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스턴트 교육캠프.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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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복 차림의 이온이 아파트단지 앞에 나와 있다.
검정 스포츠모자와 가방을 매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운동선수로 오해할 만한 모습이다.
잠시 후 단비가 몰고 온 경차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설레고, 긴장되고, 기대되고.
비좁은 경차 내부에 단비의 오만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소용돌이 쳤다.
한국액션아카데미까지 향하는 내내 단비의 수다는 멈출 줄 몰랐다.
아카데미 건물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이온이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내일부터 나 데리러 오지 마.”
“왜? 버스 타고 오려고?”
“응.”
“괜찮아. 어차피 오는 길에 잠깐 들르면 되는데 뭐.”
“내가 안 괜찮아.”
“괜찮다니깐.”
“안 괜찮아!”
이온과 단비는 주차장을 벗어나 액션아카데미 건물 앞에 도착할 때까지 옥신각신했다.
“안녕하세요. 이오니소스님.”
낯이 익은 청년이 인사를 건넸다.
같은 조에서 오디션을 봤던 기계체조 선수 출신의 박형민이다.
“안녕하세요.”
이온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단비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인사만 하고 이름을 생략했다.
“일찍 오셨나 봐요?”
“김포에 살아요. 두 분이 같이 오시네요?”
“제가 일산에 살아요. 얻어 타고 왔습니다.”
둘이 사귀냐는 둥의 오해는 없었다.
이미 액션캠프 기수 오디션에서 단비가 여사친이란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체육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체육관 안에는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이 서로 어색하게 흩어져 내부를 구경하거나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상당 수 인원이 트레이닝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이라서 편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클립보드를 들고 있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스턴트우먼이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군대 조교도 아닌데, 말투에 기합이 들어가 있다.
“박형민.”
“최단비.”
“나이온입니다.”
스턴트우먼이 클립보드에 적혀 있는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IT강국인 나라에서 설마 출석체크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는가 싶었다.
그렇지는 않았다.
테블릿 키오스크를 이용해 출석관리를 했다.
“매일 사무실로 와서 이 테블릿에 출석을 체크하면 됩니다. 저쪽 방향 2층으로 올라가면 탈의실이 있을 겁니다. 그곳에 라커가 있어요. 개인 물품을 거기에 보관하면 됩니다.”
세 사람은 선배 스턴트우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녀가 알려준 2층으로 올라갔다.
탈의실의 사물함은 세 명이 한 칸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사물함이 작아서 세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복잡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불만을 가질 수도 없다.
훈련을 무료로 시켜주는 것이기에.
그나마 신발장은 따로 하나씩 주어지는 것은 다행이랄까.
단비는 어느새 여성 교육생들과 친해져서 6개월 동안 진행될 교육에 대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이온의 곁에는 박형민이 찰싹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체조 선수 출신답게 키는 단비와 비슷했다.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을 때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줄 것처럼 착한 인상이다.
아무 표정도 안 짓고 있지만 웃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이다.
한쪽에 보조개도 있다.
트릭커는 아니다.
다만 파쿠르와 트릭커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수다스러운 것을 빼면 모난 데가 없어 보이는 남자다.
“이오니시스님이 예비역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인 줄 알았거든요.”
“아, 네......”
“그럼 스물 넷? 다섯인가?”
“넷입니다.”
“그랬구나. 난 스물 여덟이에요. 개띠.”
“네.”
“앞으로 중도탈락 말고 끝까지 잘 해봐요.”
“아, 네......!”
이온답지 않았다.
평소 넉살도 잘 떨고, 두루두루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헌데 박형민과는 약간의 거리감을 두는 것 같다.
다른 동기 교육생들과도 의례적인 인사만 나눴다.
지난 페루 워크캠프의 경험 때문이다.
하오란 사건으로 인해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싹 튼 것은 아니다.
다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이 들기 전까지 조금은 조심하자는 것이다.
“여러분은 2주간 기초체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게 됩니다. 공지에도 나와 있지만, 여러분은 완전히 액션아카데미 기수에 합격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일주일이 지난 후에 최종적으로 합격여부가 판가름 날 것입니다.”
액션아카데미를 설립한 권용찬 감독의 실질적인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길태석 무술감독이 수업계획, 간단하게 지켜야 할 수칙, 강사진을 소개했다.
기수 선발 정원은 50명이다.
매번 그 숫자를 모두 채우지는 않는다.
이번 기수는 46명이 선발됐다.
작년보다는 늘었다고 했다.
어쨌든 오리엔테이션은 매우 짧게 끝났다.
곧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지금부터 30분 정도 몸을 풀어줄 겁니다.”
“......!”
교육생들은 송관효 선배의 시범과 구령에 맞춰 몸을 풀었다.
매우 세밀하고 꼼꼼하게 진행된 스트레칭이 끝났다.
그리고 지옥문이 열렸다.
액션아카데미가 위치한 헤이리를 한 바퀴 돌아오는 미션.
그것도 20분 만에 돌파해야 한다.
“미리 말해두는데, 액션캠프는 여름철 해병캠프 같은 곳 아닙니다. 우리는 예비 스턴트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훈련시킵니다. 배려해주고 그런 거 없습니다. 힘들면 언제든지 나오지 않으면 됩니다. 6개월 훈련 프로그램은 낙오를 시키기 위해 만든 겁니다. 지금이라 자신 없으면 개인 짐 챙겨서 떠나도록 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길태석 무술감독이 얼굴색을 싹 바꾸었다.
박력이다.
집념이다.
그의 말에는 힘이 있다.
단순히 겁을 주는 차원이 아니다.
정말 말한 대로 될 것 같다.
많은 예비역 교육생들은 마치 군대에 다시 온 기분을 느꼈다.
조교 말투는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경험한 마샬 아츠 분야의 사범들의 카리스마도 아니다.
뭔가 다른 힘.
게다가 폭군이자 독재자의 향기도 풍긴다.
‘따르지 않으면 필요 없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마자 길태석은 그렇게 못 박았다.
‘이미 경험했던 사람들의 후기 그대로네.’
이온은 처음 합격 문자를 받았을 때, 액션캠프를 만만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뉴스기사, 블로그, 넷튜브 등을 열심히 뒤져 정보를 얻은 결과, 결코 액션캠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출석한 인원 중에 절반만 살아남아도 성공한 것이라고 했지?‘
액션아카데미는 최초 설립될 때부터 액션 배우들을 길러내는 양성소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력 있는 스턴트맨을 만들어서 같은 소속으로 보유하는 것이 일차 목적이기 때문에 기수생들에게 무료로 가르쳐준다.
대신에 트레이닝 과정을 졸업하고 작품에 캐스팅 돼서 돈을 벌기 시작할 때 까지는 특별한 수입이 없다.
훈련생이지 정식 스턴트맨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액션배우의 삶은 매우 고달프면서 오랜 시간 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때문에 이 분야에 미치거나 정말 자신의 인생을 던지지 않으면 버텨내질 못한다.
그런 이유들로 액션캠프에서는 신병훈련소 못지않게 교육을 시킨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가혹하기도 하다.
군대 신병훈련소에서의 얼차려나 정신적인 갈굼이 없단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모두 체육관 앞에 삼열종대로 헤쳐모입니다!”
훈련생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그리고 길태석 무술감독이 선두에서 그리고 강사진들이 훈련생들의 좌우에서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4.3 Km에 거리의 헤이리 한 바퀴를 전력질주로 달려야한다.
페이스 조절이고 뭐고 그런 거 없다.
함께 달리는 강사들의 속도에 맞춰 죽어라 뛰는 거다.
“여러분은 지금 뛰고 있는 코스를 5개월 후에는 14분 안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길태석 무술감독의 말에 몇몇 일반인 훈련생의 다리가 풀릴 뻔했다.
그 일반인 안에는 최단비도 포함되어 있다.
수년 간 운동으로 단련된 이들은 별 감흥이 없었다.
이온 역시 고산지대인 아야쿠초에서도 매일 아침 레이몽과 운동을 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4.2Km는 14분 안에 들어올 자신이 있었다.
‘이 정도는 뭐.......’
뒤처지는 교육생들이 절반에 가까워서 한 바퀴를 34분 정도에서 끊을 수 있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록이란다.
대체로 첫 날은 30분 안팎의 기록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다음 프로그램을 맞닥뜨린 이온은 자연스럽게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헤이리를 구보로 한 바퀴 도는 게 다가 아니었던 것.
두 번째 바퀴는 오르막길에서도 전력질주를 시켰다.
그리고 특정 구간에서는 쪼그려 뛰기, 토끼 뜀, 사자걸음(네발 기어가기), 오리걸음 등을 시켰다.
또 왕복 전력 질주도 시켰다.
무려 한 시간 동안 체육관 밖에서 기초체력훈련을 받았다.
‘오늘 오리엔테이션 날인데, 힝.......‘
일반인 출신 훈련생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심 칭얼거렸다.
한 시간의 지옥 같은 기초체력훈련을 마치고 주어진 휴식시간은 단 10분.
말이 휴식시간이지 수분보충하고 화장실 다녀오고 나면 쉴 시간도 없다.
그리고 또 달렸다.
이번에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와 실내를 빙빙 돌았다.
“낙법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사람!”
십여 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무술을 배워본 적이 없는 일반인 교육생들을 따로 모았다.
이온은 그곳에 끼지 않았다.
기본동작을 가르치는 임대한 무술감독이 이온을 콕 집어 물었다.
“자네는 이쪽으로 와야 하는 거 아냐?”
“할 줄 압니다.”
비보인 동시에 트릭커인 이온이 각종 구르기와 낙법을 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한 번 보여줄 수 있나?”
앞구르기, 뒤구르기, 고양이구르기, 전방·후방·측방 낙법을 차례로 보여줬다.
“체육관 안 다녔다며? 비보잉은 선배들에게 배웠고, 트릭킹은 독학 했다고 했지 아마? 넷튜브 보면서?”
“네.”
큭큭큭.
무술과 격투기 계통 교육생들이 소리죽여 웃었다.
재밌어서 웃은 것이 아니다.
가소로워서 웃은 것이다.
“혹시 발차기도 넷튜브 보고 배웠나? 아니겠지? 설마.”
“유명 넷튜버의 킥을 따라 하면서 연습했습니다.”
하하하.
킥킥거리던 이들이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무술이나 격투기는 넷튜브를 보고 독학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 봐요.”
이온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분위기가 묘했다.
첫 날부터 재수 없게 시범케이스로 걸린 것일까.
마치 이온을 일부러 면박 주는 것 같다.
지나친 생각은 아니다.
임대한과 심동혁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려 있으니까.
꼼짝하지 않는 이온을 향해 채근하는 임대한이다.
“어떤 수준인지 알아야 그에 맞춰 교육을 시키지 이 사람아.”
이온은 돌려차기, 후리기, 가위차기, 브라질리언 킥 같은 트릭킹 기술에 주로 쓰이는 발차기를 시범 보였다.
화려하긴 하다.
다만 발차기 완성도만 놓고 보면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거기에 아크로바틱, 비보잉, 파쿠르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트릭킹이니까.
단 탄력, 유연성, 점프력, 체공시간 같은 부분에서는 유단자 교육생 어떤 이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자신했다.
“자네도 저쪽에 서.”
임대한이 가리킨 곳은 일반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란 소리다.
유단자 교육생 일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대한의 지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온의 시범이 엉터리도 아니고 완전히 형편없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트레이닝을 받을 사람은 평일, 휴일 반납할 생각해야할 겁니다. 스턴트가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상당히 어렵고 예민합니다. 적당히 6개월 뭉개면 스턴트맨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오산이란 말입니다. 즉, 잘 생각하란 소리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스턴트 맛 한 번 보러 왔을 수도 있어요. 우리 아카데미 그런 사람도 환영합니다. 스턴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생긴다는 건 좋은 거니까. 하지만 진짜 스턴트맨이 되려고 한다면 그런 정신머리로는 안 됩니다. 그러니 결정해요. 적당히 뭉갤 것인지 진짜 해볼 건지.”
이온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임대한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최단비의 옆에 섰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이온이 걱정이 된 단비가 손가락으로 이온의 허벅지를 ‘콕’ 찔렀다.
이온은 단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심동혁이 시범보이는 낙법과 각종 구르기에 시선을 고정할 뿐.
‘......!’
임대한에게 찍힌 걸까?
왜?
한국에서 비주류인 트릭커이기 때문에?
그는 정통 무술을 배웠다는 자긍심이 남다른 사람인가?
그도 아니면 자신이 한국대학생이라서?
무슨 이유인지 알 순 없다.
다만 임대한과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진 것은 확실했다.
‘제기랄 일세......’
군악대 복무시절 군악병 중에서 이유 없이 이온만 갈구는 선임이 있었다.
물론 후임들을 못살게 굴다가 제대한 비보이 선임도 두 명 정도 있다.
첫 날부터 강사와 교육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 아닌 망신을 준 무술감독도 그런 부류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성질 뭣 같은 놈이 있으면 반대로 천사 같은 사람도 함께 나타나니까.”
이온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단비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뭐라고 했어?”
“이곳에서 많은 걸 배울 것 같다고.”
현재 자기들만 있는 곳이었다면, 단비는 단박에 이온의 궁둥이를 팡팡 두드렸을 것이다.
힘내라는 말과 함께.
사람들은 이온의 동안 외모와 학벌만 보고 고생을 모르고 자라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허약할 것이란 오해들을 한다.
그가 얼마나 독종인지.
또한 토끼발이 그런 이온을 어떻게 지원해 왔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분명 무술과 스턴트 기본기에 있어서 이온은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는 그렇다.
6개월 후에 어떻게 되어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