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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화 〉70국 - 짜임새 (72/75)



〈 72화 〉70국 - 짜임새

생계형 프로바둑기사 신재윤 6단은 자신에게  행운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팀이 생긴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혹시?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덜컥 갑조리그에 합류해 버릴 줄이야?

신재윤은 고민하고  고민했다.

‘왜 나지?’

정말 뜬금없는 합류 제의였다.

6단 승단 이후로 바둑 학원이나 알아보고 있던 자신에게 다짜고짜 ‘저희 팀에 오실 생각 없냐?’니

처음에는 신종 사기는 아닐까 의심했지만, 그 정도찬이 자신에게 사기를 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신재윤은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정도찬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현재까지 확정된 팀 GSG의 4명이 처음으로 모이는 날인 오늘.

‘대체  나지?’

팀원들의 면면을 본 신재윤의 고뇌가  깊어졌다!

“아,우리 초면이죠? 유진화입니다.”

‘우와 유명한 사람이다.’

아니 유명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유진화가 특별 승단 없이 승단 점수만으로 9단에올랐다는 건  알려진 사실.

비록 9단이  이후에는 리그에서 미끄러졌지만, 사실 9단이 될 때까지 버틴 것 자체가 그의 실력을 증명했다.

‘내가 이 사람이랑 같은 팀이라고?’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신재윤은 유진화를 앞에 두고 한참을 멍청히 있었다.

그런 신재윤의 모습이 이상해 유진화는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신 사범님?”
“시, 신재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말씀도 편하게 해주세요!”
“아…. 네….”

유진화는 미심쩍다는 듯 신재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는 신재윤은 그저 신기한 듯 기원 안쪽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신재윤의 눈에 기원 가장자리조금 구석진 곳에 바둑고의 교복을 입은 부스스한 머리의 소녀가 엎드려 자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누구지?’

정도찬이 분명 기원 자체는 휴업한다고 말했으니 단순한 손님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는 건 혹시….

‘저 애도 우리 팀인가?’

뭔가…. 뭔가…. 조합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도찬이야 요즘 바둑 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사고, 유진화도 오랜 시간 동안 갑조리그에서 실력을 증명해온 실력자이다.

그런데 이 둘이 있는 팀에 바둑고 다니는 여자애와 갑조리그는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자신을 넣는다고?

‘도대체  나지?’

신재윤은 혼란에 빠졌다!

그런 그를 2층에서  내려온 정도찬이 반겼다.

“신 사범님! 어서 오세요.”
“아, 팀장님. 오늘은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이제 한 팀인걸요.”

‘한 팀….’

그러니까 신재윤 자신이 팀원이 맞긴 맞다는 말인데….

‘아니 그러니까 왜 나냐고.’

이런 의문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신재윤은 간신히 삼키는 것에 성공했다.

어떻게 얻은 갑조리그 합류 기회인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윤서야! 이제 다 모였으니까 일어나!”
“우으으으음…. 아빠? 5분만 더 잘래요….”

‘아빠?’

정도찬한테 고등학생 딸이 있다고?

정도찬이 스물여섯 살 아니었나?

그럼 대체 몇 살에 사고를….

잠시 나이를 계산해본 신재윤은 정도찬이 아무리 느려도 8살에는 사고를 쳐야 고등학생 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히이익!’

얼굴값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경악한 표정으로 정도찬을 바라보는 신재윤에게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유진화가 말했다.

“팀장님이 설마 초등학생 때 애를 가졌으려고? 그냥 잠꼬대겠지.”
“아….”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이해했다.

“죄송합니다. 윤서 얘가 새벽 4시부터 와서 이러고 있었거든요.”
“새벽 4시요?”

신재윤은 자신도 모르게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오전 11시 정각이었다.

“아니, 대체 왜 그런 짓을?”
“그러게요….”

정도찬과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었던 하윤서의 마음은 오늘도 이렇게 전해지지 못했다.

애초에 바둑 외길만 걸어온 사람들 세 명이 모인 순간 실패한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신재윤의 정신이 조금 돌아온  같자 정도찬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제가 대체  살에 사고를 치워야 윤서만 한 딸이 생기는 거예요?”
“여…. 여덟 살?”
“세상에….”

정도찬은 끔찍하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모습을 보던 유진화는 신재윤을 살짝 타박하듯 말했다.

“아무리 얼굴값이라고는 하지만 여덟 살은 좀 심했네.”
“역시 그렇지요?”

그래….아무리 정도찬이라도 말이 되는  있고  되는 게 있는 법이다.

신재윤이 정도찬에게 사과를 건네려는 순간.

“스승님!”

김수정이 두 손에 간식거리를 한 아름 들고 도도도도 달려왔다.

그 손에 들려있는 간식의 양을 보고 놀란 정도찬이 물었다.

“이게 다 뭐야?”

김수정은 자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수정이 까까 재단에서 주는 거라던데요?”
“그, 그래?”

‘수정이 까까 재단? 그게 뭐지? 수정이 팬클럽 같은 건가?’

정도찬은 의문에 빠졌지만, 김수정은 마냥 좋은 듯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히히, 애들이랑 나눠먹어야징.”
“그래, 잘 다녀와.”

‘뭐…. 수정이가 좋아하면 됐나?’

김수정은 양손에 과자를 잔뜩  채로 기원 밖으로 도도도도 달려나갔다.

그나저나 수정이 까까 재단은뭐였을까.

거대한 의문이 들었으나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저 정도면 몇 살 때쯤 보십니까.”
“고등학생  사고  거면 시기상으로 맞긴 하는데 말이지….”

유진화와 신재윤이 정도찬을 보며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며 정도찬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저런 이야기까지 하는 거 보면 둘이  친해진 것 같긴 한데…. 정말 좋은 거 맞나?

정도찬은 의심의 여지 없이깔끔하고단호하게 대답했다.

“제자입니다.”
“아.”
“아하.”

‘그러고 보니까 윤서도 수정이 처음 봤을 때 내 딸로 오해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정도찬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사고치고 다닐것 같은 이미지인가?’

아니 세상에 정도찬 자신만큼 바둑만 보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자리에 있는 전원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이곳에서 그나마 가장 연장자인 유진화가 분위기를 정리했다.

“자, 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진지한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정도찬은 아직도 구석에서 졸고 있는 하윤서를 흔들어 깨웠다.

“아…. 도찬 오빠,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 참 좋은 아침이다.”

 팀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자신이 모은 팀원들이었지만 정말 이 팀으로 괜찮을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 정도찬이었다.

#

팀 GSG의 네 사람은 서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바로 대국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프로였으니 자기소개에 긴말이 필요하진 않았다.

3명의 팀원과 각자 한 번씩 대국을 마친 유진화는 이 팀이 생각보다 짜임새가 있는 팀이라는 것을 느꼈다.

‘대책 없이 아무나 주워온 건 아니었군.’

우선 정도찬.

정도찬은 애초에 필터링 없이 말을 하는 것이 문제인 인간이었지, 바둑 실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당장 TH 배 전국 기전이라는 메이저 기전에서 결승을 앞둔 사람이 아닌가.

하윤서. 종잡을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였다.

인공지능의 수는 항상 무시하지만,  누구보다 인공지능을  파악하고 있는 모순을 보여주는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어쩌면 인공지능만 보고 자란 젊은 기사들의 천적으로 군림할지도 모르는 바둑기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재윤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는  가장 큰 반전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서 이런 듣보잡을 데리고 왔나 싶고 하는 행동도 어리바리한 게 마음에 안 들기도 했는데. 반상 위에서 성격이 바뀌는 타입의 바둑기사였을 줄이야.

어리바리한 성격과는 다른 상대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짜증 나게 만드는 끈적끈적하고 처절한  바둑은 아직 조잡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가 6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훌륭했다.

본인의 말로는 얼마 전 TH 배 예선전에서 마음가짐에 변화를 주는 상대를 만났다고 했는데, 그런 계기가 있었을지언정 결국 본인이 준비되어 있기에 변할 수 있는 것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9단 치고는 아쉽지만, 그래도 승률 반타작은 해  수 있는 나까지.’

결국, 바둑 리그는 3승을 거두는 쪽이 이긴다.

팀장이야 마지막 대국인 대장전 고정이고, 정도찬의 실력이라면 아무리 망해도 반타작은 해 줄 터.

팀원 중 확실한 원투펀치만 있다면 1위를 노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결국, 1지명으로 누구를 데려오느냐가 핵심이겠네요.”

지금 사용 중인 포인트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정도찬에게 4포인트를 준다고 해도 20포인트.

무려 15포인트가 남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명만 더 뽑으면 되는데 15포인트 남은 건 백지수표나 다름없습니다.”

신생팀 특전으로 지명 순번을 고를 수 있으니, 가위바위보에서 진다는 최악의 상황에도 두 번째로 지명을  수 있다.

원하는 사람 둘을 점찍어놓으면 하나는 확실하게 데려올 수 있는 상황이다.

정도찬도 당연히 바보가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는 점찍어두고 있었다.

“차윤석 9단 아니면…. 고우선 9단 둘 중 한 명 데려오죠.”

8강에서 만났던 이번 대회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상대와.

이번 결승에서 만날 상대.

둘 중  명이 마지막 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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