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93화 (93/127)

〈 93화 〉 배우 말고 스턴트를 해야 되는데...(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송관효가 ‘컷’을 외치며 담장으로 달려와 이온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냐? 힘들지?”

“당연하죠.”

우일이 이온의 어깨를 떠밀며 말했다.

“아휴! 하여간 자식이 돌려 말하는 게 법이 없어.”

“달리 MZ세대겠어요?”

“잘났다, 자식아~”

“언제는 담백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면서요?”

“그래도 거짓말은 안하니까.”

“거짓말 잘하는데......”

“뭐?”

“단! 해도 먹힐 사람과 안 먹힐 사람을 구분하죠.”

“그런 건 솔직하지 말아줄래?”

“이것도 거짓말일지 모르죠.”

짝.

우일이 이온의 등짝을 후려쳤다.

“헤헤. 형님~”

“헤헤는 자식이..... 징그러워.”

후배들의 만담을 지켜보던 송관효가 입을 열었다.

“쉬었다 갈까?”

“풀 샷은 끝내놓고 쉴게요.”

“그러자.”

송관효가 이온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어주고 모니터스테이션으로 걸어갔다.

우일이 진지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발목 돌려봐.”

“괜찮아요.”

“씁!”

우일이 무척 진지한 얼굴로 으름장을 놨다.

이온이 슬슬 왼쪽 발목을 돌렸다.

찌릿.

살짝 통증이 왔다.

하지만 이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보세요. 별 문제 없어요.”

이온은 왼쪽 발목에 이어 오른쪽 발목까지 돌려 멀쩡함을 과시했다.

우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끊어서 가자고 할까?”

“아니에요.”

“특효팀에 말해서 매트리스 깔던가.”

“괜찮다니까요.”

“오늘만 살 거야?”

“아시잖아요. 제가 언제 무모하게 나대거나 억지 부리는 거 보셨어요?”

못한다고 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나선 적도 거의 없었다.

이온은 나설 때와 가만히 있을 때의 선을 잘 지켜왔다.

우일 한 발 물러섰다.

“압박 붕대 감자.”

“거치적거리는데......”

“감독님께 가서 오늘 못한다고 말한다?”

“알겠어요! 감아요!”

이온은 발목에 압박붕대를 감고서 다시 스턴트에 나섰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우일은 ‘슛테스트‘에서는 담장 밑에 매트리스를 깔았다.

그리고 본촬영에 들어갈 때 매트리스를 치웠다.

‘찌릿찌릿 하네......!’

연기예술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즉 배우 자신이 연기 표현의 주체이자 동시에 배우의 신체가 표현의 매체가 된다.

표현의 주체로서 자아와 매체로서 자아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표현의 기본인 연기기술은 꾸준한 훈련으로 성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수준을 높이는 것에는 훈련만으로 안 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벽을 허무는 것에는 어떤 계기가 필요한 것이다.

공부에서 한계점의 성적을 뛰어넘는 일, 운동에서 경지를 허무는 일,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는 일, 자기 자신의 틀을 깨고 한 단계 성숙하는 일과 같은 맥락의 무언가 계기가 있어야 한다.

언제 그런 순간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계기가 만들어질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예상하기로는, 반드시 촬영현장에서 찾아올 것 같다는 것.

연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순간에 찾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최대한 현장에 있어야 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카메라 앞에 서야 돼.’

때문에 이온은 액션연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해서도 안 된다.

훈련이 실전이고, 실전이 곧 훈련이기 때문에.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동 트기 직전에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온은 수차례 담장에서 땅바닥으로 앞공중돌기를 돌았다.

압박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점차 통증이 제법 심해졌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OK' 콜을 받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액션연기에 임했다.

무술팀 선배들을 제외하고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실제 치고받고 하다가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고, 무술팀이 그런 태를 내지 않았으니까.

촬영이 끝나고, 이온은 우일의 차를 타고 양주로 향했다.

병원에서 염좌 진단을 받았다.

왼쪽 발목이 삔 것이다.

“다행히 주변의 미세 골절이나 힘줄의 손상이 동반되진 않았네요.”

이온의 발목 염좌는 3단계 중에서 기능적 상실이 거의 없는 인대 내부파열 즉 가벼운 염좌 판정을 받았다.

발목 염좌는 다친 정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한다.

가벼운 염좌가 1단계고, 2단계(중등도 염좌)는 중등도의 불안정성과 함께 움직임 제한을 동반한 인대의 부분파열, 3단계(심한 염좌)는 인대의 완전 파열로 걷기 힘들며 목발 등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당장 붓기도 빠져야 하고, 인대 손상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꺾고 비틀고 하는 것 금지.

또한 얼음찜질 등으로 부드럽게 근육을 풀어줘야 했다.

“밤에 숙소에서 높은 베개 베면 안 돼.”

“넵.”

현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들을 했지만, 두 선배는 이온의 발목상태에 유난을 떨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액션배우는 몸이 재산이다.

적절한 휴식과 찜질 등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가 된다고 하더라도 만에 하나라도 습관적 염좌나 발목관절 불안정성으로 인한 관절염으로 발전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액션아카데미 출신 선배들 중에 염좌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관절염으로 발전해서 고생을 하다가 은퇴한 경우도 있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송관효의 표정이 어두웠다.

뭔가 불만이 있어보였다.

액션배우도 배우다.

비록 작은 배역을 주로 맡아서 하지만, 간혹 표정 연기를 넘어 내면연기를 해야 할 경우도 있다.

후배들이 연기를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액션배우 본래의 직분 즉 스턴트맨을 잃고 자신을 배우로 단정해버리는 후배들의 태도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에서 17:1로 싸우는 장면이 있다고 쳤을 때.

액션을 하는 사람은 거의 17명의 악역 중 한 명이고 1을 맡은 이는 주인공이다.

그런데 후배 스턴트맨들은 마음속으로 계속 그 한 명의 주인공을 하고 싶어 한다.

송관효는 그런 후배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가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어려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 같다.

직접 와닿지 않으니 선배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것이다.

“이온아~”

“네. 감독님.”

“잘 난 놈은 언제나 외롭게 되어 있어.”

“......?”

“외로운 것도 복이야. 잘났다는 증거니까. 알것냐?”

“네?”

“저런 놈이 배우하지 말고 스턴트를 해야 되는데.......쯧.”

이온이 우일을 쳐다봤다.

표정으로 송관효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우일이라고 알 리가 없었다.

“병원비는 어떻게 처리 되요?”

“자부담.”

“......?”

“네가 부담하는 게 아니라 무술팀 예산에서 나가는 거야.”

“보험 있잖아요?”

“작은 부상까지 일일이 제작부에 들이밀면 졸라 싫어해.”

말도 안 된다.

그런데 염연한 현실이다.

스태프 처우는 영화가 확실히 앞서가고 있다.

아직 한참 멀어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영화만 하고 싶은 거야. 영화판이랑 외주제작사 드라마판이랑 처우가 완전히 다르니까.”

송관효가 입을 열었다.

“프로가 뭐야?”

“......”

“자기 몸값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게 프로잖아.”

이온과 우일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처우를 받고 싶으면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최고가 되는 수밖에 없어.”

당연한 말씀을.

“누가 뭐라고 하던지 신경 쓰지 말고 프로가 돼.”

“넵!”

이온과 우일이 동시에 대답했다.

송관효가 이끄는 무술팀은 용인대장금파크가 있는 양주에서 금요일까지 숙식을 하며 액션 시퀀스를 찍었다.

이온 역시 일산으로 철수하지 않고 양주시에 마련된 스태프 숙소에서 묵었다.

본래 몹씬을 찍기로 한 날에 이온은 압박붕대를 풀었다.

언제 삐었냐는 듯 멀쩡한 발목상태로 돌아다녔다.

송관효과 박우일의 우려가 무색하게 이온은 생생했다.

“진짜 괜찮은 거야?”

“의사선생님도 다 나았다고 하셨어요.”

“하루 만에 나을 수 있는 거였어?”

“그렇다는데요?”

선배 두 사람이 믿지 않는 것 같아서 이온은 트릭킹을 시범보이고, 목검을 들고 검술까지 펼쳐 보여야 했다.

“와이어 타는 건 감독님이 하신다고 해도 칼싸움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네 상태 봐서.”

말과 다르게 송관효는 이온에게 이진한의 대역을 자주 맡겼다.

이온은 겨울 방학이 끝날 때까지 <활빈>의 무술팀으로 활동했다.

무술감독을 맡은 송관효를 대신해서 이진한의 스턴트더블을 하기도 하고, 포졸이나 관군이 되기도 하고, 탐관오리가 고용한 무사로도 출연했고, 활빈당의 비밀결사조직원이 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은 없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송하나 작가의 Vnet 드라마 <아이돌>이 K뮤직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팀플렉스 공개 일주일 만에 10개국 차트 1위 총 50개국에서 ‘오늘의 톱 10 콘텐트’에 오를 만큼 해외 반응도 뜨겁다. 전 세계 190여개국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면서 공식 SNS 계정에는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다국적 언어 댓글로 도배되고 있다.(중략) 최근 한기중 PD는 송하나 작가가 시즌2 집필에 들어갔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면서 그와 관련한 댓글들이 온라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배우들의 SNS 계정은 해외 팬들의 다국적 언어 댓글이 넘쳐 났다.

심지어 망한 아이돌로 평가받는 오찬기의 보이그룹이 재평가 받는 일도 있었다.

SNS 계정이 없는 이온은 해외에서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 쪽 지인들의 전화와 이메일이 폭주했다.

스팀플렉스로 <아이돌>을 시청한 미국의 지인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이모들. 잘 지냈어요?”

노트북 화면에 샌프란시스코 한인봉사단체 간부 이모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 아이돌로도 데뷔한 거야? 댄서도 하는 거니?

“아니요.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다가 운이 좋아서 출연했던 거예요.”

- 함께 봉사활동 다니기 힘들겠구나?

“당장은 힘들어요. 학교도 졸업해야 하고.”

- 미국엔 안 와?

“여름에 해외에 나가긴 하는데 유럽으로 갈 것 같아요.”

- 유럽 어디?

“학과에서 역사답사를 가는 거라서 아직 몰라요.”

- 이슬이가 그러는데 영화도 많이 출연했다며?

“단역으로 몇 번 출연했어요.”

이온은 자신의 얼굴이 노출된 영화와 드라마를 샌프란시스코 이모들에게 알려주었다.

남미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사귄 친구들도 한국에서 잘 쓰지 않는 메신저앱인 스냅이나 왓츠로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페루에서 워크캠프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도 오랜만에 화상통화를 하기도 했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것과 자신이 유명세를 타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온이다.

조단역이 떠봐야 얼마나 떴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이 알려준 해외 커뮤니티를 돌아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자신이 꽤나 해외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서는 이온 관련 기사도 많지 않았다.

당연히 주인공과 소속사 푸쉬를 받은 배우들이 주목을 받았다.

해외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이온과 댄서들이 선보인 KPOP 아이돌 데뷔무대가 2분 30초짜리 뮤직비디오 버전으로 편집되어 SNS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 언제 데뷔한 KPOP 아티스트입니까?

┖ 실제로 데뷔한 그룹이 아닙니다.

┖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난 이들이 이 멋진 곡으로 활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ELES VÃO DOMINAR O MUNDO CARA, INCRÍVEIS.

(그들은 세계를 차지할 것입니다. 굉장합니다.)

- Amo esta canción, sus outfits, la coreografía, la música... es perfecta

(나는 이 노래의 의상, 안무, 음악을 좋아합니다.... 완벽합니다.)

- So intense, so powerful...

(너무 강렬하고, 너무 강력하다)

아마 이온의 SNS 계정이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지도 몰랐다.

상상 이상으로 이온이 해외에서는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한국의 사극이 특히 큰 인기를 끄는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는 K-드라마 팬들이 <태왕 광개토>에서 다양한 액션장면에서 출연한 이온을 일일이 찾아서 캡처한 사진을 올린 짤도 공유되고 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서 중동에서는 장현식과 고한별 두 주인공보다 이온이 더욱 주목 받고 있었다.

- Ion의 차기작은 무엇입니까?

┖ 알 수 없습니다. 그는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 크리스티안에 대한 한국의 뉴스기사를 많이 찾을 수 없습니다. 그의 정체는 뭡니까?

┖ 그의 풀네임은 이온 나입니다. 한국의 유명한 비보이입니다.

┖ 트릭커이기도 합니다. 링크 남깁니다.

┖ 링크 잘 봤습니다. 그는 토니쟈 보다 더 다람쥐같고 스태이덤보다 스마트하며 모모아보다 아름답습니다.

┖ 와우!

- 이온은 스턴트맨입니다. 가장 최근에 <지옥의 악인들>에서 어린 갱스터로 출연했습니다.

┖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 스팀플렉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온과 관련한 기사가 완전히 사라졌다.

한창 방영될 때도 기사가 많지도 않았지만.

그런데 <아이돌>이 해외에서 서비스되면서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고, 출연진 중에 이온도 많이 언급되고 있었다.

소속사가 있었다면 그런 내용들이 모니터링 되어 전해졌을 터.

안타깝게도 이온은 자신의 유명세를 까맣게 몰랐다.

간간히 해외 지인들로부터 전해 듣는 것도 피부에 와 닿지 않으니 인기가 실감나지도 않았고.

동생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는 누나 이슬도 알 수 없었다.

한국 언론에서는 <아이돌>의 흥행에만 초점을 맞출 뿐.

게다가 두 주인공인 장현기와 고한별이 훨씬 더 유명세가 높았기 때문에 조단역급인 이온에 대해 언론과 넷튜버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해외 K-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이 조용히 퍼져나가는 것도 모른 채 이온은 새로운 학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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