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19화 (19/127)

〈 19화 〉 친구 따라 강남 간다.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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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서구의 한 아파트단지.

군 전역 후 이온이 거주하게 된 곳이다.

입대 전에는 서울에서 살았다.

군복무 중 간호사인 이슬이 일산의 대학병원으로 이직을 하게 됐고, 직장과 가까운 지역에 집을 마련하다보니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전역한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온은 이 아파트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제대하자마자 알바를 빡세게 해서 그런가......?’

이온은 카나한 윈터 게더링과 페루 워크캠프에 참여하기 위해서 항공권 및 체류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군생활 동안 모은 월급으로는 턱없이 모자랐기에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새로운 집에서 잠깐 눈만 붙일 뿐.

정 붙일 시간이 없었다.

띠띠띠띠......!

디지털도어락에 길고 긴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을 듣고 현관으로 나온 암컷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슬렁어슬렁.

녀석은 소 닭 보듯 이온을 한 번 보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암컷 고양이의 이름은 클로이.

낯설기만 한 이 집에서 그나마 정이 가는 녀석.

품종은 모른다.

주는 대로 잘 먹고, 소변과 변도 잘 가려서 싸고, 무럭무럭 잘 먹고 잘 크고 있다.

원래도 얌전했던 녀석인데, 중성화 수술을 하면서 많이 변했다.

독특한 울음소리도 거의 없고, 더욱 차분해졌다.

“얀마. 오랜만에 봤으면서 그냥 생 까냐?”

이온이 신발을 벗으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걸 알아들은 모양이다.

클로이가 사뿐사뿐 걸어와서는 이온의 다리에 얼굴을 한 번 비볐다.

‘옛다, 관심 받아라.’

그런 투다.

이온은 그런 클로이를 한번 쓰다듬어 준 후 거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어루만져 준다.

클로이가 춥지 않도록 누나가 보일러를 틀어놓은 걸까?

‘짠순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이온은 짊어지고 있던 여행용 가방을 내려놓고 실내온도를 확인했다.

동생이 외국에서 돌아온다고, 출근하면서 보일러를 틀어놓고 간 모양이다.

이온이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의자는 달랑 두 개.

신혼집은 절대 아니다.

전반적으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이슬이 짠순이라서 인테리어나 가구에 돈을 아낀 것 뿐.

그래도 냉장고는 대용량.

냉장고에는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슬이 써놓은 메모다.

잔소리다.

그것도 매일 바뀌는 잔소리.

덕지덕지 붙어 있는 메모들은 이미 두 달도 한 참 지난 것들이다.

무신경한 누나가 이 메모들을 떼어낼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는 뜻이다.

물론 마취과간호사 일이 무지 힘들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것을 챙길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꿀꺽꿀꺽.

이온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목부터 축였다.

그리고 고양이 사료를 챙겼다.

거실 소파에 웅크리고 있던 클로이가 사료를 들고 오는 이온을 가만히 응시한다.

“나도 없었고, 그 동안 하루 종일 혼자 뭐 하고 놀았냐?”

클로이 전용 식기에 사료를 따라주며 물었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저 사료 먹는 소리만 들릴 뿐.

“제대로 보필할 자신 없으면 들이지나 말지. 집사가 아주 게을러가지고 말이야. 인간적으로 밥은 챙겨줘야 할 거 아냐? 그치?”

이온이 열심히 식사 중인 클로이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후, 여행용 배낭을 챙겨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주방 식탁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문자 메시지 도착 알림이다.

[Web 발신]

한국액션아카데미 25기수 캠프 지원자 면접 일정 안내.

이온은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때문에 문자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이온은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꿈도 꿨다.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머리에 황금왕관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우 황홀한 스토리전개였다.

“야! 나이온! 일어나 봐!”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만 아니면 다시 꿈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텐데.

“내버려 둬! 더 잘 거야!”

“일어나래두!”

기차화통이라고 삶아먹었는지 발성이 예사롭지 않다.

누나의 목소리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매우 낯이 익다.

벌떡!

이온이 침대를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아침 댓바람부터 자신을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여자가 이불을 빼앗기 위해 낑낑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한국 여성 평균 신장을 훌쩍 넘을 정도로 제법 키가 컸지만, 약간 통통한 편이다.

기본 골격도 서구적이다.

그녀는 이온과 매우 친하고 가까운 여자 사람이다.

세 명의 여자 사람 친구 중 한 명.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최단비다.

“네가 왜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왔어?”

“문 열고 들어왔다.”

“비밀번호를 알아?”

“언니가 알려줬지.”

확.

이온이 이불을 잡아당겼다.

이불을 붙잡고 있던 최단비가 침대로 몸이 쏠리며 침대 모서리에 무릎이 부딪쳤다.

“아야!”

최단비가 방정맞게 무릎을 비벼대거나 말거나.

이온이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이 시간에, 허락도 없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시차적응도 안 된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거냐? 최단비.”

“해 봐.”

“......뭘?”

“님이 잘하는 거.”

“......?”

“선한 마음으로 날 칭찬해주는 일.”

“장난 똥 싸는 소리 하지 말고. 퍼뜩 이실직고 하렷다!”

“너 없는 동안 클로이는 누가 돌 봐? 이슬 언니가 갑자기 수술 잡혀서 집에 안 들어 올 땐. 나밖에 더 있겠어?”

화장기 없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고 있는 버킷햇 일명 벙거지 모자를 슬쩍 추켜올리며 잔뜩 우쭐대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최단비였다.

그녀는 얼굴에 의료기술의 힘을 사용한 적이 없다.

이온이 알기에는 그랬다.

계란형의 한국 미인상은 결코 아니다.

기본적으로 얼굴이 넓적하니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다.

전반적으로 부리부리한 인상이라서 방송에서 선호할 스타일의 외모는 아니었다.

“영재하고 어제 돌아오는 거 몰랐냐?”

“아참!”

최단비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한 번 치고 말을 돌렸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됐어?”

“또 뭐, 뭐?”

이온의 음성이 짜증이 짙게 묻어나왔다.

반면에 단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우 궁금하다는 표정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문자 안 왔어?”

“무슨 문자?”

“오디션 안내 문자.”

“무슨 오디션?”

“한국액션아카데미.”

“다단계 취직했냐? 그 정도로 먹고 살기 힘들어? 뮤지컬배우 때려치우고 정상적인 직장 알아봐.”

“자꾸 딴소리 하지 말고 쫌! 합격했어? 떨어졌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니까.”

“한국액션아카데미 올해 기수생 모집 서류 접수했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영지 통해서 키하고 몸무게 물어봤잖아. 이제 와서 왜 딴 소리야.”

이온은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기에.

“문자 확인 안 했어?”

“문자고 뭐고, 어제 오자마자 씻고 바로 뻗었어.”

“빨랑, 문자 확인해 봐.”

“내 폰 어디 있는데?”

“그걸 네가 알지 내가 아냐!”

“고만 좀 떽떽거려. 아침부터 정신 사납게......”

이온이 침대를 빠져나와 거실로 향하자, 단비가 그 뒤를 졸졸 쫒아갔다.

스마트폰을 주방 식탁에서 찾았다.

톡과 문자가 많이 와 있었다.

먼저 톡부터 확인했다.

“어떻게 됐어?”

“한 따까리 할까? 강제로 겸손 한 번 당해볼래? 가만 좀 있어.”

최단비가 입을 꾹 다물고 초조하게 이온의 표정을 살폈다.

“여기 문자 뭐 하나 와 있는데, 이거 말하는 거야?”

이온이 단비에게 문자를 보내줬다.

“오예! 추카추카추카!”

“......?”

오두방정을 떠는 단비를 무시하고, 이온이 거실 소파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클로이가 조용히 다가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온이 클로이를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한국액션아카데미라는 단체에서 발송한  안내문자를 찬찬히 읽어봤다.

그런 후 검색창을 열어 그 단체가 뭐하는 곳인가 알아봤다.

한국영화계에서 제일 유명한 스턴트 단체이자, 스턴트맨 양성소 같은 곳이다.

이온은 중학교 때부터 공부에만 몰두하기 위해 게임, TV, 영화 같은 모든 것과 담을 쌓고 살았다.

또한 없는 시간까지 쪼개서 비보잉과 트릭킹을 연습해야 했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잘 몰랐다.

“혹시 영재도 붙었대?”

“응. 나두.”

단비가 이온의 손길을 즐기고 있던 클로이를 품에 안았다.

클로이는 저항하지 않았다.

며칠 밥을 챙겨줬다고, 식구도 아닌 단비에게 고분고분한 녀석.

“운동하고 담을 쌓고 사는 주제 무슨 스턴트야?”

“나도 운동 열심히 하고 있거든!”

“무슨 운동?”

“불매운동.”

“......장하다. 최단비.”

이온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단비는 찔리는 것이 있어 클로이와 눈을 맞췄다.

“원래 혼자 지원하려고 했어. 근데 무섭더라고.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했던 선배님께 여쭤보니까 스턴트맨이 훈련도 빡세고 똥군기 같은 것도 있다고 하시더라.”

“뮤지컬 배우 하는데 스턴트가 도움이 돼?”

“안 해봐서 몰라. 근데 옵션이 하나 더 생기는 거잖아.”

이온은 취준생이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했다.

“오디션에 합격한다는 보장은 있고?”

“넌 준비된 예비 스턴트맨이니까 상관없고.”

“어딜 봐서?”

“대부가 전설적인 스턴트맨이셨는데 그 피가 어디 가겠냐?”

“대부하고 난 피가 하나도 안 섞였는데?”

“닥쳐!”

“그렇다고 치고.”

“영재는 군대에서 태권도 배웠다니까 면접만 잘 보면 될 것 같고. 나는 연극수업 받으면서 신체훈련을 배웠으니까 그걸 어필해야지.”

“지금 대충 기사나 블로그 훑어봐도 무술이 몇 십 단 되는 사람들이 주로 지원하는 모양인데? 우리 같은 격알못이 뽑히겠냐?”

“스턴트와 액션배우 두 개로 나눠서 뽑아.”

“두 분야가 다른 거야?”

“충무로에서 스턴트맨을 액션배우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액션캠프 기수 훈련프로그램에서는 전문 스턴트맨과 액션연기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 그렇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뽑더라. 내 경우처럼 전문 스턴트우먼이 될 생각까지는 없고, 액션연기를 잘 소화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싶은 배우들이 지원을 하는 경우도 많대.”

“6개월이면......”

이온이 훈련기간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학기 복학 전까지 훈련기간이 딱 떨어지기는 한다.

문제는 등록금과 해외연수 및 봉사를 나가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과연 그것과 병행할 수 있겠냐는 것.

그 전에 무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자신들이 과연 뽑힐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만.

“일단 6개월 간 훈련비는 공짜야. 스쿠버훈련이나 승마는 따로 조금 돈을 내야하긴 하나봐.”

최단비가 사전지식을 한보따리 풀어놓았다.

“주 5일. 오후 시간을 전부 할애해야 한다는 건데......”

“밑져야 본전이 아닐까?”

“밑지는 게 밑지는 거지 어디 본전이 있어? 너나 나한테 여섯 달은 버려도 되는 시간이 아니잖아.”

“그건 그러네. 넌 안 가도 되는 군대도 다녀왔으니까.”

군대 다녀온 것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 가산점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시끌시끌하지만, 그걸 바란 것도 아니다.

고아라고 해서 현역에서 자동으로 면제되는 것이 그냥 싫었을 뿐.

무엇보다 군악대 생활을 하면서 뛰어난 비보이 선후임들의 코칭을 받을 수 있었고, 트릭킹도 좀 더 발전할 수 있었으니까.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는 전혀 없었다.

“넌 어떻게 버티려고?”

단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후우. 어떻게 된 게 연극배우 수입이 일반 군인 연봉보다 적냐?”

“군대 가 그럼.”

“군악대에서 여군도 뽑지?”

“당연히 뽑지. 근데 네 보컬실력으론 어림도 없을 걸.”

“영재는 물류 알바 한다던데? 너도 같이 할 거야?”

“설마 부천 냉동창고 야간조 할 생각이래?”

“그런가봐.”

“영재 이 자식이, 나이 먹는 건 생각 안 하고.”

이러니 저리니 해도 몸으로 때우는 아르바이트가 급여가 좀 세다.

단기간에 큰돈을 마련하려면 건강을 희생할 수밖에.

“엑스트라 알바는 어때?”

“얼마 주는데?”

“풀기(풀기본)로 6만 9천원 정도였던가, 아마 그럴걸?”

"주말에만 골라서 일을 할 수 있어?“

“안 돼. 일요일에는 촬영을 안 하니까.”

“과외나 다시 알아 볼란다. 입대하기 전에 가르쳤던 애들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연락해 보고, 학교 과외사이트도 들어가 보고. 알바몰도 훑고. 그래야지.”

한국대생만 사용하는 과외사이트가 있기 하다.

건이 많이 올라오지도 않고 잘 구해지지도 않는다.

알바앱 과외 구인도 생각보다 별로다.

이온은 다른 대학은 어떤지 알지 못했다.

한국대의 경우 주로 과 톡방이나 동아리 톡방에 과외가 올라오는 경우가 많고, 거기서 토스 받거나 낚아채는 편이다.

“넌 시급 얼마 받냐?”

“입대하기 전 반수생 가르쳤을 때, 5만 원. 중고생은 4~4.5 정도.”

“역시 한국대! 누군 입시연기 레슨 3.5 받는데.”

“지금 후회하는 중이야. 너무 세게 잡아놔서 시급을 낮출 수가 없어.”

“한국대생은 다 15씩 받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나 봐? 문과라서 그런가?”

“15 이상 받는 애들 몇 명 안 될 걸? 그런 애들은 과고 출신이었던가 그래. 과고 애들 가르칠 때 나름 족보도 있고 하니까 프리미엄이 좀 붙겠지.”

“내가 영어 과외 알아봐 줄까? 과외 알바 잡으면 나랑 액션캠프 같이 다닐래?”

“있어?”

“연기 레슨 받는 애들 중에 찾아보면 두 명 정도 가능할 것 같아.”

“시급은 레고 가능해. 깎아줄 수 있어.”

“그럼 액션캠프 오디션 같이 가는 거다?”

“오디션 보는 게 뭐 어렵겠어. 마샬아츠센터란 곳도 파주에 있더구만.”

“그럼 영재까지 확인해보구, 픽업할 시간 잡는다?”

“그러든지.”

이온은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하루 반나절 오디션을 보는 것이 번거로울 것도 없고, 각종 무술이나 격투기 수련자들의 시연을 눈앞에서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을 테니까.

오디션이든 면접이든.

다양하게 경험해봐서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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