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76화 (76/127)

〈 76화 〉 아이돌(Idol).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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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은 오랜만에 캐주얼정장을 차려 입었다.

드라마 <아이돌> 고사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고사장은 연습실 세트가 지어진 BS그룹 일산제작센터에 마련되었다.

이온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집 앞에서 택시를 타자 기본요금 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지면적 5300평에 달하는 이 대규모 종합촬영소는 드라마 전용과 예능 프로그램 전용 스튜디오로 나눠져 있다.

힙합과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제작될 때마다 제작센터 앞은 방청 인파로 북적거린다.

이온 역시 그런 풍경을 기대했다.

한산했다.

새로운 시즌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시기가 아닌 모양이다.

참고로 BS그룹은 일산 제작센터를 비롯해 상암, 가양, S플렉스, 여주에도 제작 인프라를 두고 있다.

이온이 그쪽으로 갈 일은 별로 없다.

Vnet과 BCN 드라마가 주로 이곳 제작센터에서 촬영되기 때문이다.

“수고하세요!”

이온은 입구에서 출입증을 보여주고 <아이돌> 세트가 지어진 C 스튜디오로 향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세트장 혹은 스튜디오로 불리는 방음과 조명 바텐이 설치된 실내 촬영시설을 미국에서는 사운드스테이지라고 부른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스튜디오 내부는 이미 많은 이들로 북적거렸다.

이온은 다짜고짜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출연진이에요?”

“무술팀 소속 액션배우입니다!”

이온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배우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쑥스러웠다.

그래서 무술팀을 먼저 밝히는 편이다.

“조감독님, 안녕하세요?”

“이온이 왔냐? 최 감독님은?”

“유봉이형이랑 같이 올 겁니다. 제가 집이 가까워서 좀 일찍 왔어요.”

“매일 추리닝 입은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차려입은 것 보니까 배우 맞네?”

“조감독님, 혹시 따로 드레스코드가 있어요?”

400여 평의 넓은 스튜디오 안에 수트를 차려입은 이들이 간간이 눈에 띠었다.

“무슨 드레스코드?”

“고사잖아요.”

“개업식이나 새차 안전운행 고사 지낼 때 한복 곱게 차려입거나 정장 입어?”

“안 입죠.”

“동네 편의점 갈 때 차림만 아니면 돼.”

이온이 자신의 옷차림새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있어라.”

“어디 가세요?”

“응. 어디 가.”

“어디 가시는데요?”

“있어.”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세요?”

“몰라도 어디가 덧나는 건 아니잖아. 인마.”

“하하. 그건 그렇지만......”

연출팀이 수시로 댄스연습실을 찾아와 단역배우들의 실력을 점검을 하고 갔다.

몇 번 술자리도 했다.

때문에 이온은 연출팀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전체 대본 리딩 때 왔었냐? 내가 가물가물 하다.”

“안 불러주시던데요?”

“주·조연 배우들과 인사 못했겠네?”

“오늘 인사하겠죠.”

“주차장에 가봐. 거기 재완이 있을 거야.”

“수고하세요.”

“이따 고사 때 보자.”

조감독과 헤어진 이온이 주차장에서 연재완을 만났다.

연재완을 통해 또래 주·조연 배우들과 안면을 트려고 했지만, 마침 최소망 감독과 무술팀 퍼스트 장유봉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만사 제쳐두고 사수를 맞이하러 달려갔다.

고사상은 스튜디오 입구 쪽에 차려졌다.

예정된 시간이 가까워오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C스튜디오로 몰려들었다.

이온은 오가면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죄다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파트가 어디야?”

“무술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쫑할 때까지 다치지 말고.”

“넵!”

나이가 적고 많음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이온은 아역배우의 엄마들에게까지 인사를 했다.

씬스틸러라고 불릴 만한 배우들이 꽤 많이 참석했다.

‘괜히 송하나, 송하나 하는 게 아니구나......!’

작은 영화에서는 주연도 하는 배우들도 보였다.

틀면 나온다고 해서 ‘수도꼭지‘라는 별명이 붙은 감초배우들도 여럿 보였다.

젊은 배우들 중에는 유명 아이돌부터 아역 출신도 상당히 많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방송출연료 분류표상 최고등급의 중견 연기자들도 속속 도착했다.

“어, 그래요. 이름이 어떻게 되나?”

“나이온입니다. 교포연습생 1번입니다.”

“그런가? 똘똘하게 생겼구먼.”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부분은 웃으며 받아줬지만, 일부는 눈을 위아래로 흘기며 자리를 피했다.

그럼에도 이온은 굴하지 않았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는 모습에 무술팀 퍼스트 장유봉이 혀를 내둘렀다.

뻔뻔한 건지 넉살이 좋은 건지.

그래도 스태프와 배우들이 살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것을 보면 영 막무가내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관종인가?”

장유봉이 중얼거렸다.

“충원이한테 잘 배웠어. 현장에서 인사예절은 기본이니까.”

최소망 감독이 말했다.

“아, 첫 현장이 치열 감독님이 작업한 드라마였죠?”

“우리 애들은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저렇게 금방 친해지지 못하잖아. 확실히 이온이는 배우 태가 나긴 해.”

스턴트맨들이 내성적이진 않다.

그렇다고 싹싹하지도 않다.

무술팀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붙박이로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통 액션 시퀀스를 촬영할 때만 촬영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때문에 스태프와 배우들 사이에서 겉도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영업사원이나 보험설계사, 극단적으로 다단계를 해도 성공했을 정도로 넉살이 좋았다.

본래 성격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다분히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면이 컸다.

오늘 인사한 이들이 나중에 어떤 현장에서 다시 마주칠지 알 수 없다.

인사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예절바른 이미지를 심어줘서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것이 인사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야, 인마! 선생님이라니! 큰일 날 소리를!”

박호섭이 질색팔색했다.

그는 한국영화계의 대표적인 감초배우이자 천만배우이며 신지균 선생님의 술친구 중 한 명이다.

이온은 대학로 술자리에 몇 번 참석하며 그와 친분을 다졌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형이라고 해. 우리 여러 번 술 먹었잖아.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하하.

이온이 웃으며 얼버무렸다.

20살 이상 차이 난다.

아버지뻘이다.

“최소망 감독팀에서 일해?”

“스턴트도 하고, 작은 배역도 하나 맡았습니다.”

“오. 벌써 하산 한 거야?”

“만날 뒷동산만 오르면 뭐하냐고. 조금 어려운 산도 타보라고 하시네요.”

“그놈에 등산은......! 누가 보면 그 형이 백두대간 다 정복한 줄 알겠네.”

박호섭 배우가 불퉁거렸다.

신지균과 친하니까 할 수 있는 뒷담화다.

“야, 주당~”

“네. 선배님!”

<전당포 비밀요원>의 악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성식 배우가 이온을 불렀다.

그에게 이온은 주당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김성식 배우는 집안 내력인지 술을 한모금도 입에 못 댄다.

그런 그가 생맥주 500cc를 마실 수 있는 이온을 부러워하며 장난스럽게 붙인 별명이 주당이었다.

“호섭이는 선생이고 난 왜 선배냐? 내가 낼 모레 환갑이야.”

“죄송합니다. 선생님.”

“야, 그러지마. 니가 그렇게 정색하면 농담한 나는 뭐가 되냐?”

무섭게 생긴 외모와 악역을 주로 하다 보니 성격도 차갑고 무서운 사람일 것 같다.

전혀 아니다.

김성식 배우는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다.

말 수도 적어서, 어쩌면 지금 한 말이 오늘 이온에게 한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막내 너, 송한테 찍혔다며?”

김성식 배우가 이온에게 바짝 붙어서 속삭였다.

“송 작가님과 최소망 감독님 추천으로 오디션 기회를 얻긴 했습니다.”

“송이 직접 오디션 봤어?”

송하나도 아니고, 송작가도 아니고, 호칭이 송이다.

친해서 그런 것인지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

“PD님도 보시고. 소망 감독님이랑 안무선생님도 함께 보시고.......”

“송, 저거 요물이야. 아니 그냥 미친년이야.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김성식 배우는 새까만 후배에게 송하나 험담을 늘어놓을 사람이 절대 아니다.

“송이 왜 대단한지 아냐?”

집필한 드라마마다 히트를 쳤으니까.

“발연기나 연기력 논란이 있어도 송 같은 스타작가가 쓴 드라마 시청률 잘 안 떨어져. 왜? 이야기가 워낙 탄탄하니까. 괜히 스타작가 소리 듣는 게 아냐.”

“아, 네.”

이온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본능적인 처세술이다.

추임새는 가급적 크게 넣어주는 것이 좋다.

너무 과하면 가식적이지만.

“내가 웬만하면 송이랑 일을 안 하려고 했어. 더럽게 까다롭거든. 송의 책이 말이야, 배우가 숨을 쉴 여지를 잘 안 줘. 토씨 하나 달라져도 지랄지랄 대거든.”

“성격이 보통 아니시긴 하더라고요.”

“성격이 보통이 아니긴.... 그냥 싸가지가 없는 거지.”

이온이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김성식 배우가 너무 막 나가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에 모여 있는 배우들은 그저 웃기만 한다.

그의 말에 공감을 하는 모양새다.

이온과 눈이 마주친 박호섭 배우가 입을 열었다.

“이 형이 최근에 연달아서 작은 영화를 했어. 그랬더니 사람들이 형이 쉰 줄 알아.”

작은 영화라함은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를 일컬었다.

해외영화제에 초청될만한 문제작이 아니라면 언론에서 잘 안 다뤄준다.

따라서 영화를 두 편을 촬영했지만, 대중들은 김성식이 일을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번에 드라마에 캐스팅이 되니까, 뉴스기사가 어떻게 나가는 줄 아냐? 휴식을 마치고 다시 복귀했대. 킥킥.”

대중들은 상업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으면, 배우가 일이 없어서 놀고 있는 줄 안다.

물론 휴식을 취하거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배우도 있다.

주연급 배우가 보통 그렇게 한다.

그 외에 대다수의 배우는 노는 법이 없다.

아닐 놀 수가 없다.

휴식이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순간 자신에게 올 좋은 배역이 다른 누군가에게 가게 되니까.

“작년 올해 영화를 세 편을 했는데, 본의 아니게 휴식을 마치고 송의 드라마로 복귀하게 됐어. 내가...... 킥킥.”

김성식이 웃었다.

그런데 어딘지 씁쓸함이 느껴졌다.

영화만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

순전히 이온의 추측이다.

김성식 배우는 송 작가의 작품이 좋은 드라마라고 판단되어 선택했을 수도 있다.

특히 송하나 작가의 작품은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

작가의 필력, PD의 연출력에 더해 방송사가 전방위적으로 밀어줄 테니까.

물론 주연배우들 소속사의 언론플레이도 만만지 않게 전개될 것이다.

“회식자리에서 뵙겠습니다.”

“그래라. 있다 보자.”

이온이 선배 배우 무리에서 떨어져 무술팀에게 돌아왔다.

예정된 시간이 30분이나 경과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대박 기원 고사’가 열렸다.

Vnet 드라마 편성국장과 제작사 대표가 조금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암튼 100명도 넘는 인원이 참석한 고사에서 가장 먼저 연출을 맡은 한기중 감독이 제를 올렸다.

“좋은 작품, 좋은 배우들이 함께하는 만큼 배우와 제작진 모두 건강히 촬영을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불가피하게 후반부로 갈수록 일부 쪽대본으로 진행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수표일 확률이 매우 높은 발언이다.

하지만 스태프들의 열정적인 환호성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 개신교 신도가 아닌 배우들이 먼저 향을 피우며 드라마의 성공과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전했다.

개신교를 믿는 이들은 묵념으로 고사를 대신하며 한 목소리로 건강하고 즐거운 촬영이 될 수 있도록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호섭 같은 배우는 현장에서 피곤을 모를 정도로 화목하게 만들겠다며 익살을 떨어 고사현장 분위기를 달궜다.

무술팀은 최소망 감독이 대표로 고사상에 향을 올리고 묵념했다.

이온은 400여 평 넓이, 3층 높이의 탁 트인 스튜디오 내부를 둘러봤다.

수많은 Vnet과 BCN의 히트 드라마가 제작된 스튜디오다.

1층에는 부조정실까지 갖추고 있어서 예능도 제작 가능했다.

‘나중에 송작가가 미리 말해준 엔딩 장면을 이곳에서 찍을 수도 있으려나?’

주인공이 음악방송 객석에 나타나 크리스티안의 데뷔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마지막 회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 PD가 귀띔해줬다.

주인공이 음악방송 녹화장을 미련 없이 박차고 나가서는 어린 시절을 바친 아이돌 연습생에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간다는 암시를 주면서 드라마가 끝이 날것으로 예상했다.

비록 수많은 단역 중에 하나일 뿐이지만, 이온이 마지막을 장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를 위해 비밀리에 KPOP 아이돌 그룹 못지않게 칼군무를 연습하고 있었다.

<아이돌>은 지난 촬영경험들과 달리 두 개의 크레디트를 받게 됐다.

무술팀의 일원으로 그리고 출연진으로.

특별히 긴장되거나 하진 않는다.

촬영이란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있으면 통과, 없으면 다시 반복.

그것이 전부다.

단순하고 명료하다.

배우와 스턴트의 공통점은 촬영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것에는 그 어떤 변명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국가대표 출신의 축구해설가가 그랬다.

[대표선수에게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입니다.]

배우는 무대나 카메라 앞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연기하지 않는다.

가진 바 실력과 재능, 모든 걸 보여주기 위해 연기한다.

비록 씬스틸러 모임 선배들에 비해 미천한 실력이지만.

이온은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충분히 소화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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