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누나가 고생이 참 많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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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남루한 옷차림의 이온이 숙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발견한 캠퍼들이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야!”
“공산 반군에 납치라도 당했던 거야?”
“소매치기 조직에 모두 털렸어?”
캠퍼들이 몰려와 정신없이 떠들어댔다.
골이 다 흔들릴 정도로 질문을 쏟아냈다.
이온이 손을 들어 캠퍼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영재에게 한국말로 물었다.
“중국놈들은?”
“몰라. 아침에 보니까 두 녀석 다 안 보이더라.”
“짐을 빼진 않았고?”
“글쎄. 어디선가 좋은 시간 보내고 있겠지.”
이온은 캠퍼들을 뒤로 자신이 묵고 있던 방으로 향했다.
중국인 두 녀석이 썼던 이층 침대가 비워져 있다.
숙소를 옮겼거나 어쩌면 아야쿠초를 떠났을지 몰랐다.
“그 옷은 어디서 주워 입은 거야?”
영재가 어느 새 뒤따라와 물었다.
“원주민한테 빌려 입었어.”
“오호. 우리가 클럽에서 허탕치고 있는 사이 현지 여자랑 꽁 까잡수셨다?”
“콩을 까든 원나잇을 하든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이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가방에서 주섬주섬 옷을 꺼냈다.
“현지인 여자 가족한테 걸려서 털리기라도 했어?”
“그런 거 아냐. 구구절절 사연이 많다.”
두 오빠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영지가 대뜸 끼어들었다.
“오빠 실망이야.”
“......?”
“놀러온 것도 아니고 봉사 와서 어쩜 그럴 수가 있어?”
“내가 뭘?”
“언니들한테 다 이를 거야!”
“뭘 일러? 언니 누구?”
흥.
영지가 콧바람을 흘리며 방을 나가버렸다.
“근데 오자마자 짜장들은 왜 찾아?”
트레이닝복과 민소매 셔츠로 갈아입은 이온이 지난 밤 있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뭐 그런 개자식이 다 있어! 그 놈을 가만 놔뒀어?”
당장에 두 중국인은 찾아 나설 것처럼 영재가 방을 뛰쳐나갔다.
설레발일 뿐.
지금 와서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온은 맥주라도 한 병 사마실 생각으로 지갑과 주머니를 뒤져봤다.
“개털이네.”
택시비를 제외하고 지니고 있던 페루 화폐인 솔을 모두 마릿사의 집에 두고 왔다.
페루 돈으로 70솔.
한화로 대략 2만 원 정도 하는 금액이다.
페루 일반 가정의 한 달 생활비가 340솔 정도이니 작은 액수는 아니다.
어차피 내일 모레면 페루를 떠난다.
다시 찾아올지도 알 수 없다.
원주민들에게 매우 귀중한 물도 얻어 썼고, 식사와 잠자리까지 제공 받았으니 그 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오는 것이 맞았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온아! 빨랑 나와!”
중국인들을 찾아 나설 줄 알았던 영재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채근했다.
“오늘도 달려야지!”
아직 아야쿠초의 카니발은 시작도 안 했다.
둘째 날부터가 진짜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이온은 아야쿠초를 떠나기 전까지 모든 걸 잊고 신나게 놀았다.
저녁에는 캠퍼들이 클럽에 놀러갔다.
이온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자의반타의반 헌팅에 나서야 했다.
- Hola guapa~ Quieres que te de candela?
(이쁜아~ 재밌게 해줄까?)
- Bueno...... a ver si me puedes darla.
(네 실력 함 볼까.)
말을 거는 족족 성공했다.
영지와 벨기에 여자애들마저 황당해할 정도로 성공률이 높았다.
“봉사활동 와서 여태 이온 오빠에 대해 몰랐던 걸 많이 알게 되네...... 완전 선수잖아.”
“여자들에게 구사하는 스페인어가 굉장히, 뭐랄까 끈적끈적한데.”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벨기에 두 여학생은 이온이 하기 싫은 태를 팍팍 내다가도 막상 페루 현지 여자에게 말을 걸 때는 선수도 그런 선수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구사하는 표현만 보면 스페인 날라리 못지않았다.
사실 프랑스 출신 멋쟁이 바스티앙이 인기를 독차지해야 맞다.
누가 봐도 이온보다 바스티앙이 잘생겼고 스타일이 좋으니까.
다만 이온은 비보이면서 트릭커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비보잉의 준비자세이자 서있는 상태에서 밟는 스탭 즉 탑락만 가볍게 보여줘도 클럽에서 놀고 있는 모든 남자들을 몸치로 만들 수 있으니까.
굳이 어려운 비보잉을 펼칠 필요도 없다.
탑락과 풋워크만 적당히 섞어서 밟아주면 알아서 클럽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한국인 버프가 있나봐. 페루는 천국이야 천구욱~!”
영재가 좋아 죽을 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온이 나서지 않아도 여자들이 먼저 찾아와서 유혹했다.
- 나 뜨거운데 같이 나갈까?
- 네게 흥분했어. 어때?
- 나는 네 무기(?)가 궁금해. 확인해 볼 수 있을까?
많은 대시를 받았다.
이온도 그렇지만 다른 캠퍼 역시 일정 선을 넘지는 않았다.
영지를 포함해 벨기에 두 여학생 역시 페루비안들로부터 수많은 대시를 받았지만, 적당히 대화하고 춤추는 정도에서 멈췄다.
함께 팀을 이뤄 봉사를 했던 현지 대학생 봉사단원들도 적당히 장단만 맞춰주는 것에서 더는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한 달 간 함께 동고동락한 캠퍼들이 마지막으로 즐기는 날이다.
모두가 아쉬움을 날려버리려 신나게 웃고 떠들고 흥을 돋우기 위해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다소 과잉된 행동도 했지만,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
클럽에서 실컷 놀고, 조용한 술집으로 이동했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시작해 봉사 기간 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도 엄청나게 찍었다.
마치 남는 것은 기념사진밖에 없다는 듯.
“비록 몇 사람이 먼저 떠나고 없지만,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티나와 가브리엘라도 바에 찾아와 마지막을 함께 했다.
캠퍼들은 가브리엘라를 비롯해 현지 봉사팀원들과 뜨거운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다음날 일찍 떠날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고, 일정에 여유가 있는 이들은 밤늦게까지 아야쿠초의 마지막 날을 즐겼다.
지구 반대편의 멀고도 먼 대륙 라틴아메리카.
미지의 세계라는 이미지.
유구하고 신비로운 역사 유적들.
경이로운 자연 경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남미 여행을 꿈꾼다.
현실은 쉽게 날아올 수 없는 곳이 남미다.
최소 2주 정도의 일정.
최소 2백만 원 정도는 우습게 깨지는 경비.
여행은 언제나 돈이 아니라 용기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실상 시간과 비용이 용기를 낼 수 없게 만든다.
여행을 떠날 용기에 앞 서 적금을 깰 용기나 사직서를 낼 용기 등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현실과 부딪치게 된다.
이온은 마운틴뷰에서 유명한 트릭커들과 처음으로 프리 배틀을 했고, 한 달 간 아야쿠초에서 무사히 워크캠프도 소화했다.
그렇게 좋았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때다.
인생은 실전이며 다큐다.
그 사실이 새삼 가슴을 짓눌렀다.
이온은 숙소 창가에서 어슴푸레 밝아오는 아아쿠초의 새벽풍경을 향해 작별인사를 건넸다.
“아디오스 아미고(Adios Amigo).”
✻ ✻ ✻
올해 서른 살인 나이슬은 병원 내에서 ‘짠순이‘로 불린다.
동료들과 5천 원짜리 커피 한 잔도 함께 사먹는 법이 없지만,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업무는 가리지 않고 자처해서다.
주말에 간호사들과 모임을 갖거나, 친구와 영화를 보면 3만~4만원 지출은 우습기 때문에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는다.
물건을 사기 전 최소 10번 이상은 고민한다.
꼭 필요한 물건이라도 ‘최저가’를 찾아야만 구매한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본 적도 없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제주도에 놀러 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슬이 이처럼 허리띠를 졸라 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학교 때 고아가 되면서 남동생과 함께 험난한 사회를 헤쳐 나가야 했다.
똑순이, 짠순이, 독종 뭐든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권까지 포기한 엄마는 초등학생 시절 이후 소식조차 알 수 없다.
아빠와 할머니도 중학교 때 돌아가셨다.
당시에는 동생과 함께 아동보육시설로 들어가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고모가 한 분 계신다.
안타깝지만, 외환위기 시절 집안의 가세가 급격히 기울고 말았다.
게다가 고모는 자식이 셋이나 된다.
도저히 이슬 남매까지 떠안을 수가 없었다.
남매는 그런 고모에 대해 전혀 섭섭해 하지 않는다.
지금도 고모 식구와 잘 지내고 있다.
동생의 미국인 대부는 생전에 남매에게 잘 대해줬다.
동생의 대부가 돌아가시면서 그의 자녀들은 동생에 대한 지원은커녕 노골적인 냉대와 미워하기까지 한다.
사실상 천애고아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아동보육시설에서 생활해야 했다.
이슬은 아빠가 사망하면서 받게 된 보험금을 발판으로 보육원이 아닌 독립해서 사는 것을 택했다.
그로인해 지독할 정도로 짠순이가 되어야 했다.
예쁜 옷도 사 입고 싶고, 친구들과 주말마다 나들이도 가고 싶고.
왜 그러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 대학병원 간호사로써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동생이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줘야 하고, 현재 살고 있는 일산 아파트의 대출금, 본인이 간호대학을 다닐 때 받은 학자금 대출금도 갚아야 하는 등 돈이 한두 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이슬은 일반 간호사가 아니다.
마취전문간호사(CRNA)다.
국가자격 없이 마취과에 근무하며 마취를 하는 간호사(RNA)와는 달리, 정식 자격을 취득한 전문직 간호사로 국내 650여 명만이 활동하고 있는 전문직이다.
참고로 국내에서는 의료법 때문에 의사 지도 아래 마취 업무를 수행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의사의 지도 없이 단독으로 마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 마취전문간호사다.
미국처럼 하려고 관련법이 준비되곤 있지만, 통과는 요원했다.
전문간호 직종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간호사들보다 급여 및 여러 부분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는다.
당연히 대학병원 정규직이며 교원에 준하는 다양한 복지, 나쁘지 않은 수준의 기본급, 그 외에 수술 및 당직수당 등 연차가 계속될수록 상당히 괜찮은 직업이다.
단 업무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쌍코피를 흘릴 정도로 주말 및 명절, 시시때때로 응급수술까지 자처해서 일을 했을 경우 대기업 입사 5년 차 직원 연봉 수준에 근접할 수도 있을 정도니 이슬이 얼마나 독종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슬은 허리띠를 풀 생각이 전혀 없다.
악바리처럼 열심히 돈을 모아도 결국 생활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의 딜레마다.
“이슬아~”
“네. 언니.”
마취과선배 간호사 김혜숙이 퇴근을 1시간 앞두고 이슬을 찾았다.
“혹시 오늘 나 대신 수술방 들어가 줄 수 있어?”
“오늘 OP는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CS(흉부외과) 송진국 교수님 응급수술 하신대.”
평소라면 곧바로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잠시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 정신 좀 봐! 오늘 이온이가 해외봉사 갔다 돌아온다고 했지? 안 되겠구나.”
“아니에요. 제가 들어갈게요.”
“괜찮겠어?”
“어차피 시차적응도 하고 피곤해서 곧바로 잠들 텐데. 내일 봐도 되요. 해외파병 갔다 온 것도 아니고.”
“웬만하면 윤지영 선생하고 바꾸겠는데, 지영이가 어제 12시간짜리를 했잖아.”
“제가 할 게요.”
“고마워. 이번 주말에 이온이하고 우리 집에 놀러와 내가 맛있는 거 해줄 게.”
“네. 언니.”
간호사 세계의 태움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 역시 간호대부터 악명 높은 태움을 경험했고, 병원에 막 들어왔을 초창기 그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었다.
그러다 선배 간호사의 조언으로 마취간호사 국가자격을 취득하게 되었고, 마취과로 옮겨오면서 지독한 태움에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암튼 이슬은 퇴근하는 대신 응급수술 마취 준비를 진행했다.
수술을 한 시간 앞두고, 혹시나 싶어 이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 공항버스에서 막 내렸어. 킨텍스.
“어디 아픈 데는 없고?”
- 당연히 없지. 엄나~ 왜 이러실까? 미국에 한두 번 갔다 오는 것도 아니고.
“까분다.”
- 엄나는 퇴근 안 해? 어디야?
엄나는 이온이 이슬에게 부르는 특별한 호칭이다.
엄마와 누나의 합성어다.
6살 터울의 누나인 이슬이 실질적으로 이온을 키우고 돌본 것이나 마찬가지.
누나에게 엄마라고 할 순 없으니까.
또 누나를 놀려먹기도 할 겸.
이온은 툭하면 이슬에게 엄나라고 불렀다.
“징그럽게. 하지 말랬지!”
- 그러게 이제 그만 아픈데 물어봐라. 나 예비역이야. 현역 갔다 왔어.
“시끄럽고. 해리 아저씨께는 인사 갔다 왔어?”
- 당연하지. 미국은 묘지에 봉분이 없어서 따로 봐드릴 것도 없어.
“그쪽 식구들은?”
- 내가 죄인이지 뭐.
“그 사람들 독실한 크리스찬이잖아? 근데 무슨 샤머니즘을 그렇게 신경 쓴다니.”
- 모르지 나야.
“대상이 필요하겠지. 자신들의 무신경함을 감춰줄.”
- 그런 이야기는 집에서 이야기 하면 되잖아. 오늘 집에 못 들어와? 또 응급수술 잡혔어?
“응.”
- 무슨 과? 몇 시간짜리?
“큰 수술이야. 내가 중환자실까지 봐야 돼서 내일 퇴근할 때까지 집에 못 가.”
- 고생이 많다. 우리 누나가.
“그러게 속 좀 썩이지 마.”
- 내가 무슨 속을 썩인다고 그래? 외국 나가서 좋은 일 하고 왔고만.“
“밥 잘 챙기고.”
- 기내식 먹어서 별로......
“너 말고. 클로이.”
클로이는 이온 남매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다.
즉 동생 밥 챙겨 먹는 것보다 고양이 밥을 먼저 걱정하는 누나였다.
- 알겠어.
뚝.
이슬은 동생이 잘 알아들었게거니 통화종료를 눌러버렸다.
“......”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군대를 자원입대한 동생.
중학교 때부터 비보이를 하는 걸 누나인 자신이 모를 것이라 여긴 멍청한 동생.
이번 미국 방문이 해리 아저씨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폴 아저씨 체육관에서 트릭커인지 뭔지를 배우러 간 것이란 사실을 누나가 모른다고 여기는 순진한 동생.
이온은 누나의 눈을 피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결코 아니다.
이슬은 동생이 중학교 때부터 비보이 선배들을 쫒아 다녔던 것도, 비보이보다 더 격렬한 익스트림 스포츠에 꽂혀서 몰래 어딘가에서 연습했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는 척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남매만이 공유하는 비밀이 있었으니까.
또 하지 말라고 하면 이온이 삐뚤어질까봐서.
일요일만 되면 독서실 간다고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곤 했던 동생.
아침에 동생이 등교를 하고 나서 방에 들어가 보면 파스냄새가 진동했다.
때로는 한밤중에 끙끙 앓는 소리도 들렸다.
의심의 여지없이 동생이 고통을 참는 소리였다.
동생이 어릴 때부터 과보호 속에서 자란 것도 사실이고.
너무 옴짝달싹 못하고 조여 놓으면 어딘가에서 사단이 나게 되어 있다.
다행히 동생은 철이 일찍 들었다.
집안 내력인지 독종 기질도 있다.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토끼발 부적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무슨 이유인지 동생의 몸이 치료를 잘 받아들인다.
근육통이나 무릎이 까지는 사소한 것부터 감기몸살을 앓아도 다른 이들보다 치료효과가 좋다.
삐거나 다친 근육에 파스 등을 바르면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토끼발을 집에 두고 공군에 입대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동생의 체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토끼발의 효과라고 볼 수밖에.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이슬은 토끼발을 버리거나 태우라고 동생에게 말할 수가 없게 되었다.
토끼발 목걸이가 병을 물리쳐 주거나 저절로 낫게 해주지는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험상은 그랬다.
의학적 조치를 받을 경우에만 효과가 극대화 된다고 할까.
매번 수술방에서 뵙는 친한 교수님들께 여쭤볼 수도 없고.
한때 많은 의학 서적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자신의 수준으로써는 더 파고 들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 플라시보 효과다.
이슬은 동생과 토끼발 목걸이의 기묘한 연관관계를 과학과 샤머니즘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정의했다.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밀검진을 받게 할 수도 없었다.
‘이온이 마루타가 되도록 할 순 없으니깐......’
간난아기때부터 희귀유전병을 진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검사에 시달렸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이슬로서는 더는 비슷한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사실 우연일 수도 있다.
남매가 믿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고 단정 지은 걸 수도 있다.
우려스러운 것이 없다고는 못했다.
체질이 변했다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면역체계의 이상 반응 사이토카인 폭풍 같은 나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간호대학이 아니라 지방대라도 의대를 갔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