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친구 따라 강남 간다.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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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
클로이가 짜증을 냈다.
거실 창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볕을 쬐며 나른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헌데 집사 남매가 영역 내를 휘저으며 정신을 사납게 하고 있다.
클로이가 발딱 몸을 일으키고는 거실 한편에 있는 숨숨집으로 파고들었다.
얼굴만 삐죽 내밀고 남매가 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봤다.
뿌드득.
남매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열심히 청소 중이다.
겨울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창문과 창틀, 방충망에는 검은 먼지가 쌓여 있기 마련이다.
방충망에는 미세먼지도 끼기 쉽다.
더욱 꼼꼼한 청소가 필요했다.
이슬이 물에 소금과 식초를 섞어 잘 저었다.
그런 다음 분무기에 담아 이온에게 건넸다.
“누나, 꼭 세제 값 아껴야겠어? 몇 푼이나 한다고.”
“세제 살 돈이 없어서 이렇게 하는 줄 알아?”
“응. 난 그렇다는데 백만 원 걸 수 있어.”
이슬이 이온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퍽.
이온은 피할 수도 있지만 그냥 맞아줬다.
“환경도 보호하고, 이런 천연 세제가 더 잘 닦여.”
천연 세제를 하나 더 만든 이슬이 신문지를 방충망에 덕지덕지 댄 후에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어디서 이상한 사이비 넷튜브 본 거 아냐......?”
이온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쓰읍! 잔 말 말고, 창문 깨끗이 닦아. 바깥쪽 닦을 때 조심하고.”
자기들끼리 놀아서 샘이라도 났을까.
야옹~
숨숨집을 빠져 나온 클로이가 이슬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그리고는 이슬의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다리 사이를 정신없이 왔다갔다 했다.
사실 관심을 바라는 건 아니다.
고양이의 행동은 때로 많은 걸 알려준다.
그가 살고 있는 집안의 위계질서까지도.
고양이가 자신의 몸을 막비비고 주위를 계속해서 맴돈다는 것은 그 영역권에서 가장 큰 고양이에게 보이는 존경의 표시란다.
따라서 이 집안에서 가장 큰 고양이는 이슬, 그 다음이 자신, 마지막이 이온이다.
“클로이, 소파에 가 있어. 청소 끝나고 놀아줄게.”
말한다고 들을 클로이가 아니다.
계속해서 이슬만 졸졸 따라다녔다.
이온은 제대 이후 클로이와 친해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밥 잘 챙겨주고 녀석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니 어느 날부터 자신에게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 집안에서 녀석이 두 번째 서열을 차지하고 있어서 이온을 제 부하 정도 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암튼 창문을 활짝 열어 두어도 그렇게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많이 따뜻해졌다.
오랜만에 환기도 시킬 겸 창문을 열었다.
그러다 창문에 잔뜩 낀 먼지를 발견했다.
즉흥적으로 대청소를 결심한 남매였다.
베란다 창문을 모두 닦아낸 이온이 더러워진 헝겊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거실을 청소하기 전에 이미 욕실의 물때는 베이킹소나와 치약을 섞은 천연 세대로 열심히 벽면과 바닥을 닦아 깨끗하게 없앴다.
베란다와 현관을 정리하면 얼추 대청소가 마무리된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이슬이다.
그 덕분에 가구를 들어내느라 낑낑댈 필요가 거의 없이 대청소를 진행할 수가 있다.
고양이를 키우기 때문에 털이 가구들 위나 아래로 들어갈 수 있지만, 이 집에서는 가구 자체가 별로 없어서 청소기 몇 번 돌리면 고양이 털도 문제없다.
대청소를 마치고 나니 세 시간이 훌쩍 흘렀다.
남매는 배달음식을 시켜 출출한 속을 달랬다.
클로이가 어슬렁거리며 이슬 앞으로 와서는 발라당 누워 배를 내보였다.
이온이 반사적으로 그런 클로이를 배를 만져주려고 했다.
“하지 마. 배 만지는 거 아냐.”
“......?”
“대청소 끝나고 영역이 안정되면서 지금 상태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낀다고 주인에게 표현하는 거야. 배 만지면 할퀼 걸.”
클로이의 시선이 치킨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치킨도 주지 마.”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이온이 클로이를 품에 안았다.
“아, 따가워.”
이온이 클로이의 앞발을 유심히 살폈다.
“어? 발톱 깎아야겠다. 너 딱 걸렸어!”
“내버려 둬.”
“할퀴니까 꽤 아픈데? 여기 봐. 거실 바닥 푹푹 파였네.”
“놔둬.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목욕은?”
“고양이는 물 싫어해서 자주 목욕시켜주는 거 아냐.”
“누나?”
“하지 마.”
“무슨 이야기 하는 줄 알고?”
“클로이 은근히 예민해. 괜히 스트레스 주지 마.”
“사귀는 사람 없어?”
이온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이라도 했던 걸까.
이슬이 곧바로 대꾸를 하지 못했다.
“어? 혹시......!”
“친구들도 못 만나는 거 알면서. 남자는 무슨 수로 만나냐?”
“그러고 보니 벌써 7년 차네. 간호대 졸업 동기들은 연락 돼?”
“......”
“남자 만나는 걸로 돈 쓰는 게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니지?”
“......”
“혹시......아니지?”
이슬은 집요하게 구는 동생과의 대화를 돌리려고 엉뚱한 말을 꺼냈다.
“초솔로사회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
“혼자 살게?”
“저기 방파제 나라는 곧 남자 4명 중 1명은 비혼자가 된다더라. 결혼을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대. 그러니까 너도 한국 여자애들에게 잘 해.”
“말 돌리기는......”
“문자 왔어. 쓸데없는데 관심 끄고, 확인이나 해.”
이온이 메시지를 확인했다.
한국액션아카데미 25기 합격.
[Web 발신]
한국액션아카데미 25기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교육시작일 : 3월 7일 오후 1시.
✻일주일간은 임시 합격 기간이니 탈락자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교육생 여러분께서는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이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권용찬 무술감독이 이온에게 호기심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 밑의 감독급 면접관 몇 명이 불쾌하다는 투와 싫어하는 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이온 스스로도 간절함을 크게 부각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니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뭔데? 알바 짤렸어?”
누나의 물음에 이온이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려놨다.
“별 거 아냐.”
이온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마트폰이 ‘드르륵‘ 몸부림쳤다.
발신자를 확인했다.
최단비다.
- 어떻게 됐어?
안부고 뭐고 대뜸 액션아카데미 기수 선발 합격부터 묻는 단비였다.
“넌?”
- 난 됐어!
“나도.”
- 잘 됐다. 영재는 떨어졌대.
그럴 줄 알았다.
일반인들도 기수에 뽑히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오디션에 임했다.
이온과 영재가 그들만큼 절실하진 않았다.
- 오리엔테이션이라고 청바지 입고 오지 말고, 꼭 트레이닝복 입구 와. 운동화도 두 켤레 준비하고. 밖에서 신을 것과 앞으로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 신을 거. 그리고 캠프에 참가해 본 선배 말로는 처음에는 점심 먹고 가지 말래. 훈련 프로그램이 엄청엄청 빡시대.
단비가 준비해야 할 것과 유의사항을 열심히 설명했다.
이온이 통화를 끝내자, 냉장고에서 새로운 맥주를 가져온 이슬이 입을 열었다.
“단비랑 같이 뭐하기로 했어?”
“운동 다니려고.”
“누가 뭘 한다고? 수정이도 아니고 다경이도 아니고, 그 돼지가?”
“응.”
단비가 동양여성 치고는 골격이 남다르긴 하지만, 뚱뚱하지는 않다.
돼지라는 표현은 이슬과 여자애들끼리 부르는 애칭 같은 것이다.
“단비는 운동 안 좋아하잖아. 다이어트라도 해야 된대?”
“배우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데...... 나도 잘 몰라.”
“네가 가르치려고?”
“아니. 공짜로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에 오디션을 봤는데 뽑혔어.”
이슬은 그런가 보다 했다.
“복학 전에 프랑스어 배우러 다닌다더니.”
“다닐 거야.”
“등록금은 너무 부담 갖지 마.”
“군대도 다녀왔고. 누나 시집 밑천 건드리고 싶지 않아.”
“까분다! 복학 전에 놀러 다닐 생각만 하지 말고 미리미리 공부 좀 해 둬.”
“지금도 숨 쉴 틈이 없이 빡빡해.”
“쓰읍!”
“알겠어. 숨은 다음 생에 쉬는 걸로.”
이온이 품에 안고 있던 클로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녀석이 숨숨집을 찾아 들어가고, 이온 역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이 속담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친구가 좋아서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끌려서 한다는 것.
대체로 후자처럼 부정적인 뜻으로 많이 쓰이는 편이다.
“너네 그거 해봤어?”
그렇게 물었을 때 나만 안 해 봤으면 따돌림 당할까, 괜히 눈치 보이고, 아니면 겁쟁이로 보일까 봐서 반강제로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뭉쳐 다니면 대개 탈이 난다.
죽이 잘 맞던 친구들도 나중에 틀어지면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중고등학교 시절뿐만 아니라, 사회 초년생들도 친구가 하니 따라 하고 패거리 믿고 까불다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경우가 있다.
친구 따라 너무 멀리 간 경우도 있다.
강남엔 교도소가 많다.
이 속담의 강남은 양쯔강 이남을 일컫는 것이지만.
암튼 단비를 따라가서 본 오디션은 결코 후자 쪽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자도 아니다.
‘진짜 뽑힐 줄 몰랐는데. 조금 당황스럽네.’
물론 오리엔테이션에 참가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없던 일이 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군악대 병장을 단 이후부터 페루 아야쿠초 워크캠프까지 계속해서 자신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솔직히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고, 무엇 때문에 외국어를 하나도 아니고 세 개씩이나 배우고 있으며,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기를 쓰고 해외봉사팀에 참여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안정되고 연봉 센 회사에 취직을 하기 위해서......?’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취업한 선배들이 그런다.
하고 싶은 일부터 찾으라고.
취업도 결국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인지, 적성에는 맞는 일인지를 곰곰이 생각할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솔직히 예비 취준생인 이온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
“막상 취업에 성공하면 존나 막 기뻐 미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그럴 것 같지? 그거 며칠 못 가. 직장이란 데가 일주일에 5일 이상, 하루 9시간 이상을 머물러야 하는 곳이야. 학교처럼 졸업이 있지도 않고, 군대처럼 제대가 있는 것도 아니야. 적성에 맞지 않으면 정말 X망하는 게 취업이야.”
이온이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 힘든 수험생기간을 거쳐 힘든 관문을 통과해 원했던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서 정말 행복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수십 개의 관문 중에서 이제 막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 것뿐이다.
영재가 지방대학에 다닌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나를 안 뽑으면 그 회사가 손해지. 내가 손해냐!”
영재가 했던 말이다.
군대에서 보낸 시간을 제외하고, 영재는 충분히 자신의 청춘을 즐기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이런 고민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자소서에 한 줄 더 첨가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일종의 스펙 혹은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경력.
그렇게 액션캠프 훈련을 정리했다.
후우.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이온의 내면에는 뜨거운 뭔가가 화산처럼 부글부글 끊고 있다.
억누르고 있을 뿐.
그것은 바로 대부인 해리 굿맨이 걸었던 삶의 족적을 따르는 것이다.
모터사이클 공중점프.
비록 현대에 와서는 대부가 했던 종류의 공중점프는 사라지고 다른 종류의 익스트림 스포츠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계곡을 뛰어넘고 선박을 뛰어넘는 등 다양한 공중점프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모터사이클 공중점프를 할 여건은 안 된다.
당연히 누나를 비롯해 모두가 반대할 것이기도 했고.
때문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꿈이다.
사람은 누구나 목표를 설정할 때 절대 능력 이상의 더 높은 것을 세우지 않는다.
겨우겨우 해낼 수 있는 정도 수준을 목표로 세우는 경향이 있다.
물론 매우 소수의 사람들은 절대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운 후 그걸 실제 이뤄낸다.
이온은 그 소수에 포함되는 사람은 아니다.
대부의 족적을 따라가는 꿈을 접은 이유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기보다 능력 이상의 목표라 여겨지기 때문에.
샐러리맨과 스턴트맨.
냉정하게 봤을 때, 둘의 잠재적 가치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속된 말로 ‘배고파야 잘하는 것’이 있고, ‘배불러야 잘하는 것’도 있다.
전자는 노력을 바탕으로 한 집중도가 극도로 발휘되어야 할 테고, 후자는 여유로울 때 능률이나 결과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천재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돈벌이와 직업 안정성으로 귀결되나?’
잠재적 가치가 비슷할 때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이 되는 법이다.
가치가 너무나 비슷해서 안 골라지는 경우다.
사실 아무 것이나 골라도 된다.
무엇을 선택해도 똑같다.
그 선택을 두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좋은 선택이 되는 것이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하면 잘못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결과가 실망스럽다면 인간은 누구나 내가 선택을 잘못했다고 스스로 자기 합리화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야옹~
클로이의 나지막한 울음이 들렸다.
어느 샌가 녀석이 방에 들어와 이온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다.
문득 이온의 눈에 달력이 들어왔다.
사회로 나가기까지 학교에서 보내게 될 3년의 시간.
6개월이란 시간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복잡한 계산 대신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로 했다.
‘공짜로 스턴트도 배우고, 새로운 분야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거니까.’
낯선 세계를 체험하는 것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친구 따라서 강남 갔다가 그곳에 눌러 앉을 줄.
이때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