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친구 따라 강남 간다.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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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평이 넘는 체육관 한편에서 지원자들이 편한 자세로 앉아 대기했다.
대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디션을 본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북적댔던 체육관 내부가 한산해졌다.
이온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다양한 무술 및 격투기 유단자들의 화려한 시연을 감상하고 있는데.
“81, 82, 83번!”
면접 진행담당자가 이온의 조를 호명했다.
체육관 벽에 등을 기댄 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던 이온이 몸을 일으켰다.
단비가 입모양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영재는 이온의 등을 팡팡 두드려줬다.
함께 오디션을 보게 될 두 명은 상당히 긴장한 듯 보였다.
반면에 이온은 담담했다.
확실히 윈터 카나한 게더링에서의 카오스 배틀 참가가 많은 면에서 이온을 성장시킨 모습이다.
다시 한 번 마루바닥을 발로 가볍게 두드리는 여유까지 보였다.
퉁퉁.
딱딱한 마루.
비보잉이든 트릭킹이든 대부분 탄성매트에 훈련하고 경기를 한다.
안전과 부상 방지 때문이다.
한국에서 트릭커가 막 태동하던 시기인 2000년도 초반에는 체조장 바닥이나 에어매트, 착지매트 등이 민간에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
국내에서 고난도 기술훈련을 할 만한 장소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선배 트릭커들은 초등학교나 대학교 체조장을 빌려 수련을 했다.
그렇다보니 기술 훈련의 한계가 있었다.
부상도 달고 살았다.
게다가 부상관리 노하우도 없어서 부상 때문에 일찍 판을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트릭킹 기술에는 기계체조 동작이 많다.
따라서 훈련장의 천장 높이 또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바닥이 마루인 것을 제외하면 한국액션아카데미 체육관은 트릭커들에게 환상적인 훈련공간이다.
일단 200평의 널찍한 공간, 7미터 높이의 천장, 중대형 에어매트, 탄성매트가 준비되어 있다.
이 정도 수준의 훈련장은 올림픽국가대표 훈련장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데서 트릭킹 연습하면 장난 아니겠는데......?’
이온은 스턴트보다 체육관이 마음에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81번 박형민입니다. 체조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82번 유영진입니다. 태권도 5단입니다.”
“83번 비보이 나이온입니다.”
세 사람이 차례로 면접관들에게 인사를 하고 특기를 말했다.
“한 사람 당 최대 3분입니다. 자신 있는 것 시범 보이면 됩니다.”
기계체조 선수출신 지원자가 가장 먼저 특기를 선보였다.
50초 정도 연기를 보여줬는데, 점프, 공중회전, 물구나무서기 정지동작 등을 주로 보여줬다.
마루종목 선수출신인 모양이다.
‘아휴~ 저 바보......’
이온이 내심 한숨을 쉬었다.
의욕이 앞 선 지원자는 대회에 나온 것도 아닌데, 너무 높이 점프를 뛰었다.
착지가 잘 못되면 발목이 다칠 위험성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착지가 불안했다.
다행히 부상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수고했어요. 다음 분!”
이어서 나온 지원자는 태권도 유단자다.
그런데 발차기나 품새가 생각보다 별로다.
시합겨루기 전문인 모양이다.
발차기 형태나 높이 등이 태권도 품새 종목이나 시범단과 달랐다.
어쨌든 이온이 특기를 보여줄 차례가 왔다.
면접관 앞에 나서기 전까지 계속 고민했다.
어느 정도까지 보여야 하는 것인지.
지난 윈터 카나한 게더링에서처럼 마구 날 뛸 수는 없다.
자칫 발목, 무릎에 부상이라도 당하면 자신만 손해다.
물론 시멘트나 아스팔트 바닥에서도 트릭킹이나 비보잉을 연습한 적이 없던 건 아니다.
그건 어릴 때 이야기.
굳이 트릭킹으로 허세를 뽐내봐야 마샬아츠 초고수인 면접관들 눈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을 터.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비보잉 기술만 펼쳐 보이기로 했다.
빙글빙글.
윈드밀에서.
빙글뱅글.
에이트랙으로 이어졌다가......
팍!
공중에서 다리를 벌려 숫자 7을 만드는 나이키 프리즈로 마무리했다.
짝짝짝!
면접 대기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졌다.
순식간에 끝난 비보잉 시연이었지만, 제법 멋지게 나온 모양이다.
“83번!”
면접관 테이블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중년 남자가 이온의 수험번호를 호명했다.
무술감독 권용찬.
한국 액션의 상징이자 스턴트맨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참여했고, 할리우드 진출까지 했으며, 직접 연기까지 소화 하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무술감독이다.
“네!”
이온이 힘차게 대답했다.
“트릭킹은 안 보여줘요?”
“......”
“지원서에 특기가 트릭킹이라고 되어 있어서.”
이온이 면접관들을 슬쩍 눈으로 훑었다.
여덟 명의 면접관 중 절반 정도가 약간 깔보는 것 같은 시선을 하고 있다.
이온의 자격지심이 아니다.
그들의 시선에는.
‘한 번 해봐. 얼마나 잘하나 보자.’
그런 것이 담겨 있었다.
정통 마샬아츠 유단자들이니 트릭커를 깔볼 수도 있지 않냐고?
천만에.
마샬아츠와 트릭커는 전혀 별개의 분야다.
서로 존중하는 것이 맞다.
정통 찾고 실전 찾고.
그런 걸 따지는 이가 있다면 그는 삼류다.
질문을 받기 위해 서있던 지원자들이 다시 멀찍이 물러났다.
공간이 확보되자 이온이 망설임 없이 몸을 놀렸다.
휙!
이온은 바닥에 손을 짚고 옆으로 반 바퀴를 돌았다.
그런 후 곧바로 두 손 짚고 앞 공중 돌기, 다시 옆 돌기 후 뒤로 공중 두 바퀴 돌기(더블 백)를 선보였다.
“오오오!“
면접 차례를 기다리던 지원자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트릭커를 모른다면 기계체조 기술이라고 해도 잘못됐다 말 할 수 없는 시범이었다.
함께 조에 편성된 기계체조 출신 지원자가 열렬히 박수를 쳤다.
이온이 쉽게 공중 돌기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렇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과 시간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좀 어려운 건 못해요?”
권용찬 감독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무술감독이 물었다.
권 감독의 애제자 중 한명으로 15년 차의 베테랑 무술감독 임대한이다.
비보잉을 선보였을 때 어딘지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던 인물이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고 난이도의 기술 연계를 펼칠 생각 따윈 없었다.
자신의 몸은 이번 오디션 보다 소중하니까.
카포에라에서 온 트릭킹 기술 중에 스와프(swipe)란 것이 있다.
우리 씨름의 자반뒤집기 또는 풍물놀이에서 상모를 돌리며 몸을 공중에서 회전하여 착지하고 다시 회전, 착지, 회전이 계속 반독되는 동작과 유사하다.
참고로 자반뒤집기란 명칭은 고등어자반을 이리저리 뒤집는 것에서 유래했다.
카포에라에도 자반뒤집기와 유사한 동작이 있는데, 라이즈란 기술이다.
여기서 다시 변형된 기술이 스와프다.
스와프에서 한 바퀴 더 뒤집게 되면 그것을 스네이퍼스와이프(snapuswipe)라고 한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데, 실제 기술은 순식간에 펼쳐진다.
트릭커가 아니면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휙휙휙!
팍!
한국에서 720도 발차기라 부르는 기술을 외국에서는 C9이라고 한다.
그 C9을 스네이퍼스와이프와 연결시킨 동작을 씨나인스내푸(C9snapu)라고 한다.
어지간한 태권도 유단자도 720도 외발턴을 차기 쉽지 않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바퀴를 더 돌아야 한다.
진짜 어려운 기술이다.
짝짝짝!
권용찬 감독이 박수를 쳤다.
이어 지원자들도 이온에게 박수를 쳐줬다.
50번 대 지원자들 중에 박수가 터진 이후로 세 번째로 박수를 받은 지원자가 된 이온이다.
“예쓰! 울 이온이가 오디션 와전히 찢었어!”
단비가 마치 자기가 칭찬을 받은 것처럼 좋아했다.
더블백과 C9스내푸.
이온이 두 기술을 시범 보인 후 다른 지원자들과 나란히 섰다.
기계체조 선수 출신 지원자가 합합식 인사를 제안했다.
“끝나고 사인 해주세요.”
“......?”
어쨌든 이온이 인사를 받아줬다.
“오~ 스웩!”
그 광경을 보던 단비가 영재의 어깨에 자신의 어깨로 툭 치며 좋아했다.
이온의 시범은 뭔가 순식간에 벌어졌다 순식간에 끝난 느낌이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마샬아츠 같은 운동을 최소 십년 이상 한 이들.
단비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온의 시범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이온의 체형이 서구형인데다 유연성까지 갖췄다.
길쭉길쭉한 팔다리가 활짝 펴졌다가 접히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사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것은 무용가나 비보이에게 양날의 검이다.
실력이 탄탄하면 큰 장점이다.
반면에 운동신경이 떨어지거나 기본기가 허술하면 자칫 주유소 풍선인형처럼 형편없어 보일 위험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온은 운동신경도 준수한 편이고, 십년 가까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연습을 해오고 있다.
기본기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인지 작은 동작을 펼쳐도 꽤나 근사하게 보이는 편이다.
태권도 시범이나 트릭킹에 실전성 따지는 바보는 없다.
그런데 어디나 바보는 존재하는 모양이다.
“아크로바틱은 꽤 하는데...... 저런 걸 어따 써.”
임대한이 중얼거렸다.
어딘지 심술 난 어린애 같았다.
대체로 배우나 일반인 지원자들에 대해 야박하게 대했다.
“83번. 키가 어떻게 되요?”
지금까지 권용찬 감독은 지원자들에게 거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오디션 내내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원자들을 관찰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온에게는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다.
‘당첨이네!’
‘저 놈 합격이구나.’
많은 지원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암튼 분위기가 어떻게 흐르든 이온은 정직하게 대답해야 할지 키를 조금 줄일지 잠시 고민했다.
비보이나 트릭커 사이에서 가장 폼이 잘나오는 신장을 178Cm 정도로 본다.
물론 신장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압도적 실력으로 대회를 휩쓸고 다니는 이들도 많긴 하지만.
대체로 좋은 신체비율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175~178Cm 사이의 신장을 가진 이들에게서 기술이 잘 표현된다고 본다.
“184입니다.”
이온은 지원서에 나와 있는 대로 정직하게 말했다.
- 한국대 다닌다면서 그 좋은 학교 놔두고 왜 스턴트하려고 해요?
다른 무술감독의 질문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 액션아카데미가 있는지도, 공짜로 스턴트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 스턴트 장난 아닙니다. 우리가 공짜로 스턴트 훈련시켜주는 것이 일반인 대상으로 봉사하려고 하는 건 줄 알아요!
임대한이 질문인지 꾸짖는 것인지 모를 말을 했다.
“비록 24년 밖에 살아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장난으로 뭘 해본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공부든 비보이든 운동이든 치열하게 덤볐다고 자부합니다.”
- 대학 재학 중이라면서요. 학업과 스턴트맨 생활을 병행할 수 없을 텐데?
“다음 학기 복학예정입니다.”
- 훈련 마치면?
“6개월 간 훈련을 마친다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 .......!
“아마 인턴십 비슷한 기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 아카데미는 일반 체육관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 재미있는 일을 찾을 거라면 스턴트보다 다른 걸 찾아보세요. 재미가 꼭 모험일 필요는 없으니까.
“죄송하지만, 스턴트맨이란 직업세계에 도전하는 것이 모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으이그! 저 바보.’
단비는 꼬박꼬박 말대꾸 비슷하게 면접을 진행하는 이온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것은 충분히 보여주었다.
이제는 좀 겸손할 필요가 있었다.
“오디션에 참석하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봤습니다. 작년 한국의 스턴트맨 임금 하위 25%의 연봉이 대략 2600만 원, 평균 50%는 3100만 원, 상위 25%의 연봉이 4000만 원이었습니다. 특히 상위 25% 가운데 몇 명은 연봉 1억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하기에 따라 연봉 6000 이상도 가능하다는 인터뷰 기사도 있었습니다. 아마 제 앞에 계시는 무술감독님 중에 한 분이셨을 겁니다.”
- 우리는 퇴직금도 없고, 오래 못해요.
“젊어서 바짝 벌죠 뭐.”
하하하.
면접을 보는 무술 감독 몇 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반면에 빅보스라고 할 수 있는 권용찬 감독과 그의 애제자들은 웃지 않았다.
“스턴트맨들이 평균 기량만 보여도 연봉 4000~5000 정도를 벌 수 있다고 하던데, 제가 운동신경이 뛰어난 편이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만약 스턴트맨이 된다면 평균 기량은 보일 수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스턴트맨을 했을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 당장은 그럴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
- 어디서 이상한 거 보고 왔어. 한 10년 정도 이 바닥에서 빡세게 굴러야 겨우 5000 벌 수 있을까말까. 그때까지 자네가 버틸 수나 있을까?
“버터야 하는 겁니까? 스턴트맨 세계라는 곳에서?”
이온이 도발적으로 되묻자, 권용찬이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기분이 나빠서라기보다 무슨 소릴 지껄이는지 한 번 들어보겠다는 투다.
“그 시간들이 진짜 프로가 되어가는 과정 아닙니까? 세상에 하루아침에 프로가 되고 마스터가 되는 분야가 있습니까? 10년 정도 꾸준히 해서 전문가 대접 받으면 그렇게 느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대기업에 취직하면 그 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걸?
“한국대 졸업한다고 무조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온의 이 대답이 마지막이었다.
권용찬 감독은 입을 다물었다.
오디션 초반만 해도 많은 이들이 이온의 합격을 예상했다.
권용찬 감독이 관심을 보였으니까.
그런데 이온이 권 감독에게 대들 듯이(?) 면접을 봄으로써 불합격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너무 현실주의적이고 속물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후우.
단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결과를 비관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일단 이 시골을 뜨자. 웨스턴돔으로 고고!”
오디션 결과보다 뒤풀이에 더 관심이 많은 영재였다.
액션아카데미 기수 선발 오디션이 모두 끝나자마자, 이온에게 몇몇 지원자가 모여들었다.
난데없이 이온의 팬미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