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쌤통이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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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이 보기에 임대한과 심동혁은 바보였다.
그렇게 싫어하면서 계속해서 이온을 촬영장에 데리고 간다.
쫒아내고 싶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액션아카데미 내부에서 이간질을 시키거나, 범죄 행위 같은 누명을 뒤집어씌우거나 후배 무술감독에게 캐스팅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하거나 기타 등등.
괴롭히겠다고 기어코 이온을 데리고 다니면서 본의 아니게 스턴트 기회를 줬다.
차라리 직속 후배인 조현동을 캐스팅을 하는 것이 그들끼리는 더 좋을 텐데, 굳이 이온에게 스턴트를 시킨다.
물론 이온이 맡아서 하는 대부분의 스턴트가 자원해서 할 만한 것들이 못되긴 하지만.
사실 그것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더럽고 치욕스럽고 수치심 드는 대역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것이 프로다.
‘임 감독이 시키는 것들이 다 경험치들인데, 그걸 왜 마다하겠어.’
잡몹을 많이 잡든, 중간 보스를 잡아서 경험치를 한꺼번에 먹든 레벨 업 하는 것은 똑같다.
동기들 가운데 이온의 경험치 먹는 속도가 월등한 상황이다.
이온으로써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주섬주섬.
이온이 보호장구를 착용했다.
“입지 마.”
혹시 몰라 앵클 가드까지 착용하려고 하는데, 임대한이 중지시켰다.
“내가 할 거야.”
“......?”
“말 귀 못 알들어? 스턴트 내가 한다고.”
“아, 네.”
이온이 군소리 없이 착용했던 보호장구들을 도로 벗었다.
오늘은 임대한과 이온 단 둘만 촬영현장에 왔다.
해야 할 스턴트도 단 하나다.
바로 계단에서 구르기.
이 스턴트 역시 1년차에게는 잘 시키지 않는다.
이온은 임대한과 심동혁 때문에 벌써 여러 차례 계단 구르기 대역을 수행했다.
RPG게임에 대입해 보면, 동기들과 한 기수 위 선배들이 쪼렙존에서 놀 때 이온은 중급 사냥터에서 노는 격이다.
“저 새끼는 다치지도 않아~”
오죽하면 심동혁이 그런 말까지 했을까.
다치라고 시켰는데, 안 다친다.
못 된 심보의 심동혁으로써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암튼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스턴트맨이 보호장구를 차고 계단 구르기를 하면 크게 다칠 염려는 없다.
계단 구르기 대역을 하다 다치면 스턴트 그만 둬야 한다.
그 정도로 스턴트맨들이 밥 먹듯이 하는 스턴트가 계단 구르기다.
물론 경사가 급한 계단을 구를 때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그런 계단은 구르는 것이 아니라 통통 튀면서 내려오기 때문이다.
기술이 없으면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다.
때문에 베테랑들이 주로 한다.
참고로 계단의 종류도 상당히 많다.
다양한 계단 상황에 따라서 베테랑과 일반 스턴트맨이 투입된다.
어쨌든 오늘 현장 여건은 그렇게 고난이도가 아니다.
보통은 이온에게 스턴트를 시키고 실컷 잔소리하고 창피주고 정신 공격을 해댔을 터.
임대한이 나섰다는 것은 고위급 인사 혹은 유력자가 현장을 방문했다는 뜻이다.
그것 밖에는 이유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님 오셨어요?”
임대한의 밥줄을 쥐고 있는 수많은 ‘갑‘들 가운데 한명이다.
외주제작사 사장이 오랜만에 촬영현장에 나왔던 것.
“임 감독 수고가 많아.”
“수고는요.”
임대한이 열심히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액션(?)을 취했다.
진실한 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정말 프로정신 투철하고 성실하며 믿음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온은 내심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앵클 가드도 차시지......”
“내가 넌 줄 알아?”
“리허설 들어가기 전에 촬영장 확인 안 하십니까?”
“됐어. 아까 다 확인했어.”
“그래도 다시 한 번......”
“거 새끼 진짜...... 입주 마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파트구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임대한은 다시 한 번 계단을 꼼꼼히 확인했다.
촬영장면은 별 것 없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을 알고 있는 아내가 우연을 가장해서 남편을 계단에서 밀치게 되고, 계단을 구른 남편이 중상을 입는다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치정 스토리의 아침드라마 한 장면.
“큐!”
PD의 사인이 떨어지고 임대한이 계단을 굴렀다.
베테랑임을 증면하듯 한 번에 ‘OK' 사인을 받았다.
계단 구르기는 한 번만 찍지 않는다.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다.
그렇게 카메라 위치를 바꿔가면서 촬영을 해나가는데.
“......X발!”
계단을 구른 임대한이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누구보다 먼저 이온이 달려갔다.
임대한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온이 스턴트 가방으로 달려갔다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쿨타입 스프레이 파스가 들여 있다.
이온이 발목에 스프레이를 가져다 대자, 임대한이 신경질적으로 낚아채 자신의 발목에 사정없이 뿌려댔다.
이온은 묵묵히 그런 임대한의 곁을 지켰다.
“임 감독, 한 번 더 갈 수 있겠어?”
“......”
임대한은 대답 없이 발목에 파스를 뿌렸다.
“잡아! 잡으라구 새끼야!”
이온의 부축을 받아 임대한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살살 발목을 돌려봤다.
다시 한 번 임대한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다.
“보호대 차고 와.”
이온이 대답도 생략한 채 얼른 보호대가 담긴 가방으로 달려갔다.
남들이 보든 말든 훌렁훌렁 옷을 벗은 후에 척추보호대, 골반 및 엉덩이 보호대, 팔꿈치와 무릎 보호대, 앵클 가드 등을 차례로 착용했다.
최대한 신속하게 보호장구를 착용한 이온이 계단으로 돌아왔다.
“목걸이 안 빼냐?”
이온이 망설였다.
“......!”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토끼발 목걸이다.
임대한은 이온이 그것을 차고 있는 것까지 꼴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물론 계단을 구를 때 토끼발처럼 두툼한 액세서리가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솔직히 임대한이 그렇게 세심하게 이온을 배려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꼬투리 잡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임대한이 다시 한 번 쏘아붙이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이온이 걸고 있던 토끼발 목걸이를 벗어서 상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하여간. 새끼가 유난을 떨어요.”
이미 어려운 대역 액션은 임대한이 다 찍어 놨다.
때문에 이온은 비교적 부담 없는 대역을 몇 번 수행했을 뿐이다.
“오케이! 무술팀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임대한이 대역촬영이 끝나자마자 PD에게 물었다.
“오늘 대역해야 할 거 또 있어요, 감독님?”
“없어요. 왜 요?”
“아무래도 발목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그래요? 그럼 빨리 병원에 가봐야지. 당분간 대역 쓸 일이나 위험한 장면 촬영할 것이 없으니까 치료 잘 받고 와요.”
“미안합니다. 현장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촬영 신경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 해요. 정 뭣하면 조연출한테 말해서 스턴트 장면을 좀 미루든가 할 테니까.”
“한의원가서 침 몇 번 맞으면 거뜬할 거예요. 우리가 몸뚱이로 먹고 사는 놈들이다 보니 작은 부상에도 예민합니다. 이해 좀 해주세요.”
“알죠. 빨리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부터 찍어 봐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온이 임대한에게 차키를 건네받았다.
절뚝거리며 임대한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엑스레이부터 MRI까지 일사천리로 찍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으며 관절 주위에 있는 인대에 비정상적으로 물이 찼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차피 물은 계속 차게 됩니다. 약 드시면서 말리는 방법 밖에는 없어요.”
임대한은 의사의 처방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온이었다면 물을 빼달라고 했을 것이다.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게 되면 토끼발 버프로 인해 일반인보다 치료기간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으니까.
“인과응보라고 해야 하나.....?”
임대한을 집에 데려다 주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이온이 중얼거렸다.
못된 짓을 하면 언젠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
다 떠나서.
“쌤통이다!”
이온의 발걸음이 다른 때와 달리 유난히 가벼웠다.
마치 묵직한 아랫배를 시원하게 비운 것처럼.
✻ ✻ ✻
임대한이 부상을 당한 것은 이온 입장에서 기분상으로 고소한 일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곤란했다.
부상치료로 인해 임대한이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이온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임대한이 캐스팅을 해주지 않으니 일이 뚝 끊겼던 것.
이온의 동기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캐스팅 되는 것은 오도훈이었다.
워낙 인상이 험악한데다가 그 동안 근육도 엄청 벌크업을 해놔서 조폭 역할에 안성맞춤인 액션배우로 변신해 있었다.
조폭 액션이 나오는 거의 모든 영화·드라마마다 불려 다녔다.
이온 역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벌크업을 시키려고 했다.
송관효 선배가 극구 말렸다.
“넌 운동을 소홀히 해도 돼.”
진짜 운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두꺼운 근육을 키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주로 늘씬한 배우들의 대역을 해야 하니까. 몸 관리 따로 하지 마. 아, 술도 마음껏 마셔. 배 나오는 거야 며칠 열심히 땀 흘리면 저절로 들어가니까.”
“제가 동안인데다가 호리호리해서 배역의 폭이 좁아요.”
“안 좁아.”
“......?”
“너는 피부가 좋고 마른 편인데다가 체형도 서구형이라서 써먹을 데가 많아. 1년 정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을 쌓아봐. 그 사이에 폭삭 늙지 않는다면 10대 파릇파릇한 배우들 대역은 다 너한테 갈 거니까.”
“제가 꽃미남과는 아니잖아요.”
“네가 꽃미남이었으면 촬영 나갈 때마다 매니저들이 꼬셨겠지. 제안 받은 적 있어?”
매니지먼트에서 배우 제안을 받은 적은 없다.
“암튼, 현동이한테도 말해뒀는데, 니들 둘은 벌크업 하지 말고 지금 정도 수준으로 유지해...... 배 한 번 까봐. 몸 좀 보게.”
이온이 티셔츠를 들어올렸다.
밸런스가 잘 잡힌 몸이 드러났다.
뚜렷한 근육의 시각적인 아름다움 또한 부각되었다.
특별히 힘을 주거나 자세를 잡지 않았음에도 근사한 초콜릿 복근이 드러났다.
복근을 중심으로 장골까지, 하나하나가 과하지 않은 선에서 돋보였다.
헬스와 같은 운동으로는 만들 수 없는, 군더더기 없는 몸이다.
복근하면 유도 선수, 하체하면 축구선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기계체조 선수 또한 어깨와 근육깡패로 절대 꿀리지 않는다.
이온은 체조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다만 스턴트에 입문하기 전부터 비보잉과 트릭킹을 꽤 높은 수준으로 훈련했다.
액션아카데미에서 체계가 잡히자 여러 면에서 발전 속도가 폭발해버렸다.
그 중 하나가 섬세한 근육질 몸매다.
“좋네. 지금이 딱 좋아.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슬림한 근육을 유지하는 것이 차라리 나으니까, 너는 가급적 몸 불리지 마.”
몸이 너무 커지거나 두꺼워지면 스턴트를 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온은 알겠다고 말하긴 했다.
그럼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캐스팅되어 현장에 나가는 오도훈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형들 기분이 이랬나?”
모르긴 몰라도 며칠 전까지 이온을 보며 동기 형들도 똑같은 기분이었을지 모른다.
암튼, 몇 달 만에 이온은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했다.
본인이 아니면 알 수도 없고.
그저 아주 잠깐 화면에 비치는, 말 그대로 대역.
때로는 편집이 되기도 했고, 제대로 나오더라도 얼굴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출연분에 대해 신경 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과외를 하지 않지만, 열심히 불려 다닌 덕분에 수입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영화공부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루에 두 시간 남짓 수면을 취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피곤한 줄 몰랐다.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고 누나가 알려준 영양제도 사서 먹고 토끼발의 샤머니즘까지 발휘되면서 조금만 쉬더라도 길게 잔 것처럼 상쾌했다.
이온은 체육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도 벌고 실력도 나날이 늘고 있다.
스턴트에 재미가 붙었다.
그래도 휴식은 매우 중요하다.
육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정신적인 방면도 신경을 써야 한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저절로 딸려 오진 않는다.
육체를 건강하게 하는 과정 속에서 정신도 함께 단련이 되고, 휴식을 통해서 육체를 돌아보고 정신을 깊게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육체가 건강하다면, 그리고 뛰어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나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기본이 육체다.
“마라톤을 뛸 때도 페이스조절이라는 게 있으니까.”
달리는 걸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주저앉게 되니까.
그렇다고 쉴 순 없고, 호흡을 고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온아~ 주말에 뭐해?”
퇴근길에 형민이 따라왔다.
“서울 시내 나갈 일이 있어. 왜?”
“정열이형네 체육관에 안 오나 해서.”
“군대 후임이 보자고 해서 같이 저녁 먹을 것 같아.”
“비보이?”
“아이돌 데뷔했대.”
“오오. 군악대에 아이돌도 있었어?”
“몰라 자세히는. 기획사에서 퇴사하고 군대왔다고 했는데 제대하고 뜬금없이 아이돌 데뷔를 했다고 하네.”
“몇 살인데?”
“스물 셋인가 그럴 거야.”
“그 나이에 데뷔를 했다고?”
“그렇대.”
“네 후임이라니 잘 됐으면 좋겠다.”
“그 놈 부모님이 대기업 이사야. 연예인 안 해도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걸.”
“젠장. 개천에서 용 된 놈 좀 현실에서 만나보고 싶다.”
“있잖아.”
“누구, 어디?”
“형, 눈앞에.”
“너?”
“고아가 한국대 서양사학과에 다니고 외국어도 4개씩이나 하고 한국 최고 무술센터의 기대주에다가 월수입 삼백 찍으면 용 된 거 아닐까?”
“용 기준이 많이 낮다고 생각 안 해? 네 나이 때는 야망이 작아?”
“형하고 몇 살 차이 난다고 세대를 구분하시나. 나도 90년대 생이야.”
“그건 그렇고. 임 감독 얘기 들었냐?”
“무슨 얘기?”
“부상이 생각보다 작지 않은 가봐.”
“4주라고 들었는데?”
“6주란다.”
함께 병원에 갔을 때는 소염제와 함께 처방약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인대에 찬 물을 말리고 물리치료를 병행하면 4주면 반깁스를 풀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아닌 모양이다.
“괜히 센척한다고 주접 싸다가 부상이 더 악화됐다나 뭐라나.”
“지랄 같은 성격에 얌전히 있는 것도 이상할 거야. 그 인간은.”
“쌤통이지?”
“부상당한 게 고소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임 감독이 일을 못해서 날 써줄 수 없다는 게 아쉽고 뭐 그러네.”
“최창민 감독님 대작 하나 들어가실 것 같아.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겠지.”
“주말 잘 보내.”
“너도 아이돌 군대 후임 만나서 회포 잘 풀고.”
“일요일에 별 일 없으면 정렬이형 체육관에서 봐.”
술친구를 수배하기 위해 열심히 코코아톡을 뒤지는 형민을 뒤로 하고, 이온은 일산 집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은 후에 큰 맘 먹고 장만한 홈시어터 시스템으로 영화를 봤다.
“무슨 영화 봐?”
“스페인 영화.”
“같이 봐.”
“무자막이야. 나중에 누나는 따로 봐.”
“설명해 주면 되잖아.”
“싫어.”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이 양심 없는 동생놈아~”
“누나가 뭘 가르쳐. 독학 했거든!”
이슬이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꺼내와 이온 옆에 자리를 잡았다.
“스페인이 은근히 공포영화 잘 만들더라.”
“공포 영화는 무서워서 못 보는 거 아니었어?”
“응급수술로 들어오는 환자 중에 별의 별 환자가 다 있는데, 내가 공포영화를 무서워할 것 같아.”
“말은 되네.”
말이 씨가 된 걸까.
안타깝지만 이슬은 맥주를 마실 수 없었고, 동생과 영화도 함께 볼 수 없었다.
병원에서 응급수술 콜이 왔기 때문이다.
“귀찮게 하더니 샘통이다~”
이온은 스페인 스릴러 영화 <예상하지 못한 사고>, <술집>, <구급대원 앙헬>를 연달아 시청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대단한 액션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관객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대본과 연출이 꽤나 봐줄만한 영화들이었다.
“그래서 연기의 톤이 뭐냐고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