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진짜 떠서 왔네!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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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1층의 편의점과 부동산중계사무실이 입주해 있고, FLEX-A 엔터는 6층과 7층을 사용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온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가자 여성 한 명이 단번에 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나이온 배우님.”
“아. 예..... 안녕하세요.”
이온이 가볍게 목례를 했다.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을 보니 FLEX-A 엔터 직원이었다.
CSR팀 소속이라고 되어 있었다.
보통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해서 현대 기업 경영의 화두 혹은 활동을 이르는 말이다.
연예매니지먼트 회사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부서라고 할까.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비객> 잘 봤어요.”
여직원은 눈에 띄게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대하기 편하고 선한 인상이다.
이온은 앞으로 한식구가 될지 모르는 여직원을 향해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여직원이 이온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양보했다.
한 발 늦게 탑승한 여직원이 6층과 7층 버튼을 차례로 눌렀다.
“식구가 꼭 됐으면 좋겠네요. 혹시 오늘 좋은 소식이 있을까요?”
직원이니 이온이 오늘 계약하는 날인 것을 알 수도 있었다.
“아마도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그녀는 6층에서 내렸다.
“나중에 뵈요.”
“수고하십시오.”
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하고 이온이 내렸다.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벽에 붙어 있는 회사 소속 연예인과 유명인들의 사진들이었다.
서우일 배우를 비롯해 생각보다 많은 유명인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출입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한 사무실이다.
다행히 이온을 마중 나와 있는 직원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몇 번 통화한 배우A팀 김진우입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나이온입니다.”
“시간을 정확히 맞춰서 오셨네요.”
조금 일찍 도착해서 건물과 주변을 좀 구경했다.
김진우가 카드 단말기에 사원증을 대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절 따라오세요.”
“감사합니다.”
사무실 내부는 전반적으로 번잡스럽지 않았다.
널직한 평수에 비해 데스크나 직원 숫자도 많지 않았고, 소속 연예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온은 내심 배우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본을 검토하는 풍경을 상상했었다.
헌데 FLEX-A 엔터의 모습은 일반 직장의 사무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곳만 그런 것인지 다른 매니지먼트 회사도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구 찾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앞서 걸어가던 김 팀장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혹시 미나씨가 있을까 해서요?”
홍대에서 홍 캐디와 함께 미팅을 했던 송미나는 이미 FLEX-A 엔터와 계약해서 활동 중이었다.
“미나? 아! 서현이요?”
“......?”
“<비객> 여주 손민아와 이름이 헛갈려서 송서현으로 개명했어요.”
“회사에 못 나올 정도로 요즘 바쁜 가요?”
“회사는 비즈니스를 하는 공간이에요. 소속 연기자나 아티스트 또 셀럽들은 외부에서 활동을 하시고 계약이나 작품초이스 관련 회의 같은 걸 할 때만 가끔씩 들어와요. 앞으로 이온씨도 특별히 사무실에 나올 일은 없을 겁니다. 물론 사무실에 자주 나온다는 말은 그 만큼 작품도 많이 들어오고 계약할 일도 많다는 뜻도 되겠지만.”
설명을 마친 김 팀장이 씨익- 웃었다.
이온을 얕잡아보거나 놀리는 웃음이 아니었다.
우린 너를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미소였다.
FLEX-A 엔터는 미국의 에이전트 개념의 종합기획사를 표방했다.
한국의 다른 회사들이 우회상장을 통해 자회사를 여럿 거느리는 문어발식 경영을 지향하는 것과 달리 배우, 스포츠 에이전트, 비보이 및 스트리트댄서, SNS 인플루언서, 셀럽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글로벌 콘텐츠 프로듀싱에서 직접 기획, 총괄 운영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표방하고 있다.
참고로 넷튜브 콘텐츠 발굴을 전담하는 부서도 있었다.
사무실 안쪽의 대표실 문 앞에 도착해 김 팀장이 노크를 했다.
안쪽에서 홍성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이번에도 김 팀장의 양보를 받아 이온이 먼저 대표실로 들어갔다.
서류를 검토하던 홍성욱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오, 왔어요? 거기 앉아요.”
이온이 목례를 하고 김 팀장이 안내한 소파로 가서 앉았다.
곧이어 홍성욱이 맞은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유럽에서 잘 쉬고 왔어요?”
“덕분에요.”
“이온씨는 정말 사람이 안 변하는 것 같아. 참 한결 같다니까.”
“변하면 이상한 거죠. 배우 생활한지 얼마나도 됐다구요.”
홍성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잘 될 줄은 알았지. 근데 이렇게 일찍 잘 풀릴 줄은 진짜 몰랐어요.”
“그러네요.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데, 정말인가 봐요.”
아무리 신지균이 가르치는 신인배우라고 할지라도 두세 편 찍고 바로 서브 주인공을 꿰차는 일은 요즘 보기 매우 힘들다.
물론 대형기획사에서 아침 드라마에 신인배우를 주인공으로 꽂아 넣는 일은 종종 있지만.
이온이 말을 이었다.
“대표님은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
“아니에요. 폭삭 삭았어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술을 마시니 원...”
김 팀장이 끼어들었다.
“두 분이 오랜만에 회포를 푸시는데 죄송하지만 업무부터 끝내놓고 편안하게 대화 나누시죠. 점심식사도 하셔야 하고.”
김 팀장이 말과 함께 미리 챙겨왔던 계약서를 꺼내 건넸다.
“그럽시다. 일 얘기 정리해 놓고 이야기 나눕시다.”
이온이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천천히 읽어봐요. 급한 것 없으니까.”
“미리 이메일로 보내주셔서 다 살펴봤어요.”
법률공부 중인 여사친 윤다경에게 계약서 검토를 부탁해서 확인을 받았다.
이온이 걸었던 조건들도 모두 들어가 있었다.
작품 선택권리, 성형 거부권, 예능출연 거부권, 한국대 졸업을 위한 시간 보장 등.
이온이 신인인 걸 감안하면, 무리한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접촉을 해온 다른 대형기획사들은 성형 거부권과 한국대 졸업 보장 조건만 들어주겠다고 했다.
이온의 조건을 들어준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대우였다.
게다가 또 하나 특이한 부분도 있었다.
“대표님. 계약 부분이 잘 못 된 거 아닌가요?”
“어떤 부분이요?”
“제가 알기로 신인에게는 6대4가 최대치이고 기성배우도 7대3부터 슈퍼스타의 경우 9대1이라고 알고 있는데....”
“보통 업계 관행이 그런 편이죠.”
“이 계약서에는 8대2 수익분배 조건이네요?”
“내가 그랬잖아요. 우리는 이온씨에게 다른 대형기획사가 보장한 계약금을 줄 수 없다고. 대신 다른 방식으로 계약을 할 거라고.”
8대2 수익배분은 소위 A리스트 배우들이나 하는 계약이다.
이온이 이제 막 라이징 스타 반열에 들어섰다고 해도 이 정도의 파격적인 계약을 해 줄 기획사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디도 없다.
때문에 이온은 계약금 없이 최대 6대4의 배분 계약을 염두에 두었었다.
헌데 슈퍼스타급 계약 바로 아래 단계 계약을 해주겠단다.
“이온씨가 특이한 케이스이긴 한데, 그 만큼 잠재력을 매우 높이 보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무리해서 이온씨한테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그를 명분으로 계약기간 내내 뺑뺑이... 그러니까 온갖 일에 다 내보내서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어요. 보통 그렇게들 하니까.”
그런 걸 당하지 않으려고 예능거부권과 작품 선택권을 넣어달라고 한 것이다.
또한 그 조건을 수용한다면 계약금 부분을 양보하겠다고 한 것이고.
“사실 회사 입장에서 이온씨가 예능프로에 고정으로 들어가면 출연료는 몇 푼 안 되지만 그걸 통해 광고나 기타 행사를 많이 잡을 수가 있어요. 예능 캐릭터가 잡혀버리면 배우로써 연기 스펙트럼에 제한이 가해질 수도 있지만. 일장일단이 있죠.”
계약금이라는 것이 신인에게는 출판업계로 따지면 선인세나 마찬가지다.
계약금을 많이 받을수록 신인은 스타와 달리 수익배분에 있어서 불리해지기 마련.
배우 한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가수를 키우는 것보다 적게 든다고 해도 매니저 인건비부터 차량 유지비, 스타일링, 부식비 등 활동기간에 들어가는 돈이 결코 작지 않다.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육성과 투자 명목으로 계약을 짜게 해줄 수밖에 없다.
홍성욱이 자랑스럽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계약금이 없다고 해서 이온씨에게 출연료 외에 회사가 모른 척 하는 것은 아니에요. 계약서에도 들어가 있는데, 적은 액수지만 소정의 품위유지비는 매달 지급될 겁니다. 드라마는 통상 지연입금 되고 영화는 최소 두 번 때로 세 번에 나눠 개런티가 지급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연예인으로써 품위를 갖출 최소한의 돈은 있어야 하니까요.”
달콤한 말이다.
헌데 이온은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본인이 FLEX-A 주주도 아니고 회사의 재정을 걱정할 것은 아니지만.
배우에게 좋은 계약조건과 복지수준을 보장하면 회사는 뭐가 남는다는 말일까.
서우일 배우 외에 중견 배우 여럿이 소속되어 있고, 그 선배들이 다작 배우들이라 틀기만 하면 나오고 또 일 년에 영화 세편까지 동시 출연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영화나 드라마 출연료를 나눠가져서는 회사가 남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제가 알기로는 서우일 선배님을 포함해서 FLEX-A 간판 배우님들이 광고를 그렇게 많이 찍는 분들은 아닌 걸로 압니다.”
한 번에 십 억 이상 규모의 광고를 계약해서 회사에도 도움을 주는 배우가 아니란 의미다.
소속 배우들에게 분배되는 금액이 크면 클수록 회사 입장에서는 적자가 발생하고, 광고매출을 올려줄 스타급 배우가 없다면 위험을 대처할 방안이 사라진다.
많은 기획사들이 9대1의 파격적인 대우로 스타급 배우를 영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고 등을 통해 적은 투자로 안정적인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애송이가 던지는 질문치고는 꽤나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홍성욱은 내심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대해 친절하게 대답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온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3년 계약을 5년까지 늘릴 수도 있을 테니까.
“이온씨 <비객>이 중국에서 난리난 거 알아요?”
“<아이돌> 이후로 오랜만에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는 한드라고 듣긴 했습니다.”
정말 웃기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당국은 극구 부인하지만, 엄연히 한한령은 존재했고 심지어 요 몇 년 간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나 글로벌 OTT에서 주목 받는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크게 히트를 친다.
현재 <비객>은 중국 최대 인터넷포털을 포함해서 동영상 공유사이트 60여 곳에서 한국 방영이 끝나고 30분 만에 중국어 자막이 달려 올라오고 있다.
그것을 최대 3억 명이 시청한다.
그리고 영화 전문 사이트나 SNS에 리뷰를 올리고 토론방을 개설하고 짤을 제작해서 뿌리는 등 한국보다 더 난리다.
한국에서 막대한 돈과 피눈물 나는 땀을 투자해 만든 드라마를 불법으로 보는 주제에 지들끼리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MBS는 <비객>의 글로벌 배급을 스팀플렉스와 하기로 계약한 상태다.
그 전에 중국인들은 한국 시청자와 거의 시차 없이 <비객>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공짜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당연하다는 듯.
“현재 <비객>만 놓고 보면 중국 SNS와 포털 검색량이 8억 건이 넘어요.”
몇 해 전 20억 건을 넘긴 스팀플렉스 독점 한국드라마가 있었다.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근래 중국에서 보기 드문 관심인 것은 틀림없었다.
“배우 부분에서는 안건우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온씨가 손민아보다 더 검색되고 언급되고 있어요.”
이온은 중국에서 활동할 것도 아니기에 관심을 전혀 두고 있지 않았다.
누나와 친구들이 말해줘도 그런가 보다 하고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이다.
“근데 이온씨와 관련해서 웃긴 게 하나 있고 나쁜 게 하나 있어요.”
웃긴 것이야 한한령으로 수입금지조치 중인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큰 인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일 테고.
나쁜 것은 인구수만큼이나 악플 다는 못된 놈도 많은 중국 특성상 좋지 못한 말이 많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나쁜 것을 맞췄다.
그런데 웃긴 것이 조금 의외였다.
아니다.
과연 중국답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웃기면서 화가 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