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27화 (27/127)

〈 27화 〉 인성 문제 있어?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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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속해 있던 비보이 크루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고 해서 토요일을 맞이해 서울로 나왔다.

동교동의 한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댄스 연습실 간판이 보였다.

이온이 한 때 몸 담았던 크루는 Bboy BEYOND(BbB).

한계를 넘어서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한계를 맞이하게 됐다.

그리고 새로운 멤버들을 영입해 결성한 크루가 이곳 간판에 적혀 있는 Bboy X-Unit이었다.

닉네임 샤인, 실명은 오광택.

이온에게 비보잉을 가르쳐준 스승 같은 인물이다.

오로지 춤만 알던 삶.

한국의 비보이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각종 공연이나 방과후 강사로 벌어들인 돈으로 연습실 겸 스튜디오를 차렸었다.

독립된 공간에서 팀원들과 연습하고, 후배들을 키우고, 땀 흘려 만든 안무를 무대 위에 올렸다.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러나 벅찬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가 많이 먹긴 많이 먹었어. 형이 행사비 외에 팀원들 차비도 따로 챙겨주고.”

“연습도 밥힘으로 하는 건데, 쫄쫄 굶길 수가 있었겠냐?”

“그게 문제였지.”

비보이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후배들을 다 받아주다 보니, 수입보다 지출이 커질 수밖에.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 광택은 친동생처럼 지내는 크루 후배에게 연습실과 스튜디오를 맡기고 수도권이고 지방이고 가리지 않고 활동을 했다.

그러다 친동생처럼 지내는 후배가 다른 유명 크루에 스카우트되어 가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연습실로 돌아왔는데, 그때가 한국에서 비보이 인기가 조금씩 빠지던 시기였다.

그래도 열심히 크루들과 공연을 다녔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연습실 운영비하고 동생들 생활비 챙겨주는 것에 만족하면서.

그러다 누군가 공연비 들어오는 통장이랑 도장 같은 것을 들고 가 버렸다.

“형들하고는 연락 돼?”

“다들 잘 지내고 있다.”

“난 배신자니까 따로 형들한테 연락 안 해도 섭섭해 하지 않겠지?”

“무슨 소리야? 우리 크루에서 한국대 배출했다고 섭섭은커녕 다들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데?”

오광택 세대만 해도 비보이라고 하면 비행청소년으로 오해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암튼 전 BbB 크루 멤버들은 그래피티 쪽으로 전향했거나, 웹소설 작가가 된 선배도 있고, 일반 직장에 다니는 선배도 있다.

이온이 쫒아 다니며 기술 하나라도 배우려고 했던 형들 중 유일하게 이 바닥에 남아 있는 이는 오광택 하나 뿐.

“복학 준비해?”

“액션아카데미라고 알아?”

“스턴트 하는 데?”

“기수에 뽑혀서 훈련 받고 있어.”

“트릭킹은?”

“트릭커로 어디 명함 내민 적도 없는데 뭘.”

“스턴트로 또 갈아탔냐?”

“몰라 아직. 수료하고 나서 정식 스턴트맨 시험을 또 봐야 되는데......”

“군대 가지 말고 비보이 꾸준히 하라니까.”

광택은 이온의 파워무브 실력을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때문에 공군 입대 지원 전에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라고 조언했었다.

올림픽은 몰라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면 군복무 면제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물론 국가대표에 뽑힌다는 보장은 없다.

과장 좀 보태서 한국의 양궁 혹은 태권도 국가대표처럼 비보이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세계 대회 나가서 메달 따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 만큼 한국의 비보이들의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시안 게임은 이변이 없는 한 금메달, 올림픽에서도 최소 동메달은 확보해 놓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국내 비보이들끼리 자화자찬 하는 것 아니다.

전 세계의 비보이들은 메달 색깔만 모를 뿐, 비보이 부분에서 한국 대표가 시상대에 서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다.

참고로 비보이 랭킹즈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에 이어 국가랭킹 2위, 팀 랭킹에서는 한국팀 ‘진진 크루’가 2위며, 개인 랭킹에서는 같은 크루 소속의 ‘날개’ ‘공땡’이 각각 전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랭킹 10위 안에 한국팀이나 한국인이 3~4명이 포진 되어 있을 정도다.

“비보이 국가대표 선발전은 하고 있어?”

“여름에 시작하는 것 같더라.”

비보이 부문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비보이 안팎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비보이협회와 댄스스포츠협회 간 불협화음뿐만 아니라, 정치권마저도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으려고 한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보자고 한 거야?”

이온이 화제를 돌렸다.

“놀고 있으면 방과후 수업, 레슨 소개시켜주려고 했지.”

“요즘도 방과후 수업에 비보이 하는 학교가 있어?”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되고 미풍이지만 약간의 바람이 다시 일 것 같긴 해. 그래서 지금 시점이 중요하지.”

한국 비보이의 미래는 그렇게 전망이 밝지 않다.

십여 년 전 최전성기를 찍고 계속해서 얼반, KPOP 댄스 등에 밀려 쇠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비보이 초보자가 대략 1만 명, 당장 쇼잉이 가능한 인원은 300명이 채 되지 않고, 국제대회에서 붙어볼 만한 인원은 20명에 불과하다.

특히나 문제는 초등학생 연령대에서 비보이에 도전하는 인원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릭커는 태권도나 합기도, 특공무술, 기계체조 하는 저연령대 학생들이 있어서 적은 숫자지만 꾸준히 유입이 되는데, 비보이는 문제가 심각하네.”

“파워무브로 국제무대에서 뜨는 중국 놈이 있거든. 그 놈이 한국 비보이들이 전 세계 도장깨기 하고 다닐 때 영상 보고 꽂혀서 시작했다더라. 지금 중국에서 비보이 배우는 인구가 500만이야.”

“역시 대가리수 하나는 지구 최강.”

비록 한국 비보이 판이 점점 고인물화 되어갈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아시아에서만큼은 당분간 최고 자리를 내줄 리가 없다.

“훈련은 언제 끝나? 그거 끝나면 바로 스턴트맨 하러 다니는 거야?”

“교육 끝나고 정식으로 테스트를 또 거쳐야 액션아카데미 소속이 된대. 아직 두 달이나 남아 있어서 그때 가서 고민하려고.”

“온아.”

광택이 온기가 느껴지는 음성으로 불렀다.

“응, 형.”

“형이 어릴 때부터 널 봐 왔잖아?”

“그랬지.”

“익사이팅하고 도전적인 운동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 대충 알거든.”

“......”

“형은 네가 비보이나 트릭커는 취미로 하고 학교 졸업해서 그걸 통해 더 좋은 직업을 갖길 바래.”

“형은 형 좋아하는 거 하면서 왜 나한테는 하지 말래.”

“난 너처럼 공부를 잘하는 것도 외국어를 잘하는 것도 키가 큰 것도 얼굴이 졸라 동안도 아니니까. 말하고 보니 이 놈 이거 비보이 할 놈이 아니었네?”

“그걸 이제 알았어?”

“암튼! 군대 갔다 오면 20대 순삭이다.”

“형......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서른 넘어서 내가 진짜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비보이나 스턴트였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때 얼마나 안타까울까?”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시간을 허비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길 수도 있어.”

“몰라! 복잡한 생각 안 하려고. 오늘 바로 현재에 충실할래.”

그래야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후회가 없을 것 같다.

“형, 혹시 공연 갈 때 땜방 필요하면 나 불러. 밥 먹여주고 차비만 주면 공연 뛸 게.”

“스턴트 배운다며?”

“토요일하고 일요일은 안 나가. 평일에는 안 돼. 중학생 과외를 하고 있어서.”

“자꾸 재능기부 해달라는 공연이 많다.”

“진짜 나쁜 사람들. 비보이들이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든데, 출연료 아끼려고 재능기부를 부탁하냐.”

“말도 마라. 거절도 잘 해야지 잘 못하면 두고두고 욕먹어. 어떤 데는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다른 행사까지 막아 버리더라.”

과거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이벤트 회사의 횡포, 관공서의 갑질, 재능기부를 빙자한 무료 출연섭외가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돈을 떼먹는 것도 부지기수고.

그나마 유명 비보이 크루들은 직접 기획해 공연이나 행사를 열기도 하고, 레슨을 하고, 넷튜브 활동을 하니 그럭저럭 경제활동을 할 수 있지만 무명의 작은 크루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힘든 것이 현실이다.

“방과후 수업이나 정기적인 레슨은 힘들 것 같고, 가끔 공연 때 불러줘. 갑자기 부상자 생겨서 펑크 날 때만.”

“그러자. 좀 이르긴 한데 밥 먹을까?”

“저녁 약속 있어.”

“자식이 술을 안마시니까. 재미가 없어.”

“술 안 마셔도 수다 잘 떨잖아.”

비보잉을 배우는 수강생이 연습실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온은 레슨에 방해가 될까봐 광택에게 인사를 하고 연습실을 나왔다.

지글지글.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그리고 집게가 삼겹살을 뒤집기도 전에 젓가락이 먼저 고기들을 뒤집었다.

“가만 좀 있어!”

고기를 굽고 있던 영재가 수시로 젓가락을 들이미는 단비에게 성질을 부렸다.

“너무 오래 구우면 기름기가 빠져서 딱딱해진단 말이야, 바보야. 고기도 구울 줄 모르면서.”

“333 법칙 몰라?”

“그게 뭔데?”

“33센치짜리 삼겹살을 센 불에 삼분 동안 굽는다.”

“니가 만든 거야?”

“대대로 전승되는 비법이니라.”

“전승이고 나발이고 빨랑 좀 뒤집어. 아니야. 집게 이리 줘. 내가 구울 게.”

단비와 영재가 서로 자기가 고기를 굽겠다며 옥신각신했다.

이온, 수정, 다경은 그러거나 말거나 눈길도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이 고기에 진심인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이 단비 저 것이 게걸스럽게 먹는 게 어디가 좋다고. 언니언니 하면서 단비를 쫓아다녔을까?”

“실체를 알았다면 다들 단비 손절했겠지.”

“내 말이.”

“뭘 모르는 애들이 걸크러시라고 난리친 거지. 사실 저 년이 컨셉을 그렇게 잡은 거 잖아.”

“어릴 때부터 사기를 잘 쳤어.”

“그래서 배우의 길로 나가고 있지.”

“난 단비가 아이돌 한다고 깝치지 않은 건 잘했다고 봐.”

“대신 뮤지컬 배우님을 꿈꾸시고 계시지. 주제 파악도 못하고.”

“아이돌을 꿈꾸는 지망생이 몇 명인 줄 알아?”

“많겠지. 한 십 만?”

“100만이래. 해외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만.”

“미쳤다.”

“그 중에 324명 정도가 데뷔를 한 대. 여자 아이돌만 일 년에 25팀이 채 안 된다나. 그 중에 살아남는 팀은 단 한 팀, 많아야 두 팀이고.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뭐 그런 미친 확률이라고 할까.”

“자세히도 안다.”

“단비 정신 차리게 하려고 머릿속에 저장해두었던 거야. 지금은 스턴트우먼을 하겠다고 까불고 있지만.”

“이것들아, 밥상머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안주 씹는다, 왜?”

“쌉소리 처하다 디지게 맞는 수가 있다.”

“몇 달 운동했다고 까불기는...... 법봉으로 함 맞아 볼텨?”

“이제 법전 한 줄 외운 주제에.”

오늘의 메인 안주는 최단비인 모양이다.

다경과 수정이 집중적으로 단비에 대해 앞담화를 퍼부었다.

이온과 영재는 남몰래 시선을 교환하면 묵묵히 고기를 굽고, 빈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어릴 때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단비는 진짜 잘 먹어.”

“그러니 살이 빠질 틈이 없지. 돼지~”

누가 봐도 삼겹살이 완전히 익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단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상추에 쌈을 싸서 입안에 넣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복스럽게 먹는다는 것이 아마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먹방을 왜 사람들이 보는지 의문이 들다가도 단비를 보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별 것도 아닌 음식인데 단비가 먹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맛있어 보인다.

“요새 엄청나다며?”

수정이 사이다를 홀짝이고 있는 이온에게 물었다.

“뭐가?”

“영화 엄청 보고, 운동도 피똥 쌀 정도로 열심이라던데?”

이온이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우리 몰래 티라노사우루스 통뼈라도 이식했어? 왜 운동에 미친놈처럼 환장하는 거야? 차라리 그 시간에 스펙을 쌓지. 한국대라고 자만하다가 핵망 하는 수가 있어.”

“너님들이나 걱정하셔.”

이온의 지인들은 스턴트맨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한국대에 다니면서 고되기만 하고 돈도 못 버는 스턴트맨에 왜 진심인지 걱정 내지는 우려를 한다.

이온도 캠프에 참가하기 전에는 그런 선입견이 있었다.

막상 현직에서 활동하는 캠프 강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턴트맨들이 예전보다는 나은 처우와 조건에서 일하고 있었다.

무술감독들이 TV예능에도 출연하고, 스턴트맨 직업이 다큐멘터리로 간간이 노출된다지만, 여전히 스턴트맨들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몸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편견이 있다.

공식 통계에도 나타났듯이 본인이 하기에 따라서 연봉 5천만 원 정도 벌 수 있는 직업이 스턴트맨이다.

물론 각종 부상, 불의의 사고 등으로 긴 공백이 발생하면 벌어놓은 돈을 까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결정적으로 직업 수명이 그리 긴 편이 아니기도 했고.

“뭐든 젊을 때 배워두면 나중에 다 써먹을 데가 있겠지.”

“말은 그럴 듯 하다만. 현명한 것인지 삽질인지......”

“시간이 흘러야 알겠지 뭐.”

청춘은 불안의 다른 말일 지도 모른다.

곧 마주하게 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은 주어진 현재를 자꾸만 두려움의 상태로 휘몰아친다.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거센 파도.

그것은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불안으로 잠식된다.

하지만 그 숱한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삶은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걸어간 자취들로 인해서 삶은 저마다 형태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 형태가 별모양이면 어떻고, 동그라미면 어떻고, 네모면 어떻고, 세모면 또 어때.

각자가 걸어간 길이 다르고 남긴 자취도 다르기 때문에.

똑 같은 별, 동그라미, 네모, 세모 모양이 있을 수 없는데.

살아가면서 모양이 바뀌거나 바꿀 수도 있고.

그러니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현실에서 아등바등 댈 필요 없지 않을까.

“고기 더 시켜도 돼?”

“마음대로 먹어. 오늘 수정이가 쏜대.”

“저번 주에도 쐈그든!”

“웅. 잘했어. 다음 주에도 또 쏘자~”

“너 인성 문제 있어?”

“시끄러워 이것들아! 고기 먹는데 도대체가 집중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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