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아이돌(Idol).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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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캐스팅 될 수 있도록 스턴트맨으로서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내년 상반기 최대 기대작 드라마 <아이돌>에 단역으로 캐스팅되면서 그에 따른 준비도 해야 하고, 복학으로 인해서 학업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오광택을 통해서 비보이 공연에도 간간이 출연하고, 김정렬은 마운틴뷰에서 개최되는 카나한 게더링에 가자고 보채고, 신지균 선생님은 등산이며 낚시며 이온을 데리고 다녔고, 친구라는 녀석들은 자신의 사정은 무시하고 시도 때도 없이 술자리에 불러대고 기타 등등.
이온은 하루하루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탁탁탁.
부엌칼이 도마위에서 춤을 췄다.
아침 일찍 일어난 이온이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했다.
쏴아아아!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있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는 이슬이 좀비처럼 식탁으로 걸어왔다.
“아휴. 술에 웬수졌냐?”
이온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국이야 찌개야?”
“황태콩나물국.”
“좋았으...... 욱.”
술병이 난 모양이다.
이슬이 말하다 말고 얼굴을 찡그렸다.
한심하다는 듯 나직이 한숨을 쉰 이온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온아.”
“응?”
“내 동생?”
“아, 왜!”
“사는 게 너무 빡빡한 거 아니냐?”
“......?”
“언제 놀거야?”
“누나는 그런 충고할 자격 없거든. 누나나 좀 널널하게 살아보고 말해라.”
“어차피 죽으면 천사들과 신나게 놀 텐데,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살아야지.”
“밤새 술 퍼마시는 게 열심히 사는 거야?”
“우리 남매, 면담이 좀 필요할 것 같지 않아?”
이온이 식탁에 열심히 반찬을 늘어놓으며 누나를 타박했다.
“아휴~ 술 냄새.”
“바가지 그만 긁어!”
“확, 바가지로 한 대 치고 싶다.”
이온이 콩나물국을 누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얼른 숟가락을 집어 국물을 떠먹는 이슬이다.
호로록.
‘크아’ 절로 탄성이 나오는 시원한 국물 맛이다.
이온의 솜씨가 아니다.
대기업 제품 맛이다.
“예술한다고 학업을 등한시하는 거 아냐?”
“아직은 괜찮아. 따라 갈만 해.”
“네가 하고 싶은 걸 존중하는 대신, 대학은 꼭 졸업했으면 좋겠어.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놓고 하고 싶은 걸 하도록 해.”
이슬은 확고한 부분이 아니면 여간해선 강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가능한 동생의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로 임해 왔다.
헌데 이슬이 분면한 주장을 피력하고 강하게 말한다면 쉽게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기도 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가 동생 이온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졸업만 하면 되지 않을까?”
“무슨 뜻이야?”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으면 또 다시 휴학을 할 수 있다는 뜻이야.”
“주인공 아니면 꿈도 꾸지 마.”
송하나의 작품에 동생이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장난치는 줄 알았다.
팔은 안으로 굽어서 동생보다 더 잘난 사람 없다고 생각하는 이슬이지만, 연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애송이다.
자칫 송하나의 작품에 출연한다고 헛바람이 들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주인공은 아무나 시켜주나 뭐?”
“송하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출연하는 거고. 대학 졸업하고는 전혀 별개의 문제야. 중학교때부터 놀 거 안 놀고 잠 안자고 그렇게 고생해서 들어간 한국대잖아.”
“걱정 마. 최선을 다 할 테니까.”
어릴 때부터 자립했기 때문에 철도 일찍 들고 매사에 침착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남매였다.
이슬은 동생이 어떤 선택이라도 섣부르거나 불확실한 길을 가진 않을 거라 믿었다.
“생활비는? 등록금 내고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당분간 지낼 정도는 돼.”
열심히 황태콩나물국을 흡입하던 이슬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앱을 실행시켰다.
“계좌 확인해 봐.”
“괜찮다니까.”
이온이 앱을 실행시켜 계좌를 확인했다.
드라마 <아이돌>의 출연료에 맞먹는 금액이 찍혀있었다.
“뭘 이렇게 많이 넣었어?”
“드라마 출연료는 지연 입금되는 게 관행이라며? 그때까지 어떻게 버틸래?”
“일단 잘 쓸게. 출연료 입금 되면 바로 갚을 게.”
“갚긴 뭘 갚아? 누나가 주는 용돈이야.”
“대학 입학하고 처음으로 용돈 받아보는 것 같네.”
“송하나는 어때?”
“뭐가?”
“TV에 나오는 것처럼 교양 있는 척하고 카리스마 쩔고 그래?”
이온은 말을 아꼈다.
사실대로 말하면 누나가 실망할 테니까.
“설거지는 누나가 해.”
이온은 슬림한 청바지와 루즈핏 느낌의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백팩을 맺다.
헤어폼은 바르지 않고, 버킷햇을 썼다.
평소 액션아카데미 출근 복장이 아니었다.
등교복장이었다.
✻ ✻ ✻
액션아카데미 체육관에서 오전 운동을 마친 이온이 사무실로 향했다.
권용찬 감독을 비롯해 운영위원회 감독 몇 명이 커피타임을 갖고 있다.
“당분간 출근 못할 것 같아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시험기간이냐?”
권용찬 감독이 물었다.
“드라마 <아이돌> 때문에 댄스 트레이닝을 받아야 해서요.”
“너도?”
“예.”
“최 감독 말로는 비보잉은 따로 연습하거나 안무 짤 것도 없다던데?”
“KPOP 안무를 배워야 한답니다.”
“배역이 바뀌었어?”
“아직 대본이 나왔는데, 연습생 월말 평가 장면이 나온다고 하네요. 그때 저도 방송 댄스 추는 모습이 나올 것 같다고 준비하라고 하더라고요.”
송하나 작가가 따로 메시지를 보내온 것도 있었다.
최종화에서 음악방송에 출연해 공연하는 모습을 찍을 수도 있으니까, 방송댄스도 연습해 두라는 것이다.
보안 때문에 누나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작가, PD, 안무가 그리고 이온뿐이다.
“네가 아이돌로 나오면 제법 어울릴 것 같긴 하다. 대사발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이돌>은 총 16회 방영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 드라마의 병폐 가운데 하나인 방영분 연장도 가능했다.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눈치인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진 않다.
“스턴트팀에도 들어 가냐?”
“소망 감독님이 저를 막내로 데리고 다니실 건가 봐요.”
일단 16회 중 6회 정도에서 대역이 꼭 필요한 위험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과 안타고니스트(최대 라이벌)가 험악하게 충돌하는 장면.
추락사고 장면.
자동차 사고 클리셰.
그 외에 자잘하게 넘어지고 구르는 등의 장면에서 일부 이온이 대역을 맡을 가능성도 있었다.
또한 주인공이 미들급(600cc-800cc) 바이크를 타고 밤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액션아카데미 F1팀 소속이며 장신의 송관효가 대역을 할 예정이다.
“소망이가 여자라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정말 잘 해.”
“알죠. 졸졸 쫒아 다니면서 많이 배우려고요.”
“연기를 하든 공부를 하든 운동 절대 놓지 말고.”
“예!”
가만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길태석 감독이 이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막내!”
“예?”
“나중에 잘 나갔을 때 액션아카데미 식구들 모른 척 하지 말기다?”
실실 웃으면서 말하는 투가 놀리는 거다.
“감독님, 저 모르세요? 저 의리하고 근성 빼면 아무것도 아닌 놈입니다.”
“내가 널 겪어봤어야 알지.”
“앞으로 아시게 될 겁니다.”
“두고 볼게.”
“두고만 보시지 말고. 저 좀 캐스팅해 주세요.”
“칼 쓰는 것 좀 늘었어?”
“못 믿으시면, 22기 일재 형한테 확인해 보세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알았다. 일단 아이돌인지 뭔지 그거에 집중해.”
“옛설!”
이온에게 오광택의 비보이 크루가 마음의 고향이라면 액션아카데미는 몸의 고향이다.
액션배우로 새롭게 태어난 곳이니까.
한때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의 카나한 체육관이 몸에 고향이었지만.
계절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카나한 게더링에 참여하지 못했고, 몸이 멀어져서 인지 그곳에서 마음도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봉사를 몇 번을 거른 거야.’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친분 있는 교포이모들과 자선단체 관계자들에게서 안부가 포함된 자원봉사 스케줄을 이메일로 받고 있었다.
스턴트맨이 되면서 한 번도 해외봉사는커녕 국내 봉사도 못했다.
‘드라마 촬영 끝나면 따로 워크캠프라도 다녀오자.’
배역 투사에서 빠져나오는데, 봉사활동 만한 것도 없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온이다.
워크캠프는 해외여행도 겸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지만.
✻ ✻ ✻
영문사적 강독은 전공선택이지만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다.
영어로 작성된 다양한 역사 문헌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인데, 역사적인 사실을 배우는 것보다는 영어 독해 실력을 쌓는데 주안점을 둔다.
이온의 영어실력은 2학년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었기 때문에 강의를 따라가는 것은 크게 어렵진 않았다.
영문사적 강독 수업을 마치고 다음 강의실로 향하는데, 전화가 왔다.
직접 전화를 한 것으로 봐서는 분명 연령대가 높은 사람이다.
연기 스승 신지균 선생님이다.
“예. 선생님.”
- 오늘 밤에 뭐하냐?
“선배가 운영하는 체육관 가서 운동하고 귀가하려고 했습니다.”
- 빠져도 되냐?
“모임이나 행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 그럼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디서 뵐 까요?”
이온은 어디 술집에서 배우 후배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 내 매니지먼트 회사 위치 알지?
“압니다.”
- 주차장에 내 차가 있어. 송호진 실장에게 차키 달라고 하면 줄 거다. 내 차 몰고 대학로 와서 전화 해.“
“예. 선생님.”
마지막 강의까지 들은 이온은 함께 저녁 먹자는 후배들을 뒤로 하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논현동에 위치한 신지균의 소속사로 찾아가 몇 번 술자리에서 안면을 익히 송호진 실장을 만났다.
“매니지먼트에서 컨택 들어온 거 대차게 깠다며?”
“깐 적 없어요. 생각해 본다고 했지.”
송호진 실장이 웃겨 죽겠다는 투로 말했다.
“하하. 누가 그 선생에 그 제자 아니랄까봐.”
“혹시 제 소문이 안 좋게 났어요?”
“좋게 날 리가 있냐?”
“.......음.”
실실 웃던 송호진 실장이 진지한 태도로 돌변해서 안심이 되는 말을 했다.
“괜찮아, 그 정도 배짱부리는 건. 쫄 필요 없어.”
“......?”
“어차피 네가 건 조건들 어떤 회사도 받아주지 않아. 그런 조건은 몇 작품 인정받으면서 뜨기 시작하는 라이징 스타들이 걸만한 조건이지.”
“괜한 객기를 부린 걸까요?”
“객기와 배짱 그리고 당당함은 이 바닥에서 다 말장난이야. 잘난 놈이 하면 당당함이고, 무명이나 신인이 하면 객기고, 뜨기 시작하는 배우가 하면 배짱이고. 뭐 그래.”
이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 그대로 말장난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왜 컨택 안 했게?”
“선생님이 무슨 말씀이 있으시지 않았을까요?”
“지균이형은 너 잡을 수 있으면 잡으라고 했어.”
“그런데 왜?”
“왠지 너는 길들이면 안 될 것 같거든. 내가 매니저 하면서 터득한 감이 그렇게 시키더라고. 잘 못 길들이면 어정쩡한 배우가 되겠구나. 뭐 그런 느낌이 오더라.”
송호진 실장이 이온을 똑바로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홍 캐디도 너한테 투자를 하고 싶어 하던데. 나는 네가 한창 물이 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과 그때 가서 최고의 조건으로 배팅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한창 물이 오를 때가 언젠데요?”
“빠르면 서른 중반, 늦어도 마흔 전에.”
이온은 그저 그런가 보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관심이 없다고 할 것을 기다리겠다고 하는 뜬구름 잡는 말로 돌려 말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홍성욱 캐스팅 디렉터부터 최근의 만난 매니지먼트 관계자들을 경험해 보면서, 각각의 회사와 매니저들의 노선이랄지 영업 마인드를 얼핏 유추할 수가 있었다.
아직 사회경험이 부족해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성격까진 파악하지 못하지만,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는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안정된 직장과 최후의 보루가 있는데, 굳이 매니지먼트 회사 들어가서 눈칫밥 먹으면서 아등바등 댈 필요 없지.’
안정된 직장이란 액션아카데미고, 최후의 보루는 한국대 졸업장과 자신의 외국어 능력이다.
“암튼, 이 바닥 진짜 좁아.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좁아. 뻥 하나 안치고. 오늘 밤 강남 술집에서 이런저런 뒷담화 깐 내용이 내일 아침이면 방송가나 충무로바닥에 파다하게 퍼져 있어.”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처신해야겠네요.”
“그렇다고 기 죽을 거 없어. 넌 연기자라기보다 아직까진 액션배우 쪽에 가까우니까. 지금은 업계에서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로 돌고 있지만, 네가 액션아카데미 소속 스턴트맨으로 몇 년 활동하는 사이 건방진 신인배우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사그라들 거야.”
“충고 감사합니다. 실장님.”
“나중에 니가 컸을 때 잘 봐달라고 미리 침 발라 놓는 거야. 인마.”
송호진 입장에서 말 몇 마디로 사람의 환심을 사두어서 나쁠 것이 없다.
닳고 닳은 매니저들의 화법은 보험설계사나 영업사원과 많이 닮아있다.
입술에 얼마나 꿀을 발랐는지.
달콤해서 홀딱 녹아버릴 지경일 경우가 많다.
그러다 뒤통수 맞고, 사기 당하고, 몸 버리고, 영혼에 상처 나고.
‘헛똑똑이 소리 듣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지.’
액션아카데미 고참 선배님들이 항상 그런다.
이놈에 딴따라 판은 눈 버젓이 뜨고 있어도 코 베어가는 놈 천지라고.
알면서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결론은 당하고 깨지고 죽을 것 같아도 나중에 가서는 버티는 놈이 이긴다로 귀결된다.
✻ ✻ ✻
잘 나가는 씬스틸러 배우라고 해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닐 줄 알았다.
신지균의 개인 차량은 수입과 인기에 비해 소박했다.
3000cc급 국산 중형차다.
물론 일을 할 때는 회사가 제공하는 최고사양의 RV 차량을 이용한다.
부우웅.
이온은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대학로로 향했다.
극단 앞에서 신지균을 픽업해 서울을 벗어났다.
이온이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서울과 고양 중간 즈음에 위치한 잉어 전용 낚시터였다.
“여기가 주말에는 빈자리가 없는데, 평일에는 널널해. 대어가 많아서 손맛 터야.”
이온은 신지균을 도와 낚시세팅을 했다.
“한대만 펴놓자.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나 좀 하면서 손맛 보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신지균은 서두르지 않았다.
장비세팅하고 떡밥 만들고 한 대 펴는데,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첫 손맛을 보기까지 다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요새도 계속 액팅과 관련된 책들 읽고 있냐?”
“예.”
이온은 혹시 혼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부터 기본기 훈련 시간을 늘리라는 주문을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