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70화 (70/127)

〈 70화 〉 될성부른 떡잎?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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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하던 일행들이 송 작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오디션 참가자들은 불판에 고기를 올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송 작가의 입만 쳐다봤다.

“최고 명문대에 다니는, 20대, 지식인, 남학생은 어떻게 생각하나 듣고 싶어서 그래.”

송 작가의 말에 비아냥거림이 듬뿍 담겨있다.

이온은 내심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은 해야겠고.

송 작가에게 일부러 잘 보이고 싶지도 않지만, 굳이 찍히기도 싫고.

“죄송합니다만...... 저는 고위험등급 생명보험료에 허덕이며 산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스태프 노동자 스턴트맨이며 감정 노동자인 배우입니다. 지식인 아닙니다.”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을 빙빙 돌려서 말했다.

못 알아먹지 못할 송 작가가 아니다.

“놀고 있네.”

“네.”

이온이 순순히 인정했다.

“영화판에서는 노동자인데 드라마제작현장에서는 노동자가 아니긴 합니다.”

영양가 없는 논쟁보다 먹고 사는 문제로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내가 이번 드라마에 그거 묻히면 어떨 것 같아?”

집요하다.

그걸 왜 오디션 참가자인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밀접 면접은 핑계고, 그냥 다른 유형의 꼰대질을 하고 싶은 걸까.

“뭔가를 넣어서 망칠 걸 뻔히 아는데, 그걸 실행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났지 싶은데...요.”

“비관주의야?”

“현실주의입니다.”

“오찬기 챙기더라? 착한 사람 콤플렉스 있어?”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대부분이 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착한 사람은 티를 안 내고 삽니다.”

“자기는 착한 거 티 안낸다?”

“착한지 어쩐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호구 잡히기 싫습니다.”

“꼭 착하지 않은 인간들이 설쳐대고 난리를 피워대지. 더럽고 구린 게 많은 새끼일수록 정의롭게 보이고 싶어 하고.”

한 PD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이온이 양해를 구하고 테이블을 벗어났다.

화장실에 다녀올 때까지 화제가 바뀌어 있길 기대하며.

“......?”

화장실에 다녀오니, 오디션 참가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먼저 보냈어. 앉아 봐.”

홀로 소주를 자작하고 있던 한 PD가 말했다.

이온이 얌전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송 작가는 뭔가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이온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만히 있었다.

“결정했어.”

한참이 지나 입을 뗀 송 작가가 자신의 빈 컵을 내밀었다.

한 PD가 맥주병을 집어 그녀의 빈 컵을 채웠다.

꿀꺽.

송 작가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원래 영어를 잘하는 교포 캐릭터가 있었어. 그 캐릭터는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아웃!”

“취했어?”

한 PD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대신 브라질에서 온 교포로 바꿀 거야. 브라질도 스페인어 쓰는 거 맞지?”

그 많은 중남미 스페인어 국가 중 찍어도 하필.

“포르투칼어권 국가입니다.”

“암튼!”

“......”

“남미 어딘 가의 KPOP이 매우 인기가 있는 나라. 그곳에서 온 교포 연습생. 한국식 합숙 시스템에 적응을 잘 못해. 낯선 환경 속에서 연습생 무리 중 어떤 파벌에 속해야하는 지 헤맸어. 그러다 연습생 사이에서 골통으로 통하는 윤수패거리에 가담해. 자의는 아닐 거야. 반은 강압이겠지. 그리고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대세에 편승해야 하고.......”

송 작가는 신들린 사람 같았다.

뭐라고 계속해서 주절주절 거리는데, 드라마 속 캐릭터를 재구성하는 모양이다.

“요새 드라마에서 툭하면 영어 쓰는 캐릭터가 많이 나와. 식상해. 네이티브 수준으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배우가 떡하니 나타났으니 안 써먹을 이유가 없어.”

한 PD가 자신의 소주잔을 이온에게 내밀었다.

“축하해. 후배.”

“......”

이온은 영문도 모른 채 한 PD의 소주잔에 자신의 컵을 부딪쳤다.

“부족한 연기는 좋은 목소리, 스페인어, 소년미, 반전 근육질 몸매로 커버하는 걸로. 연기가 부족한 것이 오히려 순수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한 PD가 현장에서 쓸만한 놈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믿어.”

기회를 줘서 고맙긴 한데, 너무 급작스러운 캐스팅이라 얼떨떨했다.

캐릭터의 히스토리를 설정하는 것을 보니, 대사가 없는 단순 병풍 역할인 이미지단역은 아닌 것 같았다.

“빨아들이는 맛이 있어. 관심이 가. 자꾸 알고 싶어져. 뭐 하는 사람인지. 타고난 것인지, 후천적으로 개발된 것인지. 그런 게 아니면 신이 내린 축복이거나. 아주 잘생긴 건 아닌데 자꾸 눈이 가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주목을 이끌어 낸다는 건 대단한 거야. 이쪽 분야에서는 대단한 재능이지. 거기에 연기력이 갖춰지면 그 시선을 잡아끄는 힘과 더해져 연기의 호소력이 높아져. 어쩌면 거물이 될 수도 있고.”

정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이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허튼 소리라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른 아닌 송하나 작가다.

다수의 히트작을 통해 신인발굴의 마에스트로라는 별명까지 얻은 작가다.

방송가에서는 미래의 스타를 미리 보고 싶다면 송하나가 어떤 신인배우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

그녀가 찍은 배우는 예외 없이 스타가 되었으니까.

“나 송하나가 너에 대해 그런 평가를 내렸다고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희망은 꿈꾸는 자의 것이나 망상은 정신병의 예후야.”

사실 이온은 크게 감격했다거나 기뻐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저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

“보통은 뛸 듯이 기뻐해야 하지 않나?”

“감사합니다.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식상한 멘트는 집어치워.”

“......”

“지균이형한테 연기 배우고 있다며?”

“신지균 선생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영화배우의 연기스승이라는 바로 그 신지균.”

“선생님 쫓아다니며 어깨 너머로 가르침을 청하고 있습니다.”

“재주도 좋아. 그 형, 같잖은 배우는 눈길도 안 주고 절대 손 안 대는데.”

많이 듣는 말이다.

솔직히 작정하고 연기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대단한 연기 코치인지 이온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연기 스승이라기보다는 배우라는 직업세계 컨설턴트에 가깝다고 할까.

“지균이형이 그러더라. 연기에 목매지 않는다고. 다른 색휘들처럼 절박하지 않다고. 지균이형은 네 그런 자유로움이랄까 얽매이지 않는 태도랄까 그런 게 마음에 들었다지만. 난 말이야......”

새삼 영화나 방송계가 좁다는 걸 알게 된다.

신지균 선생님이 송 작가와 형아우(?)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을 줄이야.

“난 절박하지 않는 색휘는 싫어. 프로 세계에서 절박하지 않은 놈은 정상까지 기어오를 수가 없거든. 난 온몸에 상처가 날 각오를 하고 절벽을 기어오를 준비가 된 사람을 이끌어 줄 수는 있어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런 놈을 끌어주진 않아. 아니 발로 차버리지. 무슨 말인지 알아?”

이온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

이온이 한 PD를 돌아봤다.

가 봐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이온이 두 사람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혀 작별인사를 했다.

두 사람은 식당을 나서는 이온의 뒷모습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진짜 가치가 있고 귀한 보석이 뭘까?”

“레드 다이아몬드지. 졸라 비싸대. 1캐럿에 백만 달러인가 그럴 걸.”

“남이 갈고 닦고 깎고 해서 빛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그냥 빛나는 보석. 그게 진짜 귀하고 가치가 높은 보석이야.”

“쟤가 마음에 들어?”

“내가 입봉하고 지금까지 작품마다 적어도 한 명씩 신인들 터졌어.”

“조연으로 올리려고?”

“어림도 없지.”

“피터 강 캐릭터를 남미 출신으로 바꾸게?”

“응. 영어권에서 온 교포 캐릭터가 식상했는데, 잘 됐어.”

“남미에서 한류가 꽤 뜨겁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나쁘지 않겠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송하나는 대단히 술이 셌다.

한 PD가 제작부에 업혀 갈 때도 멀쩡할 정도였다.

“내가 뭘 해. 될성부른 떡잎 갖다 쓰는 것 뿐이지.”

이번 작품에 이온처럼 자체발광할 숨겨진 원석을 다수 발굴했다.

그들 신인 연기자 가운데 한 명이라도 뜨게 되어 있었다.

그 후보 중 가장 불리한 조건을 가진 것이 이온이다.

소속사의 소위 ‘푸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캐스팅이 된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출연계약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배우로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것과 상관없이 이온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개강 전까지 액션아카데미로 출근해 운동을 했다.

기본 연기 트레이닝 세트를 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지균을 찾아가 연기를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았다.

밀접 면접 이후로 <아이돌> 제작진 측에서는 별 다른 연락이 없었다.

대신.

“안녕하세요, 나이온 배우님. 웰픽스 인터테인먼트 이용욱 실장입니다.”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실장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송하나 작가님 작품에 참여하신다고요? 우리 웰픽스 엔터는 이온씨의 미래를 위해 레드카펫을 깔아줄 최적화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동영 배우님이 우리 회사 간판인 건 아시죠?”

어떻게 알았는지,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접촉해왔다.

매니지먼트 계약을 한다면 가능한 홍성욱의 회사로 가는 것이 도리상 맞다.

그런데 홍성욱에게는 한 번 거절의사를 전달한 상황.

매니지먼트 업계 상황이나 계약조건에 대해 알아볼 겸 시간을 내서 면담했다.

“성형수술 하고 싶지 않습니다. TV 예능 혹은 프로그램 출연, 작품에 관해 선택권이 제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액션아카데미 소속도 포기할 수 없고요.”

이온의 말에 실장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여간 내기가 아니로군.’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이라면 대형 매니지먼트 웰픽스의 제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고민 없이 얼른 계약서를 내놓으라고 전전긍긍댈 터.

그런 만큼 대형 스타를 다수 데리고 있었고, 수많은 연예인을 배출한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메이저 중 메이저였다.

보통은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계약을 하게 된다.

헌데 눈앞의 신인배우는 당당하게 조건을 걸었다.

“그 제안은 어떤 회사에서도 들어 줄 수 없을 겁니다. 신인배우 한 명 키우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가수도 아니고 배우를 키우는데 무슨 돈이 많이 들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과감한 투자를 할수록 신인배우가 더 큰 배역으로 올라가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매니지먼트와 연기자는 파트너 관계입니다. 회사가 최적의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연기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말은 참 청산유수다.

이온은 매니지먼트 회사가 절실하지 않았다.

한동안 단역출연이나 몹씬에서 액션연기를 하게 될 텐데, 매니지먼트에 소속되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번거롭기만 할 것 같았다.

“연기자 혼자 오디션 뚫고 인맥 만들기 정말 힘든 것이 이 바닥입니다. 많은 자료와 조사, 경험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이용하는 편이 이온씨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죠.”

실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는 타이밍 싸움입니다. 이 바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가도 한 번 식으면 다시 데우기가 무척 힘듭니다. 송하나 작가님 작품이 방영되고 난 후 몸값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오히려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이 좋습니다. 송하나 작품이니 분명 드라마 시청률 잘 나올 겁니다. 그런데 푸쉬해주는 회사가 없으면 제대로 이온씨 홍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스포트라이트는 주인공들과 아이돌에서 연기자로 전향한 친구들에게 쏠리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저희도 지금과 같은 제안을 하긴 힘들지 모릅니다.”

은근한 경고가 섞여있는 내용이다.

이온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충고 감사합니다. 꼭 잊지 않고 염두에 두죠.”

실장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압박을 하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협박을 당한 기분이랄까.

“계약하기 전에 연락을 주셔야 합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온은 세 곳의 군소 매니지먼트를 더 만났다.

계약기간, 조건, 요구사항 등은 대체로 대동소이했다.

홍성욱처럼 품위유지비를 주겠다는 곳도 한 곳 있었다.

교통카드 충전비 정도로 금액은 형편없었다.

물론 그 비용을 대주는 것도 감지덕지할 무명 배우들이 무수히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송 감독님, 저와 상담 좀 해주세요.”

“무슨 상담?”

“제가 드라마 단역 출연계약을 할 것 같아요.”

“오~ 최 감독님이 하기로 했다는 아이돌 나오는 드라마?”

“예.”

“근데?”

“출연계약 할 때 알아두어야 할 것 좀 가르쳐주세요.”

액션아카데미 선배들은 스태프 계약을 주로 하지만, 종종 배우 출연계약도 한다.

따라서 멀리서 계약 관련해서 물어볼 사람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이온은 송관효로부터 영화 및 드라마 출연계약 관련해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개강하고 보름이 경과했을 때, 드라마 <아이돌> 출연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 상에는 편성기준으로는 5회 출연이었고, 방송출연료 등급으로는 11등급을 받았다.

지상파 기준으로는 방송 회당 60분 기준 세전 75만원이지만, 케이블 채널이나 종편은 저 금액을 다 받을 순 없다.

결국 이온이 1회 방영분 출연료로 받는 금액은 지상파 8등급에 해당되는 출연료를 입금 받을 예정이다.

지방촬영시의 출장비, 숙박비, 식대까지 포함해야 간신히 300만 원이 된다.

사전제작 기간, 방영 중 쪽대본 촬영기간까지 모두 포함하면 대략 4~5개월의 대장정이다.

촬영기간으로 봤을 때 300만 원은 정말 적은 돈이다.

그나마 PD가 한국대 졸업생 선배여서 신경을 약간 써주고, 최소망 감독도 거들어서 비교적 괜찮은 계약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 정도다.

이온과 달리 다른 연기 지망생이나 신인급들은 훨씬 열악한 조건으로 계약했다.

‘이러니 미치지 않고서는 배우 못 해먹는다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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