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28국 - 사제동행전 (29/75)



〈 29화 〉28국 - 사제동행전

[정도찬 초단, 하윤서 초단, 스캔들 ‘사실무근’]

[초단 대회 스캔들 정말 단순한 해프닝인가?]

[정도찬 초단, 초단 대회 우승 특별 승단 제도에 따라 승단.]

[정도찬 2단 드디어 입을 열다. ‘우린 단순한 오빠 동생 사이’]

초단 대회 결승 당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기억나는 건 세연이의 차를 얻어타 몰래 대회장에 들어가 결승 대국을 치렀지만, 대국 이후의 인터뷰는 피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내 우승은 뒷전이고 하윤서에 대한 질문만 죽어라 하는 기자들에게 ‘오해가 있었다.’ ‘사실이 아니다.’ 같은 말만 계속 앵무새처럼 되풀이했었지.

하윤서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그 애랑 같이 인터뷰를 했으면 대체 무슨 말을 했을지….

어쨌든 그렇게  초단 대회 우승은 스캔들의 여파 때문에 금방 잊혀버렸다.

나름 첫 대회 우승인데 묻혀서 아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스캔들로 인지도를 더 챙겼으니까 좋아해야 하는 걸까.

인터넷 기사들을 보며 팬들의 반응을 살피던 나는 복잡한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결국, 앞으로 내가 잘 처신하면 될 일이었으니….

“하아….”

그래도 역시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기사들을 읽으며 한숨을 내쉬자 수정이가 스마트폰을 몰래 훔쳐보더니 물었다.

“스승님 진짜 결혼해요?”

너까지 그러면 어떻게 해….

나는 살짝 현기증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런  아니란다.”
“저는 세연 언니가 좋아요!”
“그래…. 둘이 예쁜 사랑 하렴.”
“......?”

그러고 보니까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연이를 신 사범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었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둘이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갑자기 왜 세연이를 친근하게 부르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누군가 싶어서 확인해보니 의외로 전화를 건 사람은 한세빛 국수였다.

한세빛 국수가 의외로 이런 스캔들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

요즘 하도 스캔들의 사실 여부를 물어보는 전화가 많아서 귀찮았지만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세빛 국수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정도찬입니다.”
-아! 정 사범 우승했다는 소식 들었네.
“국수님이 직접 축하해주시니 이제야 우승했다는 실감이 나네요.”
-거 참…. 내가 다 무안해질 정도로 금칠을 해주는구먼.

한세빛 국수는 내가 입단을 한 이후부터 나를  사범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아직 사범 소리 듣기는 부끄러웠다.

그냥 정 프로라고 불러주면 안 되나.

나는 조심스럽게 한세빛 국수가 전화한 용건을 물었다.

“그런데 혹시 무슨 일로 전화 주신 건가요?”
-초단 대회 우승한 거 축하도 해주고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했네.
“아, 혹시스캔들 말씀하시는 거면….”

내 말에 한세빛 국수가 잠시 웃더니 말을 이었다.

-역시 여기저기서 시달리고 있나 보군, 하긴 요즘 떠들썩하긴 했지, 개인적으로 나도 궁금하긴 한데 일단 지금은 그걸 물어보고 싶은  아니라네.
“그, 그러신가요…. 그럼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내가 얼마 전에 페어 바둑 대회에 초청받았는데 혹시 자네도 나갈 생각이 있나 해서 전화해봤지.
“페어 바둑이요?”

페어 바둑은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단위로 승부를 겨루는 조금 특별한 대국이다.

네 명의 선수가 한 수씩 돌아가면서 두는데 팀원끼리의 대화가 금지되어있어 같은 팀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이 페어 바둑의 핵심이었다.

당장 작년 페어 바둑 세계기전만해도 호흡이 잘 맞는 6단 두 명이 짠 팀이 9단 팀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었으니까.

문제는 이 ‘페어’는 남녀 바둑기사가 함께하는 게 보통이라는 점이었다.

“그…. 혹시 저랑 국수님이랑 팀을 짜는 건 아니죠?”

내 말에 한세빛 국수는 한참을 웃더니 대답했다.

-그건 그거 나름대로 재밌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아니라네, 조금 특별한 기전이거든.

이 시기에 페어 바둑 기전, 그것도 특별한 기전이 뭐가 있었지.

생각이  듯 말 듯  답답하던찰나 한세빛 국수가 내 답답함을 해소해줬다.

-사제동행전. 이번에 루아랑 팀을 짜서 나갈 생각인데 자네랑 수정이는 나가  생각 있나?

사제동행전 약칭 사제전, 스승과 제자가 페어를 이루는  년에 한 번 있는 이벤트성 기전이었다.

콘셉트 자체는 독특하지만, 장점이라고는 그것뿐인 흔한 이벤트 기전이지만 한세빛 국수가 참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수정이에게도 좋은 이야기였기에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기회였고.

나는 잠시 핸드폰의 수화기 부분을 막고 수정이에게 물었다.

“수정아 페어 바둑기전 나가고 싶어?”
“네!”

즉답이었다.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한세빛 국수의 제안을 수락했다.

“저야 기회가 된다면 당연히 나가고 싶죠.”
-휴우….

내가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자 한세빛 국수는 어째서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게 생각해줘서 고맙네, 사실 며칠 전부터 루아가 계속 수정이랑….

잠시 의미불명의 괴상한 비명이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루아의 목소리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제... 언제! 그...어요!!
-루아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희미하게 들리는소리를 들어보니 루아가 한세빛 국수에게 계속 뭔가를 따지고 있는 듯했다.

한세빛 국수가 고생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수정이가 얌전한 편이라 정말 다행이다.

나는 다시 한번 수화기 부분을 막고 수정이에게 말했다.

“수정아 네가  제자라서  다행인 것 같아.”
“저도 스승님이  스승님이라서 좋아요!”

역시 내 제자는 천사야.

요즘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많이 신경을  써주고 있는데 미안할 따름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잠시 수정이를 쓰다듬어주고 있자 전화 너머의 소란이 멎었다.

-크흠, 미안하네, 잠시 소란이 있어서….
“고생하십니다….”
-하아….

예전에도 이거랑 비슷한 대화를  적이 있는  같은데 착각인가?

-그럼 일단 참가하는 거로 알고 있겠네.
“네, 감사합니다.”

나와한세빛 국수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나저나 페어 바둑이라…. 나도 페어 바둑은 경험이 없는데 어쩌지?

한세빛 국수가 출전하는 기전이라면  주목을 받을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수는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휘운이와 재영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둘은 가끔 자기들 여자친구랑 페어 바둑 기전에 출전했기 때문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망할,  자식들이 틈만 나면 스캔들로 놀리려고 들어서 당분간 피해 다닐 생각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애들 아니면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벌써 머리가 아파지는 느낌이었다.

*-*-*

그날 저녁, 조용하던 집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중간에 만난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같이 온 것인지….

함께 우리 집에 들어온 휘운이와 재영이는 아니나 다를까 나를 보자마자 놀리기 시작했다.

먼저 휘운이가 손으로 쌍권총을 만들며 나를 가리키며 선빵을 날렸다.

“오오오오오오오올~~~”
“닥쳐.”
“정도찬이 싸라있네~ 결혼 상대가 열아홉 살이면 대체 몇 살 연하야? 여섯 살?”
“안 그래도 심란하니까 닥치라고 좀….”
“철컹철컹!”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당하니 더 빡친다.

옆에서 가만히 그 꼴을 구경하던 재영이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검은색 상자를 꺼내서 내게 건넸다.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집에서 가져왔는데 너 해라.”
“......?”

불안함이 느껴졌지만, 내용물이 궁금해 정체불명의 검은색 상자를 열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유려한 곡선,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광채.

심지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였다.

상자의 내용물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은팔찌야!’

“미친놈아!”

나는 바로 상자를 닫아 재영이에게 집어 던졌고, 재영이는 잽싸게 상자를 낚아채며 말했다.

“아니 이게 얼마짜린데.”

옆에서 같이 내용물을 구경한 휘운이가 아쉽다는  말했다.

“쓰읍…. 나도 발찌 같은 걸 사 올걸 그랬나?”

 새끼는 한술 더 뜨네.

슬슬 이 둘을 부른  맞는 선택인지 내 판단에 의문을 가져야 할 시간은 아닐까.

나는 이를 악물며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둘 중 누구라도  번만 걸려라.

제발.

밖이 소란스러워져 무슨 일인지 궁금했던 수정이가 방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둘은 드디어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영이가 물었다.

“수정이랑 사제전 나간다며?”
“어, 그런데 난 페어 바둑 경험이 없잖아.”
“쓰읍…. 나도 그냥 데이트 삼아서 나간 거라 잘 아는 건 아닌데.”
“그래도 경험이 있는 게 어디냐.”

옆에서 가만히 듣던 휘운이 입을 열었다.

“생각하는것보다 더 어려울걸? 나랑  여자친구는 페어 바둑 출전한 날에 싸울뻔했어.”
“너희 둘 사이 좋지 않냐?”
“사이는 좋지, 그런데 막상 같이 두면 서로 답답한 걸 어쩌라고.”

휘운이는 지금 생각해도 답답하다는 듯 열변을 토했다.

“서로 기풍이 다른 사람 둘이 같이 출전하면 그건 재앙이야 파트너가 무슨 생각으로 이 수를 둔건지 종일 고민하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다니까.”

재영이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특히 서로 대화를  한다는 게 제일 답답해, 무슨 생각인지 이해를 못 하는 건 둘째치고, 답답하다고 한숨이라도 쉬면 그대로 파국이거든.”
“그 상황에서 한숨을 쉬는  인성이 레전드인건 아닐까?”
“네가 직접 둬보면 그런 말 못 할걸?”

휘운이 맞장구쳤다.

“특히 너는 다른 사람이 조금만 이상한 수 두면 바로 지랄병 도지잖아.”
“지랄병이라니 말이 심하네.”
“내가  해설하는 걸 봤는데 그건 지랄병이 맞아.”
“그건 그냥  답답해서 이렇게 두는 게 좋겠다, 이런 말을  강하게 한 거지.”

내 말을 들은 재영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넌 너 나온 방송 모니터링도 안 하냐?”
“안하는데?
“......?”
“해야 하는 건가?”
“돌겠네 진짜.”

잠시 고민하던 휘운이 입을 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날 말해봤자 한번 경험하는 것보다 못하다는데 그냥 지금 한판 둬보지 뭐.”

재영이 동의했다.

“그래, 이건 직접 경험해보는 게 빠르겠다.”

나 역시 그 말에는 동의하는지라우선 아직도 얼굴만 빼꼼 내밀고 무슨 일인지 구경하는 수정이를 이쪽으로 오라고 부르고 옆에서 바둑판 하나를 가져왔다.

팀은 나와 수정이가 한 팀, 휘운이와 재영이가  팀.

애초에 수정이가  시점에 벨런스를 생각하면서 팀을 짜는  불가능해졌기에 이왕 이렇게  거 같이 출전하는 나와 수정이가 한 팀을 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둑판 앞에 앉은 휘운이 재영이에게 말했다.

“내 단급 7단, 네 단급 6단. 총 13단의 머리로 완벽한 바둑을 두자!”
“뭐래 병신이.”
“그럼 그냥 7단인 이 형님만 따라와.”
“빈집털이 우승으로 개뽀록 승단해놓고 7단 부심 부리면 안 부끄러움?”
“뭐라고오??? 6단따리가 하는 말이라 안 들리는데에?”
“시발련아.”

저 둘 벌써 싸우는데 정말 괜찮은 건가?

자기들 입으로 페어 바둑은 호흡과 배려가 중요하다고 말해놓고 왜 저런다냐.

벌써 삐걱거리는 둘을 보며 나는 나와 수정이가 질 땐 지더라도 쉽게 지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수정이한테 적당히 맞춰주면 어느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대국의 결과는….

106수 백 불계승.

나와 수정이의 참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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