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32화 (32/127)

〈 32화 〉 데뷔 인 듯 데뷔 아닌 듯.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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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교육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이온이 액션아카데미에 출근하지 않았다.

잘린 것도,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다.

관악구에 위치한 한국대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한국대를 찾은 것은 복학을 하는 대신 일반휴학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인터넷으로 접수해도 되지만, 동기들 얼굴도 볼 겸해서 직접 학교를 찾아왔다.

행정지원실에서 열심히 휴학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때마침 낯이 익은 남학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온! 맞지?”

이온이 남학생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언제 제대했냐?”

“한 달 됐다. 너는?”

“작년 11월.”

“복학 신청하러 왔어?”

“아니.”

남학생이 이온이 작성하고 있는 서류를 확인했다.

“휴학하게?”

“두 학기 더 쉬려고.”

“아참 너는 4개 국어 하지. 어학연수 가려고?”

“그냥 사정이 생겨서.”

“벌써 공무원시험이나 공기업 시험 준비할 것도 아니고. 혹시 DALF 공부하냐?”

DALF는 프랑스어 공인 인증 시험이다.

“운동에 꽂혀서. 등록금도 더 벌어야 하고.”

굳이 스턴트나 트릭킹이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 하지 않고 운동이라고 얼버무렸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해도 ‘속 편한 놈’ 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입대 전에 아주 친하게 지냈던 동기도 사실 아니었고.

“결국 남는 건 동기밖에 없다. 아무리 친한 선후배 사이라 해도 동기만한 친구는 없는 것 같아. 군대에 가기 전에는 항상 붙어 다니던 정식이 현태, 성호...... 제대하고 복학하려니까 다 뿔뿔이 흩어졌더라. 현태와 성호는 해외 나가 있고, 정식이는 공무원시험 준비한대. 얼굴 한 번 보고 싶어도 다들 너무 바빠서. 얼굴 한번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거의 3년 만에 만난 동기다.

그 사이 수다력만 늘은 모양이다.

학과 조교로 일하고 있는 동기 여학생을 만나러 가서도 녀석은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겨우 틈을 봐서 여자 동기에게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페루에 있을 때 자료 보내줘서 고마웠어.”

“도움이 됐어?”

“당연하지.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이번 학기에 스페인으로 답사 갈 예정인데, 이온이는 휴학하니까 동기들과 못 가겠네.”

서양사학과는 매년 유럽으로 답사를 다녀온다.

올해는 스페인으로 결정된 모양이다.

이온이 스페인어를 잘하는 걸 알아서 그냥 하는 말일 뿐.

여자 동기의 말은 큰 의미는 없었다.

“샤로수길 가서 맥주 한 잔 할까?”

“미안. 분당으로 넘어가 봐야 해서.”

“어쩔 수 없지. 조만간 함 뭉치자.”

“연락 줘.”

이온은 꼭 인사드려야 할 교수 몇 명만 찾아뵙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대학생이지만 같은 대학생이 아니다.

여유롭게 대학을 다니는 이들도 있고, 홀로 벌어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대가 전국 국공립대학 중 등록금이 가장 비싸다.

대학 내외부에서 주는 장학금이 많기는 하다.

다만 수혜율이 7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그저 청춘이 고마운 이들이 있는 반면 청춘이 지독한 사슬처럼 온몸을 감싸고 힘겹게 하는 이들도 있다.

벗어날 수도 없는 지독한 현실.

청년 스스로 해법을 찾아보려고 왜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찾을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해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공부만 잘 해서는 단순히 특기가 공부일 뿐인 사람이다.

공부를 잘하면 좋다.

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게 되어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탄생하는 시대도 아니고.

대부분의 청춘은 부모 찬스를 기대할 수도 없다.

많은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뉴스를 멀리한다.

'아빠 찬스', '입시 불공정' ‘부동산 폭등’ ‘실업률’ 등 비관적인 현실만 확인할 뿐이니까.

대학 1~2년 때야 열심히 공부해 학점이나 영어성적을 올려놓는 성취감이 즐겁다.

그것이 전부다.

뉴스에 나오는 ‘찬스’는 만들 수가 없다.

당연히 박탈감을 넘어 좌절감이 들 수밖에.

취업부터 만만치 않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점점 힘들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주거비와 생활물가, 그에 반해 오르지 않는 임금 등은 수많은 것들이 청년들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불공정과 경제적 불황이 고민을 키우고 있다.

한국대생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또래의 대학생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온통 비관적인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비보이나 트릭커들을 만나면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다.

고민과 걱정이 없을 수가 없을 텐데, 어쩌면 저리들 해맑고 낙천적인지.

그래서 이온이 학교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머물고 싶은 걸지도.

“준렬이형은?”

“일이 있어서 잠깐 외출했어. 근데 뭘 싸들고 온 거야?”

“빈손으로 오기 뭣하잖아. 별 거 아냐.”

이온이 양손에 들고 온 비닐봉지를 형민이 받아 들었다.

비닐봉지에는 자양강장제 음료와 이온음료들이 한가득 담겨있다.

이온이 실내를 슥 둘러봤다.

인젠스 마샬 아츠 짐.

김준렬이 운영하는 트릭킹 전용 체육관의 이름이다.

야탑동에 위치한 이 체육관은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트릭킹 전문 체육관이란 명성답게 넓고 쾌적했다.

체육관의 절반은 거대한 거울이 부착되어 있어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 부분은 체조매트가 넓게 깔려 있다.

체조매트가 깔린 곳의 벽에는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어 힙합 느낌이 물씬 풍겼다.

트릭킹 자체가 다양한 무술, 기계체조, 파쿠르, 스트리트댄스 장르까지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체육관을 혼합 스튜디오로 꾸민 것이다.

“휴학 접수는 잘하고 왔어?”

사무실 냉장고에 음료수를 넣어놓고 돌아온 형민이 물었다.

“응.”

“내가 네 입장이었으면 갈등을 진짜 많이 했을 거야.”

“형은 어때? 여기서 돈도 못 받고 일하잖아. 생활비 쪼들리지 않아?”

이온은 틈날 때마다 형민에게 트릭킹 기술을 가르쳤다.

반대로 형민은 이온의 아크로바틱 기술을 보완해줬다.

문제는 액션아카데미 체육관 바닥이 마루라는 사실.

그곳에서 기술 훈련을 하다가는 발목, 무릎, 고관절 등의 부상위험이 매우 높았다.

또한 선배들 눈치가 보여서 트릭킹 기술을 연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온은 김준렬에게 형민을 소개시켜주는 김에 청소 같은 잡일을 돕는 조건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인젠스님한테 직접 배울 수 있는데 돈이 문제야?”

“언제는 내 팬이라면서?”

“인젠스님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지.”

“이 형, 알고 보니 기회주의자였어.”

“이오니소스가 정식 시합에서 카이사르 압살하면 그때 팬심이 되돌아올지도.”

“스턴트맨 하는데 대회에 나갈 수나 있을까?”

“권투 하시는 아카데미 소속 선배님 한 분이 간간이 대회 나가시는 것 같던데?”

“그 분은 무술감독이잖아.”

“그렇긴 하다.”

“요즘 뭐 배워?”

“카포에라. 내 징가 한 번 볼래?”

이온 앞에서 이온이 징가를 밟았다.

택견에 품밟기가 있다.

품밟기는 택견의 꽃이며, 오메가이자 알파라고 할 수 있다.

카포에라에서 징가 역시 마찬가지다.

“반바지 줄까? 같이 할래?”

“형 바지는 작아서 못 입어.”

“그, 그렇지?”

형민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바보같이 웃었다.

친구 먹고 싶은 놈이 있고, 비즈니스 사이로만 지낼 사람이 있다.

형민은 전자다.

함께 합을 짜서 훈련할 때도 이온과 호흡이 꽤나 잘 맞는다.

스턴트는 함께 하는 이와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형민은 엘리트 스포츠를 했던 사람임에도 이기적이지 않다.

동료나 남을 배려할 줄 안다.

또 정직하고 근본이 선량한 사람이다.

절로 뭔가 도와주고 싶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불쌍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그냥 좋다.

다만 이온이 볼 때 형민이 좀 당당해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위축되어 있진 않지만, 사람이 좀 사슴 같이 맑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에 이유 모를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형민을 가르쳤던 코치들로 인한 영향일 수도 있고.

짧은 사회생활에서 받은 상처 때문일 수도 있다.

“준렬이형 오면 같이 저녁이나 먹읍시다.”

“좋아. 내가 살 게. 뭐 먹을까?”

“퇴직금 거의 다 까먹지 않았어? 그러다 월세 낼 돈도 없어서 고시원 가는 수가 있다.”

“그 정도는 아냐. 괜찮아.”

남에게 했던 행동은 언젠가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똑같은 형태로 돌아온다.

그게 인과율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남의 도움보다는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릴 때 이온에게 강조한 말이다.

물론, 옆에서 도와주면 한결 편할 수도 있다.

만약 첫걸음을 잘 못 떼었다면 두 번째 걸음에서 바꾸면 된다.

두 번째 걸음마저 잘 못 떼었다면.

그 다음 걸음에서 방향을 틀면 된다.

‘형이나 나나 쫄 거 없지. 망설일 것도 없고.’

매번 고민만 하고 앉아 있다고 자신과 세상이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그 시간에 단 한 발자국이라도 걸어야 바꾸든지 방향을 틀든지 할 수가 있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린 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액션아카데미가 위치한 예술마을 인근 산에 단풍이 지고 있다.

정식으로 액션아카데미 멤버가 된 이온은 매일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몇 달째 이어가고 있다.

간혹 9시까지 운동하고 퇴근할 때도 있다.

본래 규칙은  10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다.

출근해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운동만 한다.

액션캠프에서와는 질이 다른 기술을 연습한다.

한마디로 고난이도의 액션 기술의 향연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안전 또 안전!

스턴트 하다가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

스턴트를 할 때 다치지 않는 방법.

또 다치더라도 덜 다치는 방법.

평소에 그러한 연습을 해두어야 했다.

선배들은 막내 기수에게 자신만의 요령을 귀띔했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막내 본인들 몫이다.

“무조건 이건 잊지 마. 우물쭈물하면 안 돼. 과감하고 확실하게 해 줘야 덜 다쳐.  겁먹지 않고 최대한 몸을 던져 줘야 해. 그래야 카메라 앵글에도 멋있게 나오고.”

25기 막내 기수는 모두 일곱 명.

그 가운데 이온과 형민 둘만 유단자가 아니다.

동기들 모두가 기본 5~6단이다.

도합 12단의 단수를 가진 이도 있다.

이온은 아무 관심도 없는데, 임대한을 비롯해 심동혁이 괜히 이온과 라이벌로 엮는  조현동이 주인공이다.

태권도나 합기도 등으로 기본적인 무술을 익힌 사람들이 체력적 또 기술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겐 수년 혹은 수십 년 운동하며 몸에 밴 습관이 있다.

그 탓에 액션연기가 자칫 딱딱하고 어색해질 수 있다.

운동과 액션 연기는 분명하게 다르다.

그런 면에서 무술 유단자가 아니더라도 스턴트맨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온이 증명하고 있다.

이온은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흡수해 나가고 있다.

“야, 한국대!“

2층 사무실에서 무술감독 한 명이 이온을 호출했다.

산적 두목처럼 부리부리한 이목구미가 인상적인 30대 후반의 무술감독 이치열이다.

이온이 얼른 2층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부르셨습니까!”

“너 영어 좀 하냐?”

“영어번역 필요하십니까?”

“다나까 말투 하지 마. 군대냐? 식구끼리 무슨 각을 잡고 지랄이야!”

“아, 네!”

“한국대니까 영어 졸라 잘하지. 그치?”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어봤어요.”

“영어로 졸라 긴 장문의 메일이 왔는데 번역기 돌려도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영어 잘하면 한 번 번역 좀 해봐봐.”

이온이 이치열 감독이 열어 준 이메일을 읽어봤다.

발신인 야쉬라즈 필름.

인도 뭄바이 소재의 영화사라고 되어 있었다.

이온은 몰랐지만, 야쉬라즈 필름은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 영화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큰 메이저 영화사다.

이메일의 내용은 자신들이 제작준비 중인 영화의 액션 코레오그래피(안무 : Choreography)를 의뢰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는 무술감독이 액션과 스턴트 전반 및 섭외까지 아우르지만, 해외에서는 스턴트 분야에만 디자인, 코레오그래피, 코디네이트 등 세분화되어 있다.

“인도 영화사에서 감독님께 액션안무를 맡기고 싶다는데요.”

“야쉬라즈 필름 맞지?”

“예.”

“인도 애들, 페이 졸라 짠데......”

“저..... 감독님?”

“왜?”

“인도 영화도 하십니까?”

이온은 한국의 무술감독이 인도까지 진출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 스턴트맨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무술감독한 게 우리 대장이고, 중국도 우리가 처음으로 들어가서 합작했지. 인도는 사실 X트리플의 오 감독님이 처음 들어가서 작업하셨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워낙 일을 많이 하다보니까. 가끔 의뢰가 들어와.”

이온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이치열을 선망의 눈망울로 바라봤다.

참고로 <늙은소년>을 비롯한 많은 한국 영화가 유럽을 중심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서 한국의 액션스릴러 장르의 파이트액션도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무술감독들은 가까운 중국, 홍콩과 유럽에 비해 개런티가 낮은 대신, 액션의 리얼리티를 효과적으로 살려내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혹시 여기 불어로 된 이메일도 몇 개 있는데, 이것도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에요?”

“응.”

이온은 솔직히 한국의 스턴트를 다소 과소평가했었다.

대부가 모터사이클 점프 스턴트의 전설 아니었던가.

한국무술 감독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활약을 펼친다는 것은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인도와 유럽의 영화사에서도 협업을 제안하는 줄은 몰랐다.

페루에서 한류를 경험한 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국뽕이 차오르는 순간이다.

“불어도 하냐?”

“예.”

“영어는 어느 정도 해? 졸라 잘해?”

“8살까지 미국에서 살았고, 매년 여름과 겨울에 미국 지인 집에서 지냈어요.”

액션아카데미 소속 스턴트맨 중에 영어를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오늘은 모두 촬영을 나가서 이온을 급하게 찾았던 것.

“불어에 영어에, 자식이 달리 한국대가 아니구만.”

“스페인어도 조금 해요. 혹시 스페인어 권 나라에서는 의뢰가 안 들어와요?”

“......!”

알고 봤더니 언어능력자다.

영어만 잘해도 엄청난 것인데, 한국어까지 4개 언어를 할 줄 안다?

“이 자식 보게! 빨리 짐 싸서 꺼져. 정들기 전에!”

“네?”

이온이 깜짝 놀라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넌 여기서 썩을 놈이 아니야. 아무리 봐도 1년도 못 채우고 그냥 관둘 것 같다. 지금 관둬. 괜히 정들기 전에.”

이온의 심장이 덜컥했다.

스턴트맨 하겠다고 휴학까지 했는데.

언어 몇 개 할 줄 안다고 쫓겨나는 것일까.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어떤 놈이 이런 애를 뽑지 말자고 했어. 엉!”

이치열이 짐짓 화를 냈다.

지금까지 농담을 한 것이다.

휴우~

이온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랜만에 액션아카데미에 능력자가 들어왔네.”

“저...... 혹시 통역이나 번역이나 그런 것도 제가 해야 할까요?”

“네가 얼마나 외국어를 잘하는지에 달렸지. 대장이나 다른 무술감독 따라 외국 나가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한 줄 알아? 너 외국 나가봤어?”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8살 때까지 미국 살았다고. 매년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트릭킹 캠프에 참여하고 있고, 고등학교때부터 봉사활동을 다녀서 지금까지 한 8개 나라 정도 가봤어요.”

“......”

이치열은 스턴트 짬밥만 15년차다.

그 사이 해외 로케이션 촬영도 자주 나가봤다.

그래봐야 중국, 홍콩, 베를린 정도다.

“아버지 뭐하시는 분이냐? 외교관이나 대기업 해외주재원이시냐?”

“초등학교때 돌아가셨어요.”

“아, 미안.”

“미안하실 거 없어요. 그런 걸로 상처 안 받아요.”

이치열이 대화를 하다말고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꺼내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페이지를 넘겼다.

일정을 쭉 훑어보다가 이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였지?”

“25기 나이온이요!”

“현장 나가본 적 있어?”

“아직 없어요.”

“따라 와.”

이온은 이치열을 따라서 체육관으로 내려왔다.

한 동안 이런저런 스턴트 기술 테스트를 받았다.

“어디 살아?”

“일산이요.”

“양복 있어? 아니다. 너 키가 몇이라고?”

“군대에서 마지막에 쟀을 때 184였어요.”

“내일 출근하면, 너무 빡세게 운동하지 마. 릴렉스만 시켜놔.”

“......?”

“내일 오후에 상암에서 드라마 촬영 있어. 운동하고 있다가 시간 맞춰서 충원이하고 같이 현장으로 와.”

“넵!”

드디어 이온이 촬영에 참여하게 됐다.

물론 현장에 가봐야 안다.

스턴트에는 끼지 못하고 단순히 참관만 하고 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교육생 딱지를 떼고 정식 스턴트맨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스턴트를 시작한지 8개월째 되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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