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저 사람은 별이 될 거야. (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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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대꾸 없이 안절부절, 울먹울먹 하기만 했다.
이온이 다시 인사부터 대화를 새롭게 시작했다.
“올라.”
“......올라.”
“내 이름은 나이온이야. 이온이라고 부르면 돼. 네 이름은 뭐니?”
“......호세.”
“저 안으로 들어가야 돼?”
호세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엄마가 저 안에서 일해?”
도리도리.
호세가 고개를 흔들었다.
“마릿사.”
“마릿사가 엄마야?”
“아니에요. 누나가 저기로 들어갔어요. 나는 여기서 계속 기다렸는데. 기다렸는데. 누나가.”
호세가 횡설수설했다.
이온은 조심스럽게 호세가 쥐고 있던 그물망을 잡았다.
그물망 안에는 빈 페트와 깡통이 들어있다.
극빈가정의 어린이들은 학교수업이 끝나면 도심을 돌아다니며 페트나 캔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 돈을 벌곤 한다.
호세도 그런 모양이다.
“형이 이걸 빼앗으려고 하는 게 아니야. 잠깐 카운터에 맡기자. 마릿사를 찾을 때까지. 나중에 내가 꼭 다시 돌려줄 게.”
“......!”
호세는 낯선 치노가 빼앗으려는 그물망과 숙소 안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갈등에 휩싸였다.
결국 그물망을 쥐고 있던 고사리 손에 힘을 풀었다.
이온은 그물망을 호스텔 주인에게 맡기려고 했다.
주인은 웬 쓰레기를 맡기나 질색했다.
“남은 김스낵은 모두 로베르또의 것이에요.”
“그렇다면야!”
숙소 주인은 한국의 조미김을 먹어보고 그 맛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걸 아는 이온이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남은 조미김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카니발 기간이기 때문에 숙소는 빈방이 없었다.
아야쿠초의 카니발은 페루 내에서 꽤 유명했다.
우와망가 전역과 해외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비행기 값과 숙박비가 엄청나게 오른다.
그럼에도 빈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이온은 호세의 손을 잡고 숙소 곳곳을 돌아다녔다.
공식적인 행사는 끝났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골목마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춤판이 벌어졌다.
당연히 숙소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해?”
이온의 표정, 목소리 모두 냉정했다.
“뭐 하냐고 묻잖아!”
목소리가 좀 더 차가워졌다.
“보면 몰라?”
워크캠퍼들이 사용하는 방이 아닌 전혀 다른 방에서 하오란이 중학생 정도 나이로 보이는 페루 여자아이와 단 둘이 있었다.
그것만 놓고 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페루 소녀가 하오란의 무릎에 앉아 품에 안기다 시피 하고 있다는 것.
“미성년자와 단 둘이 빈 방에서?”
“뭐가 문젠데?”
당연히 문제 있다.
굳이 성폭력까지 오해하지 않더라도.
페루의 성교 동의 연령은 만 16세다.
법적으로 고등학생이 되면 남녀가 동의하에 성행위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페루는 미성년자 매춘, 인신매매, 십대 미혼모와 그들의 빈곤이 큰 사회문제다.
어려운 처지의 페루 청소년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도울 방법을 궁리해도 모자랄 판이다.
중국의 명문 대학에 다닌다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가 페루의 개방적인 성문화와 낮은 성의식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꼴이 발정 난 짐승과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원나잇 대상이 필요하면 클럽에 가서 헌팅을 하면 된다.
돈을 주고 여자의 성을 사려면 쿠스코 같은 관광도시로 가면 된다.
그런데 자신이 봉사했던 지역의 미성년자를 유혹해 어찌해볼 수작을 부리다니.
“신경 쓰지 마. 우리 각자 아메리칸 스타일로 해.”
쯔시안은 중화사상에 찌든 골통이지만, 이 정도까지 최악은 아니었다.
아메리칸 스타일이 뭔지나 알고 지껄이는지.
이온은 이단옆차기를 날릴 뻔했다.
‘이런 식으로 호박씨를 까다니? 이걸 그냥 줘 패고 깽깞을...... 후우~’
옛날에 열길 물속을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틀린 것 하나 없었다.
사람은 오래 사귀고 볼 일이다.
쯔시안도 아니고 하오란이 이렇게 저질일 줄 누가 알았을까.
“이름이 뭐지?”
이온이 소녀에게 스페인어로 물었다.
“......마릿사.”
“혹시 저 남자가 준 음료나 물을 마신 적 있어?”
도리도리.
마릿사라는 이름의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이온은 일단 안심했다.
페루는 전반적으로 민도가 낮고 성관련 범죄에 대해 무감각한 편이다.
페루 여성의 70% 이상이 수시로 길거리 성희롱을 당하고 있고, 원주민 출신 여성들은 성폭력을 포함한 모든 폭력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돈 받았어?”
마릿사가 머뭇거렸다.
페루를 포함한 남미는 성 개방 풍조와 낙태 및 피임 금지라는 두 개의 충돌하는 가치 속에서 십대 소녀들이 방황하고 있다.
많은 십대들이 미혼모로 전락해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다.
페루는 14~17세 청소년과의 합의에 의한 성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단 18세 미만에게 성적인 목적으로 속임수 및 약물 등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도대체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하오란이 신경질을 부렸다.
방에 들어올 때부터 누나에게 뛰어가려던 호세는 어딘지 험악한 분위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온이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이 느슨해졌다.
이온은 슬쩍 호세의 등을 떠밀었다.
도도도.
호세가 누나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자연스럽게 마릿사가 하오란에게서 떨어졌다.
“마릿사, 알지 못하는 어른 남자 그것도 외국인과 단둘이 방에 오는 것은 좋은 행동이 아니야.”
“......”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끄덕.
마릿사가 순순히 대꾸했다.
“영어로 이야기 해!”
하오란이 다시 한 번 화를 냈다.
“미성년자에 대한 건 더 큰 범죄야.”
“어디서 군자인척 위선을 떨어! 빵즈!”
“위선이 아니라 상식이야. 너희나라에서는 미성년자를 아무렇지 않게 희롱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지 몰라도 다른 나라는 안 그래.”
“페루는 달라. 여긴 미개해서 그런 거 상관없어. 딴 놈들 다 이런다고!”
이온이 하오란에게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하오란 역시 키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올려다 본 이온의 표정은 화난 표정을 간신히 억누르는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이온과 영재가 얼마 전 군대를 전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인 삼인방은 이온이 군악대 출신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어려 보이는 외모로 인해 만만하게 여기지 못하도록.
게다가 아침마다 레이몽과 운동하는 모습도 봤다.
일방적으로 얻어터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상황.
하오란이 물러났다.
“꼭 나쁜 행동을 하려고 하진 않았어. 그리고 나와 이 여자아이가 사랑에 빠졌을 수도 있잖아. 네가 넘겨짚은 거야.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입 다물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이온이 버럭 소리치자, 하오란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마릿사와 호세 역시 잔뜩 주눅이 들어 움츠렸다.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 저 치노와 꼭 데이트를 해야겠다면 내일 축제를 함께 구경하자고 해. 낮에 시내 중심가에서 떳떳하게.”
“네.”
마릿사가 동생 호세의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했다.
“차우, 아스따 루에고(안녕, 나중에 다시 만나요).”
“차우.”
마릿사가 방을 나서려는데, 호세가 버틴다.
“내 물건...... 돌려주세요.”
“그래. 가자.”
이온은 남매와 함께 방을 나왔다.
하오란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숙소 주인에게 그물망을 찾아 호세에게 돌려주었다.
“둘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
마릿사는 계속해서 이온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죄 지은 사람처럼 잔뜩 움츠렸다.
후우.
이온이 한숨을 내쉰 후, 호세의 손을 다시 붙잡았다.
그리고 대로변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마릿사로부터 행선지를 들은 기사는 잠시 고민했다.
“꼬레아에서 왔어요. 택시비는 넉넉히 드릴게요.”
바가지를 쓸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택시는 아야쿠초를 완전히 벗어나 외진마을에 도착했다.
해가 저문 저녁에 불과 1시간 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남매와 시골마을을 걷자니 공연히 짜증이 치솟았다.
궁시렁.
속으로 하오란에 대해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퍼부었다.
“할머니!”
호세가 이온의 손을 뿌리치고 집 앞에 나와 있는 노파에게 달려가 안겼다.
낯이 익었다.
시장에서 토끼발 목걸이에 대해 아는 척을 했던 노파다.
그와의 인연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야쿠초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앞길이 까마득했기 때문이다.
“오늘 돌아가긴 힘들 거야. 너무 시간이 늦어서.”
“......”
남매의 집에서 하루를 묵을 수밖에 없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궁벽한 곳이다.
마당에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보이는 펌프가 있지만, 작동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들이 입던 옷을 내어줄 테니, 먼저 씻도록 해.”
“물이 있습니까?”
“카니발 때문에 단수될까봐 미리 물을 받아 두었어요.”
마릿사가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오며 말했다.
이온이 마릿사를 따라가 보니 커다란 양철통 가득이 물이 차있었다.
많은 물을 쓸 순 없다.
따라서 페인트만 씻어낼 정도의 물을 쓰기로 했다.
등목도 하지 못하고, 천에 물을 묻혀서 몸을 닦았다.
물기를 닦아내는데, 노파가 토끼발 목걸이를 가지고 집 안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왜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댑니까!”
이온이 크게 화를 냈다.
“그냥 보기만 했어. 탐을 내 훔치려고 한 것이 아니야.”
“......”
할머니를 따라 나온 마릿사가 옷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목 언저리에서 토끼발 목걸이를 꺼내 보여줬다.
그것으로 모자라 동생 호세가 걸고 있는 토끼발 목걸이도 보여줬다.
“혹시 샤먼이십니까?”
“아니. 페루비안 늙은 여자. 아직 50살도 되지 않았으니 외국인의 기준에서는 늙은 여자라고 하기도 이상하겠군.”
“......?”
칠순을 훌쩍 넘었을 것 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데, 환갑도 지나지 않았단다.
이온은 얼마나 고생을 심하게 했으면 저리 늙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릿사가 옷을 한 벌 이온에게 내밀었다.
낡았지만 깨끗한 옷이다.
“아빠가 입었던 옷이에요. 조금 작을 테지만 이거라도......”
“아빠는 언제 오셔......?”
“엄마와 스페인으로 돈 벌어오겠다며 3년 전에 떠났어요. 일 년 동안 소식이 없어요......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만 하고.”
이온은 마릿사가 건넨 옷으로 갈아입었다.
할머니가 저녁이라며 삶은 감자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내왔다.
“제가 물을 많이 쓰면 어쩌려고 그러셨습니까?”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고 하더군.”
“......?”
“우리가 이렇게 지낸다고 해서 문명과 완전히 동떨어져 사는 건 아니야. 나도 라디오 뉴스를 듣고 KPOP을 들어.”
“......?”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보면 KPOP 노래를 마음껏 들을 수가 있지. 그리고 심심해서 라디오 방송을 자주 들어.”
“아이들의 토끼발은 직접 만드셨습니까?”
“그렇게 어렵진 않으니까.”
말 대로다.
어렵진 않다.
다만 인디언 전통방식의 토끼발 제작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남매가 몸에 지닌 목걸이는 페루 인디언 원주민의 방식으로 제작된 토끼발이었다.
부적으로써 효과가 있든 없든.
정통방식으로 제작된 진짜 토끼발이었다.
이온은 마릿사 가족이 내어준 방으로 들어갔다.
혹시 노파가 토끼발을 바꿔치기 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무슨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폈다.
20년 가까이 몸에 지니고 있던 토끼발이다.
조금의 이상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기분 탓인가......?’
윤기도 없고, 색도 바래고, 듬성듬성 털이 빠지기까지 한 토끼발.
다소 꼬질꼬질했던 털에 살짝 윤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온은 잠이 오질 않아 집 밖으로 나왔다.
페루의 원주민 여자아이들은 대체로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고 수동적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라서 그렇다.
“치노가 내가 자신의 마음에 들면 자기 나라로 데려가 줄 수도 있다고 했대요.”
이온의 주변을 매돌던 마릿사가 어렵사리 말을 걸었다.
“그 놈은 스페인어를 할 줄 몰라.”
“외국인을 상대 하는 여행가이드가 그랬어요.”
“......마릿사?”
“네?”
“몇 살이야. 정확하게?”
“15살이에요.”
“신데렐라 스토리를 믿어? 아니 그런 판타지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
“한국 드라마를 보면 저 같은 소녀도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요.”
“그건 허구의 이야기,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잖아. 그걸 구분 못할 정도로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데?”
“.......”
“현실은 말이야. 부지런하고 용감하고 똑똑한 여성이 억만장자를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억만 장자의 파티에 초대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고. 교양과 품위가 있어야 파티에서 억만 장자를 사랑에 빠트리게 할 수 있어. 이 세상은 신데렐라처럼 착해 빠져서 아무 것도 안하면서 갑자기 행운을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아.“
“잔인하세요.”
“내가 말한 것이 현실인 걸 어떻게 해.”
“그러면 나와 동생 그리고 할머니는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너와 호세에게 달렸지.”
“이곳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왜 없어?”
“......”
“쿠스코로 가서 몸을 팔아야 할 까요? 안데스산맥 깊숙이 들어가 코카인재배 농장에서 일을 해야 할까요? 저를 졸졸 따라다니는 카를로스의 아이를 가져야 할까요?”
“여기서 거리가 먼 곳에 살고 계시지만, 한국인 선생님을 소개시켜 줄게.”
“......?”
“그분에게 부탁하면 네게 한글을 알려줄 거야.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외국어를 가르치면 영어도 열심히 배워. 네가 공부로 좋은 결과를 보일 수 있다면 나와 친구들이 네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 줄게.”
“정말이요? 그러면 한국에도 갈 수 있을까요?”
“말했잖아. 네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가에 따라 달렸다고.”
“정말 중국이 미국처럼 기회의 나라에요?”
“그런 말 듣지 못했는데?”
코리아 드림은 들어봤어도 차이나 드림은 못 들어본 것 같다.
“혹시 코리아 드림을 말하는 거야? 한국은 차별이 심한 편이야. 미국이나 유럽 정도일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나라중 하나가 한국이 아닐까 싶다.”
“......”
“중국 역시 외국인이 특히 가난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이 살아가기에 그렇게 좋은 환경은 아닐 거야.”
“이온은 페루에 다시 올 건가요?”
“알 수 없지.”
마릿사가 매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노파가 밤이 늦었다며 마릿사를 방으로 불렀다.
- 할머니......
- 응?
- 저 사람은 다시 이곳을 찾아와 줄까?
- 언제가 될지 알 순 없지만, 다시 죽음의 모퉁이를 찾아 올 거란다.
- 태양신께서 그를 안데스로 이끌 테니깐?
- 글쎄다. 별들이 이곳으로 향하는 길을 밝혀줄지도......
- 난 그가 안데스를 비추는 별이 되었으면 좋겠어. 할머니, 난 그가 봉사하는 걸 멀리서 지켜본 적이 있어. 아이들이 그에게 수업을 받는 걸 보고 너무 부러웠어. 나도 용기를 내볼 걸. 그래도 이렇게 대화를 나눠보니까 좋아.
슥슥.
할머니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누군가 그 사람을 보고 닮고 싶게 만든다면 그건 정말 행복한 일인 것 같아. 나도 그렇게 되고 싶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내 이웃들에게도 똑같이 나눠준다면 정말 좋을 거야. 난 저 사람처럼 외국인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이니깐.
- 그는 별이 될 거야. 마릿사. 지켜보자꾸나.
이온은 할머니와 손녀가 정겹게 나눈 대화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이 사용한 언어가 케추아어였기 때문이다.
남매가 잠자리에 드는 걸 확인한 할머니가 마당으로 나왔다.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온에게 다가왔다.
“어린 손녀가 불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어른이 교육을 시켜야 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은가.”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말이었다.
“결과적으로 마릿사와 호세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지.”
“샤먼이 진짜 아닙니까?”
“샤먼을 믿나? 카톨릭의 나라라네. 잉카의 후예들도 더 이상 태양신을 믿지 않아.”
“......”
“아야쿠초에서 보낸 시간은 가치가 있던가?”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는 항상 배울 것이 있더라고요. 이번에도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자와 바보가 한 달 동안 함께 여행을 했는데 현자는 너무도 어이없는 바보를 보며 많은 걸 깨우쳤고 반면에 바보는 행여 자기가 바보인 것이 들킬 것만 걱정하면서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배운 게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지.”
“......!”
“왜? 촌구석에 사는 무지렁이 노인네가 하는 말이라 하찮게 들려?”
“아닙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마치 워크캠프에 중국인 바보 두 명을 빗대서 이야기 하는 것 같지 않나.
본인은 샤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온이 보기에 뭔가 특별한 구석이 많은 할머니였다.
“부에나 노체(안녕히 주무세요).”
- 별들과 함께 하는 좋은 밤이 되기를......
케추아어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이 잠든 방으로 사라지는 할머니였다.
얼떨결에 페루 현지 원주민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됐다.
영재 남매와 동료 캠퍼들이 걱정할 것이 뻔했지만.
어떻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다.
하오란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이런 것도 다 추억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워크캠프 참가자 중 한명이 현지 미성년자를 강간했다는 오점을 남기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겨야지 어쩌겠어.'
이상한 지점에서 쓸데없이 긍정적인 이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