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50화 (50/137)

50. Who is Kang? (3)

"우린 벼랑 끝에 몰렸다."

경기 시작을 5분 전.

코쿤스 벤치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2연패로 5위로 주저앉았고, 오늘마저 지면 6위 이칼코메드와 동률을 이루지."

패넌트레이스의 중위권 싸움. 그곳에서 급속도로 밀려나고 있는 서울 코쿤스. 송진수 감독은 그런 팀의 선수들에게 각성할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어제 졌으니, 오늘도 질 거냐?"

"아닙니다!"

"오늘은 이길 겁니다!"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코쿤스의 선수들.

그런 선수들에게 송진수 감독이 다시 물었다.

"오늘도 혹시나 죽을까 싶은 마음에 베이스에서 발도 못 뗄 거냐?"

"뛰겠습니다."

"그냥 이판사판입니다. 한번 달려보죠."

우익수 강해준의 괴력적인 송구. 그것에 묶여 장기였던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발휘하지 못했던 선수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3 강해준 DH, R

본래의 롤에서 크게 벗어난 강해준의 역할.

공격적을 넘어 리그 파괴적인 1번 타자에서 벗어나 3번 지명타자로 출장한 것. 그렇다면 코쿤스 선수들이 겁낼 송구 따위는 그라운드 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체력이 떨어졌다는 증거지.'

그리고 송진수 감독은 평생을 야구판에서 살아온 베테랑답게, 그 출장 뒤에 숨어있는 한 가지 사실을 간파했다.

강해준은 지쳐있다.

'하긴. 상황에 따라 수비 포지션을 옮겨대고 타석에 들어서면 출루한다. 거기다 최근 들어서는 미친 듯이 뛰기까지 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2~3배로 체력이 소모되는 것도 당연하겠지.'

타석수가 많이 돌아오는 1번에서 강해준을 빼고, 지명타자로 출장시킨 것은 아무래도 체력을 세이브시키기 위한 방책이 분명했다.

송진수 감독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자신의 선수들이 날뛸 수 있는 환경이 찾아왔으니까.

"그래, 눈치 보고 살 수 있을 것 같을 때 뛰어라. 오늘만큼 너희들이 뛰어도 좋은 날은 없을 거다."

발목에 묶인 족쇄에서 해방된 듯, 벌써부터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코쿤스 선수들. 그들이 강해준의 송구에 얼마나 스트레스와 답답함을 느꼈는지 나타난 대목이었다.

'오늘만큼은 이긴다.'

그렇게 생각한 송진수 감독.

하지만 그가 믿는 것은 타자들의 살아난 발만이 아니었다.

"한태웅!"

"여깄습니다."

벤치에서 천천히 일어나 선수들 사이로 들어오는 코쿤스의 1선발 한태웅.

올 시즌 26경기 선발 등판, 155이닝을 소화하며 15승 8패 ERA 3.59를 기록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코쿤스의 토종 1선발.

그 믿음직한 모습에 송진수 감독이 물었다.

"세어봤냐?"

"네."

한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이나 왔던?"

"9명쯤 온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선수들이 웅성거렸다.

"어제는 분명 5명이었는데.."

"오늘만 4명이 늘었어?"

"강해준한테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다고?"

경기장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트들. 코쿤스 선수들은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 그곳으로 향하는 입장권을 쥔 자들. 야구선수라면 의식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한태웅 또한 마찬가지였다.

송진수 감독이 물었다.

"저 사람들이 강해준을 보러 왔다고 생각하냐?"

한태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러면?"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강해준을 박살 내는 저를 보러 온 겁니다."

그 모습에 송진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오늘 저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트들은 강해준이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다. 한태웅이 그렇게 만들 거니까."

투지로 번들거리는 한태웅의 눈빛.

"그렇다면 너희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겠지?"

그 말에 코쿤스의 타자들 또한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1점.'

'아무리 많아도 2점.'

'오늘의 태웅이는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바짝 올라왔다. 2점이면 충분해.'

달리는 야구로 점수를 짜내는 데는 도가 튼 베테랑들.

그들에게 그 요구를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송진수 감독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도저히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세오레즈와 코쿤스의 3차전.

그 경기가 막을 열었다.

+++

잠실에 위치한 올림픽돔.

그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 사이사이로, 선글라스와 전자펜, 아이패드를 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라운드를 훑는 존재들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프로 베이스볼 리그로 불리는 메이저리그.

그곳에서 나온 스카우트들.

최근 일본에 모든 집중을 쏟고 있던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 속속 입국해 선수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사실이겠지?"

"그러니까 구단 상층부에서 직접 우리를 보냈겠지."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이로군. 재팬의 골드러쉬, 이제는 코리아의 폐업(going out of business) 세일인가?"

그들이 갑작스럽게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간 한 가지 소문.

한국의 모 구단이 재정에서 문제를 일으키며 몇 가지 계약 불이행을 저질렀다는 루머였다.

그리고 계약 불이행은 곧, 계약의 해지.

"그 말은 포스팅을 통한 제한적 숫자의 인재 영입이 아닌, 말 그대로 한 구단의 인재들을 통째로 쓸어갈 수 있다는 소리지."

그리고 그 모 구단이 어딘지 알아차린 스카우트들.

당연하게도 그 구단의 선수들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부랴부랴 모여들었다.

그들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선수들을 하나하나 체크해나갔다.

"저 친구가 장건우로군. 강해준이 포텐셜을 터트린 뒤로는 쭉 2번 타자라고 들었는데 오늘 경기에서는 1번?"

"좌투좌타에 나이까지 어리고. 플레이 스타일이 영리한 2루수. 장타력이 부족한 게 흠이지만... 골격만 보자면 웨이트로 충분히 힘을 키울 수 있는 잠재력이 엿보여. 체크해놓자고."

"올 시즌 타율 0.366. 컨택은 뛰어난가 보군."

"그 자료는 쓰레기통에서 건져왔나? 올해 한국에서 3할을 넘기는 타자가 몇 명인지 잊지마. 그것보다는 공에 배트의 스윙스팟을 얼마나 가깝게 가져가는지, 스트라이크존 바깥 공에 휘두르는 비율은 몇 퍼센트인지. 그런 걸 보는 게 더 유의미해."

"그렇겠군. 그 자료가 어딨더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답게 대상 타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닥치는 대로 끌어모은 상태였다.

어떻게든 선수들의 장점과 단점을 샅샅이 파헤쳐 가치를 평가하겠다는 프로페셔널한 태도.

"스트라이크-아웃!"

선수들이라고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그 속내까지는 몰라도, 평소 설렁설렁 경기를 보고 사라지는 스카우트들과는 그 분위기부터가 달랐으니까.

세오레즈의 1번 타자.

장건우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부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스카우트들을 의식하듯, 평소보다 더 큰 풀스윙으로 일관하는 장건우. 한태웅은 그런 장건우를 상대로 손쉽게 삼진을 뽑아냈다.

"저 구질은 슬라이더인가? 좌타자의 바깥쪽으로 예리하게 파고들었군."

"평상시와는 다른 타격 어프로치를 가져가고 있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풀카운트에서는 더욱 방망이를 짧게 잡는 친구인데... 장타를 의식하는 건가?"

한국 리그는 극도의 타고투저.

타자들은 안타를 뽑아내는 것으로는 스카우트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투수는 그런 타자들을 삼진으로 요리할 생각으로 기어를 잔뜩 올린 상태였다.

그 모습은 2번 타자 유장천과의 승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장천을 바라보는 스카우트들의 눈빛이 한결 신중해졌다.

"올 시즌 3할 9푼 2리. 말 그대로 몬스터 시즌이야."

"이 정도 성적이라면 타고투저의 한국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이긴 하지."

"홈런 갯수는 38개... 부상으로 한달 간 결장했다는 걸 감안하면 말 그대로 크레이지 한 갯수로군."

본래 올 시즌을 끝내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예정이었던 유장천.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로스터에서 이름이 사라지며 스카우트들 또한 일본으로 향했었지만, 이제는 유장천과 스카우트, 그 두 존재가 모두 제자리를 찾은 상태였다.

한태웅은 그런 그를 상대로 거침없이 공을 뿌렸다.

"스트라이크!"

151km/h의 포심 패스트볼. 188cm의 신장에서 최고점까지 끌어올린 타점. 극도의 오버스로우로 우타자의 바깥쪽을 공략한 공에 유장천이 움찔하며 방망이를 내지 못했다.

"저쪽 코스는 타율이 어떻게 되지?"

"3할 6푼 5리. 다만 오늘 투수의 공이 살아 날뛰는 느낌인데? 쉽지 않겠어."

"한이라... 좋은 투수이긴 하지. FA까지 5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빼면 말이야."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144km/h의 고속 슬라이더로 유장천의 방망이를 다시 한번 끌어낸 한태웅.

그가 거침없이 151km/h의 하이패스트볼을 머리 높이로 뿌렸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예상치 못한 코스 공략에 유장천의 방망이가 나가고야 말았다.

스카우트들은 그 모습을 보며 덤덤히 무엇인가 적어나갔다.

그렇게 조금 뒤.

타석에는 세오레즈의 3번 타자.

"저 선수가 강해준이로군."

"0할 타자..."

"1군 복귀 후 5할이 넘는 타율이라고 하지. 아예 다른 선수라고 봐도 좋아."

해준이 타석에 들어섰다.

+++

강해준 트라우마.

최근 코쿤스가 고작 한 선수의 위압감에 묶여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은 유명했다.

그리고 코쿤스의 에이스로서, 한태웅은 그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나선다면 다 박살 내버릴 수 있는데!'

하지만 선발 투수는 로테이션대로 돌아가는 존재.

덕분에 한태웅은 매번 절묘하게 강해준을 상대할 기회를 빗겨나갔다.

그때마다 자신의 눈앞에서 박살 나는 코쿤스.

그렇기에 한태웅은 이를 갈며 강해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파고들었다.

무엇이 약점인지, 최근 컨디션은 어떤지, 혹시 버릇 같은 것이라도 있는지.

자신과 마주치면 반대로 박살 낼 날만을 기다리며.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 기회가 찾아왔다.

'초구, 포심 패스트볼.'

그렇기에, 이번 타석에서의 사인은 포수가 아닌 한태웅에게서 나왔다.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강해준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발사 각도가 많이 떨어졌다지.'

분석에 분석을 거듭하며 강해준을 들여다본 한태웅.

그렇기에 그는 다른 투수들과 달리 강해준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예전처럼 장타를 쭉쭉 뽑아낼 수 있다면 도루 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었겠지.'

타율은 여전히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그 외에 요소들을 한태웅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출루율? 투수들이 어설프게 승부를 피해간 결과다. 장타율? 최근 17경기에서 5할 6푼 수준. 위협적이긴 하지만 리그에서는 6할을 넘어 7할을 때려내는 괴물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괴물들을 때려잡으며 마운드를 사수하는 에이스였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 있게 마운드를 박찼다.

퍼엉-!

"스트라이크!"

포수의 미트를 찢어버릴 듯, 힘찬 패스트볼이 어마어마한 포구음을 만들어냈다.

구심의 힘찬 스트라이크 콜.

'좋아.'

반면, 타석에 서 있던 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던지는 모습에서부터 전해져오는 저 기백. 피해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명백했으니까.

'스카우트들이 도움이 되기도 하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을 의식하고 있는 한태웅.

한 팀의 에이스란 선수가 그런 사람들 앞에서 피해 가는 피칭을 할 리가 없다.

맞을 수 있어도, 자존심을 세우는 놈들.

그리고 그 자존심에 걸맞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종자들.

장건우와 유장천은 그 에이스라는 놈에 맞서, 장타로 응수할 생각이었지만, 해준은 달랐다.

집중력을 끌어올리면서도, 타격폼의 밸런스를 흐트러트리는 불필요한 힘들을 모조리 빼버린다.

가볍게 배트를 돌려 공에 맞추는 것에 포커스를 이동시켰다.

힘 대 힘의 대결이 아닌, 힘 대 기술의 대결.

이 모습에 한태웅의 기세에 밀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영리한 대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 자존심에 맞춰준다.'

하지만 해준은 이번 타석에서 장타에 대한 욕심을 부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의 장점은 어디까지나 극도로 정교한 타격에서 뽑아내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

힘을 잔뜩 주고 배트를 돌린다고 장타가 나오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흐읍!"

그 사이 다시 마운드를 박차는 한태웅. 빠르게 투구판을 밀어내며, 허리가 돌아가는 싶더니 궤적이 2층에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 밀려 들어온다.

퍼억-!

"볼-"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예리하게 떨어지며 바닥과 부딪히는 체인지업. 포수가 흙이 묻은 공을 던져버리고 새 공을 받아 한태웅에게 전해줬다.

"..후우."

그 광경을 보며 해준은 호흡을 조절했다.

'확실히 위협적이야.'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타점. 0.1초가 생사를 가르는 타석에서 그 타점이 만들어내는 위화감은 쉽게 상대할 성질이 아니었다.

'천천히 가자. 천천히.'

그렇기에 해준은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뛰어난 타자는 자신의 장점을, 상대의 단점과 매치시킨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의 새로운 장점이 드러날 시간이 아니었고.

퍼어어엉-!

"스트라이크!"

상대의 단점이 드러날 시간도 아니었다.

"볼!"

아직은 1회 초. 힘이 넘치는 선발투수 한태웅.

해준은 그런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호흡 하나하나, 사소한 손발의 동작 하나마저 머릿속에 박아넣겠다는 듯이.

명백하게 먹잇감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사냥꾼의 시선.

한태웅은 그 모습에 불편함을 느꼈다.

'이 자식. 눈빛이 왜 저래?'

무언가를 대놓고 드러내는 기색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무언가를 억누르듯, 지켜보겠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한태웅은 그 모습에 등골 아래서부터 슬그머니 타고 올라오는 불길함을 느꼈다.

'뭘 노리고 있는거지?'

전력분석, 수 싸움에서 압도적이기로 유명한 강해준.

자신이 아무리 강해준에 대해 분석하고 플랜을 짜왔다고 해도, 그 강해준이라면 그것을 꿰뚫어 볼지도 몰랐다.

한태웅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한번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카운트는 2-2.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스트라이크 딱 하나만 더 잡으면 된다.'

1회 KKK.

자신의 생각대로 세오레즈의 핵심 타자들을 짓누르고, 스카우트들에게 어필한다.

불길함을 애써 내리누른 한태웅.

그가 다시 한번 투구판을 박찼다.

"악!"

이번에는 기합까지 내지르며 있는 힘껏 뿌린 공.

쉬이이이익-!

그 기합과 함께 압도적인 구위로 스트라이크존을 물어뜯듯이 달려오는 하얀 궤적.

그 궤적을 바라보며, 해준은 장타를 치고 싶어 꿈틀거리는 욕망을 억눌렀다.

꾸우우욱-

힘보다는, 탄력을 이용해서. 배트 그립을 쥔 손과 그것을 지탱하는 손목의 절묘한 결합.

'평소처럼 휘두른다면 발사 각도만 낮아질 뿐이야.'

거듭된 출장으로 떨어진 체력은 이상적인 타격폼을 끌어내려는 몸에 족쇄를 채운 상태였다.

이는 하루 이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래, 하루이틀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지.'

그와 함께 해준이 숨을 들이켰다.

"흐읍!"

콰직-!

축발이 되는 스파이크가 바닥을 짓누르며 몸을 밀어냈다.

욕심을 내지 않은 스윙.

따아아악-!

그리고 그대로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으로 날아오던 공을 결대로 밀어냈다.

[안타! 안타! 1, 2루 간을 꿰뚫는 강해준 선수의 안타입니다.]

1루타.

그동안의 성공적인 타석들을 생각한다면 성공적인 결과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1번 타자, 노아웃 상황에서 출루한 것과 2아웃 상황에서 3번 타자로 출루한 것은 이야기가 다르니까.

투수의 표정에도 짜증스러움만 섞여 있을 뿐, 그동안 다른 투수들에게서 느껴지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보이질 않았다.

당연했다.

홈런을 뻥뻥 쳐낸다면 몰라도, 장타력이 없는 타자, 그것도 3번 타자가 그렇다면 두려워하는 투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신경에 거슬려 할 뿐.

하지만 1루 베이스를 밟으며 해준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 지금은 그렇겠지.'

귓가에 윙윙거리는 파리처럼, 그저 투수의 신경만을 긁는 존재.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게임을 뒤집기에는 부족한 타자.

'혹시나 하는데. 뛰지는 말아라.'

게다가 체력 저하로 인한 미스 플레이, 그리고 이어질 부상을 걱정하던 코치진들의 도루 금지령까지.

확실히 오늘의 자신은 코쿤스를 위협하기 힘들었다.

그래, 아직까지는 그랬다.

"세이프!"

1루 베이스를 통과하자, 1루심의 콜이 이어졌다.

"여, 해준아. 오늘은 안뛸거냐?"

그런 자신에게 1루수 백호준이 물어왔다.

그리고, 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뛸 겁니다."

"진짜지? 저번처럼 말하다가 뛰면... 사망시켜버린다?"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어오는 백호준.

그 말에 해준이 진심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짜로 안 뛸 겁니다."

정말로 오늘만큼은 도루에 대한 생각을 버렸다.

'뛸 체력을 조금씩이라도 아껴서...'

배팅에 집중할 생각이었으니까.

눈앞에 판정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SINGLE!]

[타구질 분류 MIDDLE 판명]

[속도 154.58km/h]

[발사각도 11.8˚]

[캐치 확률 48.3%]

만족스럽지 않은 타구 속도.

낮은 발사각도.

시프트가 아니었더라면 2루수에게 잡힐 가능성이 컸던 타구 코스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의 입꼬리 한쪽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어차피 자신은.

[특수모듈 - '스택형 타구 속도'가 발동합니다.]

[다음 타석의 최대 타구 속도가 1% 증가합니다.]

타석을 더해갈수록, 달라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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