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삶은 우연한 사건으로 바뀐다!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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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정 배우는 운동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다만 액션 연기 경험이 풍부하고 연기 지능이 높다.
게다가 180대 후반의 우월한 신장과 팔다리가 길다.
때문에 카메라 연기에 특화된 액션 움직임을 보이면 동작이 크고 시원한 느낌이 든다.
퍽.
촬영 전에 합을 맞추다가 성우정 배우가 대뜸 이온을 때렸다.
하나도 안 아프다.
“이렇게 할 수 있어?”
“......음.”
이온은 자신만만하게 대답 할 수 없었다.
성우정 배우는 스턴트맨도 아닌 주제에 실제로 치고맞는 액션연기를 여러 차례 선보인 바 있다.
이 양반은 자타공인 한국배우 중 액션 최고다.
무술감독이 뽑은 액션 잘하는 배우다.
왜 그런 말을 듣는지 이온은 절감했다.
적당히 잘하는 수준이 아니다.
진짜 잘한다.
그래서 이온은 함부로 자신감을 내비치지 않았다.
원래 숙련되기 전 단계가 가장 무서운 거다.
의욕만 앞서고 실력은 안 되는데, 괜히 까불다가 누굴 다치게 할 수 있다.
동료 스턴트맨이면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다고 대답했을 터.
하지만 성우정 배우는 <지옥의 악인들> 주인공이다.
그가 다치면 이온은 대역죄인이 된다.
“며칠 시간을 주시면 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안하겠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무서워?”
“무섭습니다.”
“......!”
성우정 배우가 묘한 눈길로 이온을 쳐다봤다.
“선배님이 혹시라도 다치시기라도 하면. 남은 촬영에 지장을 줄 수 있잖습니까.”
“그래, 무리 하지 말자.”
몇 발자국 떨어져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장보람이 이온에게 다가왔다.
툭툭.
장보람이 이온의 어깨를 다독여 줬다.
대선배 앞에서 주눅 들 것 없다는 격려다.
간혹 뛰어난 운동능력만 믿고 까부는 어린 후배들이 있다.
꼭 사고를 친다.
큰 키에 다부진 몸매로 힘들고 어려운 액션 동작을 척척 해내지만, 이온은 경험이 부족했다.
“못하는 걸 못한다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냐.”
“액션배우잖습니까.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라고 배웠습니다.”
“아직 협회 회원명부에 잉크도 안 말랐어, 자식아~”
“그래도...... 송관효 선배님이나 일재 선배였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준비된 현장은 없어. 오늘도 봐라. 콘티가 촬영 직전 바뀌잖아. 그때그때 주어진 것 가지고 최상을 이끌어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야. 대신 누군가 다쳐서는 절대 안 돼.”
이온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주 작은 액션 장면이라도 만일이라는 게 있다.
때문에 촬영 전에 아주 작은 부분까지 꼼꼼하게 점검한다.
꽝!
촬영장에서 꽤나 위험천만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
그곳에서 이온이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다.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가끔 촬영을 하다 사고가 일어나면 오히려 스태프들이 무술팀보다 더 당황해 한다.
그럴 때마다 무술팀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분위기를 수습한다.
툭툭.
바닥에 잠시 누워있던 이온이 옷을 털며 일어섰다.
겉모습만 봐서는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은 모습이다.
“미안하다. 내가 타이밍이 좀 빨랐어. 어디 불편한 데 없어?”
“선배님 무릎은 괜찮습니까?”
“난 보호대도 차고 있고, 아무렇지도 않아.”
“저는 이상 없습니다. 멀쩡합니다.”
사실이다.
골이 조금 띵 한 것 말고, 다른 불편한 곳은 없었다.
이온은 업어치기 당하는 과정에서 머리가 바닥에 부딪쳤다.
성우정이 마지막에 붙잡고 있던 이온의 소매를 놔줘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다시 한 번 하시죠.”
“조금 쉬면서 한 숨 돌리고 해.”
“아닙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이온은 몇 번 더 업어치기로 바닥에 처박혔다.
인대와 뼈를 바치는 일.
누군가 스턴트맨이란 직업을 두고 표현한 말이다.
크고 작은 부상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칫하면 목숨까지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온에게는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타박상은 금방 회복 된다.
뼈에 금이 가도 금방 아물고.
피로는 수면만 어느 정도 보장되면 말끔히 해소된다.
1년 간 각종 훈련을 힘들게 받아도 작은 스턴트 일감을 잡을까말까 한 것이 이 업계다.
그런데 이온은 특채 스턴트맨처럼 다이얼로그까지 있는 배역을 덜컥 따내기까지 했다.
스턴트맨의 삶만 놓고 보면 탄탄대로 위를 달리는 것 같다.
“슛 갑시다!”
스태프들이 마지막 점검하느라 분주해졌다.
이온은 조폭 똘마니로 캐스팅 된 이미지단역들 사이에 섞여 있다.
“이오니!”
성우정 배우가 손짓으로 이온을 불렀다.
단역 사이에 끼어있던 이온이 얼른 성우정 앞으로 달려왔다.
“옛! 선배님!”
“떨려?”
“솔직히......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수많은 시선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쯤은 이온을 긴장시킬 수가 없다.
나름 관객들 앞에서 비보이 공연과 트릭킹 배틀을 했던 몸이니까.
따라서 스태프들의 시선은 아무런 부담이 되지 못한다.
다만 혹시 자신이 실수를 하게 될까봐, 그로 인해 무술팀의 면목이 없을까봐.
그것이 부담될 뿐이다.
“애드리브 칠 거지?”
“예!”
“뭐 할 건데?”
“우리가 니 새끼냐? 씨발로마~”
이온이 스스로 만든 애드리브를 읊조렸다.
성우정 배우가 가타부타 말없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온은 성우정의 입이 열릴 때까지 가만히 서서 대기했다.
처음 콘티가 바뀔 때 애드리브는 ‘보자보자 하니까 이 개새끼가!’ 정도 였다.
그것을 이온이 바꿨다.
이온이 연기하게 될 이름 없는 단역 똘마니 5번은 자신의 식구도, 호남 본가의 어른도 아닌 주제에 직속 형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형사 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똘마니 5번은 이제 막 양아치 태를 벗어난 터라 앞뒤재고 행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MZ세대의 조폭 똘마니다.
과거 협객 어쩌고 떠들던 시대의 건달들과 철학(?)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온이 즉석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감독이나 작가가 알려주지 않은.
이온이 상상해서 만들어낸 캐릭터다.
외형적인 태도나 말투의 롤모델은 공군 군악대 시절 골통 선임으로 잡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성우정 배우의 입이 열렸다.
“지금 연기 한 거야?”
“예.”
“기분을 꺼내 놓지 않은 거지?”
“단역 주제에 오바하다가 선배님과 창학 선배님께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연기 초보가 어설프게 무드를 타는 건 좋지 않아. 그런 연기는 안 하느니만 못해. 복잡한 생각 할 필요 없어. 그냥 네가 현재 가진 최고의 무기를 꺼내놓고 휘두른다고 생각해.“
“......?”
“네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단 한씬에만 등장해. 괜히 힘 빼고 연기한다고 분위기 잡는 건, 네게 득이 될 게 전혀 없어. 감정 과잉이니 뭐니 다 집어치우고 할 수 있는 걸 다 쏟아내. 네가 무슨 짓을 하든지 대세에는 지장 없으니까.”
“예. 선배님!”
“천천히 해.”
“예!”
“서두르지 마.”
본래 성우정 배우는 후배에게 연기 부분에서 조언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연기를 가르치거나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스턴트맨들이 그 대상이고, 때로 스태프가 갑자기 단역이나 엑스트라로 투입될 때다.
“슛!”
촬영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촬영 시작을 알리는 각 파트의 사인과 콜이 빠르게 오가고.
딱!
슬레이트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액션!”
이온이 대역이 아닌 액션배우로 출연하는 씬의 첫 커트 촬영이 시작됐다.
‘......니미!’
변두리 조직의 똘마니 5번은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
[불안해? 알아서 판단해서 호남식구들 좀 데려가든지.]
박형사의 말에 똘마니 5번이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렸다.
시쳇말로 빡쳐버린 것이다.
[우리가 니 새끼냐? 씨발로마!]
똘마니 5번이 튀어나와 조직의 형님 앞에 놓여있던 맥주병을 쥐고는 다짜고짜 박형사의 머리통에 찍는다.
퍽.
기습을 당한 박형사는 허공에 손을 휘젓는다.
이를 반격이라고 오해한 똘마니 5번이 반사적으로 박형사의 멱살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다.
박형사는 겨우 똘마니가 상대할 수준이 아니다.
단숨에 똘마니 5번을 업어치기로 바닥에 처박아 버린다.
“컷!”
“모니터 하고 가실게요!”
스크립터의 말에 주조연 배우들이 모니터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이온 역시 그들 무리에 끼어 함께 모니터했다.
이미지 단역들은 여전히 촬영장에 남아 있다.
이것이 한국영화 현장의 위계질서다.
주인공과 조연은 감독과 함께 촬영한 분량을 모니터링 한다.
그 외 배역은 그런 배려를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이온은 어째서 주조연과 함께 모니터링을 할 수 있을까.
배우이면서 기술 스태프이기 때문이다.
스턴트맨은 모니터를 보며 무술감독에게 디렉션을 받아야 했다.
“NG!"
"컷!“
“다시!”
“NG!"
한 번에 OK를 받아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다섯 테이크를 넘겼다.
성우정 선배가 계속해서 슈가글라스 맥주병에 머리가 찍히고 있다.
이온은 면목이 없었다.
물론 이온의 잘못으로 NG가 나는 건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고, 연출 감독은 OK를 했지만 장보람 무술감독이 만족하지 않아 촬영을 한 경우도 있다.
“잘하고 있어.”
송관효가 이온을 응원했다.
“잘하고 있는데 왜 장 감독님이 계속 NG라고 하시는데요?”
“아주 잘했는데 그게 다 거든.”
“......?”
이온은 무슨 개소리냐고 쏘아붙일 수 없었다.
당장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 선배들의 말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우리는 얼굴 없는 배우야. 뒤통수나 신체 부위를 통해 배우처럼 감정을 담아야 하는 거지.”
“......?”
“감정이 안 들어가서 그래.”
“성우정 선배님도 잘 했다고 하셨어요.”
“연기 감정 말고.”
“아, 액션 감정......!”
대사 치는 것과 액션 합의 순서, 타이밍, 안전에만 온통 정신이 쏠린 이온이다.
스턴트맨의 기본이랄 수 있는 몸에 감정을 싣는 것과 행동으로 연기하는 것을 망각하고 말았다.
“우리는 위험한 촬영을 그저 대리해서 해주는 것에 그쳐선 안 돼. 스턴트 더블의 경우 배우에 빙의를 해야 하지. 배우가 연기한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스턴트에 임해야 하는 거야. 마찬가지로 직접 배역을 연기할 때도 액션배우라는 정체성을 잃어선 안 돼. 몸을 쓰는 행위 자체에 감정을 담아낼 줄 알아야 하지.”
사실 배우로서 정극연기에 몰입하고, 스턴트맨으로써 동작 하나하나에 감정까지 싣는 것은 연차가 오래된 무술감독급 정도 수준에서나 될까말까 한 것이다.
따라서 송관효는 가르쳐 줄 뿐, 이온이 그것을 해내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서두르지 마. 천천히 해.”
성우정 선배도 똑 같은 말을 했다.
그 전에 스턴트맨 선배들에게 귀에 따갑게 듣던 말이다.
심지어 연기 스승이랄 수 있는 신지균 역시 연기훈련 숙제 검사를 받을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기도 했다.
스턴트를 하든 정극 연기를 하든.
서두르다 보면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라는 말은 속도의 빠르고 느린 문제가 아니다.
릴렉스.
몸과 마음을 충분히 이완시키고 임하라는 의미다.
‘편하게......!’
아니다.
편하게는 기본이다.
집중하면 저절로 편하게 되어 있었다.
집중에 들어가 전 단계에서 힘을 빼는 거다.
하루아침에 되는 부분이 아니다.
이온은 대략적인 연기 매커니즘을 머리로 이해했다.
그것을 실전에서 종합적으로 구현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