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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우-53화 (53/127)

〈 53화 〉 책 보고 배웠습니다!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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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은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만난 배우들에게 연기 관련 서적을 추천 받았다.

모두가 연기는 책으로 배울 수 없다고 했다.

연기는 이론으로 배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며 오직 몸으로 겪는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이온은 그들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서양 속담에 ‘경험으로 배우는 자가 가장 어리석다’라는 말이 있다.

정확한 방향성도 없이 일단 부딪치다보면 언젠가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은 과거 도제 시스템에서나 통용되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닥치고 부딪치는 게 능사라는 생각으로 항해를 떠나면서 나침반도 또 해도도 준비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이온은 배우들에게 집요하리만치 연기 이론서에 대해 물었다.

그럼으로써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극단에서 선배들에게 깨지면서 배운 배우들이 추천하는 이론서, 연극영화과에 다닌 이들이 추천하는 이론서, 종합예술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 추천하는 이론서, 일반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배운 배우들이 추천하는 이론서가 제각각이란 사실이다.

먼저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필독서들부터 추렸다.

배우수업(스타니슬랍스키의 전집), 배우수첩(멜리사 부루더), 산연기(우타 하겐), 가난한 연극(그로토프스키), 배우의 길(체홉프), 브레히트 연극이론 등등.

솔직히 연극·영화 연기 관련 책 중에서 쉬운 책은 거의 없다.

대부분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 한국에서 발행된 책들이 그렇다.

쉬운 단어나 표현 대신에 어떻게든 어려운 단어를 골라 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한국의 번역서들이다.

책의 권위라고 할까 아니면 번역자의 현학적인 태도라고 할까.

솔직히 있어보이지도 않는데 글에 멋을 너무 부린다.

따라서 이온은 한국에서 출간된 책이 아니라 영어나 불어 서적을 주로 주문했다.

이론서적은 반드시 어려워해야 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

박학다식해보이려는 강박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점철된 번역 서적들.

이온은 한국의 겉멋 들린 번역서를 읽는 대신 조금 번거롭더라도 오리지널을 읽었다.

“책으로 연기가 배워져?”

형민은 이온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별나게 보이기도 했다.

연기를 제대로 배우려면 학원을 다니면 될 것을 굳이 골치 아픈 이론 서적을 읽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배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또, 또! 나는 고졸이야 인마! 한국대생 수준에 맞추지 말아 줄래.”

“책을 통해서 발성, 화술, 신체훈련 같은 기본기를 터득하진 못해.”

“그러니까.”

“요즘은 넷튜브만 뒤져봐도 호흡, 발성, 화술, 몸 쓰는 법, 감정처리 같은 것들 다 배울 수 있어.”

“내 말이 그거라니깐!”

“근데 사람들이 왜 넷튜브를 보고 연기를 배우지 못할까?”

“아무래도 전문적이지 않겠지.”

“아니. 홀로 꾸준히 그걸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야.”

형민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액션아카데미 소속 스턴트맨들은 모두가 프리랜서다.

그럼에도 매일 10시 출근 5시 퇴근이라는 룰이 존재했다.

체육관에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 프로젝트가 있을 때만 방문하는 시스템이었다면, 과연 소속 스턴트맨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실력을 갈고 닦을까.

그런 스턴트맨이 몇 명이나 될까.

독학은 교재가 모자라서도 주변에 무료 강의가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배울 의지와 성실성의 문제다.

“그리고 내가 읽는 책들은 시대를 풍미했던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펴낸 책이야. 검증된 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배우들의 교과서란 말이지. 그런 책을 읽음으로써 연기에 대한 최종적인 목표나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어. 그리고 한 명의 연기 선생으로부터 하나의 훈련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다양한 연기 훈련법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가 있지.”

“일종의 태사부에게 배우는 격이겠구나?”

“맞아. 연기학원이든 학교든 그곳에서 가르치는 강사들은 결국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저자들의 이론으로 자신만의 연기법을 정립한 사람일 테니까. 난 책을 읽음으로써 연기 이론 창시자로부터 직접 연기에 대해 배우게 되는 셈이지.”

“그래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있지. 이론과 실제는 다른 거니까.”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기본기를 저절로 쌓게 해주진 않는다.

이온이 제아무리 명석하다고 해도 호흡, 발성, 기본적인 표현법은 활자를 통해 깨달을 수 없다.

기본기만큼은 좋은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단비한테 배우게?”

“일단 부탁은 해보려고.”

흔쾌히 승낙할 줄 알았던 단비에게서 예상 밖의 말이 나왔다.

“운전연수와 연기는 형제자매끼리 해주는 거 아냐.”

“누가 공짜로 가르쳐 달래? 레슨비 줄게.”

“연기 연습하고 있다며.”

“넷튜브 보고 호흡법이랑 발성훈련 따라 하고 있어.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스턴트 접고 배우로 전향하게?”

“스턴트더블도 연기를 할 줄 알아야 하더라고. 원래 배우의 연기 톤도 유지시켜야 하고 호흡, 감정 다 담아야 한다잖아. 그래서 스턴트맨이 아니라 액션배우래.”

대역은 어깨에 감정을 싣고, 뒷모습으로 연기를 한다고들 한다.

무슨 말인지는 알 것도 같다.

다만 감정과 연기라는 막연한 개념이 문제다.

수많은 연기와 관련한 서적을 탐독한 결과 인간이 연기로써 표현할 수 있는 도구는 대표적으로 얼굴, 몸, 소리다.

그 가운데 대역은 몸밖에 쓸 수가 없다.

마임이나 서커스와도 다른 것이 스턴트고 액션 연기다.

이온이 보기에 베테랑 스턴트맨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연기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있지 못한 눈치다.

“연기가 뭐냐, 단비야?”

단비가 고민도 없이 단박에 대답했다.

“연기는 호흡이지.”

“호흡?”

“호흡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진짜 배우라고 할 수 있지.”

“연기의 톤을 유지하라고 하고 호흡을 연결시켜야 한다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어.”

“그건 배우들에게도 어려운 문제인데......”

“연기의 톤이 도대체 뭐냐?”

이온의 물음에 단비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분위기, 태도, 방향, 표현법에 대한 방법론을 아우르는 즉 연기의 콘셉트?”

그럴 줄 알았다.

이온의 미간이 찌푸렸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뭉뚱그려서 사극톤, 코미디톤, 멜러톤 같은 걸로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이온이 헤맨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연기이론 서적을 제아무리 뒤져봐도 명확하게 개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만 있는 개념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애매했다.

“복잡해도 되니까 말해 봐.”

“내가 너한테 설명할 정도로 깨닫고 있으면 지금 이러고 있을까?”

이온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또 넷튜브 뒤져가며 독학하고 있지?”

“기본적인 발성 요령이랑 복식호흡하고 턱관절이나 혀 쓰는 요령 같은 거 조금씩 따라서 해보고 있어.”

“이온이 넌, 평상시 언어습관이 좋게 잘 형성되어 있어서 화술은 금방 될 거야.”

“내가 언어습관이 좋다고? 무슨 근거로?”

“4개 국어를 하잖아.”

“외국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벤 다양한 악센트, 띄어 읽기나 말하기, 일상어에서 명령, 의문, 감탄형 표현 같은 거?”

“응. 화술이 어렵다면 어려운데 실상 간단하거든.”

“말 하듯이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더라.”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예를 들어 ‘밥 먹어‘라는 짧은 문장은 평서문도 되고, 감탄문, 의문문, 명령문 다 되잖아.”

“동사의 어미 처리?”

“역시 한국대라서 금방 알아듣네.”

“그게 뭐가 어려운 거라고. 한국대까지 들먹여.”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돼. 근데 의외로 ‘밥 먹어’ 이 짧은 말도 막상 감탄, 의문, 명령으로 바꿔서 대사를 치다보면 평서문처럼 되어 버릴 때가 있어. 얕은 몰입과 감정 충동이 일어나지 않아서.”

“혹시 외부작용에 의한 충동...... 그 연기이론?”

연기는 일상을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 또는 몸짓 혹은 도발, 환경 변화 등 무수한 외부작용에 의해 반응을 한다.

만약 팔에 모기가 물렸다고 하면, 따끔거림이란 외부자극으로 뇌에서 아픔을 인지한 다음 팔에 명령(충동)을 내려 긁도록(반응) 한다.

이처럼 어떤 연기 이론에서는 연기의 과정을 외부자극→충동→반응이란 단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주류 이론은 아니다.

“이 미친 놈! 도대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은 거야?”

단비가 질렸다는 얼굴로 물었다.

“원서까지 다 합해서? 오십 권 정도?”

“석사 논문 준비 하냐?”

“겨우 오십 권 읽고서 논문 쓴다고? 그럴 줄 알았으면 서양사학과가 아니라 연극영화과 갈 걸 그랬다.”

“아휴~ 정말 내가 못 살아.”

뮤지컬 배우는 아니지만, 선배 배우 중에 연기 이론서를 정말 많이 독파하고 지금도 읽고 있는 이가 있다는 말을 듣긴 했다.

그 선배를 학구파 배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비는 자신의 친구 이온이 훗날 학구파 액션배우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계속 액션배우 활동을 한다면.

“안 되겠어!”

단비가 스마트폰의 코코아톡을 열어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극배우 친구 대화방에 글을 날렸다.

단비는 바쁘게 손가락을 놀리는 가운데 입도 쉬지 않았다.

“몸은 괜찮아?”

“응.”

“임 감독 전치 7주짜리 부상당했다며?”

“형민이형한테 들었어?”

“샘물 언니가 그러더라.”

단비는 동기 중에서 형민과 샘물 두 사람과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잘 지내고 있었다.

“임감독 그 쒸레기는 왜 너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래니!”

“난들 아냐?”

“버틸 만은 해? 괜찮아?”

“안 괜찮을 이유가 없잖아.”

“나중에 우리가 잘 돼서 그런 놈들 확 밟아줘야 하는데.”

“그래도 임감독이 날 자주 캐스팅해 줘서 동기들 중에 내가 제일 일을 많이 했어.  경험치 먹고 쑥쑥 레벨업 중이다.”

띵.

띠웅.

단비는 코코아톡 메시지 입력과 이온과의 대화를 동시의 수행하는 놀라운 멀티태스킹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임 감독 아웃 됐으니까, 당분간 더럽고 지저분한 대역 안 하겠네?”

“아예 불러 주는 감독님이 없어.”

“송관효 선배가 널 잘 봤다며?”

“몸을 좀 키워보려고 했더니 하지 말라네. 고딩 대역 전문 시킨다고.”

“오오. 일찍 자리 잡겠는데?”

“봐야 알지. 넌 어때?”

“뭐가?”

“스턴트 배운 건 도움이 돼?”

“몸을 어떻게 써야할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꾸준히 트레이닝 하고 있지?”

“하다 안 하다.”

안 한다는 말이다.

“매일 대학로에서 술 마시냐?”

“어허. 내가 술이 좋아서 술을 마시겠냐? 예술가들과 낭만을 마시고 있는 거야.”

“그 말, 너희 엄마아빠한테 그대로 전해 줄까?”

분주하게 움직이던 단비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일어나!”

“술 안 마셔.”

“내가 연기 선생님 소개시켜 줄게.”

“갑자기?”

“넷튜브 보고 기본 테크닉 배울 수 있어. 근데 배우에게 진짜 중요한 기본기가 뭔 줄 알아?”

“......?”

“나를 잃지 않도록 하는 거. 또 몰입이나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이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부분은 납득했다.

그런데 뒤에 말한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따로 배운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너한테 연기를 가르쳐 주기 싫어서 거절한 게 아냐. 넌 입시를 위한 테크닉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배우의 연기를 배우고 싶은 거잖아. 매우 진지하게.”

당연한 거다.

이온 사전에 대충이나 적당히 같은 단어는 없다.

뭔가 목적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과연 그것을 통해 어디 까지 갈 수 있을지 최선을 다해 파는 성격이다.

절친 중에 절친, 단비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기초적인 테크닉은 학원에서 배울 수 있어. 근데 진짜 중요하지만 한국에서는 어떤 선생님도 가르쳐 주지 않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초적인 방향성. 그걸 함께 찾아 줄 선생님. 내가 그런 선배님을 소개시켜 줄 게.”

연기 선생님을 소개시켜주겠다고 단비가 이온을 데리고 간 곳은 대학로의 허름한 막걸리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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