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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우-101화 (101/127)

〈 101화 〉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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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은 본능적으로 생체 리듬이 아침에 맞추어져 있어서 매일 비슷한 시간에 깨어난다.

오랜 만에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어제 활쏘기를 무리하게 하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기상 후에 하루도 빼먹지 않는 루틴이 있었다.

스트레칭과 물구나무서기, 푸쉬업이다.

적당히 땀을 뺀 이온이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스킨 및 로션을 대충 바르고 힙합츄리닝 패션에 버킷햇을 푹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배는 그리 고프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얼 먹기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과하게 먹고 싶지는 않았다.

지하철역 입구 노점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대신 점심에 학식을 푸짐하게 먹기로 했다.

학생회관 점심메뉴 중에 천원의 학식이 있다.

가성비가 꽤 좋다.

또한 학식 거의 모든 메뉴는 리필이 가능했다.

그래도 모자라면 까짓 한 판 더 천원의 학식을 먹어도 된다.

“선배님, 같이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어요?”

후배 여학생이 이온에게 수줍게 물었다.

어쩌다 한 번씩 학교에서 사진촬영을 부탁하거나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어떻게 알아보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온은 자신의 인기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이돌>은 스팀플렉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개 국가에 서비스 되고 있다.

방영 당시에도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스팀플렉스 인기순위도 높다.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자신의 댄스장면이 전 세계 KPOP 커버댄스팀의 도전과제가 되어 있기도 했다.

조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받아놓은 상태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힐끗거리는 젊은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차기작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단번에 주인공을 꿰찰 순 없어도 서브 주인공까지 단번에 치고 올라갈 수도 있었다.

본인만 몰랐다.

“형, 왔어요?”

“오빠, 오늘은 점심은 먹고 가요? 같이 먹어요.”

“유럽답사 가는 거 신청 빨리하세요. 안 그럼 졸업 못해요.”

“형, 농구 한 게임 안 뛸래요?”

과 후배들은 이온을 연예인 취급하지 않았다.

녀석들에게는 그저 예비역 선배일 뿐이었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이온의 연기 활동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이온으로 인해 연예 활동을 핑계로 대학 생활에 소홀할 것이라는 편견을 제대로 깼다.

오히려 일반 학생들이 이온의 성실한 모습을 보며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일부 교수님은 이온을 불러서 차라리 전과를 해서 연기활동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권하기도 했다.

아쉽지만 한국대에는 연극영화 관련 학과가 없다.

전과를 한다면 영상매체예술이나 체육교육과 정도다.

이온은 전과할 의향이 전혀 없었다.

대단한 성적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무사히 졸업을 하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어쨌든 오늘도 성실하게 강의를 들은 이온이 오후 늦게 방배동으로 향했다.

방배동 카페골목은 우리나라 카페 거리의 원조격이다.

그것도 옛말이다.

현재는 지역 주민들이 오가는 평범한 먹자골목으로 바뀌었다.

이온은 방배동에서 보자고 해서 서래마을에서 볼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소리 소문 없이 뜨고 있는 내방역 핫플레이스로 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방역 근처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애견출입이 가능한 카페로 들어갔다.

테이블이 다섯 개밖에 없는 작지만 아늑한 카페였다.

오디션 때 봤던 곽준기와 작가로 보이는 여성 그리고 깡마른데다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 어딘지 예민해 보이는 중년 남자가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온이 허를 깊이 숙여 곽준기 일행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이온입니다.”

“어서 와요.”

곽준기가 이온을 반갑게 맞이했다.

PD와 작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이온을 관찰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10분 일찍 왔으면서 뭘요. 우리가 일찍 온 거예요. 여기 계신 분이 황혜경 작가님.”

“처음 뵙겠습니다. 액션배우 나이온입니다.”

“이쪽에 계신 분은 <비객> 연출하시는 엄기웅 PD님."

"안녕하세요, PD님.“

PD와 작가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일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높으신 양반들이 일개 조단역을 보러 멀리까지 친히 왕림해서 불쾌한 것인가.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곽준기가 주로 말을 걸었다.

“커피? 음료는 뭐로.... 작가님 말로는 여기 아인슈페너가 그렇게 유명하다네.”

“아아 마시겠습니다.”

이온이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일어섰다.

“이온씨는 여기 있어. 내가 주문하고 올 테니까.”

곽준기가 이온을 남겨두고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테이블 떠난 사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색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국대 재학 중이라고?”

엄 PD가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예. 서양사학과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아이돌>에서 스페인어 사용하던데 얼마나 배운 거예요?”

황 작가가 호기심에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고등학교때 처음 익히기 시작했으니까 십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위해 속성과외를 받은 게 아니라?”

“예.”

“어쩐지~ 내가 스페인어는 할 줄 몰라도 영화는 진짜 많이 봤어. 발음이 다르긴 다르더라.”

“서양사학과면 제2 외국어로 불어나 독어 하겠네?”

다시 엄 PD가 물었다.

“불어하고 있습니다.”

“영어까지 해서 4개 국어 할 줄 아는 건가?”

“예.”

스푼으로 쫀쫀한 크림을 떠먹던 황 작가가 입을 열었다.

“스페인 영화도 많이 보겠네요?”

“최근에는 바빠서 못 보고 있습니다. 스페인어 까먹지 않으려고 스페인어권 영화들 가끔 보고 있습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들 좀 봤어요?”

“거장이시니까요.”

“어떤 영화?”

“<내가 사는 피부>도 재밌게 봤고. 최근에는 <페인 앤 글로리>가 좋았습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라는 배우를 통해 연기 부분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PD까지 가세해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세계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아이스아메리카를 손수 받아 온 곽준기도 끼어들었다.

이온은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연기는 이온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으니까.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무려 9편을 함께 했다.

“자, 영화에 대한 토론은 그 정도로 하고. 간단하게 목소리 톤하고 화술 좀 볼까?”

엄 PD의 말에 곽준기가 가방에서 <비객> 대본을 꺼냈다.

페이지를 열심히 넘겨가며 대사를 찾은 후에 이온에게 넘겼다.

에헴!

20분 정도 스페인 영화를 놓고 열띤 대화를 나눠서 목이 약간 말라 있었다.

이온은 물을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어서 삼키며 대본의 대사를 눈으로 읽었다.

애틋하지만 안타까움도 진하게 스며있는 다이얼로그였다.

전반적인 내용이나 흐름을 모르니 그저 느끼는 대로 읽을 수밖에.

“해보겠습니다.”

아아.

이온이 한 번 헛기침을 하고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다이얼로그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사내가 아니랍디다..... 나는 광대요..... 놀리지 마시오. 맴이 찢어질라 하니까....”

이온은 감정을 잡는 데까지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애잔해 보이는 동공과는 반대로 무덤덤한 표정, 그리고 낮지만 애틋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무언가 묘한 느낌을 선사했다.

특히 살판쇠 오디션을 봤던 곽준기는 뇌리를 스치는 직감이 있었다.

‘오디션 때, 일부러 실력을 감췄어?’

그럴 리가 없다.

당시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 짧은 사이에 연기가 늘었다고?’

그것밖에 없다.

곽준기는 물론이고 엄 PD는 첫 대사를 듣고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름 돋는 리딩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기와 연기 경력이 대충은 가늠이 됐다.

사실 더 볼 것도 없었다.

이 정도면 원하던 수준을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싫소. 좋은 사내이고 싶소....애기씨는 항상 내게 그건 아니라고만 하오....애기씨는 애기씨요. 내게는....”

이온이 고개를 저었다.

얕은 몰입이지만, 연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기 감정이 행동으로 표출됐다.

이온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다시 리딩을 이어갔다.

“그러니 강요하지 마시오. 부탁이요.”

이온의 리딩을 보고 있자니 곽준기는 정승복 캐디에게 더욱 화가 났다.

중간에서 장난질만 치지 않았으면 바로 눈앞에 있는 녀석이 이형곤이 차지한 배역을 연기했을 것이고,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터.

‘살판쇠 할 때는 힘을 바짝 주더니, 힘 빼는 것도 할 줄 아네.’

사실 이온은 살판쇠 오디션 이후로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 출연하면서 그 짧은 기간에 연기가 이상하리만치 늘었다.

<비객> 오디션 당시에도 연기입문 시기나 경력치고는 꽤나 연기가 안정적이었지만, 거친 면이 없지 않았다.

몇 달 사이에 거친 부분이 많이 개선된 듯 보였다.

‘괜찮지?’

황 작가가 엄 PD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다 들렸다.

“이름이 이온이라고 했지?”

“예. 감독님.”

“누구한테 배웠어? 학원에서 배운 게 아니지?”

“액션아카데미 선배들한테도 배우고, 현장에서 여러 훌륭하신 선배님들 연기하는 것 열심히 모니터링하고, 신지균 선생님이 봐 주고 계십니다.”

“뭐라고요! 누구?”

곽준기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선생님이 가끔 등산도 데려가시고 낚시도 데려가시고 사회인 야구도 데려가시면서 이것저것 가르침을 주십니다.”

“왜 이야기 안 했어요!“

곽준기가 화를 냈다.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말을 안 했다.

그리고 정식 사제지간도 아니다.

“아~ 이 정승복이 새끼....진짜!”

곽준기로서는 캐스팅 디렉터의 농간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사실 이온이 신지균 배우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온의 절친인 단비 역시 대학로에서 시도 때도 없이 신지균 등과 어울려 함께 술을 마시니까.

이온도 그렇게 어울리는 어린 후배들 중에 한 명처럼 여겨졌다.

대체로 신지균의 연기 제자라고 일컫는 이들은 스타급 배우들로 모두가 기사화되었다.

아마 이온이 라이징 스타가 된다면 언론에서 알아서 다룰 것이고, 소속사가 생기게 되면 신지균에게 양해를 구해 언론플레이를 하게 될 것이다.

“연기 경력도 짧고 주로 스턴트를 하지만, 연기가 안정된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어.”

엄 PD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황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충 로션만 바르고 온 것 같은데?”

“스킨도 발랐습니다. 하하.”

“피부가 뽀송뽀송해서 그른가? 잘만 꾸며 놓으면 소년미 뿜뿜이겠어.”

“감사합니다.”

이온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20대 연령대 배우에게는 어떤 면에서 칭찬이긴 하다.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배우이자 성격파 배우이길 희망하는 이온은 그런 칭찬이 썩 달갑지 않았지만.

[황혜경 작가가 내놓은 퓨전사극 <비객>은 첫 방송에서 5.3%(닐슨, 전국 유료플랫폼 가입기준)으로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2회차에서 급격하게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4.3%로 하락한 시청률은 3회에서도 4% 시청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손민아와 안건우는 각각 <청춘의 계곡>과 <사이코패스 패밀리>로 연기력을 입증 받은 만큼 두 사람의 조합에 큰 기대가 쏠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3회에도 시청률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방송가에서는 황혜경 작가가 처음으로 시청률 10%를 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예상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초반 이목을 끄는 데도 실패하고 저조한 화제성과 시청률로 굴욕을 맛보고 있는 <비객>은 최근 시청률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극약처방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 프리연애뉴스. 김형식 기자.

드라마 <비객>은 4회까지 방영하고 아시안게임 특별편성 등으로 2주간 결방했다.

그 사이에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가장 중요한 재정비는 이형곤과 이온의 배역 교체였다.

그런데 어떻게 기자들이 알았는지, 이형곤의 하차 뉴스가 떴다.

시청자 게시판에도 그와 관련한 다양한 루머와 억측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익명으로 음모론을 전개하기도 했다.

시청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비객>은 좋지 않은 악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온이 있었다.

- <아이돌>에서 남미 교포로 나왔던 배우가 이형곤을 까고 대신 역활을 꿀꺽 했답니다

┖ 역활(X) 역할(O)

┖ 아는 형이 그러는데 이형곤 벌써 하차 했답니다.

┖ 아직 하차했다는 공식 입장은 안 나온 것으로 알아요.

┖ 이형곤이 출연했던 부분 다 잘라내고 새로 찍고 있답니다.

┖ 헐. 진짜임?

┖ 우리 외모천재 형곤 오빠 자른 놈이 누구에요?

┖ 나이온.

┖ 스턴트맨 출신 배우 있습니다.

┖ 스턴트맨이 연기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이형곤을 하차시키고 대신 들어간답니까?

┖ <아이돌> 못 봤삼. 나이온 연기 개 잘 해요.

┖ 개 잘하는 건 아닌데. 20대 배우치곤 쫌 함.

┖ 내가 보기에는 나이온 괜춘. 외모도 이형곤 못지않음.

┖ 일단 기럭지에서 나이온이 이형곤 바름. <활빈>에도 대사 없이 액션만 하는 단역으로 몇 번 나왔는데, 존 멋임.

┖ 그래도 그렇지 이미 촬영들어간 상태에서 배우를 하차시키고 자신이 그 배역 차지하는 거는 아니지 ㅇ않나?

┖ 맞음 갑질임.

┖ 송하나한테 몸 대줬다는 소문 있던데 황혜경한테도 그랬을 수도...

┖ 님. 고소미. 캡쳐 해서 신고했음요.

┖ 나이온은 소속사도 없음. 갑질은 제작사가 한 걸로 보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루머도 간간이 댓글에 달렸다.

<비객> 제작진과 이형곤의 소속사가 원만하게 조율하고 있는 가운데 터진 사건이었다.

이형곤의 팬들은 시청자 게시판에 상주하면서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성 게시글을 달기도 했다.

넷튜버들도 확인 되지 않은 루머들로 온갖 콘텐츠를 제작했다.

제작진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공식 입장을 내놓겠다는 공지가 올라오기는 했다.

겨우 조단역배우 하나가 하차하는 것일 뿐이지만, 반응은 너무 격렬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공정‘이란 화두가 첨예하게 대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의 갑질이나 제작사의 횡포가 밝혀진다면 드라마 시청률은 물론이고 해당 관계자들이 엄청난 비난을 각오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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