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1국 - 별명 (12/75)



〈 12화 〉11국 - 별명

니시카와 나오미, 방년 22세.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본  없는 강렬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미친 사람! 미친 사람이에요!!’

그녀의 파트너 해설자인 정도찬이 말 그대로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폭주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이라면서요!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사람이니까 잘 챙겨주라면서요!’

졸지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고를 수습해야 처지에 놓인 나오미는 한소율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하지만 천하의 한소율이라도 시간을 돌릴 수는 없는 법,

‘나도 저럴줄은 몰랐지….’

한소율은 나오미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나쁜 사람!!’

나오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건 생방송이었고 결국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반면 반쯤 이성을 잃은 도찬의 폭주는 끝을 몰랐다.

“뭐지? 이건 무슨 수죠?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 건가?”

그러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참 바둑판 화이트보드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닌데, 누가 봐도 개떡수인데.”
“아, 하하…. 혹시 이렇게 두겠다는 건 아닐까요?”

그녀는 그녀가 보기에 적당한 수를 두며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다.

‘제발, 제발 대충이라도 좋으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 줘요!’

하지만 내면의 절규는 아무리 커도 들리지 않는 법이다.

도찬은  수를 잠깐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오히려 나오미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하….잠깐 이거 끝까지 둬보죠.”

그러면서 화이트보드 바둑판에 바둑알을   척척 붙이니 말 그대로 말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간단하죠?”
“아…. 네……. 간단하네요….”

‘나도 안다고요!’

카메라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도찬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도찬은 바둑판을 원상 복구하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쓰읍, 대체 무슨 생각이죠?”

‘제발, 제발 다물어요!!!’

“아 이렇게 할 생각인가요?”

그렇게 말하고 또 바둑알 몇 개를 슥흑 붙이더니 이번엔 그나마 훌륭한 판세가 되었다.

“이렇게 할 생각이면 아까 손을 빼는 것보다는 별로이긴 한데….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네! 네! 그런 것 같아요! 좋네요. 이거!”

나오미로서는 좋아도 좋다고 해야 하고  좋아 보여도 무조건 좋다고 해야  판이었다.

 재앙의 주둥아리를 일단 어떻게든 닫아야 했으니까.

‘그, 그래도 이 정도면 어떻게든 포장할 수 있어요!’

옆에서 잠깐 바라본 게 다지만 정도찬이 대충 툭툭 던지는 수는 그렇게 기력이 세지 않은 나오미가 보더라도 세련되고 깔끔해 보였다.

그녀가 보기에도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면 이 대국을 보고 있는 팬들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든 실력파 독설가 이미지로 포장하면 어떻게든 넘어갈  있을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연맹에는 특이한 콘셉트의 기사들이 많으니까 이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허용될지도 모른다!

나오미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여길 뒀다고요?”

방금 둔 수가 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도찬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 안 해.’

나오미는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몰라 욕을 먹어도 자기가 먹는 거지.

난 할 만큼 했어.

결국, 수용의 단계에 접어든 나오미는 지금까지 차마 확인하지 못했던 채팅창을 확인했다.

-연맹 너야? 연맹 또 너야? 연맹  너야? 연맹또 너야? 연맹 또 너야?
-저 놈 저저당체 무슨…….
-미친놈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소보다 몇 배는 빨리 스크롤 되는 채팅창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나오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희망이야!’

사라진 줄만 알았던 희망이 다시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채팅창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왜지?

나오미는 잠시 채팅창을 유심히 확인했고 이내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말 ㅈㄴ심하게하네 지는 프로도 아니면서
-응 지금까지 블루스팟 일치율 60%야~
-인공지능 60%는 정도찬 지지해~

대국을 보며 인공지능으로 형세판단을 하던 사람들이 정도찬의 말이 맞는다며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공지능은 현대 바둑의 답안지,

블루스팟은 인공지능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완벽한 답안이었다.

현역 프로기사 중에서 블루스팟 일치율이 가장 높은 건 국수의 56%

아무리 해설을 하는 상황이라면 본인 기력보다 2단 정도는 수가  보이는걸 고려해도 60%는 믿기지 않는 수치였다.

“여기선 이렇게 두는 게 더 좋아 보이는데요?”

-블루스팟 입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저 정도면 인공지능 보면서 해설하고 있는 거 아님?
-그게 되겠냐 병신아?

독설은 때때로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특히 그 독설에 공감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모종의 시원한 감정마저 느끼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감정을 ‘사이다’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 정도찬은 대국의 실착들을 제대로 꼬집으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관전자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하고 있었다.

‘어쩌면 잘 해결될지도 모르겠어요.’

행복회로를 풀가동하며 가까스로 정신줄을 부여잡은 나오미는 드디어 해설에 집중할  있었다.

이 대국은, 아니 이 해설은 분명히 화제가 된다.

나오미 자신도 제대로 한 사람분의 몫을 하면 어느 정도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애들아 기다려, 언니가 오늘 홍보 제대로 하고 갈게!’

데뷔하고 불러주는  하나 없어서 제대로 활동도  한 비운의걸그룹 출신 해설자는 오늘도 스케줄이 없어서 숙소에서 멍하니 있을 동생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해설이 끝난 후 나는 대국자들에게 연신 사과했다.

다행히도 거의 마흔에 가까워 보이는 후덕한 인상의 바둑 기사는 ‘허허 괜찮네! 괜찮아.’라며 흔쾌히 용서해줬고 중2의 어린 바둑 기사는 조금 뾰로통한 표정이었지만 ‘괜찮아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떠났다.

맙소사,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반쯤 이성이 날아간 상태에서 한 해설이었지만 당연히 기억은 남아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심지어 생방송 도중 내가  말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니 현기증이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니시카와 씨에게도 사과해야지.

나는 조금 지쳐 보이는 니시카와 씨에게 다가가 사과를 건넸다.

“죄송했습니다, 니시카와 씨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 그리고 나오미라고 편하게부르셔도 돼요.”

어째서인지 그녀는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천사인가?

“혹시 다음에도 같이 하게 된다면 최대한 자중할게요.”
“네? 아, 아뇨, 딱히 그러실 필요는….”

천사 맞네.

“제가 너무 죄송해서 그래요.”
“아…. 네….”

그렇게 대답하는 나오미는 어째서인지 조금 아쉬워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또  명에게 사과했고….

이제 ‘진짜’가 남았다.

“도찬 씨 이야기 좀 할까요?”
“나중에…. 나중에 하면 안 되나요?”

분명 얼굴은 웃고 있는데 분위기가 무섭다.

한소율 연맹장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그녀의 눈치를 보던 나오미가 슬금슬금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안돼 가지 마! 당신 가면 나 죽어!’

나는 혼신의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녀는 매정했다.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아뇨, 전 딱히 화 난 게 아니에요.”
“네?”
“그냥 뭐 하나 확인이나  보려고요.”

한소율은 나를 데리고 바둑판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혼자 몇 수를 진행했다.

그런데….

그런데….

너무 개판이다!

순간 열이 확 뻗쳐왔다.

“아니, 이걸 왜….”
“이런 걸 보면 화나요?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진짜 캐릭터 특이하네.”
“이건 답답한 거에 가까운데요….”
“받아들이는 처지에서 보면 그게 그거에요.”
“넹….”

한소율연맹장이 진행한 수순을 계속 보고 있으니 또 조금씩 화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되게 거슬리네! 조금만 옮겨둘까….

내가 바둑알을 슥슥 옮기자 한소율 연맹장이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쳐다봤다.

뭐, 왜요. 답답한  어쩌라고.

“그래도 다행인  생각한 거랑  다르지만,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그녀는 나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

[바둑 - 연맹] 오늘 연맹 해설가로 데뷔한 정 해설 짤 쪄옴.jpg
[바둑 – 연맹] 냉미남+막말 오히려 좋아….
[바둑 – 연맹] 오늘 자 우리찬. gif
[바둑  연맹] 우리차니 어디 있다 이제 왔니????

아니 언제 봤다고 벌써 우리찬이야.


우리차니는  뭐야.

여초 커뮤니티 특유의 주접은 익히 들어왔지만,  정도일  몰랐다.

게시물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냥 커뮤니티를 캡처한 사진이었다.

그냥 대충 보라고 이렇게 해준 건가.

나는 다음 사진을 확인했다.

[DC Outside 바둑 갤러리 개념글]
[일반] 오늘 자 정도찬 인공지능일치율.
조회 1432 댓글82

-인공지능 일치율 짤-

-정도찬 짤-

블루스팟 61.8% 그린스팟 8%

바둑의 신은 존재하고 그는 정도찬이다.

댓글 82

금감
정도찬 그는 신인가? 정도찬 그는 신인가? 정도찬 그는 신인가? 정도찬 그는 신인가?정도찬 그는 신인가? 정도찬 그는 신인가?

ㅇㅇ(242.12)
대가리에 인공지능 박아놨냐? 국수도 56%인데  하는 새끼임?
ㄴ해설 일치율이랑 대국 일치율이랑 같냐? 국수는 해설하면 70%는 나올걸
ㄴ70은 에바지 시바라

ㅇㅇ
블루스팟은 아는데 그린스팟은 뭐임?
ㄴ그린스팟 모르는데 바갤 왜함?
ㄴ가장 승률이 높은 곳이 블루스팟 그 다음이 그린스팟임.

IIIIlllIIIIllIlIl
ㅁㅊㄷㅁㅊㅇ 해설인거 감안해도 61%는 감탄만 나오네.

사라말아이솔
신진우가 신공지능이고 한세빛이한공지능이니까 정도찬은 정공지능임?
ㄴ정공지능이라니까 욕 같잖아 나쁜 놈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정공지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122,32)
어쩌다 뽀록 터진 거로 ㅈㄴ 빠네 병신들
ㄴㅂㅁㄱ
ㄴ일치율 61%가 좆으로 보이냐???

따라랏쥐
실시간으로 봤는데 정공좌 입담 개쩔더라.
ㄴ아니 그렇게 줄이지 말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너가 더 나빠 ㅋㅋㅋㅋㅋㅋ

누오
아니 정공좌 대체 왜 저 실력으로 프로를안 하는 거야?
ㄴ정공좌도 인기좀 빨고 연예계 가나 보지.
ㄴ‘그 새끼’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ㄴ바붕이들 단체 PTSD온거봐 ㅋㅋㅋㅋㅋ
ㄴ아니 이제 ㅈㄴ 자연스럽게 정공좌라고 부르네 ㅋㅋㅋㅋ

정신나갈것같애

“어때요? 생각보다반응이 나쁘진 않죠?”
“이게 좋은 거라고요?”

아니 지금 사람들이 나를 정공좌라고 부르고 있잖아요….

억울하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자라고,

심지어 예비군 3년 차인데!

“별명은 곧 애정이에요, 첫 방송이었는데 별명이 붙은 건 좋은 신호고요.”
“하아….”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런데 하필 정공좌가 뭐냐 정공좌가.

“은퇴할까요?”
“최단기 퇴물 소리 듣고 싶으면 하세요.”
“돌겠네….”

갑자기 피로가 확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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