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친구 따라 강남 간다.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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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온은 매우 얼떨떨한 상태다.
액션캠프 기수 선발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지원자 십여 명이 몰려왔다.
함께 사진을 찍자, 사인을 해 달라, SNS 계정을 알려달라는 등 요구를 했다.
그들에게 이온은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다.
이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낯이 너무 익다 그랬어요. 어디서 봤나 계속 고민했다니까요. 맞죠?”
“.......?”
이온은 몰려든 이들이 하나같이 ‘맞죠‘ 라고 대뜸 물어서 도대체 뭐가 맞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카이사르 개놈하고 배틀 맞짱 뜬 분 맞죠?”
카이사르가 개놈인지 어쩐지 이온은 그의 인성은 알지 못한다.
다만 지난 윈터 게더링 카오스 배틀에서 카이사르가 이온의 인사를 무시하고 퇴장해버리긴 했다.
‘넷튜브에 동영상이 돌아다니는구나......’
그제야 왜 이들이 난리를 피우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카나한 윈터 게더링 카오스배틀.
이온의 1vs1 배틀 동영상이 넷튜브에서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말하는 것들을 들어보면 카이사르의 1vs1 배틀인 줄 알고 봤는데, 웬 동양 사람이 대등하게 대결벌이는 것을 넘어 어떤 기술에서는 더욱 뛰어난 기량을 선보여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댓글을 통해 카이사르를 발라버린(?) 동양인 트릭커가 한국인이란 걸 알았다는 것도.
“지난 윈터 게더링에서 카이사르와 배틀을 하긴 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십여 명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씨나인스내푸가 개쩔더라니!”
“카오스배틀에서 보여줬던 기술 좀 풀어놔 보시지.”
“갈아입을 팬티를 준비하지 못해서. 큭.”
“하하하. 제가 반바지 하나 더 준비해 왔어요.”
“여기 지원자들 중에 격투기 부심 부리는 애들 많더라고요. 아크로바틱이 주종목인 저로써는 얼마나 짜증나던지.”
같은 조에서 면접을 봤던 기계체조 선수출신의 말이었다.
“아, 네.”
이온은 자신 주변에 몰려들어 정신 사납게 구는 이들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줄 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혹시 닉네임이 어떻게 되세요?”
“댓글에 아이온? 이온? 그렇게 달렸던데?”
“따로 닉네임 없습니다. 아직 동호인 수준이라서.”
모두가 말도 된 안 된다는 표정으로 이온을 쳐다봤다.
이온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자신은 비보이나 트릭커 세계에서 네임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크게 노출된 적도 없었고.
그러나 받아들이는 이들은 겸손이 지나쳐 오만하게 비춰진다는 것.
이온이 동호인 수준이면 그보다 못한 이들은 다 일반인이란 소리와 다름없으니까.
영재가 틈만 나면 놀리듯 이온은 아웃사이더 기질이 약간 있다.
따라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이온은 남하고 비교하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다.
좋으니까 재밌으니까 죽어라 하는 것 뿐.
공부는 한계가 뚜렷해 대학에 와서는 열심히 하지 않는다.
반면에 비보이와 트릭커 둘 다 놓치지 않는 것은 하루하루 자신의 한계를 깨나가는 것이 재밌고 짜릿하기 때문이다.
“이오니소스!”
영재가 끼어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영재에게 모여졌다.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 알죠? 페루에 봉사를 갔는데 현지 애들이 그걸 살짝 변형해서 그렇게 불렀어요.”
“넷튜브 클립에는 ION이라 뜨던데?”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넷튜브 동영상을 검색한 한 지원자가 물었다.
“이온은 실명이고. 닉네임이 이오니소스에요.”
이온이 무슨 수작이냐는 얼굴로 영재를 쳐다봤다.
영재는 그런 시선을 무시했다.
단비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애써 억누르며 시침을 뚝 땠다.
“비록 디오니소스의 여신처럼 아름다운 얼굴...... 은 아니지만, 이놈이 그래도 동안인이잖아요. 키도 크고. 어릴 때부터 비보이로 날렸어요.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데.”
이온이 금시초문이란 얼굴로 영재를 쳐다봤다.
‘내가?“
‘응!‘
‘언제?’
‘......!’
영재로 인해 비보이이며 동시에 트릭커이기도 한 이온의 닉네임이 결정됐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후로 SNS계정이 없다는 말에 몰려온 지원자들이 실망했다.
대신 영재와 단비가 그들과 서로 팔로워를 맺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팬(?)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이온은 친구들과 액션아카데미 체육관을 나섰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임대한이 부사수 김동혁에게 물었다.
“쟤 유명하냐?”
“저도 트릭커 판은 잘 몰라서......”
“유명한 놈이 뭐 먹을 게 있다고 스턴트판을 기웃거려?”
“저야 모르죠.”
“좀 가려서 정통 위주로 뽑아야 되는데, 개나 소나 다 받아주니.”
임대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액션캠프 기수 교육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지원한다.
액션아카데미 소속 프로 스턴트맨들보다 월등한 무술실력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스턴트맨들이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제 아무리 무술실력이 뛰어난 들 대부분이 교육 캠프조차 완주를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설령 캠프를 수료해 정식 기수가 된다고 한 들,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스턴트를 그만 둔다는 사실이다.
그 만큼 힘들고 고된 것이 스턴트 일이다.
“약장사냐? 어디서 사람들한테 약을 팔아.”
이온이 영재에게 따졌다.
“그렇다고 게토레기, 또레이타라고 알려 줄 순 없잖아.”
“지금 생각난 건데......”
단비에 말에 이온과 영재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이온음료 종류가 많잖아. 근데 온이한테 이상하게 일제 이온음료 별명으론 안 불렀어. 다 미제야.”
“별명만 불매하면 뭐하냐? 마시질 말아야지.”
“난 이온음료 안 마시는데?”
“그러셔? 장하다 최단비.”
“그나저나 울 온이가 이제 닉네임으로 BPS 오빠들에 묻어갈 수 있겠어.”
또 무슨 헛소리냐는 듯 이온이 단비를 돌아봤다.
“one shot, two shots 예술에 취해 불러 에헤라디야.”
단비가 자신의 경차 앞에서 술잔을 들이키는 춤을 췄다.
“크크크. 온이는 술도 잘 못 마시는데, 무슨 마셔마셔야?”
“그걸 알면서, 온이 넥네임을 디오니소스에서 따와?”
“예술과도 관련 있는 신이잖아. 비보이와 트릭커가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라며?”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던가.
이온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장소에서 평생을 따라다닐 닉네임을 얻었다.
사람의 이름 혹은 별명에는 그것을 지어준 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또 이름으로 불리게 될 사람이 살아 나갈 삶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응원의 방식이 이름이나 별명이다.
아주 옛날에는 족보에 올라가는 정식 이름 외에도 성년이 될 때 자를 지어 부르거나 스승이나 친구 등이 호를 붙여줬다.
그런 것들에는 삶에 대한 의미가 담겼다.
닉네임 역시 비슷하다.
불리게 될 사람의 특징, 개성 등에서 따와 직관적으로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바람이 별명에 담기는 경우가 많다.
국경이 따로 없는 비보이와 트릭커의 세계에서 영문이나 유명한 인물로 표현되는 닉네임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강렬한 수단이다.
또 정체성이기도 하다.
댄서에게 닉네임은 무브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액션아카데미 25기 액션캠프 면접일.
이 날은 나이온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날이다.
동시에.
친구 영재가 아무 생각 없이 페루에서 붙인 닉네임 이오니소스가 평생을 따라다니게 된다.
훗날 이 닉네임에서 많은 것들이 파생된다.
친구이자, 가족이며,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의 모임이 이 닉네임으로부터 파생된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오늘 우리 모두 수고했으니까. 위로를 해줘야지. 고고. 일산으로!”
이온과 친구들은 일산의 웨스턴돔으로 이동해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 ✻ ✻
액션캠프 기수 선발 오디션이란 일탈을 경험했던 이온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단비가 연결시켜 준 두 명의 중학교 3학년 과외를 시작했다.
그 외의 시간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거나 프랑스어 실력을 키우기 위한 학원수강 혹은 인터넷강좌, 동아리 등을 열심히 알아보고 다녔다.
한편 한국액션아카데미에서는 새로운 기수를 확정하기 위한 최종 회의가 열렸다.
안타깝지만 최종 후보 명단에 영재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단비는 액션배우 파트 교육생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이온이다.
“이 놈은 어떻게 할까?”
권용찬 감독이 이온의 지원서를 들어보였다.
“한국대 다니는 놈이 뭐가 아쉬워서 스턴트맨을 하겠어요.”
“신웅이, 기태, 웅수 다 한국대야. 걔들 아직도 영화 한다.”
“걔들은 진즉 배우로 갈아탔잖아요.”
“배우든 뭐든 이 바닥에 남아 있을 것인가,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는 이온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원자들 모두에게 해당된다.
액션캠프에서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은 무술실력이 아니다.
과연 전문 스턴트맨 분야든 액션배우 분야든, 오랜 시간 인내하고 버텨낼 것인가.
그것이 일 순위 고려사항이다.
다음이 사람 됨됨이 즉 인성이다.
“못 버틸 텐데......”
“한 달 하고 도망 안 가면, 다행일걸요.”
“어차피 선발 인원 중에 최종적으로 15명만 남아도 선방한 거잖아.”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 뽑을 순 없죠.”
“이온인가 하는 녀석은 우리 아카데미에 없는 비보이 출신이면서 최근 할리우드 액션추세인 트릭킹을 할 줄 알아.”
현재 액션아카데미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스턴트맨은 남녀 포함 모두 70여 명.
거의 대부분이 마샬아츠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
복싱, 군대특수무술, 파쿠르, 체조 등의 액션 안무가 필요할 때는 외부에서 자문을 구하는 시스템으로 운영 중이다.
물론 아크로바틱과 KPOP 안무가 가미된 태권도 시범단 출신 스턴트맨이 있긴 했다.
본격적으로 트릭킹만 판 사람과 깊이나 트렌드를 비교할 순 없다.
최근 할리우드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트릭킹이 액션과 각종 안무에 많이 들어가고 있다.
사실 액션아카데미 소속 스턴트맨들 가운데 고난이도 트릭킹을 펼칠 수 있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온처럼 현직 트릭커로써 그 세계에 대한 이해와 생생한 경험을 가진 이는 없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두가 권용찬의 입을 주시했다.
그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무조건 들어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액션아카데미는 권용찬 개인의 권력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투표로 선출된 대의원 8인이 공동으로 의논해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난 이 놈 마음에 들어.”
“지 입으로 말했잖아요. 동호인 수준이라고.”
임대한이 반대의사를 내비췄다.
“그 놈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그냥 대충 이 정도 한다만 보여준 거야. 몰랐냐?”
모를 리가 없다.
다들 경력이 얼마인데.
심지어 작년 기수인 24기에는 전직 국가대표 태권도시범단 출신도 포진되어 있다.
이온이 다칠 것을 우려해 어는 정도 몸을 사리면서 기술을 펼쳤지만, 난이도가 상당한 걸 어렵지 않게 펼쳤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실컷 가르쳐놨더니 한국대로 빤스런 할 수도 있지. 그렇다고 해도 우리팀에 트릭킹이나 비보잉 전문가가 한 명 쯤 있으면 나쁠 것이 없다고 본다.”
임대한이 또 다시 반대를 하고 나섰다.
“비보이에서 트릭커로 갈아탄 놈이에요. 한마디로 끈기가 없다는 거죠.”
그러자 임대한과 주로 짝을 이뤄 작업을 하고 있는 19기 심동혁이 사수의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제가 그런 스타일을 좀 아는데요. 지 딴에 충분히 즐기고 마스터 했다는 생각 들면 금방 딴 걸로 갈아탈 걸요. 괜히 뽑아놔 봐야 겉멋만 들어서 우리 애들 나쁜 물 들 겁니다.”
회의에 참석한 무술감독급 인사들은 임대한과 심동혁이 그렇게까지 반대할 일인가 의문이 들었다.
결국 이온을 포함해 의견이 갈렸던 지원자 다섯 명에 대해 표결에 붙여졌다.
“이번 기수도 50명을 다 채우지 못했네.”
“쪽수 맞추려고 가망 없는 지원자를 뽑을 순 없잖아.”
오늘 합격자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었으니 내일 안으로 문자메시지가 발송될 것이다.
“먼저 들어갈 사람은 가고, 남아서 운동할 사람은 하고, 술 한 잔 할 사람은 나 따라오고.”
임대한이 후배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몇 명이 그를 따라나섰다.
“관효야.”
“예. 형.”
“넌 왜 트릭커하는 놈을 뽑자고 한 거야?”
“싹수가 보이잖아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괜히 그런 놈 뽑아놓으면 너하고 나눠먹기 해야 할지도 몰라.”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얀마!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무슨 자선활동 하냐?”
“형도 아시잖아요. 올해 제가 작살나는 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좀 있으면 입봉 하는 놈이......”
액션아카데미 21기 송관효는 올해 서른이다.
모델이라 생각될 정도로 훤칠한 신장과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스턴트맨이다.
최근 3년 간 패션모델 출신 장신의 남자배우 스턴트더블을 거의 혼자서 도맡아 해오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영화, TV드라마, OTT 드라마, 광고 등에 불려 다니며 장신의 배우들 대역을 소화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일했다.
그 만큼 수입이 늘어났으니 나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면서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혹사당했다.
몇 년 전부터 관효는 자신처럼 키가 180 후반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반 정도의 신장에 운동신경 좋은 후배가 들어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매년 180대 키의 기수 훈련생이 한두 명이 뽑히긴 한다.
하지만 자신의 기수 이후로 6개월의 훈련캠프를 버텨내지 못하고 모두 중도탈락했다.
“어차피 입봉하면, 지금처럼 대역만 하러 다닐 수도 없고. 제 대신 더블 할 후배 키워야죠. 이러다 옛날처럼 180 안 되는 애들이 모델 출신들 더블하면서 리얼리티 다 망가지는 거 아닌지 걱정이에요.”
후배가 이렇게 말하면 선배로서 기특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헌데 임대한은 그런 선배는 아닌 모양이다.
“딱 굶어죽기 좋을 소리 한다. 쯧.”
어떤 직업세계나 동업자 정신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제 욕심만 챙기기에 급급한 이들이 있다.
스턴트맨 업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