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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우-50화 (50/127)

〈 50화 〉 프리랜서라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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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릴 수가 없다.

시간은 말할 것도 없다.

정신 차리고 보니 해가 바뀌어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느 새 3월이 찾아온 것이다.

액션아카데미는 새로운 기수생 오디션을 마치고 곧 교육캠프가 시작된다.

이온은 삼화교육을 마쳤다.

동기들과 함께 벽제납골당에 모셔져 있는 스턴트맨 선배님들께 참배를 드리고 왔다.

드디어 정식 스턴트맨이 됐다.

사실 수습 딱지를 떼었다고 해도 막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심화교육을 마치면 자주 캐스팅이 되어 촬영현장을 누비고 다닐 줄 알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0시에 출근해서 고급기술을 수련하고 부족한 기량을 끌어올리는 일상은 여전했다.

단 이온은 달랐다.

임대한과 심동혁이 수시로 캐스팅해서 현장에 데리고 다녔다.

비록 스턴트맨들이 선호할 만한 대역이나 연기는 아니었지만.

“형, 오늘 수고 많았어.”

“수고는 네가 했지.”

형민이 안쓰럽다는 듯 이온의 등을 쓰다듬었다.

오늘 촬영에서 이온은 밀가루를 뒤집어썼다.

배우가 직접 뒤집어써도 되는 걸 굳이 이온을 투입한 임대한이다.

형민이 보기에는 분명히 그랬다.

“김치 싸대기만 맞으면 어지간한 것은 다 뒤집어 쓸 것 같아. 하하.”

“웃음이 나오냐?”

“즐기는 사람은 못 이긴다잖아.”

“솔직히 처음에는 별로 부럽지 않았거든. 근데 나도 시켜주면 다 할 것 같긴 해.”

“온갖 오물을 단순히 뒤집어쓰기만 하면 스턴트더블이 필요가 없지.”

“그러니까.”

가만히 서서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걸 스턴트맨이 할 이유는 없다.

배우가 하면 된다.

오늘 촬영에서는 쏟아지는 밀가루를 피하려다가 뒤로 나자빠지는 움직임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스턴트맨인 이온이 투입된 것이다.

참고로 할리우드의 경우에는 스턴트는 아니지만 스타 배우를 대신해 대역을 하는 직업이 따로 있다.

바로 스탠드 인(stand-in)이다.

이들은 주로 조명, 카메라 셋업 등에서 배우를 대신 해서 카메라 앞에 선다.

즉 조명을 새로 설치하거나 조정을 할 때 그리고 카메라 위치를 바꿔 포커싱 및 노출 등을 새롭게 조정할 경우 스타 배우 대신에 자리를 지키는 대역이다.

스탠드 인은 본 촬영이 들어가기 전에 하는 리허설까지 스타 배우를 대신하기도 한다.

따라서 스탠드 인이 대역을 하는 동안 스타 배우는 자신의 트레일러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자신 대신 수행하는 리허설을 감독과 함께 모니터하기도 한다.

때로는 롱 쇼트 같은 원경촬영 시 배우의 얼굴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 경우에도 스탠드 인이 대역을 한다.

할리우드에서 스탠드 인은 엄연한 전문 영역이다.

그 외에 국가에서는 중국과 발리우드 정도 현장에서 볼 수 있을까.

따라서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다.

스턴트맨이 자발적으로 스탠드 인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없다.

그런데 한국의 촬영현장은 융통성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보통은 몸값 비싼 배우가 직접 조명세팅을 할 때 위치를 잡아주기도 하고, 액션 시퀀스에서는 스턴트맨들이 스탠드 인 역할까지 한다.

“안 졸려?”

“별로. 낮밤이 뒤바뀌어서 몇 달을 살았더니 적응이 되었나봐.”

택시에서라도 자둬야 밤을 꼴딱 새우고 다시 나오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다.

컨디션이 난조면 스턴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이온은 돈이 좀 들더라도 촬영을 마치면 보통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그 사이에 수면을 취한 것이다.

텅.

이온이 택시 문을 닫았다.

일산을 들른 택시는 김포대교를 넘어 형민을 집까지 데려다줄 것이다.

이온이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자 조간신문을 배달하는 모습이 보였다.

신도시 초창기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다보니 노령층이 많이 살고 있어 여전히 종이신문을 보는 가구가 꽤 있었다.

이온이 현관에 쭈그리고 앉아 신발 끈을 풀었다.

등뒤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지금 나가?”

“지금 들어오는 거야.”

“지금 몇 시인데?”

“새벽 다섯 시 일걸.”

“무슨 일이 그래.”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직업 많아. 누나도 밥 먹듯이 당직하잖아.”

“이온아~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지 말라고 했어.”

“그 반대 아니야?”

“어차피 말년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할 텐데 뭐하라 일찍부터 고생을 하냐?”

“누나가 그렇게 말 하면 설득력 일도 없거든.”

“복학 할 거지?”

이슬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왔다.

“......응.”

어째 대답이 떨떠름하다.

“진짜지?”

“내가 언제 말한 거 안 지킨 게 있어?”

“믿는다?”

“엉.”

“밥 차려줘? 먹고 잘래?”

“아니. 그냥 대충 샤워하고 잘 거야.”

“요즘 뭐 했어? 왜 어디 출연했는지 말 안 해줘.”

“이것저것 해서 뭔지 기억도 안 나.”

말처럼 이온은 자신이 출연했던 드라마나 영화를 모니터링 할 시간조차 없었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 나왔는지 적어 놔.”

“뭐하게?”

“뭐하긴. 누나가 봐주려고 하지.”

“못 찾을 걸.”

“이놈에 시키! 똥오줌 다 받아가며 키웠그든! 누나가 널 못 알 볼까봐.”

그러거나 말거나.

이온은 누나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솔직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신 하품만 해대며 옷을 훌렁훌렁 벗고 욕실로 들어가 재빠르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터덜터덜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며 멍한 상태로 말했다.

“나 잘 거야. 깨우지 마.”

침대에 눕자마자 졸음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필름이 끊겼던 이온이 눈을 떴다.

“우와, 진짜 죽겠네.”

이온은 사람이 이렇게 피곤할 수 있나 감탄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눈을 뜨고, 누나가 방문에 기대어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토끼발 안 차고 잤어?”

“몰라. 그냥 뻗어버려서.”

“수액 맞을래?”

의사 지시 없이 병원 밖에서 임의로 주사하면 의료법 위반이다.

이슬이 대학병원 간호사라고 할지라도 의사 처방 없이 함부로 수액 링거를 가족에게 놓을 순 없다.

그렇다고 법대로만 살 수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합법적으로 이온에게 얼마든지 수액을 놔줄 수가 있다.

“됐어. 밥 먹으면 기운 차리겠지.”

이온이 침대에서 빠져나와 거실로 나왔다.

“출근 안했어?”

“퇴근한거야.”

“우와. 내가 몇 시간을 잔거야?”

이온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거실 창밖을 내다봤다.

컴컴했다.

“12시간 정도.”

“어쩐지 배가 고프더라니.”

“밥 먹을래?”

“있어?”

“가서 세수라도 하고 와. 잠을 깨야 밥을 먹든 뭘 하지.”

이온이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식탁으로 왔다.

“누구 생일이야?”

이온이 물어볼 만 했다.

감자짜글이에, 꽁치조림에, 애호박전에, 못 보던 밑반찬까지.

한상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오랜 만에 시장에서 밑반찬 좀 사왔어.”

“잘 먹겠습니다!”

이온이 열심히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아참! 누나 코코아페이 확인 해 봐.”

“왜?”

“생활비에 보태라고 조금 보냈어.”

“니가 돈이 어디 있어서?”

최근에 이온은 과외를 그만 뒀다.

촬영을 다니는 것만으로 벅찼기 때문에 도저히 과외를 할 수가 없었다.

“<태왕 광개토> 출연료가 들어왔어.”

“됐어. 너 써. 아니야. 은행에 넣어 놔.”

“은행에 넣어봐야 돈이 불어나지도 않아.”

“주택청약 들어놓을래?”

“무슨 주택청약이야. 벌써부터.”

“돈 번다고 흥청망청 쓰다보면 패가망신하는 거 몰라?”

“흥청망청 쓸 돈 없습니다요.”

“얼마 버는데?”

“일당으로 37만 원 받을 때도 있고, 15만 원 받을 때도 있고, 최근에 했던 스턴트는 64만원 받을 건데 그건 세달 후에 들어올 거야.”

“막노동도 정해진 일당이 있는데, 스턴트는 뭐가 그렇게 복잡해?”

“분야가 다양해서 그래. 영화나 광고, 무대, 행사는 네고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금액이 달라. 방송이 조금 복잡해.”

방송 출연료는 지급되기 전까지 정확한 출연료를 알지 못한다.

이온 역시 계좌에 찍힌 액수를 보고 출연했던 작품의 편성시간 같은 부분을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뿐.

이온이니까 출연료 기준표와 편성시간 및 기타 광고시간 등을 따져본다.

대부분의 조단역배우나 스턴트맨 등은 그냥 주는 대로 받을 뿐.

“64만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거야?”

“정식 스턴트맨 출연료가 그 정도 수준이야.”

지상파 출연료 기준표 상 미니시리즈 출연 10등급 기준으로 들어온 금액이다.

이온은 누나에게 지상파 방송 출연료 등급별 금액을 설명해줬다.

“잘 나가는 스타들은 18등급인거야?”

“응. 제일 낮은 6등급부터 18등급까지 받을 수 있어. 1~6등급이 아이들 등급이고.”

“18등급은 얼마나 받는데?”

“미니시리즈나 특집극 90분짜리 기준으로 230만원인가 받을 거야.”

“매 회당?”

“응.”

“많은 건가?”

“조단연급 중견 연기자들은 미니보다 일일연속극이 꿀 빠는 거야. 30분 기준 50만원 받거든.”

주 5회, 일 년 이상 출연을 하게 되면 꽤나 큰 금액이다.

“연예뉴스 보면 누구는 회당 1억 받는다 어쩐다 하던데?”

“A리스트 배우들은 18등급 이상이라고 해서 자유계약을 해. 방송 등급 기준표를 따르지 않고 개별적으로 협상을 하지. 요새는 OTT로도 서비스하고, 해외로도 수출이 되어서 특급배우들은 회당 2억 원을 받기도 하나봐.”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는 드라마의 경우,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배우를 캐스팅하게 되는데 그들은 제작비의 8.5~10%가량을 출연료로 가져간다.

“등급은 어떻게 올려?”

“예전에는 경력을 주로 따졌다는데, 지금은 인기가 올라가면 금방 등급을 올릴 수 있나봐.”

“스턴트맨도?”

“우린 그냥 10등급.”

“왜?”

“몰라 나도.”

“액션 배우라며?”

“배우이면서 스태프지.”

“우리 이온이가 230만 원 받으려면 한 20년 걸리겠네.”

“스턴트맨은 10등급 일당 받는다니까.”

“배우랑 겸업 안 돼?”

“선배님들 보면 무술감독이랑 배우를 겸임하긴 하더라.”

“영화는 안 해?”

“아직 영화 쪽 작업하는 감독님들이 캐스팅을 안 해주시네.”

“영화에 나와야 병원 식구들한테 자랑을 하지.”

“때 되면 영화 일도 하겠지 뭐.”

“올해 복학 해야지.”

“복학 하면 스턴트맨 못 해.”

“프리랜서라며?”

“매일 체육관에 출근도 안 하는 놈을 감독님들이 써주겠어?”

“넌 비보이 특기가 있잖아. 스턴트맨 쪽에서 희소성이 있다며?”

“희소성이야 있지. 근데 그 특기를 써먹을 드라마나 영화가 없다는 게 문제지.”

후우.

이슬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씁. 밥상머리에서 한숨을 쉬냐. 복 달아나게.”

“학교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면 안 돼? 굿맨 가족도 있고.”

“굿맨 가족은 남남이야. 그들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마.”

“작년 여름하고 겨울에 캘리포니아에 못 갔잖아. 이번 여름에 가서 폴 아저씨와 의논해보는 건 어때?”

“뭘?”

“네 진로에 대해서.”

“폴 아저씨하고?”

“할리우드 무술감독이라며?”

“무술감독이면 뭐? 폴 아저씨가 막 끌어주고 밀어주고 키워줄 것 같아서?”

“어릴 때부터 널 이뻐라했잖아.”

“대부랑 아빠가 살아계실 때 이야기지.”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걸까?”

이온의 젓가락이 시장표 밑반찬을 분주하게 훑었다.

“울 할머니... 밥 먹은지 얼마 안 지났는데 밥 먹으라고 하시고. 배부르다고 하면 그거 먹고 뭐가 배부르냐고. 그럼 옥수수 먹으라고 갖다 주시고. 할머니 배불러 그러면 떡 먹으라고. 또 배불러요 할머니.... 그래? 그러면 사과 깎아줄까? 사과먹으라고. 할머니 그립네.”

식탁 밑으로 누나의 발길질이 작렬했다.

“말 돌릴래?”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거잖아. 내가 개만도 못해?”

식탁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클로이가 울었다.

야옹.

이온이 밥 먹다 말고 클로이의 등을 쓸어주었다.

“밥 먹는데 집중 하시지!”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셔? 열심히 일하고 들어온 동생한테 누나가 되어서......”

이슬이 갑자기 태세를 전환했다.

“더 먹을래?”

“밥 있어?”

이슬은 동생의 밥그릇에 한 가득 밥을 담아왔다.

비록 밑반찬이 시장표라고 하지만, 어쨌든 누나가 정성껏 준비한 집밥이다.

맛이 없을 리 없고,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주변에서 더 난리지......?’

사실 한국대 졸업장이 별로 중요할 것 같진 않다.

현재로서는 그렇다.

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도 그럴까.

좋은 학벌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분야에 올인해서 성공하게 되면 나중에 그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하던 바를 얻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실제 그걸 이뤄낸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다.

무조건 다 잘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대에 입학 할 수 있었던 것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공군 군악대 비보이병으로 갈 수 있던 것도 티오가 날 것 같은 시기를 대강이나마 예상하고 뽑힐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온이 목에 걸고 있는 토끼발이 분명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운명까지 바꾸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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