다 바둑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그녀였으니 모르는 게 이상하지.

그래도 신세연은 정도찬이 혼자서 ‘내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어 ;ㅅ;’라며 혼자 고민하고 혼자 걱정하는 게 아닌.

‘거 이번 시즌은 일이 이렇게 되어 어쩔 수 없으니 다음 시즌에 잘 해 보자!’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해주길바랐다.

그래, 그저 단순하게 한마디만 해 줬으면 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그리고 사실 신세연이 화내는 이유는 그것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윤서 걔도 같은 팀이라며?”
“어?”

예상치 못한 신세연의 말에 정도찬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떻게  거야?’

정도찬은 아직 자신이 하윤서를 지명하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히든카드라는 것은 숨겨져 있을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명식 날,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하윤서를 지명할 생각이었는데 자신과 팀원들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없는 걸 신세연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혹시팀 내부에 정보를 유출하고 있는 사람이 있나?

정도찬은 자신이 팀원들 앞에서 입조심을 해야 하는 건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지만, 이내 자신이 잘못 짚었음을 깨달았다.

“역시…. 그  영입하려고 주소 물어본 거였구나?”

그러고 보니까 정도찬은 하윤서를 설득하러 갈 때 신세연에게 집 주소를 물어봤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정도찬의 주변 사람  하윤서와 가장 사이가 나쁜 신세연만이 하윤서의 집 주소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냥 떠본 거였어?’

이걸 팀원 중 입이 가벼운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라고해야 할까.

아니면 신세연의 유도신문에 걸린 것이니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정도찬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무리 정도찬이 눈치가 없다고는 하지만, 신세연과 하윤서의 사이가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윤서는….”
“뭐? 윤서? 하윤서 초단도 아니고  사범도 아니고 윤서? 언제부터 그렇게 둘이 친해졌데?”
“그런  아니라 이제 같은 팀이니까 조금 편하게 대하기로한 거야.”
“아 그래? 그럼 난 다른 팀이니까 앞으로  사범이라고 부르겠네?”

정도찬은 그제야 자신이 지금까지   번도 신세연과의 말싸움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이대로라면 결국 무한 갈굼의 굴레에 갇히고 말 터!

정도찬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많이 화난 것처럼 보여도 우선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까지 화나지는 않았다는 신호였다.

그러니까 결국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면 금방 화를 풀어주리라.

“뭐야 왜 대답이 없어? 앞으로 진짜 신 사범이라고 부르겠다는 거야?”
“세연아.”
“왜.”
“내가 그래도 너 많이 좋아하는거 알지?”
“-----------!”

신세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런 말을 듣고 착각하기에는 신세연이 정도찬을 경험해온 나날이 너무 길었다.

‘어차피 친구로서 좋아한다. 뭐 이런 말이겠지.’

모 게임에서 나오는 교관 캐릭터가 애초에 기대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거라고 했던가.

정도찬이라는 사람을 20년 동안이나 봐온 신세연은 이제 정도찬 쪽에서 무엇인가를 할 거라는 기대를 깔끔하게 접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못 이기겠다….’

남녀 간의 사적인 감정이 전혀 담겨있지 않은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도찬의 말이 계속 신세연의 마음을 간지럽혔기에 더는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신세연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꼭 말해줘, 알았지?”
“알았어.”

역시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정도찬을 보며 신세연은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화를 낼 기력조차 남아있지않았다.

#

TH 배 전국 기전의 결승전에서 정도찬과 맞붙게 된 고우선 협회 9단은 대기실에서 정도찬을 마주치자마자 외쳤다.

“와! 연예인이다!”
“......?”
“안녕하십니까! 돌잡이로 바둑판을 잡은 모태 바둑 기사 고우선입니닷!”
“안…. 녕하세요. 정도찬입니다.”

전국 기전의 결승까지 진출한 상대이니 진중하고 조용한 스타일의 바둑 기사라고 생각했는데.

‘카메라 속에서 보던 실력자는 어디 가고 이런 까불이가 왔지?’

“정 사범님 4강에서 초속기바둑 두는 거 엄청 멋있었어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빨리 두면서 실수가 그렇게 적어요?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그렇게….”

그리고 엄청 시끄러웠다!

정도찬은쉴 새 없이 나불대는  지옥의 주둥아리를 일단 멈출 필요성을 느꼈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넵!”

다행히도 말이 아예 안 통하는 녀석은 아니었던 건지, 정도찬이 천천히 이야기할 것을 요구하자 고우선의 말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리고 그제야 정도찬은 고우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와! 연예인이다!”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결국, 정도찬은 사전인터뷰 시작 전 대기시간 내내 고우선에게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정도찬은 결심했다.

대가리가 깨져도 1지명은 차윤석을 뽑아올 것이라고.

혹시 차윤석을  AT에게 빼앗기더라도 고우선은 절대로  데려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물론 정도찬의 생각대로 될지는 가 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TH 배 전국 기전의 결승전 5번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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