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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우-29화 (29/127)

〈 29화 〉 인성 문제 있어?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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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의 음성에는 짜증이나 신경질이 한 톨도 담기지 않았다.

차라리 애원하는 투에 가까웠다.

그래야 했다.

하극상.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교육생이 강사나 선배 스턴트맨에게 대들거나 예의 없는 행동을 하게 될 경우 즉각 퇴소조치다.

이번 기수에서 실제 그런 사례가 있었다.

운동 짬밥을 내세워 현역 스턴트맨에게 함부로 했다가 퇴출당했던 것.

액션캠프에서 강사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근성과 예의다.

觀水通禪意 聞香去染心(관수통선의 문향거염심).

한자가 멋들어지게 써져 있는 족자가 체육관 정면에 떡하니 걸려 있다.

맑은 물을 보고 선의를 깨닫고, 향 내음을 맡으면서 세속 마음을 버린다란 의미다.

스턴트맨으로써의 몸가짐을 일깨워주는 문구다.

“지금 나한테 시비털지 말라고 대드는 거야! 엉? 그런 거야!”

이온이 볼 때 자신과 액션배우 지원자에게 가해지는 언어적 폭력과 횡포는 스턴트맨 직업세계의 전우애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선의가 아니다.

그냥 갑질이다.

꼰대질일뿐이다.

이온이 처음 비보잉을 배울 때나 군대에서조차 이것보다 더한 모멸감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문제는 저 두 사람이 꼰대질을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운동하는 이들 특유의 문화로서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칭찬 바라지 않습니다. 잘못 된 것 지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굳이 장점까지 폄하하고 인신 모욕성 발언을 남발해야 교육이 잘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 군대에서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요새 군기가 개판이지.”

“......”

이온과 나이차이가 나봐야 네 살밖에 안 나는 심동혁이다.

그 힘들었다는 90년대 이전에 군생활 한 것도 아니고 이온보다 겨우 몇 년 앞 서 군생활한 주제에 저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니.

아니 과연 현역이나 다녀와 놓고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선배가 까라면 토 달지 말고 무조건 해. 그게 꼬우면 관두고.”

왜 해야 하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지도 말하지도 않고.

내가 하라면 넌 그냥 닥치고 해라.

그것이 이 직업세계의 위계질서이고 문화라는 걸까.

“나 너 싫어.”

“압니다.”

“알아?”

“노골적으로 태를 내시는데 모를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근데도 계속 체육관에 나온다고?”

“안 나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겨우 너 때문에 이 귀중한 경험을 포기하란 말이냐?’

삐죽 튀어나오려는 말을 이온은 꾹꾹 눌렀다.

“한 달 남았습니다. 6개월.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자신과 한 약속입니다.”

“캠프 수료한다고 해서 액션배우 지원자들 액션아카데미에서 안 뽑아줘. 가서 비보이나 해, 깝죽대지 말고.”

이러니까 자꾸 오기가 더 생긴다.

무슨 수를 쓰든 당당하게 수료를 하고 싶어진다.

만약 이온이 중도 탈락할까 봐서 일부러 도발하는 것이라면 저들은 분명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인성을 첫 번째 덕목으로 본다. 넌 이미 선배 기수들한테 싸가지로 찍혔어.”

“프로 아니었습니까? 스턴트와 직업적인 윤리만 가르치면 되지 왜 되도 않게 인성을 지적합니까? 그런 걸 요즘 꼰대질이라고 합니다.”

“어쭈? 이 새끼 봐라?”

“군대도 아니지 않습니까? 스턴트맨들이 긍지도 높고 서로 간에 전우애 같은 끈끈한 동지애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실망입니다. 요즘 동네 태권도장이나 권투도장도 수련생들에게 이렇게 안 합니다. 설마 무료로 가르친다고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온은 최대한 공손하게 또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이 들을 수 없도록.

조용하게 낮게 말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대선배격인 스턴트맨들이 많이 모였다.

액션아카데미 막내 축에도 끼지 못한 새파란 교육생 녀석이 선배 기수에게 대드는 인상을 주어서 좋을 것이 없다.

심동혁 또한 예비 기수생과 옥신각신하는 꼴을 대선배들에게 보여서 좋을 것 없다.

충고를 빙자한 괴롭힘을 적당히 하고 물러나거나, 약간의 망신을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한 달 버틸 수 있나 내가 지켜본다.”

그러든가 말든가.

한국대에 입학했을 때, 선배랍시고 같잖게 갑질하고 꼰대질 하는 일명 젊은 꼰대들이 많이 봤다.

선배들이 인사 대충한다고 이온과 동기들을 두세 시간씩 잡아두고 그랬다.

어디서 꼰대 문화 배워 와서 여기저기 물 흐리는 젊은 꼰대들.

40대 이상 중장년층을 꼰대라고 조롱하고 욕하면서, 정작 본인들도 그 꼰대들이 하는 나쁜 것을 배워서 똑같이 한다.

소위 꼰대력은 나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식의 문제다.

또한 인성의 문제다.

그런 것으로 비춰볼 때, 기본적으로 나이, 선후배, 기수 이런 문화 없어지지 않는 한,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집단 내 갑질 혹은 꼰대문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IT업계에서도 직장 내 갑질과 꼰대질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것으로 말 다한 것이다.

권용찬 감독이 이온과 심동혁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거기! 니들 둘! 이리 와봐!”

두 사람이 얼른 권용찬 감독 앞으로 달려갔다.

“동혁이 너 원래 교육팀이었냐?”

“아닙니다!”

“근데 왜 할 일 안하고 신입 기수 근처에서 얼쩡거려?”

“임 감독님 대신 서포트하고 있습니다.”

“대한이 어디 갔는데?”

“촬영 가셨습니다.”

“기존 교육팀에 인원이 모자라? 신입 기수 애들 몇 명 남지도 않았다면서?”

“액션배우 지원자들 파이트액션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임 감독님이 제게 특별히 부탁하고 가셨습니다. 빡세게 굴리라고.”

“요새도 애들 쥐 잡듯이 잡냐?”

“아닙니다.”

“너! 비보이?”

타깃이 이온으로 옮겨졌다.

“예. 감독님!”

“불만 있냐?”

“없습니다.”

“아닌데? 졸라 많아 보이는데? 뭐야? 한 번 혀 봐.”

권용찬의 말끝에 충청도 사투리가 섞여 나왔다.

심동혁이 바짝 긴장했다.

그의 말투에 충청도 사투리가 섞여 나올 때는 아주 기분이 좋거나 매우 기분이 안 좋거나 둘 중에 하나다.

“......”

이온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혀 봐~. 인마. 뭐가 불만이 있으니까 선배한테 발딱 고개를 쳐들었을 거 아녀?“

“......”

“배짱도 있고, 남 눈치 안보고 할 말 안 할 말 다 하는 놈인지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네.”

수료를 한 달 앞 둔 시점이다.

이 정도 사안으로 퇴소를 시킬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온은 조심스러웠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달라서 솔직한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

짧은 시간에 무수히 많은 갈등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할 말은 하자고 마음먹었다.

“극한 상황에 내몰아 근성이나 인내심 교육생의 태도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 어리지만 과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힘들면 관두면 돼. 아무도 안 말려. 누가 참고 하래?”

“육체적인 고통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권용찬이 말을 자르지 않았다.

계속 말을 해도 좋다는 허락이다.

“액션아카데미가 공개모집으로 신입기수를 뽑는 것은 말 잘 듣고 부리기 쉬운 꼬붕을 뽑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미래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 기여할 예비 스턴트맨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알고 있고, 첫날 강사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헌데 지난 다섯 달 동안 스턴트분야와 액션배우 분야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이 있었으며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한 적도 많았습니다. 물론 더럽고 아니꼬우면 안 나오면 그만입니다. 실제 어떤 강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셨구요.”

권용찬이 교육팀 강사진을 눈으로 슥 훑었다.

“주제넘은 말씀이지만, 액션캠프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수업 방식은 바꿀 수도 또 바뀌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처음 탄생할 시절의 교육생을 대하는 태도가 20년이 넘도록 답습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이 중요한 시대에 한 물 간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행태의 교육생 길들이기는 시대에 뒤 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져 결국 스턴트맨 스스로의 긍지마저 추락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팀 소속으로 신입 기수를 훈련시키던 스턴트맨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이온을 둘러싼 일대가 고요해졌다.

자연히 교육생 훈련도 멈췄다.

10명도 채 남지 않은 기수생들이 불안한 눈으로 이온을 쳐다봤다.

단비는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온이 담임이든 교감이든 높은 양반들에게 속된 말로 개길 수 있었다.

전교 1등, 비보이인 걸 제외하고는 매우 모범적인 학생, 한국대 입학은 따 놓은 당상 등등,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곳은 사회다.

아무리 부조리한 것이 있더라도 때론 모른 척 하는 것이 처세의 기본이다.

단비 본인도 그게 잘 안 돼서 남몰래 많이 울고 있지만.

피식.

권용찬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웃긴 놈이다.

액션아카데미 정식 기수에 뽑히지 않으려면 어쩌려고 시건방을 떠는 것인지.

한국대학생이니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그만이겠지만.

“내가 알려 준 책 다 봤냐?”

“두 번 정도 정독했고, 세 번째 정독하고 있습니다.”

“채홉스나 버스터 카론 영화는?”

“스트리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보고, 스팀플렉스에서도 보고. 넷튜브도 열심히 찾아서 보고 있습니다.”

“어때?”

“스턴트가 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강사님들이 왜 한국의 스턴트맨이 스턴트나 파이터로 구분하지 않고 액터임을 강조하는지....... 아니,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자식이, 누가 한국대 학생 아니랄까봐 진지하기는...... 우리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연기하는 사람이야. 그것만 알면 돼.”

“네.”

“가서 훈련 해.”

이온이 권용찬과 무술감독들에게 넙죽 인사하고 교육생 무리로 달려갔다.

“동혁이는 시도 때도 없이 쫑크 같은 거 줘서 막내들 기 너무 죽이지 말고. 운동만 시켜 운동만. 같잖게 훈장질 하지 말고.”

“예!”

심동혁도 넙죽 인사하고 교육생에게 향했다.

권용찬 감독은 액션캠프 교육에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나서게 되면 교육생들 전부가 한 달도 못 버틸 것이 뻔했기에.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속만 끓였다.

자신이 가르치던 시절에 비해 현재 신입기수 교육은 애들 장난 수준이다.

그런데도 힘들어 죽겠다고 하니, 요즘 막내들 보면 한숨만 나온다.

물론 한국대에 다니는 비보이 녀석이 말한 것처럼 시대가 변하는 것에 맞춰 교육 프로그램도 강사진의 교습법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원칙과 목적은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한국 스턴트를 선도하는 액션아카데미의 정체성이고 철학이니까.

‘조금 일찍 대한이가 독립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어. 자식들이, 70명밖에 안 되는 작은 조직에서 무슨 파벌놀이를 하고 앉아있어.’

한국액션아카데미 운영은 7인의 대위원 합의에 의해 운영된다.

대위원은 소속 스턴트맨들의 투표로 선정된다.

임대한은 몇 년째 계속해서 대위원에 뽑히지 못했다.

아직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있지만, 독립해서 자신만의 스턴트 사단을 가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재 액션아카데미에는 13명의 무술감독(코디네이터급)이 소속되어 활동 중인데, 50여 명의 스턴트맨 중에 실력이 월등한 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특정 감독과 주로 작업을 한다.

그렇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누구누구 라인이 만들어진다.

사실 파벌이라 할 순 없다.

어차피 대작영화나 드라마 의뢰가 들어오면 50여 명이 전부 동원되는 일도 빈번하니까.

‘관효도 무술감독할 때가 됐지.’

권용찬 감독이 187Cm 훤칠한 키와 제법 반반한 얼굴의 송관효를 쳐다봤다.

그리고 25기 스턴트 지원 조현동과 액션배우 지원 나이온을 차례로 살폈다.

둘 다 송관효 보단 실제로 키가 작다.

화면 상으로 큰 차이가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30대 이상 남자 톱배우들 가운데 신장이 180Cm이 넘는 배우가 많다.

최근 인기를 얻기 시작한 청춘스타들 역시 패션모델 출신이 아님에도 키들이 다들 큰 편이다.

몇 년까지만 해도 배우들의 스턴트더블은 얼굴이나 체형보다는 신장과 스턴트 실력만 고려해서 선정했다.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외모 면에서도 최대한 배우와 싱크로율을 맞춰야 하는 시대다.

특히 스팀플렉스 같은 OTT 독점공개 K-드라마와 영화 투자가 활발한 요즘 추세에는 더더욱 그런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관효가 공동감독으로 들어가도 기존에 하던 더블에 문제가 없긴 하겠지만.’

권용찬의 시선이 한동안 이온에게 머물렀다.

‘카메라 마사지 받고 괜찮은 매니지먼트에서 관리 받으면 비보이 녀석도 외모로는 그럭저럭 배우 할 만하겠는데......?’

물론 옛날에나 얼굴로 배우 해먹었다.

그런 시절 다 갔다.

연기 못하면 아무리 얼굴 잘 나도 안 써준다.

그럭저럭 생긴데다 기본기까지 탄탄한 젊은 배우 지망생 널리고 널렸다.

거기에 아이돌 하다 넘어오는 이들도 많고.

그래서 매니지먼트 관리가 중요하다.

연기가 서툰 소속 배우에게 좋은 연기코치를 붙여 줄 수가 있으니까.

또 이미지단역부터 조연까지 꾸준히 패키지 캐스팅으로 꽂아줘서 자연스럽게 연기와 현장경험을 쌓게 해줄 수가 있으니까.

권용찬은 이온을 주목하고 있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스턴트더블과 하이틴 장르에서 액션배우를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 때문이다.

곱상하게 생긴 고등학생 배우나 아이돌과 외모적으로 싱크로율을 맞출 수 있는 스턴트맨 후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배우와 스턴트더블이 체형뿐만 아니라 생김새까지 비슷하면 무술감독은 좀 더 과감한 액션디자인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온처럼 동안이거나 외모가 꽤나 준수할 경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배우로 전향하거나 스턴트를 그만 두지 않도록.

또 다른 의미에서 스턴트맨으로써 귀한 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인성에 문제만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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