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저 사람은 별이 될 거야.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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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은 남매와 함께 현지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선생님 가정을 방문했다.
이미 2주째 주말에 저녁초대를 받아 당시에 푸짐하게 대접을 받은 바 있었다.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들렀다.
“아이들이 세뇨르 이오니소스라고 부른다면서요?“
이온이 영재를 째려봤다.
그 별명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영재다.
세뇨르는 영어의 Sir에 해당하는 호칭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포도주와 풍요, 다산, 축제 또 죽음과 재생의 신 디오니소스(Dionȳsos)에서 말장난식으로 바꿔 부른 별명이 이오니소스였다.
디오이소스의 상징 동물에는 사자가 있다.
수많은 미술작품 속에서 미소년 혹은 미남으로 묘사되곤 한다.
미국의 지인들이 이온을 부르는 애칭이 레오.
말장난일 뿐이지만, 이래저래 이온에게도 썩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 할 수 있다.
이온 입장에서도 ‘나이롱 뽕’ ‘게토레기’ 등의 유치찬란한 별명보단 싫진 않았다.
참고로 디오니소스는 연극의 신이기도 하다.
“우리민족이 술을 좋아하고 파티를 매우 좋아하긴 해요. 썩 잘 어울리는 별명을 아이들이 붙여 줬네요. 이온 학생이 춤을 또 그렇게 잘 춘다면서요?”
이온이 어색하게 웃기만 하자 영지가 대신 나섰다.
“오빠 즐겨, 그냥!”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없어질 지경이다. 즐기긴 뭘 즐겨?”
“공군 군악대 생활하면서 공연 많이 했을 거 아냐. 그렇게 따지면 오빠도 한때 준연예인이나 마찬가지였지.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위문공연을 수십 번 다녔어도 이런 대접 받아본 적이 없어.”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해.”
“연습?”
“아휴~ 오빠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이 그렇게 없냐?”
“뭔 소리야?”
“최고 학벌에, 순둥순둥한 얼굴에, 우월한 기럭지에, 크랙컨지 비보인지...... 오빠가 해외봉사자 스펙 기준을 확 올려놓은 거 못 느껴?”
“학벌은 이번에 유럽에서 온 애들이 더 빵빵한데? 외모는 바스티앙이 더 잘랐고. 비보이로서도 난 내세울 게 없고. 뭐가 기준을 올렸다는 거야?”
“한국인 기준 말이야 새꺄! 이걸 확!”
가만히 듣고만 있던 영재가 심술을 부렸다.
“됐고. 공연히 넷튜브나 SNS에 얼굴 팔려서 귀찮아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 아냐? 기획사 담당자가 보고 픽업할지.”
“24살 예비역 늙다리를 어떤 기획사가 뽑아 가냐?”
“요새는 아이돌 말고도 전문 백댄서도 따로 뽑는다더라.”
“난 KPOP은 해 본 적 없어. 달라 장르가.”
“경험 삼아서 트릭커 대회 나갈 거라며?”
이온은 카나한 게더링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지역 대회 규모 마샬 아츠 트릭킹에 도전 해 볼 의향이 있었다.
“입상할 정도는 아닐 걸. 한국이 태권도와 합기도 종주국이야. 날고 기는 애들 널렸어.”
“내가 널 모르냐? 출전하기로 마음먹으면 미친놈처럼 그것만 매달릴 거면서. 어디서 겸손을 떨고 지랄이야.”
“쓸데없는 말 하지 마. 괜히 말이 씨가 돼.”
“말이 씨가 되면 좋지. 대회 나가서 입상해도 좋은 거고, 기획사에 픽업되는 것도 좋은 거고, 유명해지는 것도 좋은 거고.”
“괜히 신상 까발려져서 사는 것만 피곤해져.”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국인 선생님의 남편이 술병을 집어 들었다.
아야쿠초에서 정말 구하기 힘든 한국의 소주다.
“이온 학생이 술의 신으로 불린다고? 그럼 술 한 잔 받아야지.”
이온은 술을 잘 못한다.
맥주 한 병 반 정도가 최대 주량.
그럼에도 타지에서 만난 어른인지라 사양하지 않고 술을 받았다.
“이온 학생이 한국대 다닌다고 했지?”
“예.”
“브레이크 댄스까지 병행하면서 공부를 어떻게 했기에 한국대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공부는 엉덩이, 체력, 인내력으로 하는 거니까요. 비보잉을 잘하려면 체력도 좋아야 하고, 집중력도 중요해서 하다보니까 공부에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인기가 많았겠어.”
“공부하고 비보이 하느라 바빠서 사실 친구들과 안 어울렸어요.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여선생님이 남편에게 눈총을 줬다.
쓸데없는 걸 묻고 그러냐는 듯.
“한 달 간 아야쿠초에 머물러 보니 어떻던가요?”
여선생님의 물음에 영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자 아이들이 왜 그렇게 수줍음을 많이 타고 소극적인지. 수줍어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까지 수줍어하는 아이들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가르쳐줄 시간도, 능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우리가 보기에는 답답하고 안타깝죠. 남미가 그래요. 특히 원주민이면서 여성인 경우에는 인권이라는 것이 없다시피 하니까.”
“학생들이 수업 내용에 따라 지루해하기도 하고 재밌어하기도 하지만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한국 수업을 듣기위해 학교에 온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어를 가르쳐주러 온 봉사자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즐거워하고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무력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적극적인 아이들도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영재가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아야쿠초 중심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외곽 지역 사정이 좋지 못해요. 산간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백인들이 모든 걸 다 가져 가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정부의 부패도 큰 문제에요. 그래서 누군가 학교와 교실을 보수하고 책걸상에 페인트칠하는 것을 도와야하고 제 2외국어 선생님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영어 그리고 영어 외의 언어를 가르쳐주어야하죠.”
말을 마친 여선생님이 자신 앞에 놓인 소주를 반 정도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아내 대신 남편이 말을 이었다.
“자네들은 한 번 머물렀다 간다고 봉사활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여기 아이들에게 외국인 청년들을 만나서 외국어를 배우고 그들과 외국 게임을 하며 어울린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야. 아이들이 커 가면서 인생설계 하는데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지.”
남편의 빈 잔을 채워주며 여선생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자랑스러워요.”
“저희가 한 게 있나요? KPOP 스타들이나 영화·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이 잘 한 거지. 그 덕을 많이 봤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또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각자 위치에서 애국하는 거잖아요. 젊으니까 이렇게 전 세계를 돌아다며 어려운 처지에 놓은 이들도 돕고, 그 속에서 자신도 성장하는 거잖아요. 나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더 발전할 것 같아요.”
그 동안 세계에 심어진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하진 않을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나태하거나 게을러진다면 그 모습으로 인해서 한국인 전체의 모습을 왜곡되게 볼까라는 우려 때문에 다들 정말 열심히 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관광하고, 열심히 친구를 사귀었다.
사소한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가 남는 워크캠프는 아니었다.
“솔직히 아시아 사람 중에서 한국인이 어딘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어. 선진국이라고 유세 떠는 일본인들과 달리 서양인들에 대해서도 당당하고.”
“......”
술이 얼큰해져서 남편의 말이 많아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오랜만에 한국 사람들과 마주하다보니 대화가 고파졌을지도.
“내가 비록 오랜 살아보진 않았지만. 매 순간순간 우리나라가 힘들었어도 돌아보면 언제나 과거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해. 여기 사람들은 풍요를 단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욕심도 없고 유유자적하거든. 그런데 우리 한국도 사실 과거에는 매우 없이 살았잖아. 그렇게 제로 베이스에서 하나하나 일구었기 때문일까. 매일매일 발전하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몇 십 년을 살아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변화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쉽게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자네 같은 젊은 사람들을 보면 앞으로의 세상도 별 무리 없이 잘 해쳐나갈 것 같아.”
한국 안에 있으면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 하면서 훈계하는 어른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해외에서 마주치는 교포 어른들은 ‘너희들이 자랑스럽다’라고 이야기 해 준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는지.
‘칭찬을 자꾸 해줘야. 봉사하러 더 자주 올 것 같아서 그런 걸까......?’
영지는 엉뚱한 추측을 해봤다.
“나는 남편과 동남아시아의 오지에서 봉사도 해보고 아프리카도 가봤어요.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몰려다는 모습이나 그들이 현지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는지도 봐 왔고요. 중국인들은 자기들만 알아요. 그건 중국의 젊은 애들도 마찬가지였어요. 함께 번영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들 같아요. 그럴 때마다 나와 남편은 이 말을 떠올렸어요. 성을 쌓는 자 망 할 것이요 길을 여는 자 흥 할 것이다. 주제 넘는 조언일지 모르지만, 난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 청년들이 길을 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충분히 그럴 거라 믿고 있고.”
말을 마친 여선생님이 소주잔을 들어올렸다.
크으.
술맛이 유독 쓰게 느껴졌다.
여선생님의 기대 때문에?
아니다.
엉뚱한 느낌이지만, 눈앞에 오리지널 부대찌개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소주가 안주를 부르고, 안주가 소주를 부르는.
그런 뫼비우스의 띠 같은 술자리였기에.
여기가 한국인지 페루인지 모를 정도로 제대로 된 한상차림.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로 정말 한 상을 푸짐하게 준비해주셨다.
덕분에 배터지게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취했다.
소주가 아닌 국뽕에 취해 잠이 들었다.
✻ ✻ ✻
온 도시가 축제다.
모든 주민들이 춤을 추고 노래했다,
그리고 술, 술 그리고 또 술이다.
삼 일간 축제가 이어진다.
토요일 전야행사가 끝나면 일요일과 월요일에 본격적인 축제가 펼쳐지는데, 마지막 날인 월요일이 진짜 메인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오 마이 가앗~”
벨기에 두 여학생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청난 장관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인구 17만 도시 아야쿠초의 모든 시민이 퍼레이드에 참여한 듯 온 거리와 골목마다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런 축제는 보기만 해도 행운인데......!”
“우린 무려 참가까지 하지. 하하하.”
워크캠퍼들은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우와망가 학생봉사단과 함께 페루 전통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에 참가하기로 했다.
물론 퍼레이드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전통 춤을 출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각 팀의 현지 리더들이 이틀 전부터 속성으로 자신의 팀원들에게 춤 연습을 시켜줬다.
맥스웰과 샤오엔 그리고 중국인 두 녀석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전통 옷과 망토를 두르고 들뜬 마음으로 축제 현장에 모였다.
모두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큰 축제다.
아야쿠초 시민뿐만 아니라, 페루 내국인 여행객들 그리고 외국인들도 거리로 나와서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꼬레아노~”
“Ci~"
많은 시민들이 한국인 삼인방을 알아봤다.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전통 춤을 추며 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기특한 모양인지 열렬한 성원을 보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많은 이들이 워크캠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말이 씨가 됐어!”
이온이 무슨 헛소린가 해서 영재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 졸라 유명해졌잖아. 하하하!”
“우린 아야쿠초의 한류스타야!”
영지까지 미쳐서 날 뛴다.
이온은 내심 ‘철없는 것들’이라며 혀를 차고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꼬레아노! 이라 와서 한 잔 해!”
축제다 보니 술이 빠질 수가 없다.
춤을 추는 워크캠프 이방인들에게 현지인들이 계속해서 맥주를 건네고, 보드카를 건네고, 와인을 건넸다.
영재는 현지인들이 주는 술을 거절하지 않고 넙죽넙죽 받아마셨다.
끄억!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세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영재의 취기가 절정을 달렸다.
그리고 삼십 분 정도 사라졌다가 다시 일행에게 돌아왔다.
멀쩡해진 상태로.
이후 퍼레이드가 종료된 두 시간 후까지 영재는 계속해서 현지인들이 술을 건네는 족족 받아 마셨다.
온 도시가 함께 하는 대규모 축제를 또 언제 경험해 볼까.
이온을 포함한 캠퍼 모두에게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워크캠퍼의 춤 퍼레이드는 다섯 시간이 흐르고 끝났다.
그들의 퍼레이드는 끝났지만, 그 뒤로도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끝내준다!”
“최고야!”
캠퍼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수고했다고 포옹했다.
영지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어디서 또 이런 좋은 경험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셔!”
“먹고 죽자!”
“죽긴 왜 죽어. 살아남아서 이 맛있는 술을 모두 없애버려야지!”
퍼레이드가 끝났다고 축제가 끝난 것이 아니다.
본격적인 난장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물풍선 던지기와 페인트 칠하기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서로에게 페인트를 칠하고 물풍선을 던지고 물총을 쏘아대는 날.
따라서 워크캠퍼들은 얼른 전통의상을 벗고, 낡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성페인트를 사용하는데 아주 가끔 짓궂은 이들이 유성페인트를 쓰기도 해.”
파올로가 비싸고 예쁜 옷이나 일부러 코스튬 플레이를 할 필요가 없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예쁘고 개성 넘치는 코스튬을 입으려던 여자 삼인방은 반신반의 했지만, 결국 워크캠프 리더들의 충고에 따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말을 듣길 백번천번 잘 한 것이 됐다.
숙소를 빠져나오자마자 온갖 공격이 시작됐다.
한국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숙소 주변에서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던 것.
“이건 반칙이잖아!”
바스티앙이 비명 가까운 악다구니를 쓴 후에야 녀석들이 전략적 후퇴를 감행했다.
이미 본 게임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반쯤 패잔병 몰골이 되버렸다.
캠퍼들은 전열을 수습해 최종 집결지를 향해 용감하게 전진했다.
하지만.
“여기 이오니소스 선생님이 계신다!”
캠퍼들 가운데 유독 집중적인 공격을 당한 것은 이온.
“너는 내 수업에 들어오지도 않았잖아! 살살 해!”
“순순히 내 페인트붓에 얼굴을 맡기세요!”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서 신나게 놀았다.
가는 곳마다 워크캠퍼들은 현지 학생들의 집중 포화를 당했다.
도망갈 수도 없었다.
“이 자식들이 군대라도 다녀왔나? 이 전술적인 움직임은 도대체가......”
“여기가 이놈들 앞마당이잖아. 우린 이 지역에 대해 깜깜이고!”
“이온! 군대까지 다녀왔으면서 대책을 내놓으란 말이야!”
“난 공군 소속이라고!”
아이들을 피해 열심히 달아나고 반격했다.
헌데 번번이 녀석들에게 포위당하기 일쑤였다.
모든 골목과 지형지물을 꿰뚫고 있는 현지 아이들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아이들 상대로 포위당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야 하겠는가마는 서로 즐기자고 하는 마당이라 일부러 당해준 면도 있었다.
“진짜?”
“씁. 오빠가 그러면 그런 줄 알아. 니가 전술을 알아?”
사실 ‘꼬레아‘라는 말만 나오면, 사방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차라리 아이들만 상대하는 편이 피곤하지가 않다.
휙.
이온이 트릭커로써 환상적인 몸놀림으로 물풍선들을 피해본다.
팡.
팡.
얼굴에 정통으로 두 방 맞았다.
‘내 이것들을 그냥!’
옥상까지 올라가서 던지고 달아나는 녀석들까지.
차라리 모르는 녀석들에게 당했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전부 자신의 수업에 들어왔던 녀석들이라 배신감이 컸다.
‘존경한다며? 사랑한다며? 그런 니들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최종 집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속옷까지 페인트 물이 들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하하하.
호호호.
모두가 웃고 떠들고 환호했다.
온 도시가 축제의 무대이기 때문인지 낮 시간뿐 아니라 저녁시간에도 도시 곳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며 축제를 즐겼다.
프랑스 날라리 바스티앙이 클럽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이온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빠졌다.
따라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클럽으로 출발.
이온은 홀로 숙소로 돌아왔다.
클럽에서 노는 것이 싫어서 빠진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집중 포화를 당하면서 속옷까지 완전히 젖어버려서 매우 찝찝했고, 얼른 샤워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축제 기간일지라도, 사전예고 없이 저소득층 거주 마을에 단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류층 지역에 정상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말도 안 되는 행정 같지만.
이곳에는 당연시 되는 일들 중에 하나다.
때문에 숙소에 단수가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
숙소 앞에서 대여섯 살 먹은 원주민 소년이 서성거리고 있다.
울먹울먹.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그냥 무시하고 숙소로 들어가 버릴 수도 있지만.
눈에 밟혔다.
사실 소년·소녀를 미끼로 외국 관광객에게 강도단이 매복하다가 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축제날.
골목 마다 온통 주민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어서 강도들이 활동을 할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올라~‘
“......”
이온이 인사를 건넸지만, 소년은 매우 불안한 듯 안절부절 못했다.
“내가 도와줄까? 무슨 일이니?”