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아이돌(Idol).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올드패션에 매몰되지 마."
그 말이 끝이었다.
신지균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찌만 바라봤다.
‘손맛 터라고 하시더니, 살살 약 올리고 당최 물지를 않네.’
이온은 펼쳐 두었던 낚싯대를 내버려두고, 좌대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코펠과 버너를 꺼내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라면 드시고 하세요.”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어. 굿 타이밍!”
신지균이 엄지를 추켜올리고는 펼쳐두었던 낚싯대를 거둬들였다.
후루룩.
두 사람은 말없이 라면을 먹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
낚시터에서 밤참으로 라면을 먹으면서 들을 만한 질문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온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액션배우요.”
“액션장르에 특화된 배우를 말하는 거냐?”
“솔직히 모르겠어요. 액션아카데미 선배들이 우리는 스턴트맨이 아니라 액션배우다라고 주장하는데...... 저는 그 표현이 어딘지 이상하고 애매모호하다고 느껴져요. 선배들은 액션과 연기를 분리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해요. 그러면서 미국식 메소드 연기를 예로 들더라고요. 차라리 액션배우에겐 메이어홀드의 연기술이 더 유효할 것 같은데......”
메이어홀드는 스타니슬랍스키와 함께 현대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러시아의 연출가이자 연극이론가이다.
워낙 많은 이들이 스타니슬랍스키와 미국식 메소드 연기에 주목하는 바람에 후대에 미학적, 예술적, 연기론 등에서 상당한 영감과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메이어홀드에 관한 연구나 평가가 미진한 것이 현실이다.
양식주의연기를 추구하는 메이어홀드의 연기술인 ‘Outside In’(외적 작용이 내적 작용을 유도)의 연기술 방법론은 신체적 테크닉을 적용하는데 매우 유효한데, 이는 카메라연기에 유용한 측면이 강했다.
심리와 기교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이론은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끔 보면 스턴트맨들의 연기가 프랑수와 델사르트의 연기법을 떠올리게 해. 가령 위압감을 주기 위해선 팔짱을 끼고 상대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한다든가, 뭔가 집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입술을 꾹 다물어야 하고, 불행을 표현하려면 입술을 삐죽이거나 입술 양끝을 처지게 하는 것 같은. 초창기 무성영화 시대 연기법의 잔상이랄까.”
신지균은 연기 전공자도 아니고, 그와 관련해 연구를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어지간한 대학교수보다 이론적인 부분에서 해박했다.
-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거다!
신지균이 강조하는 말이다.
‘배우가 모르면 대본 안에 담긴 것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지 않고, 읽히지 않고, 그저 표면적인 이야기 그 자체로만 보일 뿐이다.’
신지균은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고민하고 그를 통해 풍부한 상상력과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온은 연기에 입문할 때 이론서적으로 첫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맞이한 연기스승은 매우 지적이며 학구적인 배우 신지균이다.
연기 접근법이 일반적이지 않은 편이다.
이온은 신지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일단 자기 감정만을 앞세운 연기를 지양한다.
감정을 있게 한 논리부터 세워 놓고 인물을 연기하려고 한다.
“내가 연극을 하다가 영화로 넘어오면서 애를 먹었던 점이 카메라연기야. 커트 단위로 나눠서 촬영을 하다보니까 행동의 단절 때문에 연기감정이 지속되지 못해 큰 혼란을 겪었었지. 나는 미국식 메소드 연기 신봉자는 아니었는데, 그런 걸 다 떠나서도 당시에 꽤나 곤란했어. 그러다가 미국영화사를 읽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어. 할리우드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피스를 알게 되고 그의 여러 혁신인 연출기법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게 되면서 나는 내 연기를 간결하게 바꿔나가기 시작했지. 영화만이 가진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인 클로우즈업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 거였어.”
참고로 미국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W 그리피스 감독은 다양한 영화 연출 기법을 개발했고, 멜로드라마 장르를 개척했으며, 당시 단편영화 일색이던 영화 산업을 2시간 분량의 장편영화로 재편했던 영화산업의 혁신가였다.
그가 개발한 연출 기법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영화배우의 얼굴을 클로우즈업으로 촬영한 것이다.
배우의 눈이나 미묘한 표정연기를 통해 과장된 제스처보다 더 강력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게 됨으로써 이후 소위 매체연기라고 하는 간결한 연기법이 영화에서 자리 잡는 시발점이 됐다.
“나도 아직 영화연기가 뭔지 잘 몰라. 그런데 본질은 대강 알 수 있을 것 같다.”
“뭔데요?”
“스크린을 위한 연기는 분명히 리얼리즘 연기와 달라. 카메라 움직임의 동기를 이해하고, 카메라의 촬영을 위해 짧은 순간을 만들어낼 줄 아는 배우가 좋은 영화배우라는 것. 그게 기본이자 핵심이지 싶다.”
이온은 잠시 그의 말을 곱씹어 봤다.
사실 무대연기와 카메라연기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다만 영화연기는 인물의 행동과 다양한 영화 테크닉과의 결합에 의해 재창조된다.
따라서 영화배우는 영화의 기술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만 훌륭한 연기를 수행할 수 있다.
영화배우는 감독이 제시한 절제되고 효율적인 블로킹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영화적 그림을 위한 카메라 워킹과 연계해서 효과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난 네가 영화 전반에 걸쳐 공부하는 것이 딱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읽어. 그리고 알아 둬. 대신 그것들이 진리고 바이블이라고 맹신하지 마. 연기에도 트렌드가 있어. 그리고 네가 공부한 연기론들이 만들어진 것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이야. 지금 현재,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스마트폰에 익숙해. 그들에는 감정을 쥐어짜거나 소위 말하는 미국식 메소드 연기가 부담스러울지도 몰라. 정답은 없어.”
“매번 정답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좀 무책임하신 것 같아요.”
이온이 들릴 듯 말 듯 투덜거렸다.
“내가 배우고 익히고 경험하고 이론적으로 쌓아올린 연기법이 네게도 맞다고는 장담 못해.”
자신의 연기법을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
귀에 따갑게 들은 말이다.
“넌 기본기가 완성되면 훌륭한 연기자가 될 거야.”
처음으로 들어보는 칭찬이다.
이온은 괜히 쑥스러워서 비지도 않은 신지균의 컵에 물을 부었다.
“기본기의 완성이란 건 말이다, 배우마다 다른 개념과 훈련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다르게 완성돼. 예를 들어 화술을 볼까? 화술은 단순히 어휘의 나열이 아니야. 어휘를 발화하는 원동력인 호흡, 발성, 그리고 배우 개인의 성격적 기질, 연기관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한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호흡, 발성, 성격적 기질이 저마다 다르잖아. 당연히 배우마다 기질에 따라 말의 템포, 어조, 말투 등이 달라.”
이온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은 사투리 연기를 해도 배우들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들의 연기를 관찰하고 흉내 내다 보면 꽤나 재밌는 점이 많았다.
“넌 그런 면에서 화술 부분에서는 남들보다 더 편한 느낌을 줘. 아마도 우리말과 완전히 다른 언어체계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일 거야. 본능적으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화술이 습득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런데 그것이 너 만의 특성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어.”
“제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들의 화술이 섞여버린다면 독이 되겠군요?”
“맞아.”
“화술공부에 좀 더 투자해야겠네요.”
“언제나 일상에서도 어깨, 목, 턱 등의 힘을 빼고 말하는 습관을 들여. 연기를 할 때도 네가 가지고 있는 음역 내에서만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도록 하고. 단 하루도 화술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마.”
“예. 선생님!”
“노래방 자주 가서 꿱꿱 소리 지르지 말고. 특히 술 마시고 가서 목청껏 노래 부르는 것만큼 바보 짓거리도 없어. 목은 노래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네.”
“가장 중요한 것. 완벽하려고 애쓰지 마.”
완벽은커녕 대사나 외워서 제대로 전달하기도 바쁘다.
이온에게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다.
“굳이 대가가 아니더라도 한 분야에서 오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이야기 안 해. 딱 한 마디만 하지.”
“릴렉스......!”
“대사를 치든 감정을 분출하든 연기할 때 서두르지 마. 천천히.”
“예. 선생님.”
“그것을 이해하고 터득할 수만 있다면 발성이니 화술이니 뭐니 다 필요 없어. 그저 기교를 위한 기본기이고 수단일 뿐. 진정성을 전달하는 건 다른 문제이니까.”
어느 새 두 사람은 라면을 깨끗하게 비웠다.
신지균은 자신의 좌대로 돌아가고, 이온은 코펠과 식기를 설거지 하는 등 뒤처리를 했다.
영화를 직업을 삼고 있지 않을 때는 배우의 연기력이 영화를 죽이고 살리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의 성패에 있어서 배우보다 감독이나 작가의 역량이 더 절대적임을 알게 됐다.
똑같은 배우가 똑같은 시나리오에 기반해서 연기해도 카메라 위치에 따라, 어디서 무빙하고 픽스하느냐에 따라, 컷이 어디서 들어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카메라 배치와 구도에 따라 영화가 판이해지는 것이다.
제 아무리 국제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연기파 배우라도 엉터리 감독의 엉성한 콘티에 바탕을 두고 연기를 하게 되면 그가 가진 역량의 절반도 제대로 스크린에 담기지 않는다.
또한 편집으로 인해 배우가 현장에서 연기한 감정과 전혀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다.
심지어 배경에 깔리는 음악 분위기로 인해 배우의 연기가 완전히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서 배우는 스토리를 이해하고, 메시지와 주제를 파악할 줄 알고, 감독의 콘티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며, 이 씬은 어떻고 저 씬은 어떤지, 카메라 무빙이 왜 들어가고 컷은 어떻게 나눠지는 지 등등 이해할 수 있는 기본소양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카메라 앞에서 낭비되는 감정이나 연기가 없게 되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며, 감독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가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은 질문 자체를 할 수 없다.
알아야 물을 수 있다.
배우가 박식할 필요는 없다.
다만 최소한 감독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다.
감독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의 지식과 교양이 겸비되어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
“밤 꼴딱 셀 순 없을 것 같고. 이제 그만 일어날까?”
“내일부터 오전에 파주로 출근 안 합니다. 선생님.”
“왜?”
“드라마 <아이돌> 안무팀에게 댄스 트레이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딱 두 시간만 더 하고 접자.”
“예.”
이후로 두 사람은 말없이 낚시에 집중했다.
‘......연기.’
이온은 신지균의 가르침을 곱씹었다.
핵심은 연기란 인간에 관한 것이라는 거다.
인간을 구성하는 원리랄까.
따라서 연기 훈련이란 것도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느냐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는 거다.
따라서 인간에 대해 깊이 탐구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중요한 것이 ‘논리’다.
어떤 인물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밑바탕으로 논리, 맥락으로서 논리를 이해한 후에 감정을 받아들이는 연기 방식이다.
논리는 인과관계 혹은 설득력을 내포한다.
이 연기법에는 단점이 있다.
자칫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해버릴 위험성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연기하는 캐릭터를 정형화시킬 수가 있다.
물론 정형화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게 정형화 했다면, 그 또한 좋은 연기가 될 수 있다.
가끔 스테레오타입의 캐릭터를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배우도 있으니까.
다만 그런 연기를 관객들이 이젠 원하지 않는다는 것.
관객들은 참신한 해석이 뒷받침 된 인물을 원한다.
매일 엄청난 양의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고, 그 안의 캐릭터들은 다른 것 같으면서 같으며, 친숙하면서도 낯선 것들로 가득하다.
관객들은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을 완벽하게 연기하는 배우보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를 선호한다.
- 그대가 나를 울리고자 한다면 먼저 그대 자신이 울어야 한다.(호레이스)
- 흉내 내는 자가 느끼는 자보다 우수하다.(플루타르크)
이온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연기는 인위적이고 의도적으로 고안된 어떤 방식이다.
관객들도 그것을 알고 쾌감을 얻거나 정서적으로 동화한다.
만일 배우가 실제로 슬픔이나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힌다면, 그 감정 자체만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 뿐, 설득력까지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것이 매체연기에 있어서 핵심이다.
'지금 당장은 이 정도 선에서.......‘
이제 막 연기를 배우고 시작하는 단계다.
더 많이 인간을 이해하고, 그걸 연기로 표현해보고.
또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다보면 동일 감정 체험(심리)과 양식적 표현(기교)의 절묘한 융합, 혹은 자신에게 맞는 또 다른 연기법으로 나갈 방향을 찾게 될지 모른다.
“......!”
이온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도시에서 멀지 않은 낚시터다.
그럼에도 밤하늘 가득한 별이 보인다.
‘별은 왜 빛나는 걸까?’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엉뚱하고 황당한 질문 같다.
하지만 그 질문은 결코 간단치 않다.
아인슈타인의 질량 에너지 등가법칙, 양자이론, 뉴턴의 중력법칙, 행융합반응, 어쩌구저쩌구.
깊이 들어가 봐야 문과인 이온만 골치 아프다.
다 떠나서 별은 스스로 빛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신 달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이 반사되기 때문에 밝게 빛난다.
항성과 행성 같은 문제도 따지지 말자.
중요한 것은 스스로 빛을 내느냐, 빛을 받아 반사하느냐다.
누구나 스스로 빛나길 바란다.
이온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온은 가장 최근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불멸의 스타 제임스 딘의 무명시절과 전설로 남은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여러분의 미래에 대해 말하는 자리지만 저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제 친구는 저더러 감사하며 살랬어요. 맞아요. 내 과거와 친구, 사랑도 상실도 여기에 다 있어요. 남들은 여러분한테 뭐가 중요한지 몰라요. 여러분만 알죠. 이제 여러분의 삶을 사세요.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모든 것에 감사하고요.]
극중 고등학교 졸업파티에서 제임스 딘이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이온은 매니지먼트 관계자들을 만나며 객기를 부렸다.
아마 영화 속에서 제임스 딘이 신인배우 주제에 메이저 스튜디오 사장 같은 슈퍼갑의 말을 듣지 않는 그런 엉뚱함과 당돌함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태도를 현실에서 흉내 내보았던 것 같다.
치기어도 좋고.
객기어도 좋고.
배짱이어도 좋다.
아무렴 어떤가.
휘둘리지 않겠다는 각오가 중요하지.
온갖 개수작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엔터테인먼트 업계.
이 판에서 멍청한 장난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언젠가 별이 되어야 하겠지.’
누군가의 빛을 받아 반사해서 빛이 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