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Before Sunrise.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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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 학비가 무료로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국립대학의 경우 등록금은 무료다.
그런데 교통비와 학교운영비 명목으로 약 300유로 정도 매 학기 지불한다.
문제는 생활비다.
대도시인지 주거형태가 어떤지에 따라 다르지만 한 해 대략 1천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때문에 학생비자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필수다.
일정 금액 이상 벌면 세금을 내야 한다.
독일은 세금을 장난 아니게 떼어간다.
돈도 문제지만, 학업을 따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팔자 좋게 여행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파티하고 놀고.
그럴 여유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로지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바쁘게 하덕이며 보낼 수밖에.
한국에서는 ‘헬조선’을 외치며 벗어나고 싶었다.
막상 선진국이라는 독일에 와서 유학생활을 해보니,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없는 것 같다.
초고속 행정서비스와 스마트폰 하나로 많은 것이 가능하고, 여성과 청소년도 24시간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한국이 매일매일 그립다.
특히 평소에는 신사적이던 독일 남자들이 축구경기가 있는 날에는 완전히 다른 생물로 변하는 것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축구경기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들.
문득 지루함이 밀려든다.
이러려고 독일까지 유학을 온 것은 아닌데.
원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나는 왜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문화과학궁전 근처 노천카페에서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유학 중인 한아름이 브이로그 캠에서 메모리카드를 빼서 노트북에 백업을 하면 한숨을 푹푹 쉬고 있다.
“나는 왜 지금, 여름방학에 하필이면 바르샤바 시내에서 이러고 있냐고.....”
여행을 와서 별로 즐겁지가 않다.
괜히 한국에 들어가지 않고 유럽에 남았나 하는 후회가 든다.
유학 생활 동안 주어진 시간을 물 셀 틈 없이 알차게 이용하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해본다.
쉽지 않다.
그런 생활에서 스팀플렉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다 시작한 것이 넷튜버다.
처음에는 독일유학생활을 한국에 소개하는 브이로그로 시작했다.
그러다 콘텐츠 다양성을 위해 뒤셀도르프를 벗어나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브이로그를 찍어서 올렸다.
6개월 정도 꾸준히 채널에 업로드를 하고 있었다.
구독자는 2천 명 남짓.
향수병.
그리고 지루한 유학생활에서 작은 일탈.
그를 위해 선택한 넷튜버다.
구독자나 조회수는 크게 연연하고 있지 않았다.
남들은 댓글을 읽고 대댓글 다는 재미도 있다고 하던데.
한아름은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
구독자 수가 기대보다 적어서?
아니다.
솔직히 관성적으로 브이로그를 촬영할 뿐이다.
진짜 재밌는 건 전공인 스틸 사진이니까.
‘때려치울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안다.
그녀가 다니고 있는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은 독일미대 중 처음으로 사진강좌를 개설하고 사진전공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학교 중에 하나니까.
어렵게 입학해서 중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누구지....? 어디서 봤더라.....’
짜증과 한숨으로 얼룩졌던 아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멀리 237m의 높은 전망대를 뽐내는 마천루 문화과학궁전으로 들어서는 어떤 남자 때문이다.
“아우! 짜증나! 누구지?”
잘 아는 사람인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답답해 미칠 지경.
“유명한 사람인데!”
아름이 테이블 위에 펼쳐 놓은 노트북과 브이로그 캠을 주섬주섬 챙겨 문화과학궁전으로 달려갔다.
정체가 알쏭달쏭한 남자를 좀 더 가까이서 확인하기 위해서.
✻ ✻ ✻
체코에서 사흘을 보낸 한국대 서양사학과 답사팀이 폴란드 바르샤바로 넘어왔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답게 프라하 못지않은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거리풍경을 자랑했다.
공산주의 체제였던 폴란드 제2공화국 시절 당시, 폴란드는 소련의 볼셰비키즘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현재까지도 도시 곳곳에 사회주의 문화의 흔적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답사팀은 캠퍼스 전체가 공원처럼 꾸며져 있는 폴란드 최고의 국립대학교 바르샤바 대학, 폴란드의 역사를 한 번에 공부할 수 있는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 폴란드 육군 박물관 등 과거 동유럽 국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을 돌아봤다.
오늘은 바르샤바의 랜드마크 문화과학궁전과 그 주변을 관광하는 일정이었다.
“저기요!”
답사팀 후미에 쳐져 있던 이온을 불러 세우는 한국말이 들려왔다.
처량하게 노천카페에서 동영상 파일을 백업하던 한아름이다.
“......!”
유명한 남자, 최근 한국에서 가장 핫한 배우, 최고 시청률 드라마에서 아름답게 퇴장했지만 온라인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온 인물.
바로 나이온이다.
아름은 이온과 똑바로 마주하게 되자, 그대로 얼어버렸다.
곧이어.
딸꾹!
너무 놀라 딸꾹질까지 나왔다.
“이, 이온님? 나이온님?”
허둥대는 아름과 달리 이온은 차분하고 침착했다.
“안녕하세요. 관광 오셨나 봐요?”
“네? 네! 어떻게 오셨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여기 계세요?”
“......?”
“아! <비객>에서 죽었지. 진짜 죽은 건.... 아니, 그게 아니고요. 이온님이 죽었다는 게 아니고 그러니깐....”
정신없는 아가씨다.
아니면 자신의 열혈 팬이어서 흥분해서 횡설수설 댈 수도 있고.
한국의 대장금파크를 구경 온 소녀들이 이온을 발견했을 때 보이는 반응과 비슷했다.
팬이든 관광객이든 유럽 한복판에서 한국말로 아는 체 하는 동포를 만난 것은 분명히 반가운 일이다.
헌데 그녀로 인해 답사팀 전체가 멈춰섰다.
민페다.
프라하와 바르샤바에서 일주일을 돌아다녔는데, 연예인 이온을 알아보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처음으로 이온을 알아보는 이가 나타난 것이다.
답사팀 일행들은 그것이 신기했다.
반갑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이온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답사팀 일행이 연예인을 알아봐주지 못한 상황을 아쉬워하는 웃기는 상황이랄까.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두 학번 위 선배가 말했다.
“이온아, 우리는 먼저 전망대 올라가 있을 게. 팬분한테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도 해주고 천천히 뒤따라와라.”
“네. 형.”
건물 내에는 극장, 박물관, 서점, 스케이트장, 체육관, 수영장, 기업 사무실, 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물이 입주해 있다.
복잡할 것 같지만, 실내에 머무는 동안에는 일행과 길이 엇갈릴 것 같진 않았다.
“제가 과 선후배들과 학술답사를 와서... 사인 해드릴까요? 아니면 사진 찍을까요?”
휙.
아름이 무의식중에 손에 쥐고 있던 브이로그 캠을 들이댔다.
“미안하지만, 동영상은 좀....”
아름이 혀를 쑥 내밀고 얼른 캠을 치웠다.
“아니. 그게 아니구요.”
아름은 자신답지 않게 지나치게 허둥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심장이 막 벌렁벌렁하고, 얼굴도 잘 익은 복숭아처럼 이유 없이 붉게 달아오르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말도 잘 생각 안 나고.
“여행 넷튜버이신가봐요?”
“그냥....”
“괜찮으세요?”
이온이 걱정스레 물었다.
‘.....미치겠네~’
아름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밝은 낮이었지만 아름다운 분위기를 가지고,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모습.
그런 이온의 모습 때문에 아름의 심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괜찮은데요. 괜찮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현실성 없는 그림에서 한 남자가 툭 튀어나온 것 같다.
설레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떻게든 말을 붙이고 함께 있고 싶은 느낌적 느낌.
반했다.
한 마디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온의 빼어난 외모 때문이 아니다.
배우니까 일반인과 다른 외모인 것은 당연했다.
어떤 분위기, 아우라, 느낌...
딱 꼬집을 수 없는 뭔가.
그 때문에 자꾸 횡설수설, 허둥지둥 댄다.
‘나 어떡해......’
처음이 아니다.
중학교때 짝사랑하던 학원 오빠와 딱 마주쳤을 때 느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증상과 똑 같다.
“얼굴이 너무 빨간데.....”
“더워서 그래요. 빨, 빨리 일행 분들한테 가보셔야죠.”
이온은 사인이나 기념촬영도 안 해주고 가려니 뭔가 찝찝했다.
게다가 어쩐지 여성의 상태도 심상치 않고.
“어디 불편한데 없어요? 아픈 거 아니죠?”
“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
이온의 물음에 아름이 재차 괜찮다고 말했다.
“정말로요, 괜찮아요.”
덥석!
이온이 예고도 없이 아름의 손을 붙잡았다.
“헉!”
화들짝 놀란 아름이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이온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름의 얼굴에 바짝 다가서며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이마에 손을 댈 수 없기에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얼굴이 상기되어 있긴 하지만, 손이 차갑지 않은 것으로 봐서 발열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열이 오르면 우리 몸은 땀을 내서 자연스럽게 체온 조절을 한다.
땀이 안 나는 것으로 봐서 감기나 감염 증상의 하나인 고열은 아니다.
경련도 없고, 숨쉬기 힘들어하는 것 같지도 않고.
누나가 간호사다.
학창시절부터 해외로 자원봉사를 다니며 기본적인 응급처지 요령도 갖추고 있는 이온이다.
자신을 불러 세운 여성이 갑자기 건강상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아픈 것 같지는 않았다.
단순히 반가움에 흥분이 최고치에 올라서 그러는 모양이다.
“혹시 모르니까, 실내보다는 시원한 그늘에서 쉬면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네......”
“오늘 같은 날씨에 장시간 야외활동을 하면 탈수가 올 수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아름이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공손하게 인사했다.
이온이 다행이라는 듯 살짝 웃었다.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후광이 환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
아름이 활짝 웃었다.
누군가의 걱정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받아 보는 것은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왠지 나쁘지 않는 기분이다.
아니 너무 좋았다.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에서 작은 행복을 선물 받은 것 같았다.
“그럼. 즐거운 여행되시고. 좋은 콘텐츠 만드세요.”
이온이 작별인사를 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문화과학궁전 안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아 우두커니 서있는 아름은 왠지 아쉬웠다.
“으이구~ 이 바보!”
아름이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첫눈에 반한 것은 반한 것이고.
정말 이 세상을 다 뒤져도 한 번 만날까 말까한 끝내주는 모델을 눈앞에서 놓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거나 엄청난 포스를 마구 분출하지는 않는데.
매력이 있다.
소년 같기도 하고 한 마리 새끼 맹수 같기도 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짝!
아름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쳤다.
문화과학궁전 앞에서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지 않나 손뼉을 치지 않나.
사람들이 아름을 힐끗 쳐다보며 지나쳐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객.....!”
오늘 나이온 배우의 분위기가 드라마 <비객>의 악동이와 어딘지 닮은 것 같다.
뭔가를 상실해서 애처롭고 애잔한.
‘<비객>에서 보여 줬던 모습이 연기가 아니라 평소 모습인가?’
그럴 리가 없다.
아직까지 캐릭터에 빠져 있어서.
악동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나이온 배우가 악동이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다시 만나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물사진은 단순히 외모를 기록하는데 있지 않다.
이야기를 담고 감정을 담고 인물을 감싸고 있는 환경과 메시지까지 함께 담는 거다.
나름 사진밥 먹은 예비 포토그래퍼다.
인물 사진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런 만큼 어려운 분야다.
언제 또 만날지 알 수 없는 남자다.
사진 몇 커트 찍어둘 걸.
아쉽고 안타깝다.
문화과학궁전으로 들어가 이온을 쫒아가 볼까도 생각했다.
스토킹으로 오해받거나.
사생으로 매도되고 싶진 않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자랑거리 하나가 생겼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나이온 배우와 인사했다는 사실.
허둥대고 횡설수설 댄 것은 빼고.
한 달은 우려먹을 소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