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Who is Kang? (2)
2026년의 메이저리그는 유례없는 상승세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치세의 완화, CBA룰의 개정, 줄을 잇는 중계권료 재계약, 최초의 석유 재벌 구단주 탄생, 유럽 시장으로의 성공적인 시장 확대까지.
모든 요소들이 자본의 유입과 지출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흐르며 제2의 머니볼(Moneyball) 열풍이 불어닥친 것.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의 돌풍을 주도했던 머니볼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세이버메트릭스의 활용이 아닌 말 그대로 '머니볼'이라는 사실이었다.
10년 만에 사치세 1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우승을 천명한 악의 제국 양키스.
이에 맞불을 놓는 영입 경쟁을 벌였던 보스턴이 2위에 이름을 올린다.
반면 영원한 서부의 강자, 명문구단 LA 다저스는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영입 경쟁에 열을 올리며 국제 유망주를 끌어다 모으고 있었고, 그 외의 구단들 또한 선수들 소집에 열을 올리기 바빴다.
하지만 그런 흐름에서 빗겨나간 구단도 있기 마련.
피츠버그에 위치한 파이어리츠.
그들이 그랬다.
[5연패 파이어리츠. 어두운 안개 속, 길을 잃은 해적기.]
[부상, 부상, 부상. 잇따른 고액 FA 선수들의 시즌 아웃.]
[내셔널리그 중부리그 5위로 추락. 1위 시카고 컵스와의 승차 13.5. 막을 내린 파이어리츠의 가을 야구.]
[흔들리는 빅터 모리스의 위치. 파이어리츠 이사회, 새 단장 후보 물색 중?]
거대해진 자본, 하지만 그 자본이 고액 계약 선수들에게 죄다 묶여버린 파이어리츠. 덩치에 맞지 않은 흐름에 쉽사리 휩쓸렸던 전임 단장 마크의 실책이었다.
단지 FA뿐이라면 모른다.
하지만 돈을 퍼부어놓고도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 파이어리츠.
전임 단장 마크는 그에 초조함을 느끼고 유망주들마저 트레이드해버리며 베테랑 선수들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비참했다.
몸값을 못 하는 고액 선수들에 부상으로 빌빌거리기까지 하는 베테랑들.
결국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팀의 고령화, 그리고 팜의 황폐화뿐이었다.
유례없는 암흑기를 눈에 앞둔 파이어리츠.
그리고 그런 그들의 홈구장인 PNC파크.
앨러게니 강을 앞에 두고, 노을이 질 때쯤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그곳의 경치를 독점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데이비드 앤더슨.
현 피츠버그 단장 빅터 모리스의 오른팔이자 피츠버그 프런트 오피스를 좌지우지하는 실세 중 한 명.
차기 단장으로 유력한 그가 휴식일을 맞아 텅텅 빈 PNC파크를 감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아름다운 경치와는 별개로, 데이비드 앤더슨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미쳐버리겠군. 이놈의 쓸모없는 똥 덩어리들을 어떻게 처분하지?"
피츠버그의 자금 유동성을 동결시켜버리다시피 한 고액 연봉 선수들. 마음 같아서는 페이롤에 기생하는 그놈들을 저 앨러게니 강에 모조리 빠트려 사고사 처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피치버그는 소송비용을 감당하느라 정말로 파산해버리겠지. 난 야구사에 유례없는 사이코패스로 이름을 남기려나?'
데이비드는 푸념하듯 한숨을 쉬었다.
"유망주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그렇다고 돈 넘치는 다른 머저리들이 내줄리도 없고."
막막, 그 자체.
배로 친다면 용골이 부서지고 돛대는 찢어졌는데 그걸 수리할 선원들이 폭풍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때려치워야 하나? 다른 곳으로 옮길까?"
답답한 마음에 아무런 말이나 내뱉어봤지만, 마음 한구석 찝찝해지기만 할 뿐.
확실히 자신이라면 다른 구단의 프런트 오피스로 자리를 옮기기는 쉽다.
하지만 파이어리츠는 그의 인생 전부를 바친 구단.
의리라는 한물간 단어로는 표현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막막한 미래와 쥐꼬리만 한 샐러리에도 불구하고 이 구단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때, 그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John Bash]
"...존이로군."
존 배쉬.
자신이 한국으로 보낸 베테랑 스카우트.
그 이름을 보자 데이비드 앤더슨은 자신이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강해준..이었지 아마?'
골수 야구팬들이 모이는 세이버 사이트에 올라왔던 프라이빗 리포트. 그 자료대로라면 강해준이라는 선수는 분명 매력적인 자원이 분명했고, 자신은 망설임 없이 존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시켰다.
"일본 선수들은 어차피 하늘 위의 파이나 마찬가지지. 우리 구단으로선 그 몸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그러니 한국으로 보낸건데..."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일본 선수들이 비싼 카지노라면, 한국은 싼 로또를 긁는 정도? 카지노에 입장했다가는 생활비조차 못 건지고 탈탈 털릴 것이 분명하니 로또라도 긁어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표정은 어두웠다.
"정기 보고 때도 별다른 말이 없던 양반이 인제 와서 전화를 한다는 건.."
역시 로또는 로또일 뿐이라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내용은 그가 예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데이비드, 이번 FA시장에서 우리 구단이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이 얼마나 되지?
다짜고짜 페이롤 관련 사항부터 묻는 존 배쉬. 특별한 기밀도 아닌만큼 데이비드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대답했다.
"..오랜만이라는 말도 없군요. 일단 그 질문에 대답해주자면... 5000만불. 향후 페이롤 유동성을 고려하면 그쯤은 될 것 같군요."
이 정도라면 페이롤의 유동성이 묶여있는 스몰구단치고는 상당한 액수였다. 최근 MLB가 맞이한 호황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
데이비드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어 물었다.
"왜요, 정말 그 강해준이라는 선수가 아지 스미스 수준이라도 되는 겁니까?"
경악스러운 수비 스탯.
공격력이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이긴 했지만, 그런 선수라면 800만불 정도까지 비딩할 용의는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존 배쉬의 대답은 달랐다.
-손이 부족하오. 나 말고도 다른 스카우트 놈들 좀 한국으로 보내주시오.
그 말에 데이비드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손이 부족하다니? 선수 한 명을 관찰하는데 그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 배쉬의 어조는 단호했다.
-아무런 성과도 못 내면서 놀고먹는 놈들 전부! 한국으로 보내는 게 좋을 거요. 지금 당장.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군요, 존. 어째서 한국으로 스카우트들을..."
데이비드 앤더슨의 물음에 수화기 너머에서는 존 배쉬의 초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그린 코퍼레이션 측에서 나온 소문 같은데... 제기랄, 확증이 없으니. 아무튼 일단은 보내주시오. 자세한 상황은 나한테 듣는 것보다 뉴스를 확인하는 것이 좋겠군. 확인하고 다시 연락 주시오.
존 배수의 강력한 추진력에 떨떠름해진 데이비드 앤더슨. 이 양반이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온 적은 오랜만이었다.
"그린 코퍼레이션.. 행크 그린? 그 양반이 뭘 어쨌길래?"
그렇게 끝난 통화.
그리고 곧, 앤더슨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는 기사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시카고 컵스, 한국으로 눈을 돌리다.]
[한국의 모 구단, 계약 문제로 인한 트러블? 사상 유례 없는 FA 쏟아져 나온다.]
[양키스 극동아시아 담당 스카우트 인터뷰. '한국은 매력적인 타자들이 득실거리는 곳.' 그 의미는?]
[베이스볼 골드 러쉬. 역대급 유망주 속출 일본. 하지만 비싼 몸값이 걸림돌.]
[한국의 강타자들 FA시장에 쏟아져 나올 예정? KBO, 어디서 나온 헛소문인지 모르겠다.]
[일본으로 발길을 돌렸던 스카우트들 속속 한국으로 입국 중. 무엇이 이들을 움직였나?]
갑작스러운 스카우트들의 이동 행렬.
무언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했다.
데이비드 앤더슨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
[강해준, 8회 2타점 결승타. 코쿤스 2연패.]
[17경기째 홈런 無. 그럼에도 같은 기간 리그 OPS 1위. 강해준 믿기지 않은 출루 능력]
[코쿤스 전 2승 달성, 세오레즈. 이대로 스윕에 성공하나?]
[2연패로 멀어지는 3위의 꿈. 송진수 감독 '모든 것은 내 능력 부족. 이번 시리즈의 키플레이어? 물어 뭐하겠는가.']
[강해준 VS 코쿤스 주루 전쟁. 역대급 시청율 기록하나?]
8월 21일. 코쿤스와의 2차전에서도 승리를 거둔 세오레즈.
5타석 4타수 1안타 1볼넷 1도루로 평소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해준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2타점 결승타를 기록한다.
"타구 속도가 확실히 쳐졌네요."
그리고 다음 날.
코쿤스와의 3차전을 앞두고, 박이인 감독과 이영만 타격 코치는 해준의 타격 연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따아아아악-!
경쾌한 파열음을 그리며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그리는 궤적. 벌써 8개의 공을 쳐 내는 중이었지만 담장을 넘기는 타구는 하나도 나오질 않고 있었다.
확실히 1군에 막 콜업 됐을 때와 비교하면 떨어진 타격 감각이 눈에 띄었다.
이영만 타격코치가 말했다.
"바로 어제 결승타를 만들어낸 선수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휴식이 필요해 보입니다."
후반기 들어 공격에서도 세오레즈의 핵심축으로 거듭난 해준. 세오레즈의 코치진은 해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혹시 모를 부상과 체력 고갈의 위험을 바싹 경계하는 상태였다.
"최근 데이터를 살펴보면 발사 각도도 많이 내려간 상태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괜찮다 하고 성적도 여전히 리그 최상위권이죠. 그러니 강제로 빼버릴 수도 없고.."
박이인 감독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나가기 싫다고 말하는 놈은 세오레즈에 있을 자격이 없어. 하지만 확실히 체력이 떨어지긴 했지."
시즌 전반기까지만 해도 멀티 유틸리티, 즉 백업에 불과한 해준이었지만 그렇다고 출장수가 적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화해낸 게임수만 본다면 주전 선수에 가까웠을 정도.
하루는 1루수, 다음 날은 2루수.
주전들에게 규칙적인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온갖 포지션에 번갈아 가며 투입됐기에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짧은 2군행 이후, 다시 1군에 올라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투타 모두가 흔들리며 자칫 하위권으로 떨어질 뻔한 세오레즈. 해준은 수비와 타격 모두에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상승세를 이끄는 축으로서 끊임없이 달려왔다.
그렇기에 이영만 타격코치로서는 심각한 어조를 띨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느 순간 한 번에 퍼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
"가장 심각한 건 그로 인한 장타 페이스의 급감입니다. 17경기 연속으로 홈런이 없어요. 반면 1군으로 콜업 된 후 17경기에서는 12개의 홈런. 아무리 타격에도 사이클이 있을 수밖에 없다지만 이건 너무 극단적인 케이스입니다. 체력 문제가 확실해요."
해준이 1군 콜업 후 소화한 경기 수는 34경기.
그중 첫 17경기는 KBO 역사에도 역대 최고급으로 꼽히는 순간이었다.
17경기 87타석 67타수 43안타 18볼넷.
저 43안타 중 무려 절반이 넘는 26개를 2루타와 홈런으로 도배를 해버렸으니까.
반면 후 17경기는 달랐다.
17경기 89타석 53타수 22안타 31볼넷.
홈런은 하나도 없고 2루타도 4개뿐.
물론 장타율이 사라진 자리를 폭등한 출루율이 대신하고 있긴 했지만, 심각하게 줄어든 장타 개수는 문제라고 봐도 됐다.
"체력만이 아니지. 해준이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문제들도 많았으니. 리그 차원에서 쏟아지는 견제와 압박감. 그건 누구와도 쉽게 극복하기 힘든 문제야."
박이인 감독의 말에 이영만 타격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만..."
---텅-!
"아오, 아깝다!"
그때 해준의 타구가 펜스를 때렸다. 한 치 차이로 넘어가지 않은 타구에 혀를 차는 해준.
박이인 감독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휴식을 주긴 줘야지. 저 녀석은 다 좋은데 그 놈의 고집이 문제란 말이야."
이들의 딜레마는 간단했다.
장타율이 떨어졌다고 해도 그 기간에 리그 1위의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
그 선수가 수비에서도 경기의 분위기를 뒤집어 버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더군다나 강력하게 출장을 희망하기까지 한다.
어느 감독이 와도 그런 선수를 강제로 라인업에 제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번에 강제로 하루 빼버렸더니 코치진들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던 거 기억하십니까? 저 녀석은 다리가 부러져도 타석에 나가겠다고 할 녀석이에요."
이영만 타격코치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들의 오랜 경험으로 보기에, 지금 해준의 상태는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체력이 떨어진 선수들만큼 부상 위험이 높은 경우도 없습니다."
굼떠진 몸동작, 흐트러진 집중력, 피로가 누적된 신체.
160이 넘는 타구가 날아다니는 그라운드 위에서 이런 상태는 매우 위험했다.
박이인 감독도 결정을 내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타격 연습을 맞춘 채 돌아오는 해준을 불러들였다.
"강해준이."
"...후우. 죽겠다. 부르셨어요. 감독님?"
경기 시작을 얼마 남기지 않아서 그런지, 해준의 눈빛에서 예리함 날카로움이 전해지고 있었다.
박이인 감독은 그런 해준을 잠시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홈런 한 개."
"...네?"
"홈런 하나만 때려봐라. 그러면 내일 라인업에서도 네 이름을 볼 수 있을 거다."
일방적인 통보.
리그 1위의 타율과 출루율, 그리고 수비지표를 기록하면서 강하게 경기에 출장하길 원하는 선수에게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말에 해준은 잠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관중들이 가득 메운 경기장.
해준은 그 속에서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한참을 두리번거린 뒤에야 입을 열었다.
"감독님."
"응?"
그런 해준의 반응에 박이인 감독과 이영만 코치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해준이 이어 말했다.
"아무래도 메이저리그에 가려면 한 개는 부족하겠죠?"
8월 22일.
경기장 이곳저곳에서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스카우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