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26화 (26/127)

〈 26화 〉 스턴트 교육캠프.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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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기 스턴트 교육캠프에 참가하는 교육생들 일부는 아침에 눈을 뜨면 극한 고민에 휩싸인다.

“가지 말까?”

“그래도 가야겠지?”

4.3Km 구보를 떠올리면 도저히 파주로 향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 달을 버텼기에.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지배를 받게 된다.

한숨을 푹푹 쉬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액션아카데미로 향하게 된다.

반면에 몇몇 교육생은 상쾌한 발걸음으로 액션캠프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은 진심으로 스턴트에 목숨을 건 이들이다.

암튼 두 달이 지났지만, 모두에게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어떤 면에서는 더 힘든 것도 있다.

사극액션 훈련이 그렇다.

현대액션이 주먹을 쓰고, 발을 쓰고, 몸을 쓰는 것을 총망라한다면 사극액션은 주로 검을 쓴다.

단일 종목이다 보니 베기 자세 하나당 1천 번 이상 휘둘러야 한다.

그런데 막상 훈련에 임하다보면 시간이 또 그렇게 잘 간다.

현대액션 수업 시간에 서로 합을 짜서 공격하고 피하는 연속 동작을 훈련하다보면 몸이 힘든 것보다 재미가 훨씬 크다.

빠른 몸놀림으로 10초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짝꿍과 주먹과 발차기를 교환하고 나면 마치 자신이 중국액션배우 재키 팡이라도 된 것 같은 희열을 느끼게 된다.

사극액션에서 검을 휘두르다보면 영화 <청강만리>의 이모백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이는 무술 기본기가 탄탄한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온, 형민, 단비 같은 무술 초보들은 강사들로부터 계속해서 지적을 받았다.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스턴트용 마샬 아츠는 실전 격투기나 무술과 많이 달랐다.

단순한 스트레이트나 훅도 주먹이 귀 옆에서 나가야 하고, 진짜 치는 느낌으로 길게 뻗어줘야 한다.

그래야 화면에서 잘 보인다.

상대의 훅이나 돌려차기를 피할 때도 허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체를 구부려줘야 한다.

스트레이트나 찌르기는 어깨를 많이 쓴다.

“주먹은 귀 옆에서 나가서 턱선으로 길게 뻗어 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발차기 역시 마찬가집니다. 본인이 수련한 무술 발차기는 잊으세요. 액션연기의 시작은 눈에 명확하게 들어올 수 있게 동작이 커야 한다는 겁니다.”

유단자가 괜히 유단자가 아니다.

그들은 강사들이 말하는 것을 금방 몸에 적용시켰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발차기를 가지고 놀았던 이들이어서 그런지 습득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이온이나 형민 같이 아크로바틱 계열은 그들에 비해 습득이 더뎠다.

쯧쯧.

탄탄한 체격, 180 중반의 신장의 남자가 일반인 교육생들을 보며 혀를 찼다.

25기 동기생이 두 개의 파벌로 나눠졌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결코 아니다.

유단자 무리의 특정인과 강사진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 무리의 리더격의 인물은 용인대 격투기과 출신의 조현동.

일반인 교육생 즉 비유단자 무리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던 바로 그 남자다.

키와 체격이 이온과 비슷했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이 다른 점은 얼굴.

조현동은 스포츠머리로 이발하면 조폭이 따로 없을 얼굴이다.

반면에 이온은 동안에 호감형 얼굴이다.

암튼 조현동이 은연중 유단자 무리를 대표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좋게 말하면 솔선수범 혹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나쁘게 말하면, 아니 정확하게는 나서길 좋아하는 성격이다.

“재수 없어.”

“진짜 꼴 보기 싫다니깐.”

“학창시절에도 그렇지만 사회 나와도 똑같아. 어딜 가나 까불이는 꼭 하나씩 끼어 있잖아. 무시해.”

누구도 조현동을 대표로 뽑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대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 사사건건 자신이 뭔가를 주도하려고 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데도 말이다.

반대로 이온은 나서거나 튀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임대한 감독과 심동혁의 농간(?)으로 툭하면 잘못된 예시의 사례로 교육생 앞에 서야 했다.

자주 그런 일이 발생하니 이온은 체념했다.

도리어 즐기는 경지에 이를 지경이다.

나 박사님.

비유단자 무리의 동기들이 이온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이온이 아주 사소한 동작도 따박따박 논리적으로 접근을 하면서 붙여졌다.

“일단 몸으로 부딪치고 나중에 머리로 이해하면 될 것을 뭐 그리 미련하게 학구적으로 접근해?”

형민이 우스갯소리로 그런 농을 던지기도 했다.

첫 한 달 간의 교육을 마친 이온은 권용찬 무술감독을 찾아갔다.

“감독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응 그래. 편하게 물어봐. 뭐가 알고 싶어?”

“혹시 스턴트에 대한 책이나 뭐 그런 참고할 만 한 건 없습니까? 아무리 쿡클링을 해봐도 전문적으로 다룬 책이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논문이라도 쓰게?“

비웃는 투는 아니다.

그저 이온의 태도가 신기하고 재밌는 것 뿐.

“이렇게 하면 화면에서 이렇게 보인다. 태권도의 돌려차기와 스턴트 마샬 아츠의 돌려차기는 달라서 발차기가 옆에서 먼저 보여져야 한다. 그 외 무수한 가르침들.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너 혹시 간 보냐?”

권 감독이 다짜고짜 훅을 날렸다.

이온은 피하거나 대거리하는 대신 대답을 삼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기 때문이다.

“이거 해서 돈 벌어먹고 살 수 있나 간 보는 거냐고.”

“제대로 배우고 싶을 뿐입니다.”

“겨우 책보고 공부해서?”

“스턴트맨의 애환이니 직업세계에 관한 정보는 스팀플렉스나 한국의 TV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블로그나 여러 정보사이트에서도 실상이 비교적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저는 스턴트맨이라는 직업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스턴트맨들이 펼치는 마샬 아츠가 왜 그렇게 변형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적용되는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이 있다면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

“아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DVD 보면 부록에 자세히 나와 있어. 제임스 카메론 감독 영화의 제작과정에 관한 DVD도 따로 있고.”

이미 그런 것들을 찾아서 보고 있다.

솔직히 도움 하나도 안 된다.

비유하자면 이온은 이제 막 일어서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런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뭘 배우고 뭘 얻을 수 있을까.

이온이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권용찬도 장난기가 묻어 있던 얼굴을 바꿔 정색했다.

“승부욕이냐? 유단자 애들한테 지기 싫어?”

이온이 제 아무리 비보잉 기술이 좋고 트릭커로써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술이나 격투기를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연마한 다른 동료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다.

“몇몇 강사님이 그러셨습니다. 할 것이라면 제대로 해라. 인생을 걸지 않으면 스턴트맨 못한다.”

“맞아. 난 솔직히 너희들한테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 진짜 지랄 같거든 우리 일이라는 게.”

“저는 스턴트맨에 대한 로망도 환상도 없습니다.”

“근데 왜 지금까지 버텼어?”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 관심이 목표나 꿈으로 향할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꿈도 걸맞는 책임과 각오를 요구한다는 겁니다.”

“나이도 어린 노무자식이 무지하게 신중하고 현실적이네.”

“한 번 발을 들여놓은 외나무다리는 직진만 있을 뿐입니다. 꿈으로 가는 첫걸음부터 좌절해서는 그것을 이루기가 몇 배나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기 전에 열심히 짱구를 굴려보겠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고?”

“중간 쯤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저는 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름 아닌 제 자신에게 말입니다.”

“한국대 포기할 수 있냐?”

권용찬이 노골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일단 위험천만한 다리에 올라서게 되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전진했다면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끼....... 뭘 그렇게 어렵게 이야기 해. 아직 확신이 안 섰다고 하면 될 걸.”

“정직하게 말씀드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 제 입장에서.”

이온이 무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영화의 이해라는 책이 있어. 좀 많이 두꺼운 거. 가격도 더럽게 비싸”

이온이 얼른 스마트폰을 꺼냈다.

재빨리 메모어플을 열어 권용찬이 불러주는 책의 제목을 받아 적었다.

“영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입문서 내지는 필독서래. 나도 옛날에 보라고 해서 샀는데, 보다 말았어. 암튼 그 책의 표지를 장식하는 인물이 찰리 채플린이야.”

이온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

한마디로 할리우드의 전설 같은 배우겸 감독 중에 한 명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이 한 분 더 계시지. 버스트 키톤이란 양반이야. 명감독, 명배우, 영화 스턴트의 대부라는 이 양반의 영화를 한 번 봐봐. 찰리 채플린의 영화도 꼭 보고. 그 양반들이 펼치는 슬랩스틱과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스턴트맨이 영화에서 어떻게 몸을 써야 하는지 개념을 제시해 줄 거다.”

이온은 권용찬의 말을 열심히 어플에 메모했다.

“스턴트는 몸으로만 한다는 편견을 버려. 스턴트맨은 위험한 장면에서 배우 대신 몸빵하는 사람 아니야. 넓게는 영화나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 움직임이 스턴트다. 그걸 이해하게 되면 이쪽에도 길이 보일지도 모르지. 물론 난 책임 안 져. 도망 가든 선택하든 다 네 책임인 거야.”

“......”

“어때? 도움이 될 것 같냐?”

이온도 모른다.

그가 일러준 것들을 확인해보면 알게 될지도.

액션아카데미에서의 훈련이 끝나자마자 서울 시내 대형서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영화관련 베스트셀러 ‘영화의 이해’를 구입했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대로 미친 책이네......!”

책도 두껍고 글씨는 또 깨알 같다.

사진이 많이 첨부된 것도 이채롭고.

일산으로 향하면서 슬쩍 앞부분을 읽었는데.

‘애매하네. 왠지 지뢰를 밟은 느낌이......’

뭔가 지루하다.

조금 더 읽어나가면 괜찮겠지 싶었다.

안타깝지만 계속, 쭈욱 지루한 책이다.

다만 어떤 뿌듯함 같은 것은 얻을 수 있었다.

끝까지 진지하게 읽은 감상은 뭔가 영화 똑똑이가 된 느낌이 든다는 거다.

뭔가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모르는.

당장은 그렇다는 말이다.

이온은 책에서 예로 드는 영화들을 구해서 보기 시작했다.

살면서 극장에 가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극장 안 갔다.

아니 못 갔다.

당시에는 늘 봐야 하는 게 문제집, 교과서뿐이었으니까.

군대까지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니, 뭔가 모르게 신문물을 접하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두근거림, 설렘, 긴장 같은 것들이 있었다.

고전영화, 최신영화, 지루한 영화, 통쾌한 영화, 슬픈 영화, 웃긴 영화, 저질 영화, 심오한 듯 졸음이 쏟아지는 영화 기타 등등.

두 달 동안 영화 이론에 입문하고 다양한 영화를 접했다.

뭔가 새로운 세상과 조우한 느낌이다.

이온은 스턴트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오락과 예술이 오묘하게 뒤엉켜있는 영화라는 세계와 만났다.

“내가 괜한 데로 끌어들인 거 아냐.”

그런 이온을 보며 단비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한국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최고 명문이다.

비록 이온의 전공이 인문계열이라고 하지만, 졸업 후 무엇을 하려고 하든 다른 이들보다 유리한 것이 사실.

게다가 이온은 언어능력자다.

단비는 영화에 너무 몰입하는 친구를 보며, 되도 않는 분야에 발을 들이게 한 것 같아 찜찜했다.

이온의 진가는 액션캠프 석 달이 넘어가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이온에게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토끼발과 피로회복제, 찜질 팩, 영양식단 등이 환상의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남다른 회복력을 보였기 때문에.

다만 날이 갈수록 배워야 할 것이 많아진 다는 것은 부담이라면 부담이다.

운동에는 왕도가 없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긴다.

운동신경이 약간 처져 보이는 사람이 노력 여하에 따라 오히려 오래갈 수도 있다.

단 고통을 이겨낼 정신적인 자세가 안 돼 있다면, 액션캠프 훈련과정을 버텨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독한 구석이 있는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이온은 대기만성이랄 수 있다.

이온은 격투기와 무술에 대해 하얀 도화지 상태나 마찬가지.

그것이 도리어 강점이 되었다.

무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루틴 자체가 없다보니 스턴트 무술에 대한 흡수율이 남달랐다.

게다가 한국대에 들어갈 만한 빠릿한 두뇌도 한몫했다.

두 달 정도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극복하는 기간이었다.

석 달이 넘어가면서 영상분야 스턴트에 특화된 마샬 아츠의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립되었다.

“우리 나 박사 지독한 건 알아줘야 돼.”

“공부 잘한다고 운동 잘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해 왔었는데, 닥터 나 보니까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되네. 졌다 졌어.”

각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식.

그 걸 찾아가고, 그걸 통해 발전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프로페셔널로 나아가는 바른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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