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119화 (119/127)

〈 119화 〉 Before Sunrise.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서양사학과 답사팀의 여정은 말이 좋아 역사학술답사지 사실 수학여행이다.

몸가짐과 정신을 가다듬고 닦는다는 뜻의 수(修)와 견문을 넓히고 배운다는 학(學)이 들어간 여행이다.

단순히 견문만 넓히는 것이 아니라 학문도 함께 닦는 여행이 수학여행이다.

예부터 선비라면 반드시 풍류를 즐길 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수시로 명산대천을 찾아 호연지기를 길렀다.

사람이 좁은 방 안에서 오로지 책만 읽다보면 생각이 편협해 지기 십상이다.

고집만 세지고 정신도 피폐해진다.

넓은 아량과 도량을 갖기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예부터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크고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좋은 풍광을 보면서 거짓되고 사악하고 졸렬한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고 정신수양에 힘썼다.

그런 전통에 따라 중고등학교 시절 집과 학교만을 맴도는 좁은 틀을 벗어나 전통이 살아 있거나 대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폴란드는 코페르니쿠스, 쇼팽, 퀴리부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 세계적인 인물을 낳은 나라이다.

수도 바르샤바 구시가지에는 퀴리부인이 작업하던 실험실 같이 유명 인물들의 발자취가 박물관이나 동상으로 남아 있다.

서양사학과 답사팀이 부지런히 돌아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도시였다.

퀴리부인의 생가를 박물관으로 꾸민 곳을 한 무리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쓸고 지나갔다.

이온과 답사팀은 중국 관광객들이 떠날 때까지 생가 앞에서 기다렸다.

그들만 사라지면 외진 곳에 위치한 퀴리부인 생가 박물관은 고요와 안정을 찾을 테니까.

특별히 볼 건 없다.

퀴리부인에 관한 자료와 실험도구들을 모아 전시한 정도.

여행자들이 남긴 흔적이 곳곳에 있었는데, 한국인들의 흔적도 보였다.

“앗! 안녕하세요!”

이온이 퀴리부인 생가를 구경하고 나오는데, 열심히 브이로그를 촬영하고 있는 한아름과 마주쳤다.

“네. 안녕하세요.”

“저 스토커 아니에요. 우연이에요 우연!”

“......?”

“믿어주세요.”

오해 안 한다.

바르샤바가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기본 견학 코스는 정해져 있다.

그녀는 넷튜버다.

주변으로 몇 개의 박물관들이 있다.

당연히 구독자에게 그 곳들을 소개할 수밖에 없다.

“일부러 따라가는 거 아니에요~”

답사팀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르샤바의 젖줄이자 연인들의 산책코스인 비스와 강변까지 답사팀을 졸졸 따라왔다.

그리고 브이로그 캠을 향해 열심히 떠들었다.

“비스와 강에는 전설이 있어요. 옛날에 인어가 어부 앞에 나타나서 산업도시가 탄생하리라 예언했다는 전설이에요. 구시가지 광장 근처에 있는 인어상이 바로 그 전설의 인어를 형상화한 것이에요.”

사실 아름의 정신은 온통 이온에게 팔려 있었다.

어제 깜빡 잊고 사진을 찍지 못했던 것.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섣불리 사진을 찍자고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은근슬쩍 답사팀 꽁무니를 쫓아가고 있는데.

비스와 강변에서 답사팀의 교수나 학생이나 가리지 않고 이온과 기념촬영 경쟁이 벌어졌다.

그 틈에 아름도 끼어들었다.

“저도 사진 좀.....”

아름이 얼굴을 붉히고는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효정아, 여기 이분 폰으로 사진 찍어줄래?”

“예~”

이온과 나란히 서 있고 보니, 아름의 키가 작지 않았다.

누나 이슬과 비슷해 보였다.

170 언저리.

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온의 기분을 좋게 한 것은 아름에게 풍기는 냄새다.

상쾌한 과일향이 난다.

향수나 화장품 냄새는 아니다.

그녀 특유의 체향이다.

평소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은 사람은 체취 및 땀냄새에서 달콤한 향이 느껴지고, 굉장히 매력적인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유명한 대학의 연구결과라고 영문잡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가, 감사합니다.”

“그쪽 분.....”

“아름이에요. 한아름. 넷튜브 채널은 리나 한의 독일유학일상이에요.”

리나(Lina)는 ‘부드러운’ ‘밝은’이란 의미가 있으며 라틴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아름이 독일에서 사용하는 애칭이었다.

“아름씨 채널에 출연하지 못 할 것 같아요. 양해 부탁드려요. 대신 제가 한국에 들어간 후에 오늘 촬영한 사진을 SNS에 올려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이 당장에라도 방방 뛸 것처럼 좋아했다.

자신이 찍는 브이로그에 출연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계‘ 탄 것이다.

“아름씨.”

“네!”

“내일 바빠요?”

“......!”

아름으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시츄에이션.

내일 바르샤바 가이드라도 해달라는 부탁을 할까.

“하나도 안 바빠요!”

“초면에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혹시 데이트 신청?

“뭐든지 부탁하세요. 다 들어드릴게요!”

정말 간이고 쓸게고 뭐든 떼어서 줄 태세다.

너무 적극적으로 나와서 이온이 움찔할 정도다.

“제가 내일 폴란드 한국문화원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에요.”

“......?”

“문화원 측에서도 보도자료와 넷튜브 업로드용 동영상을 촬영하긴 할 테지만, 제 쪽에서 촬영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보다시피 제가 매니저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되요! 됩니다! 제가 사진전공하고 있어요. 넷튜브도 하고 있어서 동영상도 진짜 잘 찍어요.”

밑도 끝도 없이 다 된다고 해서 살짝 믿음이 안 가는 이온이다.

“내일 부탁 좀 해도 될까요?”

“그럼요. 맡겨주세요!”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해 드릴게요.”

“돈 안 주셔도 되요!”

답사팀의 후배들에게 부탁해도 되지만, 남은 일정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렇다고 초면에 아름에게 부탁하는 것도 염치가 없긴 하지만.

그녀가 도와주면 감사하고 아니면 할 수 없고.

문화원 측에서 촬영한 파일을 따로 받아도 된다.

그런데 문화원측이 촬영하는 동영상은 이온이 주인공일리 없다.

이온은 자신을 위주로 촬영한 동영상을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당장은 매니지먼트가 없지만, 귀국한 후에 한 곳을 결정해 계약할 예정이다.

이번 한국문화원 행사에 참여했던 영상을 계약한 회사에 넘기면 어떤 식으로든 유용하게 써먹을 터.

마침 한국 유학생 넷튜버를 현지에서 인연을 맺기도 했고.

믿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내일 오전 9시 40분에 한국문화원에서 만날까요?”

“네!”

“그럼 내일 봐요.”

이온은 아름과 작별인사하고 답사팀에 다시 합류했다.

솔직히 한아름이 한국문화원에 올 가능성을 반반으로 봤다.

아무리 연예인의 부탁이라고 해도 외국에서 자신의 일정까지 포기하고 도와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름이 약속된 시간에 바르샤바 한국문화원에 나타났다.

찐팬인가 싶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괜히 부탁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자신이 그녀 입장이라도 잘 알려진 연예인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아름씨.”

“네!”

처음에 횡설수설 대고 허둥대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대답이 참 씩씩하다.

“문화원에서 허락하면 오늘 촬영한 것 아름씨 브이로그에 쓰세요.”

미안함과 고마움에 뭐라도 챙겨주고 싶다.

넷튜브 조회수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정말이요?”

“제가 성급하게 부탁을 했나 싶네요. 너무 제 사정만 생각해서 아름씨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어요.”

“아니에요. 언제 제가 이온님처럼 유명한 분과 작업을 해보겠어요.”

어쨌든 폴란드 한국문화원은 동구권에서 처음으로 개설된 문화원이다.

개설 된 지 십년도 넘어 문화원 프로그램도 활성화가 잘 되어 있고, 세종학당까지 들어서면서 한국어 붐에도 일조하고 있다.

참고로 동유럽에서 한국과의 교류나 한류 붐이 남다른 국가 중에 하나가 폴란드다.

현재 폴란드 최고의 명문대 바르샤바 대학을 비롯해 모두 다섯 개 대학에 한국학과가 개설되어 있었고, 폴란드 현지인 교수진 중에 한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이들이 꽤나 많이 포진해 있다.

폴란드 한국문화원 측은 한국대 서양사학과가 바르샤바로 역사답사를 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이온을 섭외하기 위해 애썼다.

현재 폴란드에서 한류 붐이 상당한데, 스타를 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KPOP 스타들이나 배우들이 독일까지는 오는데, 국경이 맞닿아 있는 폴란드를 비롯해 동유럽으로 거의 오질 않기 때문이다.

매번 콘서트를 보려면 독일 혹은 프랑스 등으로 비싼 돈을 들여 다녀올 수밖에 없는 것이 동유럽 한류팬들의 고충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류스타(?)가 폴란드를 비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이미 이온이 체코에 체류할 때부터 폴란드 한국문화원에서 연락을 취하고 문화원 직원을 프라하까지 보내 섭외에 공을 상당히 들였다.

거창하게 ‘국위선양‘ 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문화를 즐기고 좋아해주는 팬들을 만나는 나름 뜻 깊은 자리라 흔쾌히 수락했다.

한국문화원이 탑스타가 아니라고 일방적으로 섭외를 강요 하거나 예의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도 행사 참여를 결정하는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사인회는 왜 안 해요?”

아름이 이온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물었다.

“폴란드 한류 팬들은 제가 KPOP 아티스트인 줄 알더라고요.”

“아직 <비객>이 해외에 안 풀렸겠구나.... 그쵸?”

“<아이돌> 마지막 회에 보여줬던 음악방송 무대가 여기 친구들에게는 인상이 꽤 깊은 모양이네요.”

때문에 이온은 KPOP 아카데미 수강생들을 위해 <아이돌>에서 췄던 댄스를 가르쳤다.

이온은 비보이지 KPOP 댄스 플레이어가 아니다.

따라서 폴란드 한국문화원에 파견 나와 있는 한국인 전문 강사가 KPOP 댄스를 가르치고 이온은 보조 강사로 수업을 진행했다.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은 5월~8월까지 한국의 보컬 및 댄스 전문 강사들을 전 세계 21개국의 문화원 25곳에 파견해 최신 한국 대중음악의 노래와 춤을 배울 수 있는 ‘케이팝 아카데미’를 진행한다.

참고로 매년 참가자가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와 함께 세종학당의 확장세 역시 무시 못 할 정도고.

찰칵찰칵.

한아름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녀는 동영상만 찍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 온 스틸카메라로 사진도 촬영했다.

누가 독일 미술대학 사진전공자 아니랄까봐 카메라는 라이카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브랜드와 완성도 모두에서 일제를 앞서는 라이카(Leica)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아름은 부탁받은 동영상 촬영은 적당히 거치용 카메라로 대체하고 스틸사진 촬영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고했어요. 아름씨.”

“수고는 이온님이 했죠.”

말 그대로 이온의 민소매 티가 땀에 푹 절어있었다.

실내가 더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수강생 못지않게 열심히 몸을 놀려서 그렇다.

“원장님이 밥 사준다고 하시네요. 짐 챙기세요.”

“저도 가도 되는 자리에요?”

“그럼요. 어쨌든 제 스탶으로 온 거잖아요.”

“......?”

“팬으로 따라 온 거 아니잖아요. 우연히 바르샤바 시내에서 만나 알게 되어서 어쩌다 보니 오게 되었다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

“원장님이 쩨쩨하게 한 사람 더 늘었다고 밥값 따지실 분은 아닐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한 이온이 어깨를 으쓱하고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다.

아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활짝 웃는 이온의 모습 어디에서도 악동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자신 또래의 수더분한 청년의 모습이랄까.

배우라서 분위기가 확확 바뀌는 걸까.

어제 독특한 분위기와 아우라를 마구 분출했던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의심될 정도다.

“괜찮으세요?”

“겨우 한 시간 움직인 것뿐인데요. 끄떡없어요.”

“그게 아니라. 어제랑 너무 딴판이셔서.”

“내일 집으로 돌아가잖아요.”

“......?”

“혹시 영화 <인셉션> 봤어요?”

아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각몽에서 깰 때 손가락을 뒤로 꺾어 손등에 닿게 한다거나 주사위나 팽이 같은 토템을 이용하잖아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강력한 충격을 가하는 것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제 상황도 비슷해요.”

아름은 이온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배고프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밥 먹으면 해요.”

연기의 세계를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 배역 투사 후유증을 겪거나 배역에 과몰입한 배우들이 미친 사람 보일 수도 있다.

미국의 메소드 연기 산실 액터즈 스튜디오 출신의 현대 연기의 대표적인 선생 중에 한 명인 샌포드 마이너스라는 양반이 그랬다.

[연기란 가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역할의 행동을 진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즉 존재하지 않은 인물에 대해 그처럼 느끼고 그처럼 행동하고 그처럼 말하는 것이 연기다.

있지도 않는 인물이 되어서 감정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이 바로 연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인물은 없는 존재지만 그의 감정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인물이 느끼는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고 실제 경험하는 것들이니까.

배우는 그런 감정을 한 작품 안에서 롤러코스트 타듯 넘나든다.

마치 다른 자아를 가지고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는 것처럼.

우리는 여행을 떠나면 언젠가 집으로 돌아온다.

아니 집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여행을 떠날 수가 있다.

감정 여행은 돌아와야 할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다.

그래서 배역 투사 후유증이나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배우들마다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다.

이온은 이번 유럽답사여행을 통해 그와 관련해서 작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

감정 여행을 또 다른 여행으로 전환시킴으로써 후유증을 최소화 하는 것.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어디론가 떠났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니까.

그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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